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산 (양장본 Hardcover)

침묵하는 산 (양장본 Hardcover)

$29.36
Description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산이다. 근대 이전에도 산에 오른 옛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산에 오를 수 있던 사람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사람이거나 재조(在朝) 일본인뿐이었다. 『침묵하는 산』은 일제강점기에 산에 오른 사람들은 누구였고, 일제는 왜 등행을 장려했는지 그 이유를 파헤친다. 그 단서가 되어주는 이는 일제강점기에도 서구 알피니즘의 방식으로 조선의 산에 올랐던 예외적이고 탁월한 산악인 김정태다. 서글픈 근대 등반사의 풍경을 마주하고 친일 부역을 올바로 바라보기 위한 『침묵하는 산』은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책이다.
저자

안치운

安致雲
중앙대학교예술대학연극학과를졸업하고,프랑스정부장학생으로국립파리소르본누벨대학교연극연구원에서연극학박사학위를받았다.『교수신문』편집기획위원,삼성문학상·대산문학상·경암학술상심사위원,프랑스소르본누벨대학교와브장송대학교초빙교수그리고한국연극학회회장을역임했다.연극평론가로활동하며,호서대학교예술학부연극학과교수로재직했고,2023년정년퇴임했다.현재세계대학연극학회이사,한국산서회이사,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세계산악문화상심사위원,한국산악학회회원이다.
저서로『공연예술과실제비평』『연극제도와연극읽기』『연극반연극비연극』『한국연극의지형학』『연극과기억』『연극,기억의현상학』『연극,몸과언어의시학』『베르나르-마리콜테스』가있고,산문집으로『옛길』『길과집과사람사이』『시냇물에책이있다』『그리움으로걷는옛길』등이있다.

목차

산의영원은책의현재가되었다|책을펴내며

1산의실재와환상
1.산과알피니스트의삶
2.산의그림자같은삶의궤적

2일제강점기조선의산과제국의브로커들
1.산과권력
2.알피니스트의기억과글쓰기

3인수봉등반사진의비밀
1.혈맥이통하는암우
2.해석과왜곡사이

4산아래에서의삶
1.친일과산
2.재조일본산악인은누구인가
3.역사앞에선인간

기억의산,망각의산,텅빈공간의산|책을마무리하며

미주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누구나갈수있는곳이산이다.근대이전에도산에오른옛사람은많았다.그러나일제강점기산에오를수있던사람은일본제국주의에협력한사람이거나재조(在朝)일본인뿐이었다.『침묵하는산』은일제강점기에산에오른사람들은누구였고,일제는왜등행을장려했는지그이유를파헤친다.그단서가되어주는이는일제강점기에도서구알피니즘의방식으로조선의산에올랐던예외적이고탁월한산악인김정태다.서글픈근대등반사의풍경을마주하고친일부역을올바로바라보기위한『침묵하는산』은지금한국사회에필요한책이다.

■58명의얼굴들,우울한시선들,웃는이들은없었다
빛바랜사진한장이있다.한국근대등반을대표하는오래된사진이다.때는소화15년,1940년11월3일,날이춥고흐렸다.장소는인수봉정상.조선인인지일본인인지국적과이름을알수없는58명이단체사진을찍었다.이들은누구이고,왜곁눈질하면서만나점심을먹고재빨리하강했으며,약속한듯아무도이등반에대해말하지않은이유는무엇일까?
저자안치운은“흑백의질감이과거의시간을압도하고있는”이사진이“기록을넘어삶의역사적풍경일수있다는것을”깨달았다.이때의산행에는일제강점기역사와제국주의가산에가한폭력,재조일본인의풀뿌리식민지배활동,조선산악인의정체성과친일문제등이폭넓게만나고있는것이다.
‘친일’은아직까지도청산하지못한한국사회의화두다.일본제국주의의산물이많이남아있다.『침묵하는산』은1940년사진속시간으로들어가일제강점기조선산악인들의빛과그림자를우리사회의공적기억의장에올바로세우기위한초석이다.그들의생채기를통해오늘날우리들의바른행보를찾기위한것이다.산에오르는이들이산을난도질할때,산은그들의보이지않는욕망을보며침묵하고있었다.“산은그렇게억겁의세월을그자리에그대로서있으면서자신을오르고,통과하는이들을응시하는존재다.”

