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달래는 순서

고통을 달래는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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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매혹적인 불화에서 길어올린 다정의 시편들
열정과 상처를 여성적 어법으로 노래해온 김경미 시인의 네번째 시집. 7년의 공백 기간은 시인으로 하여금 섬세한 떨림을 더하게 하고 감춰진 일상의 틈에서 발견한 불화와 외로움에 대해 더 깊게 천착하게 한다. 개성적인 상상력을 통해 사랑과 관계의 사유를 펼쳐가는 시들 한편에 소외와 고통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다양하게 변주되는 관계의 불화는 기발한 상상력과 탁월한 시구들을 낳는다.

또한 그의 시는 “발성이 값지고 높으며 간절”해서 “어쩔 수 없이 목이 메어”(이병률)지는 감동을 선사한다. 시인은 불화와 고통을 건너가는 방법을 제시하기보다는 그것들을 철저하게 살아내려는 자세를 견지한다. 고통과 사랑의 ‘틈/겹’에서 견디면서 발언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그래서 역설적인 힘을 가지고 더 아름답고 눈부시게 빛난다.
저자

김경미

1959년6월24일경기부천출생.한양대학교사학과졸업,고려대학교국어국문학석사수료.1983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시'비망록'이당선되었으며,2005년노작문학상을수상했다.2007년한국방송작가협회라디오작가상을수상하였고,2008년8월~11월아이오와국제창작레지던스에참가하였다.2009년부터원주한라대학교미디어콘텐츠학과에출강했으며,KBS-1FM'출발FM과함께'담당작가로일하고있다.2010년에는서정시학작품상을수상하였다.시집으로'쓰다만편지인들다시못쓰랴','이기적인슬픔들을위하여','쉬잇,나의세컨드는','행복한심리학'등이있고,사진에세이로'바다,내게로오다','막내'가있다.

목차

제1부당신이라는근거
이러고있는,
야채사(野菜史)
혼선
다정에바치네
다정이병인양
고통을달래는순서
사랑의근거
조금씩이상한일들1
멸치

조금씩이상한일들2-저녁의답장
고요에바치네
누가사는것일까
만유인력
한낮,대취하다
화상

제2부맥락없는말을하다
그런말들이1
그런말들이2
맥락없음에바치다
사람시늉
상심
잘모른다
그날의배경
먼지
구멍
바닷가절,불타다
질-개작
눈물의횟수
해진다어디에나
글씨의시절-방송국에서
환골
무언가를듣는밤

제3부미안하다저녁이여
변덕
나는이곳에속하지않는다
봄,무량사
7월,넝쿨장미,사랑
조금씩이상한일들3
물의미제(未濟)
줄이야기
연희
식물일지2003
해질녘
불참
겨울,부석사,농구
문밖의문
첫눈
인간론
애인도시-애정성시
생화

제4부마음이마음을낳다
생심기
그들의중년1
그들의중년2-명함
나의노파
해명
다정이나를
자동응답기
종군기
서정의흉가
이브,너는어디에있었느냐
조금씩이상한일들4-입관실에서
그세월에
일몰의기억들
소란지심-상권
바다의권유
요즘내문제는

산문│부재에홀리다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청춘의열정과불안을예민하게탐구하고상처와허무로가득한비극적인세계를독특한여성적어법으로전개해왔던김경미시인의신작시집『고통을달래는순서』가출간되었다.『쉿,나의세컨드는』(2001)이후7년의공백을깨고펴내는네번째시집이다.오랜침묵의세월은시인으로하여금시세계에섬세한떨림을더하게하고감춰진일상의틈에서건져올린불화와상처,외로움에대해더깊게천착하게한다.그래서이번시집을읽다보면불안한마음은갈피를잡지못하면서아릿해지다가도깊은내면에서솟아나는연민에따듯하게젖어든다.
이번시집에서우선눈에띄는것은개성적인상상력을통해사랑과관계의사유를펼쳐가는장면들이다.「야채사」의경우‘고구마와가지’에서시작해‘사막과낙타’를가로질러‘당신과나’의관계에이르는발랄하고독특한어법이재미있게읽히면서도긴여운을준다.

