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사랑의감각,고요하게떨리는시
2000년『문학과사회』로등단한이후두권의시집을통해낯선화법에실린선명하고감각적인이미지와독창적인은유의세계를펼쳐보이며최근우리시단에서가장주목받는시인으로떠오른진은영시인의세번째시집『훔쳐가는노래』가출간되었다.4년만에펴내는이번시집에서시인은현실세계에대한치열한문제의식속에사회학적상상력과시적정치성이어우러진새로운감각의세계를선보인다.2011년현대문학상수상작인「그머나먼」외5편(「나의아름다운세탁소」「훔쳐가는노래」「망각은없다」「아름답게시작되는시」「오래된이야기」)을비롯하여,철학적사유와성찰이깃든매혹적이고환상적인언어와감각적이면서도군더더기없는간명한표현들로정제된총50편의시편이저마다강렬한인상을새긴다.
세상의절반은붉은모래/나머지는물//세상의절반은사랑/나머지는슬픔//붉은물이스민다/모래속으로,너의속으로//세상의절반은삶/나머지는노래//세상의절반은죽은은빛갈대/나머지는웃자라는은빛갈대//세상의절반은노래/나머지는안들리는노래(「세상의절반」전문)
‘사회참여와참여시사이에서의분열’을창작과정의문제로고민해온진은영시인은“아름답고동시에정치적인시에도달할가능성이있는몇안되는시인”(신형철)으로꼽힌다.2000년이후등단한많은젊은시인들이그렇듯이‘무엇을말하느냐’보다‘어떻게말하느냐’에관심을보여온시인은이번시집을통해‘무엇’과‘어떻게’를적절하게결합하는쪽으로방향을틀면서,문학적글쓰기와현실정치의간극속에서문학적인것과정치적인것을어떻게만나게할것인가에대한고민의흔적을여실히보여준다.
홍대앞보다마레지구가좋았다/내동생희영이보다앨리스가좋았다/철수보다폴이좋았다/국어사전보다세계대백과가좋다/아가씨들의향수보다당나라벼루에갈린먹냄새가좋다/과학자의천왕성보다시인들의달이좋다//멀리있으니까여기에서//(…)//엘뤼아르보다박노해가좋았다/더멀리있으니까/나의상처들에서//연필보다망치가좋다,지우개보다십자나사못/성경보다불경이좋다/소녀들이노인보다좋다//더멀리있으니까//(…)//혁명이,철학이좋았다/멀리있으니까(「그머나먼」부분)
삶의한지점에발을딛고선시인은타성의울타리안에갇힌관습적이고지루한일상에고착된시선을거두고진실에가까운삶의실체를보고자한다.가까이있는상처를들여다보는것에머무르지않고더멀리있는낯선삶을들여다보는적극적인활동을통해상처가치유될수있다고보는시인은“어떤이야기가,/어떤인생이,/어떤시작이/아름답게시작된다는것은무엇일까”(「아름답게시작되는시」)를생각하며,“가장낡은변두리에서흘러나오는더운하수같은노래”가흐르고“미로처럼생긴거리들에서일제히떠오르는빨간풍선같은소망”(「BucketList」)이이루어지는‘혁명’과‘철학’의세계로시야를넓혀간다.
옛날에는사람이사람을죽였대/살인자는아홉개의산을넘고아홉개의강을건너/달아났지살인자는달아나며/원한도떨어뜨리고/사연도떨어뜨렸지/아홉개의달이뜰때마다쫓던이들은/푸른허리를구부려그가떨어뜨린조각들을주웠다지//(…)//그건오래된이야기/옛날에살인자는용감한병정들로살인의장소를지키게하지않았다//그건오래된이야기/옛날에살인자는아홉개의산,들,강을지나/달아났다/흰밥알처럼흩어지며달아났다//그건정말오래된이야기/달빛아래가슴처럼부풀어오르며이어지는환한언덕위로/나라도,/법도,무너진집들도씌어진적없었던옛적에(「오래된이야기」부분)
사회참여와감각사이의갈등속에서새로운시적화법에“시의정치성에대한자신만의오랜고민”(함돈균)을담아온시인은동화적인상상력과알레고리를접합하여국가폭력이합법적으로자행되고‘살인자’가오히려당당하게도버젓이“살인의장소”를점령하는오늘의현실을환기한다.“나라도,/법도,무너진집들도”제대로씌어지지못하는시대,“내가보았던모든것이거짓말인것같”(「이모든것」)고,“모두가공범자,맛의죄인들”(「아주커다란호박에바치는송가」)인이비루한시대의상처를선연하게드러내며시인은“누군가에게아름다운기적이일어”(「기적」)나기를바란다.
내죄를대신저지르는사람들에대해/내병을대신앓고있는병자들에대해/한없이맑은날나대신창문에서뛰어내리거나/알약한통을모두삼켜버린이들에대해//(…)//불어가는핏빛바람에대해/할말이있다//나대신이세계에대해더많은것을희망하는이들과/나대신어두워지려는저녁하늘/들판에우두커니서있는검은묘비들/나대신울고있는한여자에대하여(「고백」부분)
‘삶과정치의실험이문학적실험에선행되어야한다’고믿는시인은통제와억압의질서를해체하고모순투성이의이세계에간섭하고자한다.“문학과정치,영혼과노동,해방에대하여”(「멸치의아이러니」)끊임없이고민해온시인은결연한의지로“신문이시처럼읽히는둥근십자로”와“망루에서죽은자에게/빌딩처럼멋진묘비를세워주는도시”(「지도를찾아서」)를찾아서“신비한질병과미지의악취”가풍기는“텅빈광장”(「망각은없다」)으로나선다.그것은곧‘다른이름’이아닌‘시인’으로서자신의“얼룩”과“천부적인더러움”(「나의아름다운세탁소」)을기꺼이내보이며‘진실된감정과자신만의독특한음조로새로운노래를찾아’가는노정에다름아닐것이다.
우리의갈비뼈하나를뽑아/진실을만드세요,하느님/그녀와손잡고나가겠습니다(「거리로」전문)
인생을시로잘게분할하면어떤일이벌어질까?기다란선분을무수한작은점들로나눈것처럼될까?그점들을다시합치면원래의선분이될까?그렇게산술적으로딱떨어질까?진은영의시는그렇지않다고말한다.인생을시로분할하면감각의무한소수로이루어진이야기들이탄생한다.한편의시마다끝이보이지않는하나의삶이드러난다.긴선분을나누면더기나긴선분이나타난다.이것이시의수학이요마술임을진은영의시는증언한다.이때진은영의시가시작하는삶이란내게주어진삶으로부터너무나머나먼동시에,더가까이두고,더욱간절히사랑하고싶어지는그런삶이다.이세계에속하지않는것으로기어이이세계에속해있는삶이다.
나는몇년전진은영에게서단어들을선물로받은적이있다.그녀는자신의시에서단어들을골라나에게주었다.그리고나는그낯선단어들을사용하여시를썼다.카이로에서팔레스타인으로가는열차안에서생을마감한,가난한시민이자슬픈시인인어떤사람에대한시였다.만약가난한시민들과슬픈시인들로이루어진공동체가있다면,그들이진은영의단어들을작은돌처럼주머니안에넣고다닌다면,가끔그것들을꺼내양식으로삼을수있다면,장담컨대그들은행복할것이다.말하는돌들을교환하기,단어와단어로맺은우정,이것이이비참한세계에서내가진은영과나눈기쁜협약이다.그녀의시를통해독자들또한그녀와우정을나누기를,부디행복해지기를._심보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