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근경(近景)
제1부‘근경’에서는19세기의기억,시간,공간을설명한다.그중제1장인「기억과자기관찰」은제도로서의문서보관소,도서관,박물관,전시회,백과전서그리고탐사보도와여행기,지도제작,신문,사진의보급과확산을살펴본다.
다음으로오스터함멜은시공간의관념을탐구한다.빅토리아시대에형성된현대라는시간관념이인간의생활과세계각지의문화와충돌하는과정을분석하고,과학과민족국가라는개념을기초로19세기의공간관념이지구전체로확장해가는과정을살펴본다.
또한,새로운관념을사용하여공간의거리를측정하고공간을민족,영토,제국,해양,소유권등으로분할하는과정과마지막으로이런관념들이새로운권력체계아래에서어떤의미를만들어내는지분석한다.
제2부전경(全景)
제2부‘전경’에서는인구이동,생활수준,도시생활이란주제를통해다시한번세계를하나의전체로파악한다.여기서19세기에나타난생활수준의질적변화,질병,자연재해,기아,빈곤,소비문화의세계화등이상호연결되는과정을보여준다.그리고징벌과유배지,인종청소,자본주의,노예무역의변형을언급한다.
오스터함멜은19세기의도시를조명하면서전세계에서도시와전통의충돌과통합,항구도시의흥기,식민주의와제국주의의관계,도시의지하공간,도시의상징과미학의문제를분석한다.또한북아메리카의서부개척,유럽인들의사하라사막이남지역개발,빅토리아시대의자연정복관념이생태환경을약탈한현상을분석하면서프런티어란관념을제시한다.
마지막으로제국주의와민족,국제주의와강대국체제,혁명과국가,민주주의와민족주의등의문제를탐색한다.
제3부주제
제3부‘주제’에서는경제,문화,기술,사회적이슈에주목한다.에너지와공업화,자본주의,다양한노동형태와노동의의미변화,새로운작업장의출현,노동자해방운동의대두,고용관계의불균형을다루고뒤이어교통과통신의네트워크,사회등급제도의발전,지식의변화,문명관념의형성과배제,종교의세속화와제국의관계,종교내부의개혁운동등의주제를다룬다.
오스터함멜의세계사와19세기유럽
빅토리아시대의‘진보’관념에서벗어나다
지난수십년동안수없이많이출간된세계사저작들과는달리오스터함멜의저작『대변혁:19세기의역사풍경』은빅토리아시대의‘진보’관념을벗어났다.
그동안세계사서술은‘현대화’‘진보’‘대국의흥망성쇠’‘민족의부흥’등의관념을주로다뤘다.이러한분석의틀은사실은19세기유럽의민족국가를기반으로한‘진보’관념에서나왔다.이는문명,계급,국가또는민족을빠짐없이유기체로보았고세계사는이러한상상속의유기체사이의상호경쟁,상호충돌의역사가되어왔다.자원과패권을둘러싼민족과국가의경쟁을제외한개인의경험은다루지않았다.
빅토리아시대의진보관념은당시에유행하던다윈주의(Darwinism)와결합하면서20세기까지도줄곧영향을미친사회적다윈주의(SocialDarwinism)를낳았다.그러므로19세기의세계사를서술한다고했을때누구든쉽게민족과제국이전세계에서자원,영토,패권의쟁탈전을벌이는“사회적다윈주의의역사”를쓰려했겠지만오스터함멜은그런방식을따르지않았다.
오스터함멜은오히려역사속의평범한인물들과그들의일상생활을주목하고구체적인개인이어떻게질병에대처했는지,어디서책을보았는지,오페라를보기위해어느극장을갔는지,어떻게배를타고여행했는지를묘사했다.바로이러한일상생활과문화적경험을통해『대변혁:19세기의역사풍경』은19세기전체에관한역사,민족과제국의상호경쟁에함몰되지않은역사,‘중요하지않거나’‘낙후한’민족이생략되지않은역사를기술했다.그런의미에서오스터함멜은“‘민족주의’와‘제국주의’이전의‘계몽주의자’다.그의시선은역사속의생생한개인을떠난적이없다”(2394쪽).
