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의 정체 (반양장)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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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identity)를 밝힌 책.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는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과 주변을 아울러 그 ‘한국적 정체’를 밝힌 윤난지(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의 역작이다.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한 저자는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단순히 나열하지 않는다. 한국이라는 공간적 맥락과 근현대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대미술이 어떻게 한국적 특성을 투영해내고 개발해냈는지 밝힌다. 그 가운데 단색화 등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뿐만 아니라 여성 미술 등 다양한 주변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특히 여성 미술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인 측면에서 현대미술과 페미니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에 중요하게 다뤄진다. 저자는 작품의 사회적ㆍ미술(사)적 맥락을 읽어낼 때 유신정권의 등장과 몰락, 미술시장의 탄생 등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곁들이거나 데리다의 해체사상 등 여러 철학적 사유를 결합해 깊이를 더했다. 박서보, 이우환, 김구림, 윤석남, 최정화 등의 한국 현대미술 작품 430여 컷을 실었다.
저자

윤난지

1953년에태어나이화여자대학교사회학과와동대학원사회학과,미술사학과석사과정을거쳐미술사박사학위를받았다.
현대미술사학회,서양미술사학회,미술사학연구회회장및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장을맡았고,이화여자대학교인문과학대학대학원미술사학과에서가르치고있다.석주미술상(2000,평론부문),석남미술이론상(2007)을받았다.

목차

책머리에9

1한국현대미술의정체│아우르는글13

‘현대성’으로부터
2동양주의와옥시덴탈리즘사이│김환기의전반기그림47
3근원적인세계를향한이상주의│권진규의먼시선89
4한국앵포르멜미술의‘또다른’의미135

‘한국적’현대미술을향하여
5단색화의다색맥락│젠더의창으로접근하기203
6단색화운동의경쟁구도│박서보와이우환255
7한국극사실화의‘사실성’297

‘현대성’을넘어서
8김구림의‘해체’349
9혼성공간으로서의민중미술399
10한국현대미술과여성457
11윤석남의‘또다른’미학507
12최정화의플라스틱기호학561

참고문헌609
찾아보기627

출판사 서평

한국현대미술의중심과주변을아우르다
책의서두에서저자는지난20여년간한국현대미술을연구하며깨달은‘단순한사실’을밝힌다.“미술은미술이무엇인지를말하는언어”라는것이다.그렇다면“한국현대미술또한한국현대미술이무엇인지그정체(identity)를말하는언어”다.
정체란끊임없이변화하며상호작용을통해형성된다.한국현대미술이라는경계안에다양한양식이교차하고충돌하며그경계자체를허무는과정자체가한국현대미술의정체라는것이다.그래서『한국현대미술의정체』는그정체를정의하지않는다.
정체는매우다양하고유동적이라는사실만을드러낼뿐이고그렇기에끊임없이찾아야한다고강조한다.일종의‘열린질문’이고,저자가데리다의‘차연’(defferance)개념을인용한이유다.

한국현대미술의정체찾기①:한국의현대사
이러한정체찾기과정에서자연스럽게드러나는것이두가지있다.첫째는한국의현대사자체다.현대미술의다양한양식외에도사회적요소가한국현대미술에영향을미쳤다.가령저자는한국현대미술의중심을차지한단색화가유신체제의대응물이라고설명한다.
한국현대미술의중심에서있는박서보가단색화와민족기록화를함께그린것은지극히자연스러운일이었다.그교차점에민족주의이데올로기가있었다.

“소위‘한국적모더니즘’으로창안된단색화는‘한국적민주주의’를지향한유신체제의예술적대응물이다.전통미술과그예술관이현대미술및그이론과만나는단색화는‘한국적’이면서도‘모던한’미술이될수있었으며,따라서당대가요구한[근대성을담보한]민족주의의적절한기호가될수있었다.”_212쪽

이처럼한국내부의정치적사정은물론이고좀더본질적인차원에서도한국현대미술은현대사의산물이다.일제강점기와이후근대화과정에서늘‘하위’의자리에머문한국의현대사는“아버지타자,즉본받아야할,적어도무시할수없는권위의타자”를좇은기록이다.
이러한양상은한국현대미술에도반영되는데흥미롭게도모방이아닌창조의성격을띤다.