■조선총독부와조선산악회의관계
일제강점기‘조선총독부철도국’은제국주의상징인철도를개설하고영업했다.철도개설은경제수탈과대륙공략을위한식민지침투의출발점이다.산을허물어토지를확보하고그위에철도를짓기위해서는산을올라야했다.철도국직원들이만든‘조선산악회’는말이산악회지실제로는조선의산하를침탈하는제국의브로커였다.철도가생기면제반시설이생기고군대가주둔한다.대륙으로팽창되는길도생긴다.또한철도국은언제나흑자경영으로총독부의금고역할을했다.『침묵하는산』은등행이라는이름의산행이일본제국주의의선전스펙터클이었으며,철도는제국주의의세력확장의지름길이었다는것을분석한다.
조선산악회회장이었던나카무라료조는금강산탐승시설조사위원회위원이었다.금강산,백두산등조선의산을쉽게오르내릴수있게한철도개설은1899년일본제국주의가획득한경인철도부설권으로시작된것이다.1905년경부선,1912년군산선,1914년호남선과경원선,1915년에함경선이개통됐다.도로를만들기위해일제는1907년에남대문성곽을허물었다.또한조선총독부는황국신민화를위한체력증진을내세워등행·등산을적극장려했다.수많은학교등산부가황민화를목적으로산에올랐던것이다.이렇게철도건설은조선을수탈하는일제의광포한폭력이었다.

■일제강점기조선산악인의정체성
조선총독부철도국소속의조선산악회에서조선인들은어떻게산을올랐을까?일본제국주의권력속에서조선산악인은어떤정체성을갖고있었으며,무슨기록을남겼을까?
저자안치운은그당시예외적이고특출했던산악인김정태(1916-88)에게집중한다.그는대구에서태어나줄곧경성에살면서,일제의조선인핍박이극심하던때에일본인중심의조선산악회에가입하여조선인으로서가장왕성한등반활동을했다.1942년부터해방때까지는김정태라는이름을버리고‘타츠미야스오’란이름으로일제의등반행사를주도했다.만주침략과태평양전쟁등이일어나던일제강점기말기에도강제동원되지않고금강산,백두산,북수백산등을초등(初登)했다.해방이후에는자신이속했던‘백령회’를민족주의등반조직이라고강조하며친일부역을지웠다.이승만정부에서김정태는1946년부터1954년까지열한번의국토구명사업에참여하고,일제강점기의등반업적을기반으로한국근대산악계의태산준령으로우뚝섰던산악인이다.
1931년창립된일본인중심의조선산악회는조선총독부의허가아래조선의산하를제집뒷마당처럼올랐다.1945년해방이되자김정태를비롯한조선인들이이조선산악회를이름그대로이어받았다.이름은조직의정체성을나타내는것인데,조선산악회의적자(嫡子)가되기위해서는친일혹은반일을따지는것보다이름을그대로유지하는것이중요했던것이다.그리고이후조선산악회는1948년에한국산악회로개칭했다.
『침묵하는산』에서저자안치운은김정태가남긴글과그가쓴『천지의흰눈을밟으며』를역사적자료와더불어다시읽고평가한다.과거를합리화하며감춘사실들을발견하는데많은공부가필요했다고한다.조선총독부와조선산악회가남긴자료들은서구알피니즘을조선에이식해서초등의역사를이룩하게해줬다는‘식민지근대화론’을뒷받침하고있다.따라서저자는식민지수탈의역사부터철도개발,문화정책,친일기업등에대한한국·일본의자료들을새로운근거로종합했다.또한「역사앞에선인간」에서식민지근대화론에입각한조선산악인의정체성을옹호하는글에적극적으로반론한다.

