통신사의 길을 가다

통신사의 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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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시대 대일외교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통신사가 걸은 2,000킬로미터 길을 쫓으며 적국(敵國) 일본을 대한 그들의 지혜를 담아낸 역사답사기입니다.
『통신사의 길을 가다』는 저자 서인범(동국대학교 교수, 사학과)이 총 길이 2,000킬로미터에 달하는 통신사의 길을 직접 따라가며 조선시대 대일외교의 본질과 지혜를 문학적 문체로 유려하게 서술한 ‘역사답사기’다. 철저한 사료 조사에 현장에서 만난 많은 이와의 인터뷰, 박물관 견학 등이 더해져 역사적 진실에 최대한 근접하면서도 생생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당시 조선이 적국(敵國) 일본과 어떻게 관계를 정상화하고 각종 문제를 풀어냈는지 집중적으로 다루어, 오늘 첨예하게 대립 중인 우리와 일본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통신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았다. 부산에서 출발해 쓰시마(對馬島)와 세토나이카이(瀨?內海), 오사카와 교토를 지나, 도쿄(에도)에 도착한 뒤, 닛코(日光)를 방문하기까지 통신사가 지나간 주요 경유지 58곳을 직접 답사해 통신사 관련 저서 중에서도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여행기로서도 충실해 400여 개에 달하는 현장 사진과 도판을 싣고, 통신사가 걸은 길을 인포그래픽 형식의 지도로 만들어 보는 재미를 더했다.
저자

서인범

동국대학교사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하고일본도호쿠(東北)대학교문학부동양사학과에서「명대병제사연구」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2004년최부(崔溥)의『표해록』(漂海錄)을2,400여개의역주를달아한길사에서출판했다.그후최부의여정을따라항저우에서베이징까지길을떠났다.이여정을글로엮어2012년한길사에서『명대의운하길을걷다』로펴냈으며,‘EBS세계테마기행’으로방영되기도했다.이후최부의나머지여정인베이징에서압록강까지의길이조선시대사행길과겹친다는것에착안해2013년답사를떠났다.이여정은2014년한길사에서『연행사의길을가다』로출판됐다.조선사신들은중국뿐아니라일본으로도갔다.당시일본은한때적국이었던나라로조선의평화,더나아가동북아의평화를위해반드시관계맺을필요가있었다.조선시대주요외교사를마무리한다는일념으로2017년통신사의길을밟았다.현재동국대학교에서동양근세사를가르치면서명·청시대의중요한기록인『연행록』(燕行錄)을번역하고있다.

목차

통신사의길전체경로
답사길전체경로
동조궁의잠자는고양이|머리말
통신사는누구인가

제1부떨리는마음으로닻을올리다
부산→하카타구간세부경로
1부산에서만난통신사
2왜관의자취는사라지고
3해신제를지내며출항의안전을기원하다
4닻을올리고돛을펼치다
5물마루를넘어쓰시마로
6조선과의관계를생명처럼여긴쓰시마번
7조선인의심성을간파한호슈
8조선과쓰시마번,좁혀지지않는거리
9원나라군의흔적이남은이키시마
10조선침략의전초기지나고야성
11고양이의천국아이노시마

제2부외해를건너니내해가펼쳐지다
시모노세키→고베구간세부경로
12시모노세키의격류를거스르다
13천혜의양항가미노세키
14통신사기록의보고조코관
15시모카마가리지마의진수성찬
16일본제일의경승지토모노우라
17사람과신이공존하는이쓰쿠시마
18일본의에게해우시마도
19산킨코타이의거점무로쓰
20일본의국보히메지성
21통신사의객관을찾아고베를누비다

제3부드디어일본땅을밟다
오사카→세키가하라,다카쓰키구간세부경로
22바다와육지를연결한오사카
23활력넘치는관광명소도톤보리
24마지막물길50리
25수로항해의종착지요도천
26백성의피와땀이서린후시미성
27천년고도교토의사찰을둘러보다
28니조성에서조선호랑이를만나다
29조선인의한이서린이총
30선의후리를고집한오미하치만의상인들
31가문을지켜낸천하의여걸나오토라
32호슈의고향다카쓰키정
33역사를바꾼세키가하라전투

제4부내처걷는발걸음에관동을가로지르다
오가키→미시마구간세부경로
34배300척을연결한기소천의부교
35성중의성나고야성
36오카자키성에서이에야스를만나다
37후지카와숙에서요시다숙까지
38금절하에서보여준조선관원의기개
39후지산은일본에서두번째로높다
40건너려야건널수없는오이천
?「도카이도53차」로보는에도시대의풍경
41슨푸의오고쇼는건재하다
42통신사를감동케한절경중의절경청견사
43쓰나미가요시하라숙을밀어내다
44통신사대접에최선을다한미시마숙