“타자를전용과개발의대상으로삼았던서구모더니즘과도다르고,서구를올려다보는동시에아시아국가들은내려다보면서자국의정체를저울질하던일본의현대미술과도다른현대미술이만들어졌다.이러한‘다름’이곧한국현대미술의정체일것이다.”_15쪽

대표적인것이앵포르멜(Informel)이다.일제강점기와6ㆍ25전쟁을거치며신ㆍ구체제의격돌장이된한국사회의각부문에서기존질서에저항하는반(反)체제의식이표면화된다.
미술계도예외가아니어서일종의관전(官展)이었던대한민국미술전람회[國展]에대한저항의지가분출한다.그렇게탄생한것이한국판앵포르멜이다.
단어만봐도알수있듯이앵포르멜은프랑스가원산지다.해방후일본을거치지않고직접수용한모더니즘으로지금까지‘외래경향의맹목적추종’으로비판받았으나저자는여기서“문화수용의능동성”을새롭게찾아낸다.

덕수궁외벽에그림을걸어전시한『60년전』.
국전과같은기간에앵포르멜양식의그림수백점을전시한일종의도발이자저항이었다.

“이러한문화수용은당대한국의특수한지정학적위치에서기인한특수한요구에의해촉발되었으며,따라서매우선별적이고자의적인측면이발견된다.
수용의시기와대상에따라외래경향을다른방식으로받아들이는선별적인태도는수용주체의능동성을드러내는국면인데,각경향에대한반응에서도매우자의적인해석이작용했다.……다다(Dada)를계승한그리고앵포르멜의대안으로등장한신사실주의가우리앵포르멜속에서는무리없이혼용된것도이런맥락으로가능한것이었다.”_192~193쪽

한국현대미술의정체찾기②:주변부미술
둘째는한국현대미술의경계를뒤흔드는주변부다.한국현대미술의중심은이우환,박서보등으로대표되는단색화와그근간을이루는민족주의이데올로기가차지해왔다.
하지만역동적이고혼성적인한국현대사만큼이나한국현대미술내에도다양한양식이끊임없이목소리를내고있다.그러한주변부는한국현대미술의경계를무너뜨리고영역을확장시킨다.『한국현대미술의정체』가주변부를강조하는이유다.
저자는특히여성미술에주목한다.여성작가들은당대사회에순응하거나저항하면서나름의시각기호를만들어왔다.중심특유의‘일관성’의미학에서자유로운그들은“아직안된것으로서의여성”(womanasthenot-yet)의존재방식을취한다.
저자는이부분에주목한다.‘아직안되는’것은무엇이든될수있는또한스스로될수있는가능성을지닌다.

“근현대를통틀어여성미술에서일반적으로발견되는특성이있다면주류를따르는‘일관성’의미학에서상대적으로자유롭다는점,즉주류와주변을오가는시각기호들이교차한다는점일것이다.모든작가가주류양식을따랐던모더니즘시기에도여성들의작품에서는장식적패턴이나공예기법같은주변적요소가공존하는경우가많으며,그이후에는그런요소들이여성작가들의작품에서더선명하게드러날뿐아니라페미니즘전략으로까지이용되어왔다.”_505쪽

함연주는자신의머리카락을엮어작품을만들었다.주류기하학의엄격함을부드럽고따뜻한신체성으로대체한것이다.김주현의조각도유사한예다.종이와천을직접잘라쌓아올린이작품은작가자신의말처럼‘하찮은’재료를이용해주류기하학의권위를무너뜨린다.
현대미술의중심과는다른길을걸어온여성미술의최전선에있는작가가바로윤석남이다.그는자신의작품활동을“여성으로서겪는콤플렉스를예술을통해승화시키는일종의굿”으로표현한다.단순히여성성을증명하는수준에서더나아가여성의새로운존재방식을보여줌으로써승화시키는것이다.