■침묵하는산은어떻게역사가되는가
김정태는일제강점기내내조선일본인이었다.남긴글을보면피식민지조선인이라는처지와자의식을볼수없다.어릴때부터발휘되었다던그의등반실력은어디서나왔을까?그의기록속등반의기원부터의심스럽다.1929년,아무런교육을받지않은김정태가13세되던해백운대바위를오르고,그다음해인수봉을등정했다고썼다.서양사람들이밧줄을타고오르는것을보았으며,이즈음단성사영화관에서두편의독일영화를보았던덕분이라고주장한다.
『침묵하는산』에선김정태가등반의기원이라고주장한내용가운데사실과어긋나는부분들을지적한다.감독,배우,제작사까지과하게열거했던근거에연도나줄거리등심각한오류가있었다.김정태는어떻게해서라도자신의등반기원을합리화해야했던것이다.그렇지않고서는그가초등학교를졸업하고오른백운대·인수봉등정기록을확증할수없기때문이다.하지만저자는이러한김정태의흠집과과오를드러내는것이이책의목적이아니라,“자유로울수없었던일제강점기조선산악인들의생채기를통하여”한국근대등반의모습을되찾고,오늘날우리들의바른행보와앞으로나아가야할방향을찾기위함이라고강조한다.
김정태의삶과기록을파헤치면‘인수봉등반사진’의비밀도풀린다.단서는김정태가남긴일기다.저자는이책「해석과왜곡사이」에서김정태의일기를번역하고분석했다.1940년11월3일등반행사의주체는엄흥섭(백령회리더)이었고,실무는김정태가맡았다.일기에는이날행사의이름이‘명자교환회’라고적혀있다.김정태가해방이후‘민족적대집단등반’이라고부풀려말했던이행사를김정태의일기와엄흥섭이사후에발표한글로얼개를맞추어보면이들이어떻게산을자신의생존수단이자권력으로이용했는지를알수있다.

■김정태와등반을함께한재조일본인들
재조일본인은일본의조선침략에서큰역할을한‘풀뿌리식민지지배’의중심이었다.조선지배를위해서는‘철도부설’과‘일본인이식’이가장중요한문제였다.『침묵하는산』에서는이때조선산악인들과함께했던세명의일본인에대해다루고있다.이이야마다츠오,이즈미세이치,이시이요시오,세인물은배경도,경제적계급도식민지에서의역할도달랐다.
이이야마다츠오(1904-93)는조선산악회창립회원이다.일본제국주의는철도노선에주요관광지를건설해서기업의이윤을극대화했는데,이이야마가근무했던조선총독부철도국이그일을담당했다.그는백두산종주기록에서“나는늘이런요배와만세에저항심과부끄러움을느끼지않을수없었다”라며조국일본에대한절망과조선에대한애착을드러내는인물이다.동시에일제의패망후조선인방현의도움으로배를타고귀국하면서“일본인들이30년혹은40년동안피와땀으로이룩한재산을무턱대고빼앗겼다”고여긴복잡한식민자2세다.
이즈미세이치(1915-70)는경성제국대학출신으로1931년조선산악회에가입했던문화인류학자다.그는열두살에조선에왔고재조일본인으로서최고엘리트계급에속했다.제2차세계대전동안동남아시아전선에서라틴아메리카탐험까지숱한산을누볐다.지금까지이즈미는한국의산을무한히사랑했던한국근대등반의아버지라고치켜세워지고있다.그는타계하기한달전까지제주도를방문하며연구해『제주도』라는인류학보고서를펴내기도했다.저자는과연재조일본인을이렇게단선적으로평가하는것이옳은지질문을던지며그의생애를조명한다.
이시이요시오는조선산악회의마천령-백두산종주산행의대장이었고,앞의두사람과다르게김정태와사적우정을많이나눈선배였다.김정태는일제강점기내내이시이의도움을받았다.김정태는이시이를스폰서라고부르며“1935년금강산등행이래자주어울렸던그는큰철공업소경영주로성장,적지않은경비를기꺼이내놓았다”고썼다.그리고김정태는자신의소속을이시이가운영하던‘석정공업소’라고하며활동했다.
재조일본인과조선인은갈등하고대립했을까?이들은함께조선의산들을올랐다.한국근대등반사를언급할때빼놓을수없는재조일본인들과이들이만든조선산악회는제국과식민지경계에있다.저자는이들모두제국주의가개인을사회적·역사적으로종속시킨불행한존재들일수밖에없었다고말한다.그렇기때문에이들이남긴기록에서연원을밝히고당대의의미와현재적의미를동시에규명할필요가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