제5부에도에들어가장군을알현하다
하코네→닛코구간세부경로
45에도방어의최전선하코네관소
46난공불락의오다와라성이함락되다
47오이소의고려인마을
48요코하마의밤을밝히는랜드마크타워
49시나가와에서관복으로갈아입다
50풍악을울리며입성한에도성
51장군을알현하다
52금빛찬란한닛코의동조궁
53장군이사랑한마상재
54나라를뒤흔든야나가와잇켄
55장군은일본국왕인가대군인가

제6부우여곡절끝에귀환하다
56피로인의슬픔을누가달래줄까
57오사카의원혼이된최천종
58수행원의다툼과죽음
59임금앞에복명하다

역사해석의간극|맺는말
통신사의길에서만난한·중·일118인
역사용어·역사지명풀이113선
표로정리한통신사파견
통신사관련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등재목록

출판사 서평

연행사의길에서이어진통신사의길
『통신사의길을가다』는저자의전작『연행사의길을가다』(2014,한길사)의연장선에있는책이다.연행사는명나라와청나라에파견된사신으로조공을바치고조선과중국사이의각종외교현안,가령압록강의영토문제,왕세자책봉문제등을해결했다.당시동아시아에서중국이차지한위상을생각하면연행사는굉장히중요한직책이었다.그런데이중상당수가일본으로도파견되었으니바로통신사다.당시조선이적국일본을어떻게생각했는지알수있는대목이다.
물론통신사파견은전적으로일본의요청에서시작된일이다.임진왜란과정유재란이후도요토미히데요시에서도쿠가와이에야스로권력이재편된일본은조선과의관계회복을가장중요한일로꼽았다.조선과일본을중계하며먹고살았던쓰시마의노력이있긴했지만,무엇보다이에야스의국제정세판단이한몫했다.그는조선과관계를회복하고문물을교류하는게일본의국익을위해굉장히중요하다고생각했다.

“나는관동(?東)에있었기때문에임진년의일에대해서미리알지못했소.지금은히데요시의잘못을바로잡았소.진실로조선과나와는원한이없소.화친하기를바라오.”_23쪽

1607년의첫파견이후200여년간통신사는총12번일본을다녀왔다.일본의요청으로파견된통신사지만그들을가볍게대하지않았다.물론중국을대할때보다급을낮춘건사실이지만이는당시동아시아정세를고려했을때상식적인처사였다.조선도일본과의관계회복이동아시아의평화를위해중요하다는것을알고있었다.다만일본이아우의처지로조선과중국에잘대하길바랐을뿐이다.물론일본은늘조선과대등하게대접받고싶어했다.그러다보니어느쪽이사신파견을먼저요청하는지,호칭은어떻게정리하는지등을둘러싸고미묘한신경전이끊이질알았다.두국가의이해가부딪히는이아슬아슬한경계선에서통신사는국익을위해,또두국가의평화로운공존을위해부단히애썼다.
통신사가일본에다녀오는데는최소반년,길게는1년까지걸렸다.따라서당시외교는요즘처럼비행기를타고가서장관이면장관,총리면총리,대통령이면대통령을만나고오는방식과는개념부터달랐다.통신사가길에서막부관료와일본인을수없이만나는일자체가넓게보아외교였다.당시외교를논하며‘길’을빼놓을수없는이유다.
저자는통신사의길을따라40일간총2,000킬로미터를이동했다.단일학자의통신사의길답사로는최대규모라할수있다.그만큼성과도컸다.몇몇박물관의수장고에직접들어가통신사관련자료를조사하고촬영하는역사학자로서잊지못할경험도했다.그런노력으로국내에서는보기힘든여러도판을책에실을수있었다.저자가직접찍은사진도생생한감흥을불러일으킨다.무엇보다조선시대통신사처럼수많은일본인을만나대화를나눴다.그들은여전히통신사를기억하고,통신사의행차를기념한축제를열고있었다.그들의입이아니었다면기존사료의빈곳을생생하게복원할수없었을것이다.

생생하게복원한통신사의외교여정
『통신사의길을가다』는총6부로구성되어있다.목숨을걸고바다를건너는순간부터화려한에도성에서장군을알현하는긴장된순간까지한번읽으면잊지못할통신사의이야기가담겨있다.

