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타협 없는 어둠의 찬란한 성취 | 레이첼 커스크 장편소설 | 윤곽3부작 제3권)

영광 (타협 없는 어둠의 찬란한 성취 | 레이첼 커스크 장편소설 | 윤곽3부작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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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윤곽 3부작’의 짜릿한 피날레.
레이첼 커스크는 그녀 특유의 신랄한 재치로
문학계의 불필요한 가식을 꼬집어냄과 동시에
문학의 본질적인 가치를 지키려고 힘쓴다.”
_이코노미스트
레이첼 커스크의 ‘윤곽 3부작’이 막을 내렸다. 올해 『두 번째 장소』(Second Place)로 부커상 후보에 오른 커스크는 2012년 출산과 이혼의 아픔을 낱낱이 고백한 작품 『후유증: 결혼과 이혼에 관하여』(Aftermath)를 펴내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페미니즘의 원칙에 부합하기 위해 일을 하고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했던 그녀는 경제력을 갖춰도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덜어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 여성의 몸을 혐오하면서 남성의 옷을 입어야 했다.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대중에게 다가갔지만 그녀의 글이 너무 적나라하다는 이유로 독자들과 문단에서 거센 비판과 외면을 받으면서 그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윤곽 3부작’은 커스크가 이러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시작되었다. “글쓰기와 삶이 똑같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생각을 과감하게 버리고 그녀는 침묵하며 타인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는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윤곽』과 『환승』을 거치면서 그녀는 세상을 공정하게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거울이 되어 악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남성중심주의적인 시각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영광』 의 화자 파예는 청자의 역할을 끝내고 말하는 주체가 되기로 결심한다. 사람들이 여성의 솔직한 이야기를 싫어하더라도 현실에 맞서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기로 다짐한 것이다.
‘윤곽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영광』은 실패에 관해 다루지만 작품 자체로서는 결코 실패가 아니다. 여성으로서 빛나는 성취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의 작품은 독자들을 설득하거나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가장 열악하고 볼품없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이끌어낼 뿐이다. 그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은 화자가 청자로서 들려준 이야기가 잊힌 후에도 우리 마음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한층 더 견고해진 파예를 통해 일어설 힘을 얻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레이첼커스크

RachelCusk,1967-
1967년캐나다에서태어난레이첼커스크는어린시절을로스앤젤레스에서보낸후1974년영국으로이주해옥스퍼드대학에서영문학을전공했다.2018년에구겐하임펠로십을수상했으며현재파리에살고있다.첫소설『아그네스구하기』(SavingAgnes,휘트브레드신인소설가상)를1993년에출간한이후,『어느도시아가씨의아주우아한시골생활』(TheCountryLife,서머싯몸상수상),『알링턴파크여자들의어느완벽한하루』(ArlingtonPark,오렌지상최종후보),『운좋은사람들』(TheLuckyOnes,휘트브레드소설상최종후보),『우리에갇혀』(IntheFold,부커상후보),『두번째장소』(SecondPlace,부커상후보)등그녀의소설은주로사회가만들어놓은여성상과이에대한풍자를주제로했다.
지금까지모두열한편의장편소설을발표했고,2003년에는『그란타매거진』이선정하는‘영국최고의젊은소설가’로뽑혔다.루퍼트굴드가연출하고,레이첼커스크가각본을쓴에우리피데스의『메데이아』(Medea,2015)는수잔스미스블랙번상의최종후보로선정되기도했다.특히10년간의결혼생활과이혼의아픈경험을대담하고솔직하게담은그녀의회고록『일생의일:엄마가되는것』(ALifeWork:OnBecomingaMother,2001)과『후유증:결혼과이혼』(Aftermath:OnMarriageandSeparation,2012)은영국문단에큰파장과논쟁을낳았다.
긴공백후,커스크는새로운형식의소설적글쓰기를시도한다.주관적이고직관적인견해는피하면서서사적관습에서벗어나개인적경험을표현하는것이다.이새로운프로젝트는‘윤곽3부작’인『윤곽』(Outline,2014),『환승』(Transit,2016),『영광』(Kudos,2018)으로발전했고,해외문단에서높은평가를받고있다.

