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미시령

밤 미시령

$8.56
저자

고형렬

1954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났다. 1979년 '현대문학'에 시 '장자'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고, 백석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현대문학상, 유심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2000년 계간 '시평'을 편집했으며,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로 출강했다. 시집 『대청봉 수박밭』 『해청』 『사진리 대설』 『성에꽃 눈부처』 『김포 운호가든집에서』 『밤 미시령』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유리체를 통과하다』 『지구를 이승이라 불러줄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이다』, 장시 『리틀 보이』 『붕(鵬)새』, 장편산문 『은빛 물고기』 『고형렬 에세이 장자』(전7권) 동시집 『빵 들고 자는 언니』 등이 있다.

목차

강상(江上) 유람(遊覽)이라면
개금불사
작은 칼
달려라, 호랑아
동물원 플라타너스
모자산 꽃을 지나며
배구
조태 칼국수
청제비 울음소리
고니 발을 보다
메뚜기들 죽은 곳
고흐의 접시그림
음악을 주인거리
솔봉아 가지 않는 산이다
풀, 풀, 풀
청화
너무나 작은 먼지에서
하류(下流)의 시
눈 소리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돌
젖
청모의 노래
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나의 최초의 빛
고니 발에는
벌레
하늘 글
코이께 마사요(小池昌代)
밤사람
네거티브, 검관
폐차통지서를 받고
돼지 기르는 집에서
양양 내수면연구소
나옹
미나리꽝
가지 울음
파주 북시티의 마지막 담배
천수(千手)
겨울 논에서
11월 다람쥐
작고 시인
매직아이를 열지 마
다시 비선대
밤 미시령
다시 서울
선상의 시4월
단풍연어 매만지면서
여치의 눈
버티컬 블라인드가 열릴 때
얼어붙는 울음 하나
나의 동굴
흰 모래의 잠
뚱칭에서 온 한 여성을 위하여
생전 도일처(都一處)에 와서
발바닥은 모시조개밭
싸우는 별을 보며
앗 첫얼음 얼다
찢어지다, 또 찢어지다
4월
경호원 K

해설 - 김춘식
시인의 말

출판사 서평

고형렬 시인은 1979년 『현대문학』에 「장자」 등을 발표하며 등단한 이래, 기교 없이 투명한 시적 깨달음과 무욕의 경지에서 삶의 슬픔과 쓸쓸함을 끌어안는 시편을 잔잔한 화법으로 써왔다. 『밤 미시령』은 그가 5년 만에 펴내는 신작 시집이다. 그간 고형렬 시인의 시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화두는 고향, 가족, 일상, 자연, 시쓰기 등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그 같은 화두에 대해 한층 농익은 성찰을 노래하면서도, 내면으로만 침잠하지 않는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우선 시인은 추억을 재생시키는 ‘흑백 필름’처럼 지나간 삶을 담담하게 회상하고 역설적으로 거기서 얻은 활력으로 초월의 다짐을 풀어낸다. 「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네거티브, 검판」 「밤 미시령」 등의 시편에서 시인은 지금 여기에 있지만, 현실 혹은 현재보다는 과거와 정신의 상부를 지향한다. 그러나 잘 정제된 형식 안에 담긴 시적 주체의 심리는 갈등하고 충돌하고 싸우는바, “이렇게 그리울 줄 알았으면”(「네거티브, 검판」)으로 시작한 회상은 결국 “그 사람 다시 생각지 않으리”(「밤 미시령」)라는 다짐으로 마무리된다. 그리움의 정조를 품고는 있으나 주저앉아 있지만은 않겠다는 의지이다. 그렇게 시인의 내면에는 “기억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과 동시에 초월과 해탈, 무소유, 허무의 심리가 지금 함께 ‘동숙(同宿)’”(김춘식 해설, 「모자이크된 육체, 그리고 검은 날개의 실루엣」)하고 있다. 그러한 회상과 역설의 어법은 반평생 넘어 몸담은 시쓰기에 대한 자의식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짧지 않은 시력(詩歷)이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중단없는 시쓰기를 욕망하는 시인은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보다 젊어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에 자신을 중첩시키고(「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말의 영혼은/이슬처럼 사라”(「작고 시인」)진 작고 시인을 떠올린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는 “또 어쩔 수 없이 나를 나의 시에 영영 의탁하려”(「하류(下流)의 시」) 하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한편 ‘자화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달려라, 호랑아」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성과 분발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달려가는 호랑의 껍질은 아무것도 아니다/(…)/모자이크된 육체가 뛰어가는 정신/(…)/부끄러운 표정의 질주를 비웃는다 이것이 ‘세계’를 보는/나의 유일한 창구, 한없이 저놈은 비위사납다/(…)/달려라 조금만 더, 뛰어라 호랑아” 생활인으로서, 시인으로서 현실의 치욕 속을 이를 깨물며 질주하고자 하는 의지는 육신 따위는, 껍질 따위는 아랑곳없이 앞으로, 내일로 달려간다. 지침없이 중단없이 삶을 살아내고 시를 쓰고자 하는 의지의 강렬한 표현이다. 최근 일본의 시 전문 계간지 『콜삭(Coal Sack)』에서 장시 「리틀 보이」를 번역 출간할 계획을 발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중견시인 고형렬은 그간의 문학적 성취에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하류의 기러기들을 보고 싶어한다/또 다른 나의 시는 기러기들의 저녁을 알고 싶어”(「하류(下流)의 시」)하는 고형렬의 시는 잔잔한 질주를 계속할 것이다. 근래 들어 부쩍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서정과 도회적이고 작위적인 감성의 폭주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었던 우리 독자들에게 고형렬의 시는 인생과 시쓰기에 대한 담백하지만 열정을 잃지 않는 목소리를 들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