고구마,가지같은야채들도애초에는/꽃이었다한다/잎이나줄기가유독인간의입에달디단바람에/꽃에서야채가되었다한다/달지않았으면오늘날호박이며양파들도/장미꽃처럼꽃가게를채우고세레나데가되고/검은영정앞국화꽃대신감자수북했겠다//사막도애초에는오아시스였다고한다//아니오아시스가원래사막이었다던가/그게아니라낙타가원래는사람이었다고한다/사람이원래낙타였는데팔다리가워낙맛있다보니/사람이되었다는학설도있다//여하튼당신도애초에는나였다/내가원래당신에게서갈라져나왔든가-「야채사(野菜史)」전문

그러나이시처럼관계에대한사유가발랄하고재미있게흘러가는것만은아니다.오히려시집전반에걸쳐관계맺음에대한비관적인상상력이주를이룬다.시인에게시는,일상은순조롭게흐르다가도어느순간모든일이자연스럽지못하게느껴지고삐걱거리거나궤도를이탈하는듯여겨진다.그래서시인의하루하루는종종버석거림과틈이벌어지는간극이감지된다.때문에시인은“세상과세상사람모두가어색하고적응되지않아툭하면말을더듬거나물컵을쏟는자.단체버스같은거타면한사코맨뒷자리에혼자앉으려는자.가끔씩비슷한구두를짝짝이로신고일터로가는자.늘어딘가그렇게부족하거나기울거나떨어져나간,보통사람처럼살면서도보통사람처럼살아지지않는이상한마음때문에늘실수와자격지심과주저를달고사는자”(시인의산문-「부재에홀리다」)와같다.이처럼사람과세계에서동떨어져사는자의일상은외롭고고통스러울수밖에없으나바로그러한상태에서바라보는시공간은시가꽃피는자리이자순간이기도하다.그것은다름아닌일상에서누구나느낄수있으나그냥지나치고마는,“갑자기눈물이핑,”(「글씨의시절」)도는순간이나‘조금씩이상한일들’이벌어지는때와도같다.그래서시인은“침울할때가좋”고“슬픔이웃음보다”낫다고(「조금씩이상한일들3」)여기는것이다.그러한시간들은다음과같은슬픔과외로움으로변주되기도한다.

안심할때만골라서뒷머리에돌을맞거나/시작하려하자마자떠나거나/애절하되차마입이떨어지지않거나/한밤중에깨어일어나찬밥을먹거나/한낮의버스안에서쇼핑백터지듯울음이터지거나,-「눈물의횟수」부분

시가탄생하는시간이라고할수있는이러한순간들은시인으로하여사물과세계를새롭게인식하게하는힘이다.그래서칸나꽃이“크고붉은동물”(「조금씩이상한일들4」)로변하거나창세기부터존재해온인간이어느순간먼지로살아간다는기발한발상이나오는것이다.

그럴리없다한먼지가죽었다는부음검은먼지를/갈아입고교통체증에서버린먼지들의경적소리를/듣다가돌아와식탁위몽실몽실한먼지로/아이먼지를만들거나남편먼지가다른먼지를/사랑한다고친구먼지가전화해울때나라는먼지는/시라는먼지를쓰고//온세계에그렇게한도없이내려앉는/저창세기,끝까지다독서해낼수있을까-「먼지」부분