-제1부떨리는마음으로닻을올리다
제1부는부산에서하카타까지다룬다.통신사는쓰시마와이키시마를거쳐일본근해에도달했다.험한바다를건너야했기때문에부산에서해신에게제사를올렸다.쓰시마에서는조선과일본의중재자역할을한쓰시마번주를만났다.
저자는쓰시마번과조선의관계를집중적으로분석한다.쓰시마는척박한섬이었기에조선과일본사이에서무역하지않으면도저히생존할수없었다.쓰시마번주가조일의관계회복을앞장서이끈이유다.
그렇다고쓰시마번이조선에무조건머리를조아린건아니다.아주당당히요구할건요구하고불만을표할건불만을표했다.심지어조선이벼슬을내리고양식을주었는데도말이다.조선은이런쓰시마번의행태에불쾌해하면서도일본과조선사이에낀그들의중계자적처지를이해해주고마치동생을대하듯어울렀다.

“쓰시마는조선의한고을과같다.태수가도장(圖章)을받았고조정의녹을먹으며큰일이든작은일이든명령을받으니우리나라에대해번신의의리가있다”(제8차통신사종사관이방언의기록)._89쪽

-제2부외해를건너니내해가펼쳐지다
제2부는시모노세키에서고베(효고)까지다룬다.시모노세키의격류를지나면일본의내해,즉세토나이카이가나온다.통신사는배를타고세토나이카이를지나며바닷가의숙장들에서휴식을취했다.저자는통신사가극진히대접받았음을생생히묘사한다.특히일본의유력자들이앞다투어통신사를찾아왔는데,조선인의글과그림이귀중했기때문이기도하지만,이러한만남에서조선은일본을,일본은조선을탐색하고자했다.통신사가걷는길자체가늘외교현장이었던것이다.

“구름이지나가고달이솟으매만경창파가비단을펼친듯하다.수많은돛단배가언덕아래에정박하고는점점이등을달아곧하계(下界)의별빛이되었다.사람이신선이되어하늘을오르는기분이들게한다”(제10차통신사종사관조명채의기록)._212쪽

-제3부드디어일본땅을밟다
제3부는오사카에서세키가하라까지다룬다.오사카에도착한통신사는얼마간의수로항해를마친후드디어육로를걷기시작한다.통신사는보통나카센도(中山道)를따라걸었는데,천년고도교토의번화함과비와호(琵琶湖)의아름다움에입을다물지못했다.
저자는교토에서통신사가묵은여러사찰을답사했다.특히교토의역사가오래된만큼사찰이많았는데,규모가큰사찰이라면대부분통신사에관한기록이나유물을간직하고있었다.이중에는이총(耳塚),즉왜란당시일본군이벤조선인의귀와코를묻은무덤이있는곳도있었다.당시일본은이총을만들며이에야스의자비로움을찬양했으니,통신사는이총이있는사찰에묵기거부함으로써항의의뜻을밝혔다.
이후세키가하라전투가벌어졌던격전지를지난통신사는나카센도를벗어나나고야로향했다.그분기점에서일본역사의변곡점을몸소느꼈으리라.

“히데요시가일으킨이전쟁은조선반도사람들의끈질긴저항때문에패퇴로끝났다.이이총은전란으로피해를입은조선민중의수난을역사의유훈으로서오늘에전하고있다”(교토도요쿠니신사근처의이총앞안내판의내용)._363쪽

-제4부내처걷는발걸음에관동을가로지르다
제4부는오가키에서미시마까지다룬다.저자는통신사가나고야부터일본의5대가도(街道)중하나인도카이도(東海道)를따라걸었음을밝힌다.이에야스는권력을잡은이후길을닦기위해도카이도에소나무를심었는데통신사는소나무그늘밑을걸으며시원하게에도로향할수있었다.길에서후지산도볼수있었는데,압도적인크기에감격하면서도금강산과비교하며자부심을드러낸이가적지않았으니,일본에대한경쟁심은예전이나지금이나다르지않다.
물론통신사가늘풍경이나구경하며마음편히이동한것은아니다.아라이관소를지나야했기때문이다.관소를지나는일은예나지금이나긴장되는일이었다.제1차통신사는장군에서물러나오고쇼(大御所)가된이에야스를알현하기도했다.저자는도카이도의풍경을생생하게전달하기위해일본을대표하는우키요에화가우타가와히로시게가그린「도카이도53차」를실었다.

