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육성 회고록 : 김대중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양장)

김대중 육성 회고록 : 김대중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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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대중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 서거 15주기를 맞아 그의 육성으로 작성된 마지막 자서전 『김대중 육성 회고록』을 출간한다. 1924년 신안 하의도에서 출생했을 때부터 2009년 서거하기 전까지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와 사상을 생생한 육성으로 들을 수 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마지막 일기를 남긴 위대한 정치가이자 정치사상가인 김대중은 역사의 퇴행을 온몸으로 이겨냈다. 일제강점기, 남북분단, 6·25 전쟁, 군사독재, 민주화운동, 국가 번영을 체험하고 선도한 인간 김대중의 회고를 통해 격동하는 한국 현대사, 참으로 엄혹했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그 현장을 우리는 이 책으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김대중 전문 연구자들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된 유일한 자전적 성찰이자 기록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연구진들과 2006년 7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41회 42시간 26분의 구술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결실이 바로 『김대중 육성 회고록』이다. 이 책에는 김대중 대통령만이 증언할 수 있는 경이로운 인간 실록이자 한 탁월한 정치지도자가 겪은 역사 풍경이 담겨 있다. 소년기와 청년기, 해방 전후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시대와 사회를 통찰하는 그의 생각과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다룬다. 자유당과 이승만의 독재 시절, 4·19 혁명을 겪으면서 정치에 나서고, 박정희 쿠데타와 유신 선포 속에서 죽음을 딛고 민주화운동에 헌신한다. 다시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과 수난받는 민중의 역사 속에서, 결코 좌절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서는 큰 정치인 김대중의 행로는 참으로 경이롭다.
그러나 투옥과 망명을 통해 정치인 김대중의 정치 사상은 찬란하게 성장한다. 감옥에서의 높은 수준의 독서, 망명과 유학을 통한 세계적 지성과의 교류와 토론은 그를 세계적인 정치지도자로 일으켜 세운다. 5번의 죽을 고비와 6년에 걸친 투옥, 3년여의 망명생활과 장기간의 가택연금 등을 통해 세계평화와 인권에 대한 확고한 이론과 사상으로 무장한다.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체득하게 된다.

김대중은 참으로 험난한 생애를 살았다. 이 책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대거 담고 있다. 민주주의와 정의의 길을 걷는 김대중의 삶은 참으로 놀랍다. 그의 삶과 이론과 성찰이야말로 세계인들에게 민주주의를 위한 교과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유학 시절 스티븐 호킹과 이웃일 때 찍었던 사진 등 김대중도서관이 미공개한 사진 10여 장을 포함한 64장의 역사적 사진이 실려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QR코드를 넣어 김대중 대통령의 음성을 언제든 들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철저하게 준비하는 큰 정치가의 소명의식과 더불어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한 시대를 이끄는 지도자의 전략과 사상을 읽게 한다. 불의에 단연코 저항하면서 펼쳐내는 그의 정치역정은 같은 시대를 사는 동시대인들에겐 감동이고 축제 같은 것이다. 그는 사형선고를 내리는 신군부의 온갖 유혹을 뿌리친다. 지지를 보내는 국민을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한 평화전략과 평화정신은 국제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세계의 양심은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다. 한반도 평화를 구현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역사상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특히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는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교과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오늘의 혼탁한 한국 정치상황에서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새로운 정치를 발전시키는 나침반이자 항해도가 될 수 있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에는 김대중의 정치적 리더십과 평화정책, 인권정책, 복지정책에 대한 그의 사상과 전략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그의 정치적 지혜와 전략전술 그리고 국정운영 철학과 실천은 오늘날의 어두운 정치현실을 타개해나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자

연세대학교김대중도서관

저자:연세대학교김대중도서관
연세대학교김대중도서관은김대중대통령이2003년11월연세대학교에기증하여설립된아시아최초의대통령도서관이다.김대중도서관은김대통령개인에대한자료와그와관련한민주화운동,정당사,재임기활동자료를소장하고있는전문적인사료연구기관으로,.한국의대통령기념사업및대통령학발전을선도하고있다.

