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넓이 (김주대 시집)

그리움의 넓이 (김주대 시집)

$13.00
Description
인간 존재에 대한 애틋한 사랑!
김주대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그리움의 넓이』. 1989년 《민중시》,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80년대 민중민족문학 진영의 촉망받는 젊은 시인이었던 저자의 이번 시집은 담백한 어조로 노래하는 현실에 길들여진 채 살아가는 사십대 중년의 소시민적 삶을 담고 있다. 밑바닥으로 내몰린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간의 사건’, ‘진화론’, ‘새의 화석’, ‘소리치는 목숨’, ‘코스모스’, ‘먹먹한’, ‘슬픈 탕수육’ 등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안행(雁行)

새들은 죽어 허공이 된다
땅으로 내려온 적 없는 허공은 새들의 내세(來世)다
그러나 죽지 않고 허공에 이르는 길을 새들은 알아서
겨울을 깊이 난다
저자

김주대

경북상주에서태어나어린시절외할머니를어머니로알고자랐다.1985년성균관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입학,최루탄연기속에서시를배웠다.1991년『창작과비평』여름호에시를발표하면서문단에얼굴을내밀었다.2014년부터시를그림으로그리기시작했다.언어로전부를포획할수없는실재는가끔감각적이미지에의해확연해질때가있다는믿음으로지금까지문인화를그리고있다.지은책으로는『꽃이져도오시라』『도화동사십계단』『그리움의넓이』『사랑을기억하는방식』『그리움은언제나광속』『시인의붓』등이있다.

목차

제1부시간의사건
시간의사건
터미널
진화론
행려
지도를찾아서
안행(雁行)
노래되기
화가
태산(泰山)이시다
주체
오프라인
폐가에서
영혼의인간
시간의윤리
최고급스테레오시스템
철근콘크리트벽
쉿,용접공김씨작업중이시다
바람의얼굴
한끼
인내천(人乃天)


제2부마주침
새의화석
소리치는목숨
웃음을끌고가는
영혼의자
먹먹한
휘파람
명태
코스모스
동굴도롱뇽붙이
어머니
출처
풀꽃매장지
반달
슬픈탕수육
노약자석웃음두개
마주침
눈오는저녁의느낌
어디만큼왔을라나
봄날

구름


제3부깊은
매미소리사계
징후
귀로듣는수묵화
고승(高僧)의거처
깊은
냄새
영원한시간
君다이,臣다이,民다이
가차없이아름답다
고요를듣다
배후
부녀
물끄러미
노래가된골목
돌연한빛
오랜동거

라면땅인생
한소식


제4부수축된우주
아버지로이별에와서

잠자리
엄마
아모레화장품을기억하십니까

노숙
양말여섯켤레
호모싸피엔스싸피엔스
한점
누가있다
천장(天葬)
슬픈속도
수축된우주
폐허의노래
김진숙
동종
4월
가족의시작


해설|김동원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눈물냄새로번지는애틋한그리움과위로

1989년민중시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한김주대시인의다섯번째시집그리움의넓이가출간되었다.80년대민중민족문학진영의촉망받는젊은시인이던그는첫시집(도화동사십계단,청사)을발표한뒤로오랫동안침묵하다가2007년꽃이너를지운다(천년의시작)를펴내며시작활동을재개하였다.네번째시집나쁜,사랑을하다(답게2009)이후3년만에펴내는이번시집에서시인은현실에길들여진채살아가는사십대중년의소시민적삶을담백한어조로노래한다.평범한일상언어로삶의사소한기척들을포착해내는자전적시편들이가슴저린감동을불러일으킨다.


우주는지구를저질러놓고/용암같은점액질의시간을흘려보냈다/육신을만난시간이뼛속에나이테를새겨/뜨겁고촘촘히과거를감아놓았다/나는사건이다/깊은숲속시간의무거운흐름위로/어느날튀어오른물고기처럼/세상에왔다/(…)/생은시간을역류하여솟아오른사건이다/아들이나의해결할수없는벅찬사건이듯이/모든생은스스로를수습한다(시간의사건부분)

현실의구체적인풍경속에서삶의진정성과아름다운가치를찾아내는김주대시의밑바탕에는인간존재에대한애틋한사랑이깔려있다.시인은무엇보다도밑바닥으로내몰린소외된사람들의삶을연민의시선으로바라본다.시인은“사는것이얼마나힘들었으면/목매달아죽은시신의얼굴이편안”(김진숙)한자본주의사회의그늘속에서“노동자의헐벗은이마에붉은띠가묶일때/불현듯현기증에시달리”(주체)기도한다.


