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잘못 날아왔다

너는 잘못 날아왔다

$13.00
Description
몽환의 수사학으로 생의 비참함을 꿰뚫어보는 김성규 시인의 작품들!
김성규 시집『너는 잘못 날아왔다』.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4년 동안 쓴 작품들 가운데 53편을 엄선해 묶은 첫 시집이다. 경험세계와 상상세계를 결합시키는 동화적 상상력과 환상적인 어법으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온 김성규 시인은 치밀하게 들여다본 생의 단면을 통해 그 배후의 풍경을 그려낸다. 단정한 어법으로 매일 우리 곁에서 벌어지는 비참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여준다.

시인은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은 풍경들을 집요하게 발굴하여, 그 참상들을 통해 이 세상 너머를 새롭게 인식한다. 햇살 아래 드러난 비극과 고통은 이제 그곳에 머물지 않고, 더이상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다. 현실의 세계와 환상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시인의 상상력은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하다가, 어느 순간 세계를 낯설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불길한 새〉

눈이 내리고 나는 부두에 서 있었다
육지 쪽으로 불어온 바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넘어지고 있었다

바닷가 파도 위를 날아온 검은 눈송이 하나,
춤을 추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의 건물들은 몸을 웅크리고
바람은 내 머리카락을 마구 흔들었다

눈송이는 점점 커지고, 검은 새
젖은 나뭇잎처럼 쳐진 날개를 흔들며
바다를 건너오고 있었다
하늘 한 귀퉁이가 무너지고 있었다

해송 몇그루가
무너지는 하늘 쪽으로 팔다리를 허우적였다
그때마다 놀란 새의 울음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너는 잘못 날아왔다
너는 잘못 날아왔다
저자

김성규

1977년충북옥천에서태어나명지대문예창작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박사과정에재학중이다.2004년동아일보신춘눙예에'독산동반지하동굴유적지'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으며'시힘'동인으로활동중이다.

목차

제1부
사람이라고말할수없는
붉은샘
꿀단지
국경넘는사내
동그라미
구름에쫓기는트럭
독산동반지하동굴유적지
버섯을물고가는쥐떼들
5월에,5월에뻐꾸기가울었다
유리병
황금잉어
불길한새
만삭(滿朔)

제2부
빛나는땅
왕국에서떠내려온구름
얼음배
탈취
물고기는물고기와
눈동자
과식
손바닥속의항해
베개
난파선
하늘로솟는항아리
초원의잠
만찬

제3부
그리고비가내리기시작했다
호두나무위로까마귀를날린다
거식자(拒食者)
요람을타고온아이
눈덩이를굴리는사내
네가기르는개를쏘아라
겸상
누가달에이불을널어놓는가
빛나는땅2
쇠공을굴리는아이들
아가리속붉은혓바닥에탑을쌓는다
과적
햇볕따뜻한강에서
땅속을나는새
장롱을부수고배를
낙인

제4부
홍수이후
오후가되어도나는일어나지못하고
오늘
황소
꽃밭에는꽃들이
궁전을훔치는노인들
단지
사과와잔그리고주전자가있는정물
통곡의벽
목소리
존재하지않는마을

해설|황현산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경험과환상세계를넘어시가날아왔다

몽환의수사학으로생의비참함을꿰뚫어보는개성적인시각의시인김성규의『너는잘못날아왔다』가출간되었다.김성규는2004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독산동반지하동굴유적지」가당선되어등단할때부터이목을끈신예시인으로,데뷔이후4년동안치열하게작품을쓰고그가운데53편을엄선해첫시집을묶은것이다.
시적대상을포착하는시인의눈은고고학자의그것처럼섬세하고조심스럽다.섣불리판단하지않으며행복이든불행이든치밀하게들여다본생의단면을실마리삼아그배후의풍경을그려낸다.그의작품으로형상화된이세상은비참하지만한편으로아름답다.세계가스스로비참한속을확열어젖히면서비참함의극점에다다를때그속에어리는쉽게표현할수없는진실과오묘한빛,시인은그것을놓치지않고포착해그만의목소리로우리에게들려준다.모든것은산화되어공기속에서부서지고무너지고,갈리고사그라진다.어쩔수없는풍화작용에노출된존재들은각각이세상의한귀퉁이를짊어지고있다.시인은이들의찢기고쫓기는일상을천연덕스럽게보여준다.그일상이펼쳐지는지상과,그지상을굽어보고있는천상을노래한다.그는단정한어법으로매일매일우리곁에서벌어지는낯선풍경에깊은시선을매단다.