목차

후세대들이찾는살아숨쉬는기록물|김대중육성회고록을펴내면서

1.나의고향하의도와목포
2.혼돈과역경의시간들
3.시련속에서꽃피운의정활동
4.민주세력의리더로떠오르다
5.유신독재에맞서다
6.서울의봄부터13대대선
7.13대국회부터15대대통령당선
8.한국경제의위기극복과새로운도약
9.민주인권대통령
10.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시작
11.최초의남북정상회담과한반도외교
12.후배정치인들에게드리고싶은말

감사의말씀|김홍업·김성재
한국정치의나침반이자항해도|류상영·장신기·박명림
김대중대통령연보
김대중대통령육성연설QR코드목록

출판사 서평


일제강점기부터해방까지,
하의도와목포에서얻은정신적자산

“내가나의과거에대해이야기하는것은이번이마지막일것입니다.그래서나도질문지를받으면꼼꼼하게살펴보고내기억을되살리기위해서사전에철저하게준비했습니다.”

『김대중육성회고록』은김대중대통령이하의도에서태어났을때부터어린시절과젊은날에대해증언한내용을자세히담고있다.김대중대통령이태어난당시하의도는농지대부분이기존지주들의탐욕에의해서결국일본인들에게소유권이넘어간상태였고농민들이소유권을주장하며소작쟁의를일으켰던곳이었다.저항정신이있는지역에서김대중대통령의아버지는마을의구장이었다.덕분에『매일신보』가집으로배달되었고김대중대통령은정치면을열심히읽는어린시절을보냈다.

하의도에서보통학교를다니던김대중대통령은공부를위해목포로이사했다.일제강점기목포는7대도시에들어갈정도로큰규모의항구도시였다.목포공립상업학교에수석으로입학한김대중대통령은웅변에소질을보였다.2학년담임무쿠모토선생님은“김대중의웅변은일본대의사가의사당에서한것에못지않다”며칭찬했다.졸업이후목포전남기선에서일하다해운사업을했다.경제활동이활발하게이루어지던상업도시에서김대중대통령은해운회사와『목포일보』를경영하면서경제의흐름을배우고,회계를비롯한각종경제지식까지깨우쳤다.이때의경험은국회의원이된후정책수립과예산심의를하는데밑거름이되었다.

해방직후‘일본천황이항복했다’는내용의글을써서거리에붙이고다녔던것,목포공립상업학교에서철수전의일본군과학생들이충돌했을때소방차를타고가서중재했던것,1946년대구10·1사건때목포지역정치적라이벌의무고로구금당했던것등다양한젊은시절일화가등장한다.

사업대금을받으러서울에올라갔다가6·25전쟁이발발한것도빼놓을수없다.김대중대통령은한강을건넌후여러죽을고비를넘기며걸어서목포까지내려갔다.생환이후사업을계속하던김대중대통령은1952년부산정치파동을보며그동안가지고있던정치에대한관심과문제의식을키우기로결심했다.무소속으로3대총선에출마했던김대중대통령은본격적으로정치에투신하기위해서울로올라온후민주당에입당해소장정치인으로서활동했다.

인권과평등,사람을위한민주주의

『김대중육성회고록』에서김대중대통령은중요한순간마다어떤신념으로행동했는지를회고한다.이책에서볼수있는김대중대통령의면모는지극히자유민주주의자다.자유,평화통일,민주주의,인권을위해투신하고가혹한탄압을받아왔던것이그의일생이었다.김대중대통령은민주당입당후출마한1958년총선에서불법적으로후보등록을취소당했고,1961년국회의원첫당선3일후5·16쿠데타가발생해선서도하기전에의원직을박탈당했다.박정희정권의독재에저항하면서지도자로성장한그는1969년에는3선개헌을막기위해시민사회세력과함께반대투쟁에나선다.당시효창운동장에서했던연설은“15분연설도중박수가20번가까이나올정도로아주큰호응”을얻었다.

“경제개발의성과를소수가독점하다보니노동자와농민은희생되고중산층형성이제대로이뤄지지않았어요.이렇게되면민주주의도제대로발전하기힘듭니다.”
1963년6대국회의원이된김대중대통령은활발한의정활동으로박정희정권에타격을줬다.“대통령권한대행과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인박정희씨의공화당입당은위헌이고국회법위반이기때문에대통령에당선된다고해도무효가된다”는사실을밝혀논란을일으켰다.그때부터박정희정권의본격적인경계를받기시작했다고김대중대통령은회고한다.
김대중대통령은대변인·선전부장등을역임하며독재를통한경제발전을비판하고,진정한경제발전을위해서는민주주의가필요하다고주장했다.또한박정희대통령의성과라고인정받는경부고속도로건설등도“지금우리나라에서나타나는여러가지문제점이이때의불균형발전에기인”한다고평가한다.이때부터김대중대통령이주장한것은지방자치제다.부정선거를막고,국민들의민주주의의식을높이며,야당의조직력을강화하기위해서는지방자치선거가반드시필요하다고주장했고1990년에는13일간의단식투쟁까지하면서지방자치실시를관철시켰다.