출판사 서평

강인하게삶을살아가는여성들

『윤곽』에서커스크가타인을거울처럼비추는데이야기의초점을맞췄다면『환승』에서는무너진자아를바로세우고새로운사랑을발견한다.그리고마침내우리는『영광』을통해자신의목소리를내기로결심한화자를만나게된다.화자는문학행사에참여하기위해유럽으로가면서비행기승객,출판사직원,가이드,동료작가들을만나며성평등부터문학에대한다양한이야기를나눈다.이번에도파예는거울역할을하며다른사람의이야기를담담하게풀어나가지만놀랍게도그녀의차분한목소리는울림있는소설이된다.아무일도일어나지않은것처럼보이지만실은대화속에모든것이담겨있다.
유럽에서화자는다양한삶을살고있는여성들을만나게된다.문학행사에참여한여성작가소피아는자신이페미니스트작가로서행사에초청받은것이아니라번역작업을통해남성작가들에게국제적인명성을선사했기때문이라고이야기한다.그이유가아니라면자신은이지역에살아서비행기표를마련해주지않아도되기때문일거라고우스갯소리를한다.소피아가남편과이혼하는과정에서그녀의아들은아버지편을들때가많았다.아들은아버지와재미있는시간을보내며남성적가치에더욱공감했다.남편은아들의그런충성심을악용하면서아이에게남성연대라는정체성을심어주었다.하지만아들이석달동안병석에누워있게되자자신의침대맡을지키는어머니와병문안오는일이드문아버지에대해다시생각하게되면서소피아는아들의변화를다행스럽게여긴다.

또다른여성작가린다는자신이비행기에서만난여자이야기를들려준다.스키강사인여자는스키에열광하는학생들이위험한코스에가고싶다고성화를부리는바람에날씨가좋지않았지만학생들을인솔한다.그러면안된다는것을알았지만그결정을내린사람은여자였다.눈보라를피하기위해산에서빨리내려가려고그들은속도를냈지만여자는그상황이현실에서벗어날수있는어떤기회처럼느껴졌다.여자는산에서추락해뼈가으스러졌다는사실을모른채이틀뒤혼자힘으로산속대피소에도착했다.린다는그일이아이를낳는일과비슷하다고생각했고자신의이야기처럼들렸다고말한다.출산은죽음을이겨내는일이고그후에남는것은그일에대해떠는것뿐이니말이다.여자와마찬가지로린다의몸도출산으로산산이부서졌고죽음을생각하게되었지만글쓰기를하면서자신의육체를완전히잊을수있었다.
커스크의인물들은하나같이그녀를닮아치열하게삶을살아내면서강인해진다.소피아자신이비관해작가로서의삶과아이를돌보지않았다면,린다가출산의아픔으로글쓰기가아닌죽음을택했다면우리는이들의삶에공감하지못했을것이다.

어긋난남성들의폭력에맞서균열을견디는인물
『영광』은가정이나직장에서우리가흔히목격하게되는남성들의폭력성을고발하는작품으로읽히기도한다.화자는이런남성들의모습을비춰줄때서서히균열을겪는다.그녀는유럽으로가는비행기안에서옆자리남자와대화를나누게된다.그는장시간비행으로피곤한상태였는데딸이오보에연습을하는소리때문에쉬지못하고괴로워한다.그는연주회에서딸이오보에를황홀하게연주하는것을듣기전까지딸에게문제가있다고생각했다.그의딸벳시는그가생각하기에비정상적인면이너무나많았다.벳시는어린시절부터불면증을앓았고발에밟히는모래의감각을몸서리치게싫어하는가하면특정단어의발음을못견뎌하기도하고어떤화법을거짓말이라고부르며극도로예민하게반응했다.딸은지인과식사하는자리에서“경기는불황이지만사업은잘되고있다”고말하는어른들의대화를듣고소리를지르며뛰쳐나갔다.화자는남자의이야기를듣고“사람들은자신에게문제가있다는생각보다자식에게문제가있다는생각을더쉽게받아들이는것같다”며냉소한다.

파예의책을번역한펠리시아는먼거리를차없이자전거로만이동한다.그녀는남편과이혼하면서아이를돌보는사람이차를사용하기로합의했고,아이는펠리시아와함께있는시간이많았기때문에당연히차도그녀의집앞에주차되어있었다.펠리시아는2주전에는월급의절반을들여타이어를새것으로교체했다그런데어느날남편의변호사가그녀의수입으로는자동차의유지비를감당할수없다는서류를보냈고,남편은더이상그녀에게차를믿고맡길수없다는이유를들며차를강제로빼앗았다.지각한아이를학교에데려다주려고보니차는이미남편이가져간상태였다.법을정의와연결한그녀는법을자신의무기로사용한남편앞에서철저히무너졌다.
과묵한청자의역할을하던파예는만나는사람들에게자신의의견을덧붙이며일침을가한다.남성이여성을오해하고폭력을행사한결과를여실히드러내면서자신의윤곽을더욱선명하게그려나가는것이다.받아들이는태도의공허함을인식하고이야기속에감춰진진실을발견하자그녀는진정한의미의자유를누리게된것이다.

악을직시하기로한자의평화

여성들이어떠한영광도누리지못하는이작품의제목은왜『영광』일까.우리는작가들을인솔하는가이드소년헤르만의이야기를통해‘영광’의의미를살펴볼수있다.그는학교에서만난친구옌카가그누구보다도뛰어난여학생이라고말한다.옌카가하는말을들으면다른사람들의이야기가별볼일없게느껴질정도로그녀의재능은출중하다.학교에서는한학년이끝날때마다가장뛰어난남학생과여학생에게우등상을주는데헤르만은상을줄때개인의성취뿐만아니라성별을고려한다는점에의아해한다.그의어머니는성별을구분하지않는다면남성중심주의적인‘악’한사고가끼어들여지가있어공정한방식으로수상자를선정하지못할것이라고말한다.