가슴을풀어헤친여인,/젖꼭지를물고있는갓난아이,/온몸이흉터로덮인사내/동굴에서세구(具)의시신이발견되었다//(…)입에서기어다니는구더기처럼/신문하단에조그맣게실린기사가/눈에서떨어지지않는새벽/지금도발굴을기다리는유적들/독산동반지하동굴에는인간들이살고있었다-「독산동반지하동굴유적지」부분

처녀의시체가호두나무에서내려진다/눈위에눕혀진그녀의얼굴이차갑게빛난다//이듬해부터가지가찢어지도록호두가열린다/나일론줄에목을감고있던그녀의뱃속/아이가숨을헐떡이며/죽어간것을사내들은알고있다//노인들은손바닥에검은물이들때까지/마당에앉아호두껍질을벗긴다/어두워지면검은손이나타난단다/이야기를듣던아이들이손바닥을바라본다//빈하늘을쓸어내리는바람소리/호두알처럼영근아이들은/밤마다계집애들이야기를한다/다익은처녀들을찾아다니는수염검은아이들/폭설로하늘이하얗게반짝이는날//치맛자락처럼펼쳐진호두나무가쓰러진다/참새발자국만한눈송이/지상에웅크린지붕을밟고가는날/아무도나무위의세상을묻지않는다-「존재하지않는마을」전문

고개를돌려외면하고싶은것들을,시인은왜자꾸만이렇게집요하게캐내려할까?데뷔작「독산동반지하동굴유적지」를비롯해많은시편에서시인은섬세하면서도집요할정도로묻어놓거나덮어놓거나외면해버린풍경들을발굴한다.그는땅속에묻힌값비싼보물을노리는자가아니다.즉그는영화에등장하는모험가기질의고고학자가아니라,오히려‘나무위의세상’이어떤지안부를묻는형이상(形而上)의세상에눈을대고있는관찰자다.예기치못하게묻힌것들,아무도찾으려하지않고볼수없는것들,그참상들을통해서이세상너머의풍경을새롭게인식한다.이러한발굴작업으로햇살아래드러난비극과고통은이제그곳에머물지않는다.더이상파묻힌비극과고통이아니므로슬픔과아픔마저더는슬프지도아프지도않게된다.이제는아무것도없는마을,그곳의노래는지상에서한뼘쯤떠있는유령처럼미끄러지며다가온다.

눈이내리고나는부두에서있었다/육지쪽으로불어온바람이/보이지않는곳에서넘어지고있었다//바닷가파도위를날아온검은눈송이하나,/춤을추며/이쪽으로다가오고있었다/주변의건물들은몸을웅크리고/바람은내머리카락을마구흔들었다//눈송이는점점커지고,검은새/젖은나뭇잎처럼쳐진날개를흔들며/바다를건너오고있었다/하늘한귀퉁이가무너지고있었다//해송몇그루가/무너지는하늘쪽으로팔다리를허우적였다/그때마다놀란새의울음소리가/바람에실려왔다//너는잘못날아왔다/너는잘못날아왔다-「불길한새」전문

어둡고축축한세계,불행을그리는일에집착하는그의시가술술읽히는건왜일까?이시집의해설에서문학평론가황현산은그이유가‘불행의편’에선시인의‘몽환의수사학’과‘유려하고아름답기’까지한언어와표현덕분이라고말한다.또이시집의가장심각한전언이거기들어있다고강조한다.

돼지를잡는노인들은돼지의“울음이빠져나간육신(肉身)을위하여”저마다“한번씩붉은샘을판다.”(「붉은샘」)그렇게저마다불행의육신에서먹을것을얻어낸다.“배가불룩한항아리들을모조리”깨부수듯,애기밴처녀가낙태를할때는“밤마다하늘로솟아오르는달덩어리”가“흔들리며천개의강에독을풀어놓는다.”(「하늘로솟는항아리」)한사람의깨달음이천만사람의깨달음이되는날이있었다면,한사람의불행이천만사람의불행이되는날도있다.낡은건물을무너지고신시가지가조성되는마을의아이들은“하늘에서쇠공이떨어”지고,“포클레인이양철지붕을누르자한번들으면되돌릴수없는음악처럼”울리는나팔소리를듣는다.(「쇠공을굴리는아이들」)묵시록의가장어두운풍경이거기있다.-황현산해설(121~22면)

한마디로그의시에서초현실적인힘을뿜어내지않는불행은없다는것이다.시인김성규는중력을거부하려하지않으면서도공중으로떠오르는느낌의시들을쓴다.우리는그가그린시속의풍경에섬뜩해하다가어느새구름을밟고있는듯한황홀에빠지게된다.현실의경험세계와환상세계를자유자재로넘나드는상상력,그리고이를통해아름다운시의언어와미학에빠져들게하다가어느순간이세계를낯설게만들어버리는힘,이것이이신예시인의범상치않은재능이다.
분명김성규는경험과감각을넘어적극적인의지를담은환상성으로이세계의감춰진이면을발굴함으로써기존의리얼리즘을갱신하는패기를보여준다.경험세계와상상세계를무리없이결합시키는동화적상상력과환상적인어법은동세대시인들과겹치면서도독보적인영역을구축한다.읽을수록강해지는흡인력은신인의저력을느끼기에부족함이없다.슬프고끔찍할수록그만큼더아름다운시집은그유례가드물기때문에이신예의행보는더욱더값지고소중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