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구락부 (반양장)

비밀구락부 (반양장)

$18.00
Description
이념도 국적도 사랑도 끝까지 비밀이어야 했던 시대
해방기의 대혼란 속에서 펼쳐지는 스파이들의 암투
열 살에 민며느리로 팔려 간 소녀. 종처럼 부려지던 그녀는 어린 나이에 집을 도망쳐 나와, 푸른 눈의 선교사의 도움으로 글을 깨치고 이화여전을 다니는 신여성으로 자란다. 송아지나 강아지처럼 어린 짐승 새끼를 부르던 말, ‘아지.’ 아무렇게나 붙인 ‘천아지’라는 이름으로 살던 소녀는 선교사 미스 엘리슨의 죽은 동생의 이름 ‘엘렌,’ 조선식으로 ‘애란’이 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식민지 경성의 한 비밀 독서회. 본명을 말하지 않는 것이 그곳의 규칙이다. 경찰에 끌려가도 서로의 정체만은 발설하지 않기 위해 다 알면서도 모른 척해주던 그 자취방에서 애란과 좌익 지식인 현욱은 처음 만난다. 그러나 가명 뒤에 진짜 얼굴을 감춰야 했던 가명의 존재들이 그 방 안의 사람들만은 아니었다. 식민지 시절을 지나 해방이 오고 삼팔선이 그어지자, 한반도 전체가 통째로 비밀의 땅이 된다. 미군정과 좌익이 맞부딪히고 첩보와 밀고, 알력 다툼이 일상이 되고 개인적 고통과 역사적 운명 속에서 희생과 배신이 난무하는 사람들. 이념도 국적도 사랑도 끝끝내 비밀이었던 사람들. 그들이 바로 ‘비밀구락부,’ 즉 비밀 클럽의 사람들이다.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작중 인물과 역사 속 인물을 연결해 읽는 맛을 더한다.

소설가 이화경이 8년 만에 장편소설 『비밀구락부』를 펴냈다. 이 책은 1926년부터 1955년까지, 휘몰아치던 비밀의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30년을 좇는다. 소설은 한 사람의 시점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미군정 통역사로 성장한 애란, 양반가의 수재로 태어나 좌익 진영의 지도자가 된 현욱, 그를 쫓으며 극우 세력의 폭력에 동조하게 된 미군 방첩대원 주드, 그리고 애란의 든든한 뒷배인 미 헌병사령관 에이든. 각 인물들은 사상, 신념, 희생, 사랑, 배신, 고난, 희망의 연속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거나 절망한다. 인물에서 인물로, 사건에서 사건으로, 시점과 시간을 건너뛰는 이화경의 글쓰기는 각각의 인물에게 생동감을 부여한다. 겹치고 어긋나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시대의 초상’이 되살아난다.

그러나 이 소설이 끝내 응시하는 것은 첩보도 이념도 아니다. 본명을 빼앗기고 가명으로 떠밀려 다닌 사람들이 어떻게든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했던 안간힘이다. 그 안간힘은 누군가에게는 끝내 버려지면서도 멈추지 않고자 했던 생존의 의지로,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타인을 짓밟는 폭력과 가해로 분출된다. 이화경은 그 어느 쪽도 섣불리 미화하거나 단죄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시대의 ‘인간 군상’을 역사 한복판에 나란히 세운다. 『비밀구락부』는 그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 시대를 통과한 이름들을 호명하는 한 편의 대하소설이다.
저자

이화경

소설가.1997년『세계의문학』에소설「둥근잎나팔꽃」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펴낸책으로『수화』『나비를태우는강』『그림자개』『조지아오키프그리고스티글리츠』『화투치는고양이』『꾼-이야기하나로세상을희롱한조선의책읽어주는남자』『탐욕』『버지니아울프와밤을새다』『울지마라,눈물이네몸을녹일것이니』『열애를읽는다』『윗도리』『하염없이무엇을생각합니다』등이있다.