물론이러한인식은관계와소통,사랑에있어서시시각각찾아오는불화와그로인한균열과간극에서기인한다.사람사이에는“잊고싶은일들”과“이해할수없는일들”(「잘모른다」)이수시로발생하고싸움이일어난다.이것은“너무가깝거나멀어몹쓸/사이도아닌데인간이인간을얼마나낙담시키는지/이미잘알고있다”는구절에서극명하게드러난다.그래서시인은참담하게고백한다.“사람과잘안맞아어떻게사람이어야하는지잘모르겠다고”(「그날의배경」).사람을가장심하게실망시키는주체가‘인간’이라는인식은종종“모욕을견디느라,꽉다문입술들온통다헐은채/제때(…)떠나지못한값을”(「환골」)지불하게하기도한다.또한모든사이와관계에서“나그대에게더잘전해지지않”는불통의문제는“라일락무늬나무받침에뜨거운냄비얹다가/라일락꽃들비명에냄비를놓”(「화상」)칠만큼일상을뒤죽박죽으로만들어놓는다.이때시인이취할수있는태도중의하나는모든관계에‘불참’(「불참」)하거나담담하게‘수긍’하는것이다.“세상에정주고저물녘,마음허물어지지않은날/하루도없”(「해질녘」)다는시인의고백은그래서더아프게다가오는것이다.
이러한불협화음은‘맥락없음’이라는사유에이르러극에달한다.이것은단지부정의사유만은아니다.사람들사이와대화에는일정한맥락이흐르는데,시인은자신이그맥락에서누락되었다는생각에서더나아가‘맥락없음’에서나오는‘평화와즐거움’을노래하는것이다.

아무맥락없다없는맥락이늘사람을잇고사랑을떨어뜨리고세월을줍는다맥락없음의평화와신비저녁이라는모종삽과어금니에바친다찾지마라나,라는맥락끼울곳없어맥락을잡아야만살았다느끼는사람들아나는아무런일목요연함도없어즐겁다는것-「맥락없음에바치다」부분

모든관계에서소외될수록시인이누리는삶의통찰이나생각의깊이는더깊어지고빛난다.“하고싶은말다해버린어제가쓰라리다/줄곧평지만보일때다리가가장아팠다”(「첫눈」)거나“칼의크기는제등에꽂힐깊이의크기”(「조금씩이상한일들1」)라는표현은관계에서소외되고상처받은자가그외로움의바닥까지내려간뒤에뿜어내는섬광과도같은것이다.
시인이집요하게파헤치는간극이나사이(틈)는끝내불화를향해치닫기만하는것은아니다.틈은곧‘겹’으로도변주된다.틈과겹은동전의양면처럼존재하는것이므로겹치지않는사물과관계는없다는사실을시인은뛰어난감수성으로노래한다.하여시인의눈은모든현상과사물들이“서로무늬를빚지거나기대”고,‘백일홍의저녁’과상처를주고받은‘당신의무릎’이“죽은척내게로와겹치는”(「겹」)시간을발견하게하는것이다.이러한상상은시공을초월해“고생대은행잎화석사진과내위벽에찍힌당신의말투와기차와물고기와저녁의흔적들겹친다”(조금씩이상한일들1)는탁월한표현을낳기도한다.
불화와상처와외로움이갈피마다묻어있는김경미의시들을읽다보면역설적으로그의시들이얼마나힘들게온기와다정함을놓지않는지를알게된다.이는‘다정연작’(「다정에바치네」「다정이병인양」「다정이나를」)에서아주강렬하면서도따뜻하게느낄수있다.“누가다정하면죽을것”같고“다정이나를죽일것만”(「다정이나를」)같지만동시에“세상과나를당신을더욱바짝조여”(「다정이병인양」)주게하는것이다.그래서종내시인은다정이라는말이“봄저녁에듣는간절한한마디”이고“온통세상의중심이게하는”(「다정에바치네」)것이라노래한다.
애초부터시인은불화와고통과외로움을건너가는방법이나답을가지고있지않은지도모른다.단지그것들을간절하게철저하게살아내려는자세를견지해온것인지모른다.그렇게때문에힘든세월이지만흉한세계를들여다보며‘몇겁’을서서기다리기도하고(「환골」),“더럽지만잊을수없는일생의아름다운또하루”(「그세월에」)를노래하는것이다.그렇다,‘고통을달래는순서’는애초에없었다.고통과사랑의틈/겹사이에서견디는수밖에없는것이다.그렇게발언할수밖에없는시인의일갈,“물처럼/버려지는것들//언제나조금씩기운것들이나를지킨다”(「조금씩이상한일들3))는말은그래서역설적인힘을가지고더아름답고눈부시게빛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