19세기와유럽
오스터함멜의『대변혁:19세기의역사풍경』은프랑스의역사학자페르낭브로델과영국의역사학자크리스토퍼베일리,에릭홉스봄과비교된다.
하지만오스터함멜이그들과근본적으로다른점은그가동방의역사(특히중국역사)를깊이있게연구했기때문에유럽중심론의유혹에서벗어날수있었다는데있다.또한,오스터함멜은특정시대와사회에대한선입견을의도적으로멀리했다.
원칙적으로분석방법에있어서는유럽중심주의를벗어났다고해도이책은상당부분유럽을중심으로서술한다.오스터함멜도“모든세기가운데특히19세기는유럽중심주의의영향을받지않고서는서술할수없다”(36쪽)고밝힌다.19세기만큼유럽의세기였던세기는없기때문이다.
유럽은나머지대륙을삼중으로위협했다.
첫째,유럽은세력을갖고있었다.그세력은대부분잔인함과폭력으로표출되었다.
둘째,유럽은영향력을갖고있었다.그영향력을자본주의라는통로를통해전파하는방법을알고있었다.
셋째,유럽은실제로보여줄수있는사례를갖고있었다.그사례의힘은대부분의희생자들조차도부정할수가없었다.
이런복합적우위는유럽이확장을시작하던근대초기에는존재하지않았다.포르투갈이든,스페인이든,네덜란드이든,영국이든대략1760년이전에는그들의세력을세상의먼곳까지확산시키는데있어서19세기의영국과프랑스만큼강력한문화적충격을안겨주지못했다.19세기사는유럽에서,유럽에의해만들어졌다.그앞의18세기나그뒤의20세기도이런양상을보여주지못했고더앞선세기는말할것도없었다.일찍이유럽이이처럼폭발적인혁신과주도권―정복력과교만함―을보여준적은없었다.
그렇다면‘왜유럽인가?’
이질문을두고계몽시대부터막스베버(MaxWeber)를시작으로수많은역사학자가답을찾고자했다.하지만오스터함멜은『대변혁:19세기의역사풍경』에서해답을찾고자하는질문은이것이아니라고말한다.20-30년전까지만해도학계에서는‘유럽의특수한길’을기조로한세계근대사를썼지만,오늘날역사가들은유럽의오만을회피하려노력하고있고보편화와상대화를통해‘특수한길’이란독침을제거하려한다는것이다.
오스터함멜은최근비교역사학자들사이에서근대초기의유럽과세계의다른지역사이의사회적·경제적차이가앞세대학자들이생각해왔던것만큼그렇게극적이지않았다는강한공감대가형성되어있고이런맥락에서19세기는다시들여다보아야할가치가있다고말한다.
19세기의성격
오스터함멜은“이책의내용을몇줄의문장으로요약할수도없고대체로정확하게서술한그시대의주요한발전추세의핵심개념―공업화,도시화,민족국가의형성,식민주의,세계화개념―을반복한다고해서우리의지식이쌓이지도않는다”(2367쪽)라고말하면서,19세기를톺아볼수있는다섯가지시각을제시한다.
1)생산효율이‘비대칭적으로상승한’시대
첫째,공업화다.주요특징은고도의분업노동,공장방식의생산조직,석탄을동력으로하는기계의사용이었다.특히공업화의발전은지역별편차가심했는데,대륙간편차뿐아니라유럽과미국내부에서도차이가심했다.
둘째,모든대륙의프런티어에개척된새로운토지에서생산효율이폭발했다.프런티어개발은공업화에비해주목받지못했지만미국의중서부에서아르헨티나까지,카자흐스탄에서버마에이르기까지모든대륙의프런티어에토지가개척되었다.
프런티어지역의생산품은현지소비자를위해서만생산되지않았다.대륙을넘나드는상업유통영역에진입했다.“공업기술의화신인증기선과철도가운수부문에도입됨으로써운송비용이빠르게하락했고이에따라밀,쌀,면화,커피등전통적인프런티어상품의무역이확장되기시작했다”(2036쪽).
셋째,군사영역이다.19세기에는개별병사의살상능력이폭발적으로증가했다.병기기술의혁신이외에도군사조직을운용할수있는지식과전략전술의발전도군사적효율이증가하게된독특한원인가운데하나였다.그밖에도국가자원을군사영역에집중하겠다는정치적의지가강했던시기다.
