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 가까운 말 - 창비시선 386

심장에 가까운 말 - 창비시선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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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소란 시인의 첫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등단 6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시인은 생의 어두운 이면을 낱낱이 포착해내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도시적 삶의 불우한 일상을 감성적인 언어로 면밀히 그려낸다. 체념과 절망뿐인 비참한 현실 속에서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슬픔을 연민의 손길로 다독이며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곱씹는 내밀한 성찰과 사유의 깊이가 돋보이는 시편들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저자

박소란

1981년서울출생.2009년[문학수첩]으로등단했다.시집『심장에가까운말』,『한사람의닫힌문』,『있다』등이있다.신동엽문학상,노작문학상을수상하였다.

목차

제1부
노래는아무것도
너무깊은오해
나의고양이가되어주렴

없다
참따뜻한주머니
배가고파요
베개
병을얻다

그녀가참외를깎을때
돌멩이를사랑한다는것
노인
만두를좋아하지?않는사람처럼
제2부
다음에
설탕
소녀
메리,메리
울음의방
체념을위하여
주소
기침을하며떠도는귀신이
경에게
통속적하루
아현동블루스
약국은벌써문을닫았고
화장실이없는집
칼이야기
망명
미자
나프탈렌
김밥천국
안부
정전
수상한인사
제3부
내연
단추를잃어버리고
겨울에태어났어요
머플러
눈곱
눈꺼풀
용산을추억함
아아,
커튼
비누

우연의완성
무명배우의죽음에부쳐
푸른밤
향기로운밥
어떤여정
지익
해설|남승원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생의어두운이면에서찾은언어로구원의노래를부르다

2009년「문학수첩」으로등단한이후독특한발성과어법으로개성적이고활달한시세계를펼쳐온박소란시인의첫시집『심장에가까운말』이출간되었다.등단6년만에펴내는이시집에서시인은생의어두운이면을낱낱이포착해내는섬세한관찰력으로도시적삶의불우한일상을감성적인언어로면밀히그려낸다.체념과절망뿐인비참한현실속에서고통의삶을살아가는존재들의슬픔을연민의손길로다독이며삶의진정한가치와의미를곱씹는내밀한성찰과사유의깊이가...
생의어두운이면에서찾은언어로구원의노래를부르다

2009년「문학수첩」으로등단한이후독특한발성과어법으로개성적이고활달한시세계를펼쳐온박소란시인의첫시집『심장에가까운말』이출간되었다.등단6년만에펴내는이시집에서시인은생의어두운이면을낱낱이포착해내는섬세한관찰력으로도시적삶의불우한일상을감성적인언어로면밀히그려낸다.체념과절망뿐인비참한현실속에서고통의삶을살아가는존재들의슬픔을연민의손길로다독이며삶의진정한가치와의미를곱씹는내밀한성찰과사유의깊이가돋보이는시편들이잔잔한울림으로다가온다.현실의모순을끄집어내고동시대를살아가는타자의삶과시대의아픔까지껴안으면서“맨살로죄와병을감내하며자신만의언어로시를써”(김성규,추천사)온시인의고뇌또한깊은공감을불러일으킨다.

폐품리어카위바랜통기타한채실려간다//한시절누군가의노래/심장가장가까운곳을맴돌던말//아랑곳없이바퀴는구른다/길이덜컹일때마다악보에없는엇박의탄식이새어나온다//노래는구원이아니어라/영원이아니어라/노래는노래가아니고아무것도아니어라//다만흉터였으니/어설픈흉터를후벼대는무딘칼이었으니//칼이실려간다버려진것들의리어카위에//나를실어보낸당신이오래오래아프면좋겠다(「노래는아무것도」전문)

결고운서정적어조로신산한삶의그늘과“도시의절망적풍경”(남승원,해설)을그려내는박소란의시에는서늘한아픔과“물컹한슬픔”(「베개」)이배어난다.시인은삭막한도시의한귀퉁이에서“꼬리가잘린채버려”(「나의고양이가되어주렴」)지거나“바닥을향해곤두박질치”(「용산을추억함」)면서가뭇없이스러져가는존재들에게애틋한눈길을건넨다.아무도눈여겨보지않는세상의통점을짚어내며공동체적삶에대한오롯한믿음을바탕으로사회적문제를에두르지않고예민하게파고드는시인은“정처없이한데를서성”(「미자」)이는소외된존재들의절망적인상황을‘지금-여기’끊임없이되살리면서“집집마다의비극을모조리깨워”(「나의고양이가되어주렴」)고통의현장으로재현해낸다.

