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문명 - 한길그레이트북스 196

비잔티움 문명 - 한길그레이트북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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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앙드레기유

앙드레기유(andreguillou,1923-2013)
1923년프랑스낭트에서태어났다.비잔티움학대가로서남이탈리아·시칠리아,특히칼라브리아와루카니아비잔티움시기역사연구로이름을떨쳤다.
일찍부터남이탈리아그리스어역사문헌편집에종사했다.가장먼저비잔티움학대가폴르메를이이끈연구그룹의아토스산수도원문서편집프로젝트조력자로활동하여1955년마케도니아세레스근처『메니키온산선지자성요한수도원문서고소장문서』(LesarchivesdeSaint-Jean-ProdromesurleMontMenecee,inBibliothequebyzantinepublieesousladirectiondePaulLemerle,Paris,1955)를편집하여출판했다.
1958년에서1968년까지로마에콜프랑세즈사무장으로서이탈리아에체재하며남이탈리아문헌과역사연구를수행했다.그의남이탈리아비잔티움문서편집은칼라브리아돈노소성니콜라오스수도원문서(1967)를시작으로바티칸도서관발행‘남이탈리아·시칠리아그리스어문헌총서’(Corpusdesactesgrecsd’ItalieduSudetdeSicile.Recherched’hi?stoireetdegeographie)에순차적으로결집되며,이작업은거의반세기간이어진다.그의치밀한연구에서남이탈리아비잔티움문화(세속·종교제도,경제,사회,언어,관습)의이제껏몰랐던,놀랍도록새로운측면들이드러나며,이문화는노르만인들에의한남이탈리아정복기를지나면서도퇴색하지않은것이었다.
기유는라파엘로모르겐을비롯한현대중세학자들과도학술적교류를심화하여‘중세역사문헌목록’(RepertoriumFontiumHistoriaeMediiAevi)작성위원회에비잔티움학자로서참가하게된다.이탈리아교육기관에서교수직을얻기를원했으나뜻을이루지못하고1968년부터27년간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비잔티움역사·사회부문’교수로재임했다.이시기아날학파역사가들로부터많은영향을받는데,그는이미역사연구에서경제와인구,지리에대해주목했다.1974년바리에비잔티움연구중심을설립하고이곳에서부교수로서가르쳤으며‘피에르벨롱그리스·발칸지역대학학제(學際)연구협회’회장과‘국제남동부유럽학회’회장을역임했다.
기유의비잔티움연구의통합적시각은그의대표작『비잔티움문명』(1974)에서잘드러나며,러시아비잔티움학자알렉산드르카쥐단은이를‘현대비잔티움역사연구에서최고의업적’으로칭했다.

역자:김래모
대학시절처음에한국고전문학연구에뜻을두었으나러시아어수업을들은것을계기로러시아학으로진로를바꾸었다.1994년도일하여동경대학인문사회계연구과슬라브어·슬라브문학연구실에입학하였다.이곳에서러시아문학,서양고전학,현대이탈리아문학을수학하고2006년호라티우스와러시아18세기시인들작품비교연구로학위를받았다.한국에돌아온뒤실업자가된것을디딤돌삼아홀로비잔티움역사연구를시작했다.동유럽뿐만아니라지중해권역사에서비잔티움문화가어떻게중요한지차차인식의폭을넓혀가고있으며시리아,조지아등다른비잔티움문화권세계들에도관심을확대하려준비중이다.저서로Horacein18thCenturyRussianPoetry,번역작품으로「자비로운성자필라레토스」가있다.

목차


비잔티움제국을다시걷다|김래모
추천사
서문

제1장지리학에서바라본비잔티움역사
지중해동부가장자리의비잔티움제국|지중해전역의비잔티움제국|지중해북쪽연안으로줄어든비잔티움제국|비잔티움제국-에게해제국|해협의제국|행정구역

제2장제국의지역과지형
제국의서부
이탈리아|시칠리아|아프리카,사르데냐,에스파냐
제국의동부
발칸반도|그리스|클리마타|소아시아|비잔티움령아르메니아|비잔티움령메소포타미아|시리아,팔레스티나,키프로스|이집트와리비아

제3장국가
국가행정구조
황제|관료|수도의주요부서들|지방행정|의회
국가의중추기관들
재정|사법|외교|군대|교회

제4장사회
신분관계
노예와환관|신분과직업|유대관계
사고방식
전통의존중|지역주의와몇몇예외적정신

제5장경제
토지
토지경작방식|토지경작방식과농민의사정
도시생활
도시의구조변천사|상공업의발달

제6장교양
지성사
문서|연설|도상학|문명의물질도구들
감성사
신앙의상징들|아름다움에대한견해|신앙|기도|민간신앙

결론

옮긴이의말
비잔티움문명권지도
비잔티움제국연표
참고문헌
부록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보이는세계와보이지않는세계를동시에담다

『비잔티움문명』은문명이존재한‘장소’부터짚고넘어간다.비잔티움의지리와기후,생태환경을분석하며제국의영토가시대에따라어떻게변화했는지,토양과물,농업과이주가그사회를어떻게재편했는지를추적한다.물리적조건들은신학이나법보다더깊이문명을결정지었다.