“역사를길게보면결국국민을위해서헌신한사람이패배한경우는없습니다.일시적으로패배할수는있지만역사는바른길로진전합니다.”

김대중대통령은대한민국민주주의에위협이찾아왔을때마다온몸을던져투쟁했다.두번의망명과평생6년여의감옥생활을했다.첫번째망명은1972년10월유신이선포되었을때일본에서다리부상을치료하던중국내소식을듣고귀국하지않고일본에남아서투쟁하기로결심하면서시작되었다.“미국과일본에서한국민주화에대한여론을형성”하고,“해외민주세력을일깨우”겠다는목표를세웠다.『김대중육성회고록』에는그때일본에서중앙정보부에의해납치살해를당할뻔했던때의증언을생생히담고있다.

구사일생으로국내에귀환한후에도김대중대통령은투쟁을멈추지않았다.침체되어있는유신독재반대투쟁을다시일으키기위해“감옥에갈각오를하고”3·1민주구국선언을발표했다.이일로진주교도소에수감된다.이사건이국제적인관심사가되자부담을느낀유신정권은김대중대통령을치료한다는명목으로서울대학교감옥병실로이감시켰지만,회고에의하면김대중대통령은그곳에서“창문을모두폐쇄해서밖을볼수없었고햇빛을쬘수없었다”는“지옥을체험”했다.

전두환정권때에도김대중대통령의투쟁은계속됐다.신군부는5·17비상계엄확대조치와함께내란음모조작사건을일으켜김대중을연행했다.이때김대중은광주민주화운동에서광주시민이100명넘게사망했다는소식을듣고충격을받아쓰러지기도했다.전두환정권이협력하지않으면살려두지않겠다고했을때“죽음이두렵다고해서광주에서죽은수많은시민을배신할수없다고판단”해서“죽겠다고결심”하고사형선고를받았으나국제적인구명운동으로목숨을건졌다.그후청주교도소에서수감생활을하게되었다.
두번째망명은국제사회의구명운동을통해1982년형집행정지를받고미국으로떠난것이었다.이때도“미국이한국의독재정치와인권유린에대해비판하고견제하”도록만드는것이목표였다.미국의보수주의자들까지만나설득하며미국상하원의원들에게큰관심을받았다.그러다1985년2·12총선을앞두고전두환정권을더욱압박하기위한적극적인투쟁을하려고목숨을건귀국을단행했다.

“나는민주화운동이목표로한것은자유·인권·평화가뿌리내리고확산되는사회라고생각합니다.그런면에서인권은민주주의발전을위해필수적인요소이자가치입니다.”

김대중대통령은“인권있는민주주의”를민주화의본질이라고인식했다.인권보다물질적가치를중시하는한국사회를변화시키기위해분투하는모습을이책에서확인할수있다.특히여성인권신장을위한노력은13대국회의원때부터성과가있었다.1989년가족법개정을위해평민당총재로서책임지고총력을다했던것이다.당내남성의원들도달가워하지않는문제였지만다른당총재들과노태우대통령까지설득하여간신히법안을통과시켰다.대통령이된후에는대통령직속여성특별위원회를설치하고남녀차별금지법을제정하는등노력을이어갔다.국가인권위원회를출범시키고,사상전향제를폐지하고양심수를석방해대한민국을민주인권국가로평가받게했다.

대한민국최고의국제공공재
‘김대중’의평화외교

“전쟁은인간의최소한의존엄도지키지못하게하고고귀한생명도무수히빼앗아갑니다.그래서나는전쟁을막고한반도의평화적통일을이룩해야한다는확고한신념을갖게된것입니다.”