공원나무탁자위에버려진캔을/사내의팔꿈치가/슬며시,넘어지지않게밀어본다/묵직하다/옆사람을힐끗쳐다본사내는/낚아채듯캔을들어/먹이문길고양이처럼재빨리자리를옮긴다/나무그늘아래서목을뒤로활짝젖히고/시커멓게열린목구멍안으로캔을기울이자/남은음료가질금질금쏟아진다/울대뼈가몇번꿈틀거린후/길게내민허연혓바닥위로/캔속의마지막한방울이똑,떨어진다(노숙부분)

시장입구에버려진사과를“시커먼운동화발로슬쩍슬쩍”굴려“구석으로몰고”(노숙)가한끼를때우는노숙자와같은궁핍한삶은시인에게“상처난마음의천장에종유석처럼매달린울음”(동굴도롱뇽붙이)으로다가온다.“시급오천원짜리”아르바이트를하는딸과“아픈막내”를생각하면,“살기싫어도살아있어야”하는“애비”로서“눈두덩에눈물같은걸올려놓지는말아야한다”고다짐하지만시인의“몸에는어느새눈물냄새가번진다”(?먹먹한?).그러나“눈에서나는게아니라/심장이나발바닥이런데서흐”(노래되기)르는그눈물은‘먹먹한삶’을견뎌내는힘이기도하다.


아르바이트끝나고새벽에들어오는아이의/추운발소리를듣는애비는잠결에/귀로운다(부녀전문)

시인은남루한삶을돌아보며“목숨의어두운밑바닥같은걸처음으로보았던”(어디만큼왔을라나)어린시절을떠올린다.특히어머니의결핍을앓으며성장했던시인은“흰머리이고저만큼가신당신을/서둘러따라가동무해주지못”(엄마)한비애감에젖기도한다.


외할머니밑에서자란나에게어머니는늘잠깐다녀가는아모레화장품냄새였다.누나의동동구루무를하얀종이위에쏟아놓고냄새를맡으며어머니를생각하다가죽도록맞은적도있었다.하굣길고개를들면먼산능선위로어머니의얼굴이낮달처럼솟아오르곤했다.(…)어머니의아모레화장품냄새가지겨울무렵무작정상경하여재수생이되었다.그런데객지의어느쓸쓸한날서울역역사지붕위로어머니의얼굴이달처럼솟아오르는게다시보였다.어머니는어머니,어머니는언제나어머니(어머니부분)

가난한집안의아들로자라가난한아버지가되어“생의또다른고공에매달려”(?김진숙?)살아가는시인은자본주의세상앞에서삶의비애를느낀다.시인은빈곤한삶의존재가치를새롭게세우고자과거로거슬러올라간다.그곳에서마침내‘하늘’을‘나의시작’으로삼기에이른다.“아무도가지않은길을가는공포가/생을전향시”(진화론)키리라는믿음을간직하며시인은생의희망을꿈꾼다.그러한시인의바람이있는한이시집이“어떤가혹한고비에서도평범한나날의언어,나날의삶에대해선한믿음을잃지않”고삶의참다운가치를찾아“고달픈날들을건너고있는이땅의중년들”에게“귀한위로”(김사인,추천사)가될수있으리라믿는다.


아버지의정자는갈기를달고사자처럼달렸다/나의시작은/소용돌이치는어머니의열기속으로/아버지가맹렬히뛰어들때부터이다/아니,나의시작은/아버지가어머니의벌거벗은곡선위에서/꼬리뼈를흔들며정자를태동시키던때부터이다/아니,정자이전수유기의아버지가/할머니유두에입을대던그따스했던처음부터/할머니의젖과,젖을돌게한펄펄끓던미역국부터/미역부터가나의시작이다/아니,더거슬러올라가나는물을잡고울던해저/미역을밀어올린바다이기도하지만/천둥과시퍼런폭우로/일렁이는바다를쏟아낸하늘이나의진짜시작이다(인내천(人乃天)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