그는학교에서정한상의이름이‘쿠도스’Kudos라고했다.알고있겠지만,그리스단어인‘쿠도스’는원래단수였으나역성변화를거치며복수가되었다고했다.즉,현대영어에서‘쿠도’kudo라는단수의단어는존재하지않는데,의아하게도뒤에복수어미가붙은‘쿠도스’는우수한자에게수여하는‘상’,우수한자가누리는‘영광’이라는의미로쓰였다.게다가독자적인의미장이형성되어타인의인정이나찬사라는뜻도포함하고있었으며,누군가가타인의공을가로채는상황까지도암시했다._121~122쪽

헤르만은언젠가어머니의통화내용을듣게되었는데힘든일은어머니가다했는데도이사회에서는행사가성공적으로이루어진것을보며‘쿠도스’를차지하려한다는내용이었다.그는단수없이복수만존재하는것처럼집단이한사람을철저히지워버린상황을흥미롭게여겼다.그는옌카와함께상을받아즐거웠지만성평등에대한의문을떨칠수없었다.
이러한일화는커스크와노르웨이의거장칼오베크나우스고르에대한상반된평가를상기한다.크나우스고르는일상의세세한모습을치밀하게묘사하는자전소설‘나의투쟁’으로커스크와함께언급되지만그녀보다더확실한찬사를받고있기때문이다.여성의회고록은비난받는반면남성의자전소설은호평받는뼈아픈현실을투영한다.여성은성별을구분해수여하기전까지는‘영광’이라는특별상을받을수없다.작중에등장하는여성작가소피아는남성작가루이스의소설을번역해홍보했는데그는솔직한글쓰기로인기를얻었지만그가여자였다면솔직함때문에조롱받았을것이라고이야기한다.커스크는‘윤곽3부작’의성공으로“사람들은실체가확실한여성화자보다모호한화자를선호한다”는사실을증명했다.

새로운시작을결심하는여자의찬란한용기

파예는우리가하는모든결심의핵심에는“떠날것인가남을것인가”라는질문이담겨있다고말한다.‘윤곽3부작’을장식하는『영광』의결말은이질문에대한답이기도하다.남성중심주의적인사회와문단에커스크는절박한물음을던졌고그해답을얻었다.그녀는소설속에서커스크로대변되는파예가여성을바라보는남성적이고폭력적인시선을직시하고새로운시작을결심했다.그녀의이러한의지는우리에게차분하면서도강력한파도같은일렁임을전해준다.

커스크는『영광』이“평화를발견하는내용”이라고말한다.혼란을겪고자신의진정한목소리를내며파예가찾은평화는그녀를둘러싼환경이혹독할지라도더이상그녀를흔들어놓을수없다.커스크는파예를통해『영광』에서더욱뚜렷한존재감을보여줄뿐만아니라다른여성인물들의목소리로용기있게삶의태도를바꾸고자한다.파예의책을담당하는파올라는파예에게낡고허름한교회를보여주면서자신이그건축물에서큰위로를받았다고이야기한다.

“전부겉면이심각하게변형되어인간의손길이느껴지지않는것이,마치화재의트라우마가문명을자연으로회귀시킨듯한모습이었어요.이유는모르겠지만내게는굉장히감동적이더라고요.주변에있는모든것이대체되고제거되는가운데불이난교회는그모습그대로존재할수있다는사실에서,내가이해할수도,표현할수도없는심오한의미가느껴졌어요.하지만사람들은계속교회에갔고,모든것이정상이라는듯이행동했어요.처음에는그렇게내버려둔것이끔찍한실수라고생각했어요.
그런데,동상이있었던자리에새로운조명을설치해서빈곳에빛을드리운장면이눈에들어왔어요.이조명에는동상이있었다면눈에들어오지않았을텅빈공간을바라보게만드는,그곳에서깊은의미를포착하게만드는신비로운효과가있었어요.그래서이광경이끔찍한방임이나오해의결과가아니라예술가의작품이라는사실을알게되었지요.”_254~255쪽

끔찍한방임이나오해의결과인줄알았던건축물이실은예술가의작품이라는것을깨달았을때파올라는다시일어설힘을얻었다.커스크는남성중심주의문단과독자들에게외면받은자신의작품과이혼후의삶이끔찍한오해의결과라고생각했을것이다.그러나그것이찬란한작품임을깨달았을때그녀는현실을똑바로바라보기시작했다.모든것이무너진상황에서새로운시작을결심하는커스크와파예의성공은모든여성의성공이기도하다.우리는‘윤곽3부작’을통해자신의허름한집을스스로불태우고다시재건하는여성의자아를마주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