민주화를위해싸우다투옥되고납치되고망명투쟁을하는등김대중대통령의행보는세계의주목을끌었다.게다가대통령당선후국가부도직전의상황에서도민주주의와시장경제를동시에발전시켜빠른속도로위기를극복하고세계적인지식정보·문화강국으로발돋움하는것을보며세계는경이로운눈빛을보냈다.북한·일본과도화해하며미래지향적인관계로발전시키고,한국인최초로노벨평화상을수상하는등김대중대통령을통해우리나라의국격이상승해외교가더욱활성화되었다.

김대중대통령의평화외교는세가지모습으로나타났다.첫째,1971년7대대선때부터공약으로내세웠던‘4대국안전보장론’이다.“한반도의지정학적특성을감안하면남북한사이의민족문제를해결하는데에있어서도주변4대국(미·일·중·소)과의외교가매우중요”하다는것이다.그들이최소한평화통일을방해하지않도록,최대한협조적인정책을취하도록하는‘협력적자주’의원칙을세웠다.그래서김대중대통령은미국의클린턴과부시대통령,일본의오부치게이조총리,중국의장쩌민주석,러시아의보리스옐친대통령과정상회담을할때‘경제위기극복에대한협조’와‘대북햇볕정책에대한지지’를얻어내기위해노력했고성공을거두었다.

“그동안반목과대립을해온우리민족이스스로문제해결을위한행동에나서서좋은결과를만들어낸것은역사적인의미가깊습니다.”

둘째,김대중대통령은‘3단계통일론’에따라남북관계를발전시켰다.김대중대통령은분단기간이길어짐에따라남북한사이에이질감이생겼기때문에즉각적인통일이아닌단계적인접근이필요하다고1971년부터주장해왔다.이에따라대통령임기에는3단계중1단계인‘남북연합구성’을이루려고목표했다.남북연합의핵심은각종대화와상호합의였기때문에남북정상회담을통해합의를이끌어내려고했다.『김대중육성회고록』은분단이후최초로남북정상회담을하고6·15공동선언을발표하기까지알려지지않은과정을생생하게밝힌다.
셋째,김대중대통령은동남아와동북아를아우르는동아시아공동체를구상했다.1983년필리핀의야당지도자베그니노아키노의원과‘아시아민주전선’을만들어아시아지역에서반독재민주화를위한공동투쟁에나서기로했지만아키노의암살로이계획은실행되지못했다.김대중대통령은1998년에는ASEAN+3정상회의에참석해서‘동아시아비전그룹’을만들자고제안했다.이를시작으로동아시아정상회의(EAS)까지이어지는등동아시아공동체담론을꾸준히발전시켰다.

미래를준비한대통령

“훌륭한정치지도자가되기위해서우선필요한것은각종정책에대한공부입니다.공부하는정치인이되어야그다음단계로발전할수있습니다.”

김대중대통령은오랜공부와연마를통해준비된대통령으로시대의부름을받았다.『김대중육성회고록』을보면,그가가장적절한시기에최고의쓰임을받았던이유가일찍부터미래를준비했기때문임을알수있다.국제관계,경제,첨단기술,문화등미래사회를전망하고대비하는통찰은당대최고수준이었다.그는“특정분야에서최고전문가가되지는못하더라도전문가와소통할수있는수준의지식을갖추”는것이정치지도자가갖춰야할자질이라고강조한다.
첫째,김대중대통령은세계화를피할수없는흐름으로파악하고외국자본문제에대비했다.“부존자원이적고국내시장규모가작기때문에세계시장에서의경쟁에서살아남아야”한다고판단했다.그래서외국인투자자유화조치를취해외화문제를해결함과동시에선진경영능력을배우고금융기관들도선진금융기법을배우도록했다.이런노력이IMF차입금을당초계획보다3년빨리상환하고경제가새롭게도약하는밑거름이됐다고김대중대통령은평가한다.

“나는당시세계가기존의산업사회에서지식정보사회로급격하게변화하는대전환기에있다고판단했습니다.”

둘째,김대중대통령은지식정보화사회가될것을대비하여“산업화는늦었지만지식정보화는앞서가자”라는메시지를지속적으로냈다.1970년대부터기존의저가상품대량생산으로는더이상경제발전이어렵다고판단한김대중대통령은앨빈토플러의『제3의물결』등을읽으며지식산업의중요성을간파했다.그래서집권초부터지식정보화를국정의주요과제로설정하고정보통신인프라구축에총력을다했다.컴퓨터보급,초고속정보통신망설치,전자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