넷째,국가기관이민중을체계적으로통제하기시작했다.행정적규제는증가했고지방행정기관의직권범위는확대되었다.인구조사를철저히하면서부동산보유를파악하고납세능력의등급을나눴다.징세는보다공정해졌지만규칙적으로행해졌고세목(稅目)은늘었다.
이를바탕으로19세기에는지방통치의새로운기법이등장했다.그바탕위에서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의무교육,복지국가정책이시행되었다.“국가는새로운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변하기시작했으나반드시괴물이될필요는없었다”(2037쪽).
2)유동성의증가
첫째,19세기에는인구이동이급격하게증가했다.19세기처럼북아메리카와남아메리카,시베리아와만주지역으로의대규모이동은없었다.1870-1930년사이에일어났던인구이동의강도는그후다시나타나지않았다.이것은그시대가특히주목받는전지구적특징이었다.
상품의유통도새로운수준에올랐다.비단,향료,차,설탕,담배등사치품교역이식량과공산품원료교역으로대체되었다.생산량증가를크게초월하는세계무역확대를나타내는수치가이런상황을설명해준다.
둘째,증기선과철도등기술혁신이모든형태의이동속도를높여놓았다.속도의증가가시대의특징이라는얘기는전혀새로울게없지만그것은역사적으로중대한의미를지닌다.
셋째,마지막으로이제유동성은사회기반시설에의존하지않고는유지될수없게되었다.철도망의건설,세계적해운회사의등장,지구전체를연결하는해저케이블건설은기술의응용과조직의안정화면에서새로운지평을열었다.
이동생활은조직화된사회생활의새로운차원,즉좁은범위에서일상을유지하던리듬과는전혀다른생활이시작되었다.이제사람들은작업장근처에살지않아도되었다.‘출퇴근’이라는개념이탄생했다.이추세는20세기까지이어졌다.‘세계화’를국가와문화의경계를넘어가속화되고공간적으로확장된자원의유통이라고정의한다면이때비로소‘세계화’가시작되었다.
3)상호관계강화의비대칭성
19세기에들어와관념,특히문화의유동성이더높아졌다.
대륙과인종간에사상과예술을공유하고이해할수있게된건19세기에들어와서야생긴현상이다.
1900년무렵서방의대형도서관은아시아의전통을알수있는기본문헌의번역본을독자들에게제공했다.한편으로는유럽의몇몇학문분야의교과서와철학,법률,경제이론책이일본어,중국어,터키어로번역되었다.영어와프랑스어를구사할줄아는일부교육받은동방의문화엘리트들은서방의관념과사상을직접체험했다.
이를통해19세기에두가지현상이나타났다.하나는외부지향형이양적으로늘어난것이었다.세계인구의절대다수가다른국가의존재에대해전혀모르거나모호한개념만갖고있을때문화엘리트들은유례없는관심을가지고외부세계를관찰했다.
다른하나는문화의‘교류’가비대칭화되어일종의‘표준’이생긴것이다.문화적표본의다양성이사라지고서방이‘표준문화’로등장했다.그러나‘표준문화’는유럽국가전부를가리키지않았다.미국도19세기말이되어서야독자적인문명의모형으로서인정받았다.1870년또는1880년무렵의중국,일본,멕시코또는이집트의입장에서보자면‘서방’은우선영국을의미했고다음으로프랑스를가리켰다.메이지시기의일본은비스마르크정부의군사와과학의효율성을흠모했다.그러므로일본에게는독일이라는표본이하나더있었다.
4)평등과등급제도의대립
법률적평등의추세는사회적지위와신분상승의가능성을결정하는데있어서이전보다가족배경의중요성이낮아졌다.19세기부터는경제적요인의결정력이높아졌다.
독립전쟁과정에서노예제를폐지하여유럽보다등급질서의성격이상대적으로옅어진미국은‘보편적인’평등의길로나아갔다.
사회적평등은순전히유럽의사상은아니었다.수평주의,박애주의,지배자가없는사회등유토피아적희망은여러문화에널리퍼져있었다.그런데근대유럽에서기독교박애주의를기반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