“주류와는‘또다른미학’을제안하고실천해온과정이예술가윤석남이걸어온길인데,이는무엇보다도여성으로살아온삶의경험에서온것이며그경험의줄기는모성이다.자신의삶속에살아있는어머니,즉제도로서의모성이아닌이른바‘체험으로서의모성’에서윤석남은치유의힘을발견한다.……윤석남에게모성은타자를아우르는주체혹은내안의타자를발견하는주체,나아가스스로의타자됨을자청하는주체개념을회복하게하는출발점이다.그것은생물학적성을넘어서서모든인간에게그존재의윤리적차원을성취하기위하여요청되는가장큰덕목일것이다.”_558쪽

윤석남평생의주제는모성이다.그의작품은모성이지지해온가부장제를모성을통해해체하는역설을드러낸다.
「족보」는가부장제를유지하기위한도구로서의여성의운명을묘사하지만,「홍살문,창,벽,안방,담,부엌,기둥」은강력한가부장적공간으로금녀의구역인영암구림마을의회사정을과감히침범해균열을만들어낸다.

정체찾기의윤리적차원
역동적인상호관계로한국현대미술을구성해온중심과주변을탐색한후저자는가장최신의‘증후’를소개하며책을마친다.저자는1990년대이후본격화된후기자본주의의문화적특징으로‘가소성’(plasticity)을꼽는다.
“의미가기표와기의의일대일대응관계를통해서가아니라기의에서분리된채떠도는기표들사이에서형성된다”는뜻의가소성은한국현대미술에도영향을미쳤다.
『한국현대미술의정체』는대표적인작가로최정화를소개한다.최정화는‘플라스틱예술가’다.우선플라스틱을이용해작품을만든다.왜하필플라스틱인가.플라스틱은무엇이든될수있고영원히존재할수있으며무한한자기복제가가능하다.
시간과공간의한계를초월해버린것이다.게다가후기자본주의를대표하는‘상품’이기도하다.인공이자연을대체한자본주의스펙터클에이보다적합한재료는없다.결국플라스틱은‘물질적실체’의한계를뛰어넘은“무한한변형이라는개념그자체”다.
그렇다면최정화는이런플라스틱으로무엇을말하는가.그는가장자본주의적인소재를이용해‘실체의부재’라는자본주의의역설을표면화한다.동시에이를한국이라는특수상황에적용한다.대표적인게플라스틱소쿠리를이용한설치미술이다.

“예전에는수공으로만들어졌던소쿠리가기계로대량생산되어유통되는현실을환기하는이작품들은토착문화가버무려진소위한국식자본주의,특히그혼성성이두드러지는한국식후기자본주의의시각적표상인셈이다.”_577쪽

최정화는플라스틱을이용해작품을만들뿐아니라스스로를플라스틱한것으로드러낸다.빡빡민머리,커다란뿔테안경,헐렁한점퍼나셔츠에작업복바지,망태가방과운동화또는슬리퍼등은피카소와워홀의이미지를섞은것이자한국의시장통이미지와불교의선승이미지를섞은것이다.
무엇보다최정화는본인스스로를플라스틱한것으로표상한다.자기몸에플라스틱을붙이는따위의1차원적수준에서가아니라예술가로서자신의‘이미지’를플라스틱한것으로드러낸다는것이다.그는스스로를‘여행자’라고부르는데,이역시플라스틱한‘최정화스타일’을암시한다.

“최정화에게여행은예술가로서의자신에게또다른의미가부기되는열린과정이다.다시말해예술가주체의끊임없는탈중심화과정이다.……따라서최정화는한국인이면서동시에코스모폴리탄이다.그리고그의한국성은하나가아닌한국성,유동적이고혼종적인한국성,즉플라스틱한국성이다.”_603쪽

지금까지살펴본것처럼『한국현대미술의정체』는현대미술의외부요소와내부요소를모두아우르며그정체를탐색한다.그끊임없는상호작용의과정에서저자가주목하는것은‘경계’다.외부와내부의경계,내부와내부의경계.
이‘제3의공간’에서발견하는것은우리가스스로이상화해형상화한우리모습이아닌우리도알지못하는또는우리가밀쳐낸타자의모습이다.
이를인정하고포용하는것이야말로“주체중심주의또는그연장선상에있는국가중심주의가내포한폭력의가능성을넘어서서남과더불어있다는당연한사실을깨닫는일이며,남의존재를두려워하지도무시하지도않는여유와배려”다.저자가시종일관강조하는정체찾기가윤리적차원을내포하는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