기유는역사지리학자이자구조사가로서토지의분포,강과항구의위치,방어선의설정,기후와작물,산악지형과계곡의거주방식까지추적한다.그리고이를통해제도와정치권력의작동방식을설명한다.
비잔티움은단일한지역이아니라다층적이고이질적인공간들로이루어진문명이다.수도콘스탄티노플에서출발한문명이아나톨리아의고원,시리아의사막,발칸반도의산악,이탈리아남부의도시에이르기까지각자다른생태와정체성을지닌지역으로확장되었다.이러한다원적환경속에서제국이일관된질서를어떻게유지했는지,어떻게균열을경험했는지를살피는것은이책의중요한과제다.

살아있는인간의문명을향하여

“토지,햇빛,공기와같은모든피조물은신의소유이며,
신은인간에대한크나큰사랑에서인간에게
지상대리자황제의책임하에그것들을향유할권리를부여했다.”_479쪽

지상에서수도사들이기도하는동안,죽은이들은악마의괴롭힘을견디며계단을기어오른다.비잔티움인의구원관을보여준다.
『비잔티움문명』이특별한이유는단지위대한유산이나권력의연대기를서술하기때문이아니다.기유는오히려민중의삶과경제,도시의구조,교역과수공업,식생활과질병,의복과주거의형태까지‘살아있는인간의문명’을추적한다.고고학,지리학,미시사가결합된서술이다.
기유는비잔티움의경제를단지화폐흐름으로보지않고,제국이보유한농지,노예,인력,세금,노동,식량구성과소비양태를추적한다.특히“토지는신의것이며,황제는신의대리자로서그것을분배할책임이있다”는비잔티움의신정적소유관은현대적재산개념과근본적으로다르다.그로인해‘소유’와‘점유’,‘경작’과‘세금’사이의복잡한관계망이형성된다.
기유는비잔티움정신세계의양극을분석한다.교회는단지종교적공간이아니라,그자체로세계를재현한구조물이었고,신자는성소안에서시간과공간의제약을초월해‘신의왕국’에발을디딘존재였다.예배는행위이자존재의형식이었고,프레스코와모자이크는단순한장식이아니라신비를매개하는매체였다.
비잔티움인의시간은성인의축일과교회력에따라흘렀고,공간역시경건함의위계에따라다르게사용되었다.이는종교의영향이강했다는수준을넘어서,시간과공간을해석하는방식에비잔티움만의이데올로기가존재했음을보여준다.비잔티움의사회는절대적신을중심으로구조화된우주론속에서인간의위치를끊임없이정립하려했고,이런태도는정치와윤리,법과사회제도에도스며들었다.

낯선세계에대한정직한접근

“콘스탄티노플을한번도보지못했던그사람들이
얼마나그도시를한참동안바라보았는지...
온통도시를둘러싼높은담장들과견고한탑들,그웅장한궁전들,높이솟은교회들,
그리고다른모든도시위에왕자로서군림하는이도시의길이와너비를보았을때,
온세상에이만큼강대한도시가있을것이라곤생각지도못했기때문이죠.”_534쪽

기유는비잔티움을무조건미화하거나서방의시각으로단순화하지않는다.오히려“이세계의사람들과문물을그본래의복합성에입각해이해하는것은우리로서는거의불가능한일”이라고고백하면서사료와유물과텍스트에귀를기울인다.그런점에서이책은학술적성실성에기반한탐구의결과물이다.

“그곳의일은힘들뿐아니라너무나많고
글씨를써야하는긴장에시달려,
말하자면귀를긁을수도,머리를쳐들수도,
배고파도먹을수도,목마를때마실수도없었고,
땀이이마와얼굴에비오듯흐르지않는한
씻으러갈수도없었네.”
_콘스탄티노플상서성서기미카엘프셀로스

『비잔티움문명』은200장이상의지도와예술작품,유물도판을통해독자에게문명의실체를보여준다.필사본의장식,수도원건축의구획,도시성벽과도로망,생활도구와의복,유적과지형이역사학자의분석과함께제시된다.독자는마치박물관을천천히걷는것처럼,비잔티움인의삶과공간을펼쳐보게된다.

천년의시간,한권의문명사

“동로마가제공한피난처에서서유럽은자신의삶을재구축할수있었다.
서유럽문명은동로마의생존의지의부산물이라고해도과장이아니다.”_61쪽

『비잔티움문명』은비잔티움제국을단순한역사연구의대상으로바라보지않는다.비잔티움은현재에도살아있는정신적유산이며,유럽의정체성을형성한또다른뿌리다.중세서유럽이‘서방의어둠’을헤맬때,비잔티움은고전문화를수호하고계승한중심지였고,슬라브세계의정교회문화는비잔티움의언어와신앙,제도에서뿌리를찾았다.서구중심주의로포착할수없는세계,비서구이면서도유럽을만든비잔티움문명은문명과권력,종교와정체성에대한성찰로독자를이끈다.
오늘날직면한문화적복잡성과국가사이의갈등을이해하기위해서도비잔티움을다시조명해야한다.‘역사와전통’이라는단순한틀로는포착할수없는복합적문명,그것이바로비잔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