“이에야스는관복을갖추고서협당(西俠堂)에앉았다.……예를끝내고나오는데관복을갖추고외당(外堂)에서문안드리는왜관(倭官)이얼마인지그수를셀수없었다.……그의나이는66세였다.형체는장대했으며,기력은쇠로(衰老)하지않았다”(제1차통신사정사여우길의기록)._532쪽

-제5부에도에들어가장군을알현하다
제5부는하코네에서닛코까지다룬다.에도를지키는마지막관문하코네관소를지난통신사는드디어에도에도착,장군을알현한다.국서를전달하고답서를받은뒤그형식에이상은없는지확인을마칠때까지한시도긴장을놓을수없었다.장군이요청한마상재를공연하고,이에야스의사묘가있는닛코에참배하는일모두외교전의연장선에있었다.
특히제4차통신사가파견되었을때는‘야나가와잇켄’(柳川一件)이벌어졌다.쓰시마번주가조선과일본의관계회복을위해국서를위작한일이폭로된사건이다.조선의임금과일본의장군이주고받는국서의내용에손을댔으니양국에어떤후폭풍이미칠지아무도모를일이었다.당시정사임광은쓰시마번주가계속조선과일본사이에서중계자역할을해야한다는판단하에그의위신을높여주려각종요구를수용했다.통신사의닛코참배도이런이유에서성사된일이다.
저자는그치열하고아슬아슬한순간을놓칠까부지런히답사를이어갔다.양국의평화를위해노력한통신사의깊은뜻을알게된시간이었다.

“단청한벽과금칠한기둥은광채가눈부셨다.지극히웅장하고수려했다.통신사는국서를정청에봉안했다.사찰이거대해일행이모두한구내(構內)에체재했다.대소수백명이기거했다.잠자는곳,부엌,측간등이회랑으로연결되어있었다.뜰에는연못을만들었고못가의작은언덕에는화초를심었다”(제9차통신사제술관신유한의기록)._641쪽

-제6부우여곡절끝에귀환하다
제6부는통신사의귀환여정을그린다.대부분통신사가홀가분하게돌아와임금에게복명(復命)함으로써파견을마무리했지만,큰사고를당한경우도있었다.주로일행의죽음이었는데,병에걸리거나해로에서폭풍에휘말려죽는이도있었지만,일본인에게살해당한이도있었다.제11차통신사의도훈도(都訓導)최천종이대표적이다.당시정사조엄은간단히장례를치르고시신을먼저부산에보내는동시에,사건의전말을밝히기위해일본을굉장히압박했다.결국범인을잡아참수함으로써사건은일단락된다.

“통신사의수행원을죽인것은진실로일본의크나큰수치다.통신사는장군의경사를축하하기위해왔는데,그일행에게이처럼흉악한일을저지른것은매우잘못된일이다.당연히이일로쓰시마사람중에는조선과일본양쪽에서모두인심을잃은자가많았다”(저자)._723쪽

‘성’(誠)과‘신’(信)으로관계를회복한조선과일본
답사내내,또일본에머물며원고를탈고한반년간저자는조선이일본과어떻게관계를회복했는지깊이탐구하고,이를오늘한국과일본사이에놓인산적한외교문제를푸는데어떻게적용할수있는지고민했다.당시통신사가맡은가장중요한임무중하나는피로인(被虜人),즉왜란과재란때일본으로잡혀간조선인포로들을다시데리고오는일이었다.조선의요구에일본이바로사과하고그들을보내준것은아니나나름성의를보였다.군대가저지른일이라는점에서위안부문제와겹치는부분이있다.다만오늘일본은위안부문제가‘최종적및불가역적’으로해결되었으므로더이상문제삼지말라고하니400여년전보다태도가후퇴했다.
저자가일본을답사했을2017년은위안부문제에북핵문제까지겹쳐한국과일본의사이가어느때보다안좋았을시기다.그가통신사의길에서만난많은일본인이‘계속위안부문제를제기하면곤란하다’거나‘양국이위안부문제를정치적으로다루면안된다’거나하는식으로반응했다.그러던중NHK에서방영한한다큐멘터리가문제해결의실마리를제공했다.「고백:만몽(滿蒙)개척단의여인들」이라는제목의다큐멘터리는제2차세계대전막바지에만주로들이닥친소련군이만주개척단의일본여성들을위안부로삼은내용을담고있었다.일본인들에게도우리와똑같은상처가있었던것이다.
이부분에서저자는조선과일본의외교를최전선에서이끌었던이들이‘성’(誠)과‘신’(信)을강조한이유를찾는다.정성과믿음으로인내하고끈기있게상대를대하면서로이해하지못할것이없고풀지못할문제가없다는태도를말한것이다.
누군가는오늘동북아를화약고에비유한다.특히한일관계가최악이다.위안부문제가불거진이후정치적인교류는완전히멈췄다고할정도다.당연한얘기지만언제까지이럴수는없다.우리가다시한번통신사의지혜에귀기울여야할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