폐수종의애인을사랑했네중대병원중환자실에서용산우체국까지대설주의보가발효된한강로거리를쿨럭이며걸었네재개발지구언저리함부로사생된먼지처럼풀풀한걸음을옮길때마다도시의몸구석구석에선고질의수포음이새어나왔네엑스선이짙게드리워진마천루사이위태롭게선담벼락들은저마다붉은객담을쏟아내고그아래무거운날개를들썩이던익명의새들은남김없이철거되었네(…)상복을입은먹구름떼가순식간에몰려들었네깨진유리창너머파편같은눈발이점점이가슴팍에박혀왔네한숨으로피워낸시간앞에제를올리듯길고긴편지를썼으나아무도돌아올줄모르고봄은답장이없었네애인을,잃어버린애인만을나는사랑했네(「용산을추억함」부분)

애절한삶의자리로시인이호명하는인물들은한결같이비통한모습이다.그들은“스스로를절단”(「칼이야기」)내거나“슬픔을입에문”(「나의고양이가되어주렴」)채“불안이눅눅히번”지는“지상의외딴그늘에숨어”(「나프탈렌」)도시의허름한바닥에서쓸쓸히살아간다.“걷고또걸어마침내걸어도걸어도제자리”(「무명배우의죽음에부쳐」)일뿐인처연한삶이기는시인도마찬가지다.“내것이아닌이름으로자꾸만머뭇대며살아있는일에대하여”(「망명」)회의도하고,“슬픔같은건아무도알아채지못하도록/멋쩍은웃음만지어보이”(「감」)던아픔과“아릿한곰팡내가명치를꾹꾹누르는”외로운“울음의방”에서“말수가적어겉돌기만하던”“추진스무살”(「울음의방」)의상처가아릿한기억이있다.

부랑의어둠이비틀대고있네텅빈아현동/넋나간꼴로군데군데임대딱지를내붙인웨딩타운을지날때/쇼윈도우에걸린웨딩드레스한벌훔쳐입고싶네/천장지구오천련처럼90년대식비련의신부가되어/굴레방다리저늙고어진/외팔이목수에게시집이라도간다면소꿉질하듯살림이라도차린다면/그럴수있다면행복하겠네/(…)/아아그러나나는비련의신부,비련의/아현동을결코시쓸수없지외팔의뒤틀린손가락이/식은밥상하나온전히차려낼수없는것처럼/이동네를사는누구라도끝내행복할수는없겠네/영혼결혼식같은쓸쓸해서더찬란한웨딩드레스한벌/쇼윈도우에우두커니걸려있고그흘러간시간의언저리/도시를떠나지못한혼령처럼서있네나는(「아현동블루스」부분)

오랜만에만나는우리시의젊고아름다운서정

이렇듯“깊은절망과한숨”뿐인막막하고“시린어둠”(「어떤여정」)속에서시인은“누군가를향한기다림이나를살게할거라굳게믿”으며“아무사이비종교에라도매달려보고싶었던/냉담의날들”(「만두를좋아하지않는사람처럼」)을오롯이견뎌왔다.“삼키고또삼켜도질긴허기는가시질않”(「배가고파요」)고“시린이마를짚어주는”(「약국은벌써문을닫았고」)따듯한손길하나없이“캄캄했던날들”(「병을얻다」),시인은“체념만이오랜밥이고약이었음을”담담하게고백하면서“굳센체념”(「체념을위하여」)이오히려고통스럽고절망적인삶을지탱해온버팀목이었다는아픈진실을드러낸다.
희망과야합한적없었다결단코/늘한발앞서오던체념만이오랜밥이고약이었음을//고백한다밤낮부레끓는숨과다투던폐암말기의어머니/악착같이달아펄떡이던몸뚱이를/일찍이반지하시린윗목에안장한일에대하여/마지막구원의싸이렌마저함부로외면할수있었던조숙한나약함에대하여/(…)/오로지체념,체념만을택하였다체념은나의신앙/그앞에무릎꿇고자주빌었으며순실히경배하였다/체념하며산것이아니라체념하기위해살았다(「체념을위하여」부분)

그렇다면희망은어디에도없는것일까.비록삶의고통이“여지없이마음을찢고피를쏟게한대도”(「병을얻다」)시인은“그아픔의눈물이삶의마른화분을적시기도한다”는것을깨달으며이제는“누구든사랑할수있다”고,“더이상/사랑하지않을도리가”(「돌멩이를사랑한다는것」)없다고노래한다.그러면서짐짓“노래는구원이아니어라/영원이아니어라/노래는노래가아니고아무것도아니어라”고말하지만,애처로운삶의고단한어깨를가만가만토닥이면서그토록깊은슬픔과고통을거름으로삼아“심장가장가까운곳을맴”(「노래는아무것도」)도는곡진한노래야말로“부랑의어둠이비틀대”(「아현동블루스」)는이누추한세상의골목을밝히는희망의불씨인것이다.

내아버지가나고자란마을에선저녁을지익이라부르지/야야지익묵구로인자고마들온나,할머니정지앞에서손짓하면/순하게누운하늘과땅그맞닿은속살어디쯤에선가지익?지익?/땅거미가낡은신발뒤축을끌며오는소리/(…)/낯모를슬픔이마음의여린뺨들을할퀴는소리/할퀴인자리마다여문어둠이촘촘히수놓이는소리/야야고마해라지익다됐다,하면/마루위한상가득내려앉은달큰한지익은그만/밥이되고약이되었네눈시울을훔치며달려와/말없이숟가락을든젖은손등위한줄기우직한심줄에도/막새살이오른듯뜨거운빛이돌았네(「지익」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