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동심을비추는거울이되다
투명하고맑은서정으로자연과교감해온박철시인의동시집『아무도모르지』가출간되었다.크고작은존재들의역사를애정어린시선으로살핀첫동시집『설라므네할아버지의그래설라므네』(문학동네2018)이후6년만이다.달뜬마음으로어린이에게첫인사를건넸던시인은,더욱깊어진사랑과함께어린이독자에게돌아왔다.
자연은언제나어린이에게친구와같은존재였다.자연과어린이는서로의품안에서참된의미를찾아,비로소“정말봄”을맞을수있다.시인은어린이가자연과한몸,한마음으로어우러지는순간에주목한다.
봄이오면/개울물이녹는다//개울물녹아야/봄이오는데//봄이오면/진달래핀다//진달래피어야/봄이오는데//서아야오늘도/같이놀자//그러면/정말봄이다―「봄」전문
앞산은앞에있고/뒷산은뒤에있네/그걸누가모르나//아침엔해가뜨고/저녁엔달이뜨네/그걸누가모르나//나는너를좋아하고/너는나를좋아하네/그건아무도모르지―「아무도모르지」전문
시인은“내가자는동안/꽃은나팔을준비”한것을보고“꽃이자는동안/나는무얼해줄까”애틋한고민을내보이는어린이(「나팔꽃」),자신의마음을따라생동하는자연에“내맘대로/나는내가좋다”하는긍정을얻는아이를발견한다(「내맘대로」).자연은동심으로향하는시적통로이자,어린이의내밀한마음을비추는거울이된다.소박한애정에서머금은시인의시선은읽는이에게큰울림을준다.
함께손잡을때성장하는어린이
『아무도모르지』의전반에는손을꼭붙잡고길을나서는아이들의이미지가선명하다.그것은어린이독자에게“풍성한미래가펼쳐지면좋겠다”(「시인의말」)는시인의바람이녹아있기때문일것이다.
꼬불꼬불사잇길을/맨발로걸어보자/맨발로가보자/올망졸망언덕길을/손잡고넘어보자/손잡고가보자//(…)//맨발로가보자/맨질맨질시냇물을/맨발로뛰어보자/하늘더욱맑은날은/들판끝까지가보자/맨발로가보자―「맨발」부분
“꼬불꼬불사잇길”도,“올망졸망언덕길”도함께“손잡고넘”는다면그일은어렵지않다.또집으로홀로돌아가는길이면“바람”이,“노란민들레”가,“삽사리”와“산새”가함께하기에외롭지않다(「길」).설사뜨거운사막을건너는길일지라도서로를살피는마음과함께라면걱정할필요도없을것이다(「인도펀자브사막에서는」).아동문학평론가이충일은해설「마르지않는곳간에서길어올린동심의풍경」에서이렇듯누군가와함께손을잡고있기에어린이가흥겹게,저먼곳까지갈수있음을짚는다.험하고낯선그길,즉성장이라는여정한가운데서어린이가그길을잃지않기를바라는시인의마음이내내뭉클하게다가온다.
세대를뛰어넘어공명하는감각
박철시인은「시인의말」을통해이동시집에“내어린날의기억을우리어린이의마음에보태”고자했음을밝힌다.그다정한마음때문인지,『아무도모르지』에는여러세대를아우르는가족의이야기가다양하게등장한다.특히「엄마가태어나던날」은섬세하고푸근한시심(詩心)이돋보이는작품이다.
옛날옛날에/엄마가오던동지섣달/마당건너외양간에서/쇠방울소리울렸단다/사랑방엔여물끓는냄새/은은하게울려퍼지고/문밖에선함박눈이종일/나풀나풀울렸단다/할머니명탯국타령에/장에갔던할아버지/명태들고돌아오는오릿길/쇠걸음에비행장불빛도/한참은울렸단다/할아버지잠시숨고르는동안/엄마태어나세상향해/함박울음도피웠단다―「엄마가태어나던날」전문
시인은“엄마가오던동지섣달”의풍경을옛이야기들려주듯어린이독자에게전한다.이시를읽는동안독자는“쇠방울소리”와“여물끓는냄새”,반짝이는“비행장불빛”까지다채로운감각속에서그“옛날옛날”의시절에따뜻하게가닿게된다.오래되고정겨운그시간이어린이의감각과공명하는순간을포착한것이다.시인이넉넉한품으로써내려간이동시집이언제까지고어린이곁에서든든한나무처럼함께하길바란다.
*인증유형:공급자적합성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