목차

1926-1955ㆍ351
소설의계절에그들의찬란함을풀어놓다│작가의말ㆍ367
격동의시대를산인간들의서사│김미옥ㆍ371

출판사 서평

여름처럼뜨거웠던그들의이야기

『비밀구락부』를끌고가는힘은한사람의정해진운명이아니라,여러사람의시선이겹쳐지고어긋나는방식에있다.누군가에게애란은미군의치마폭에숨은변절자이지만누군가에게는끝내신념을저버리지않은동지이며,또누군가에게는소중한친구,연인,혹은파괴해야할적이거나전리품이다.남한VIP의수양아들이될뻔한주드는권력의거대한힘에부딪혀위기에빠지기도한다.소설은이시선중어느하나에특권을주지않는다.소설속에서‘숭고한정답’으로서의삶은존재하지않는다.대신각각의삶에대한증언을차곡차곡정교하게쌓아올린다.일견개인의삶의한조각으로만보이던이야기들은그렇게한권의대서사시로완성된다.

이다층적구조는단순한형식적묘기가아니다.그것은시대를한가지정답에가두려는폭력에맞서는이화경의윤리적소설론이다.시점이옮겨갈때마다독자는앞서내렸던판단을의심하게된다.선이라고생각하던사람이악이되고,악이라고생각하던사람을연민하게된다.인물들은어느한장면만으로는설명되지않는다.『미오기傳』의작가이자이화경의소설을오래지지해온김미옥의추천사처럼,“악인의독백에도설득력을부여하고독자를흡입하는유려하고독특하며기이한”작품이다.이화경은소설을통해우리에게이렇게말하는듯하다.이게인생이고,이게곧역사라고.

그겹겹의시선이마침내한자리에모이는곳에바로6·25라는비극이있다.한때같은비밀을나눠가졌던이들이남과북으로갈라서고,같은말을쓰던사람들이끝내서로를겨눈다.첩보전의승패도,누가옳았는지도이종착지앞에서는모두허울좋은이야기에불과하다.이화경에게이들이겪은뜨거운여름은각각의인물이누린찬란한한철인동시에,두번다시되풀이되어서는안될한시대의참극을상징한다.

버둥거림으로가득했던찬란한여름.그여름은아름다웠으나,결국비극을향해질주했고,바로그렇기에단한번만이어야만했다.『비밀구락부』가박제된신화를깨부수고한사람한사람의얼굴을기어이조명해내는까닭도바로여기에있다.역사를거대한승패의서사가아닌개개인의삶의총합으로되돌려놓을때,우리는비로소그역사를반복하지않을수있다.

생존자체가삶의승리가되는희비극

이화경은1997년『세계의문학』에소설「둥근잎나팔꽃」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해여러권의소설을펴내며자신만의문체를벼려온작가다.김미옥은『비밀구락부』를“등장인물들이기이하게독특하고,열정적이면서동시에냉소적”이라고평했다.무엇보다그세계에서는‘생존’그자체가삶의승리가되는희비극이펼쳐진다고짚었는데,이는끝까지“GoForward!”를신조삼아버려지고또버려져도멈추지않았던애란의삶을요약한다.8년만의이번장편에서이화경은평안도사투리의질긴입말부터첩보의차가운문법까지자유자재로구사하며,한사람을선뜻미화하지도단죄하지도않은채역사의서사에설득력을부여한다.바로김미옥이이소설을두고“사랑의완결자이자공동체의신의를저버린배신자라는‘만들어진신화’가끝내전복된다”고평한까닭이다.

「작가의말」에서이화경은백합구근의춘화현상을이야기한다.한겨울의냉기를충분히견뎌낸구근만이비로소꽃을피운다는것.자신을흙속에파묻는것이곧찬란함을향한것이라는역설이이소설전체를관통하는이미지다.소설속인물은모두그시대라는엄혹한계절의자식이었고,저마다의방식으로피어나기를주저하지않았다.그피어남을어떻게판단할것인가는독자의몫이다.

개인을손쉽게내편과남의편으로나누던시대.그러나그차가운시절을살아낸이들은나름대로뜨거웠고나름대로찬란했다.단한번도다정한적없던시대를통과한이들이누렸던단한번의여름을,이제독자들이마주할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