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문태준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문태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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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문태준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삶과 죽음에 대한 웅숭깊은 성찰이 깃든 진솔한 언어로 세상과 사물에게 건네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긴 여운을 남기며 가슴을 울린다. 2014년 서정시학작품상 수상작 「봄바람이 불어서」를 비롯하여 모두 61편의 작품이 실린 이 시집은 비교적 짧은 시편들로 이뤄져 두께는 얇으나 감동은 더할 나위 없이 크고 넓고 깊다.
저자

문태준

저자:문태준
1970년경북김천에서태어나고려대국문과와동국대대학원국문과를졸업했다.1994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시「처서(處暑)」외9편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수런거리는뒤란』『맨발』『가재미』『그늘의발달』『먼곳』,산문집『느림보마음』,시해설집『어느가슴엔들시가꽃피지않으랴2』『우리가슴에꽃핀세계의명시1』『가만히사랑을바라보다』등이있다.노작문학상,유심작품상,미당문학상,소월시문학상,서정시학작품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몸을굽히지않는다면/유자/아침을기리는노래/묶음/봄바람이불어서/귀휴/어느겨울오전에/
누구에게라도미리묻지않는다면/정류장에서/두소년/12월의일/우리들의마지막얼굴/두터운스웨터/
조춘/망실/시월/외길

제2부
나는내가좋다/장춘/나는나비를다라하네/화초들을위탁함/우리는가볍게웃었다/먼바다를바라면/
망망대해/풍향계/이시간에이햇살은/여시/뻐꾸기소리는산신각처럼앉아서/소낙비/가을날/까마귀/
외딴집/겨울달

제3부
나무와새장/마르고있는바지/더미들/어부와바다/모래톱/가을비/호면/대치/맹인/유수/한천/
도화동거리의입구/진료소풍경/춘곡에서

제4부
병원흰외벽아래/동란할머니/종점/겨울숲/내귓가에/호수/밤과호수/마른내/강심/강촌에서/
다시강촌에서/여행자의노래/옛집에서/일원

해설최현식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눈부신봄날,잊지못할문태준의시편들
평화로운공간으로이끄는따스한서정시의감동

우리시단의대표적인서정시인으로손꼽히는문태준시인의여섯번째시집『우리들의마지막얼굴』이출간되었다.불교적사유가도드라진시편들로주목을받았던『먼곳』(창비2012)이후3년만에펴내는이시집에서시인은‘시인의말’에서“대상과세계에게솔직한말을걸고싶었다.둘러대지말고짧게선명하게”라고밝혔듯이“되도록비유를절제하면서세계와대상의움직임을포착하고그것의심심(甚深)한묘사와나열에집중”(최현식,해설)한다.삶과죽음에대한웅숭깊은성찰이깃든진솔한언어로세상과사물에게건네는나지막한목소리가긴여운을남기며가슴을울린다.2014년서정시학작품상수상작「봄바람이불어서」를비롯하여모두61편의작품이실린이시집은비교적짧은시편들로이뤄져두께는얇으나감동은더할나위없이크고넓고깊다.등단이후새시집을낼때마다평단과독자들의열렬한호응을받아왔던바,이시집또한예외는아닐것이다.

백화(百花)가지는날마애불을보고왔습니다마애불은밝은곳과어둔곳의경계가사라졌습니다눈두덩과눈,콧부리와볼,입술과인중,목과턱선의경계가사라졌습니다안면의윤곽이얇은미소처럼넓적하게펴져돌위에흐릿하게남아있을뿐이었습니다기도객들은그마애불에곡식을바치고몇번이고거듭절을올렸습니다집에돌아와깊은밤에홀로누워있을때마애불이떠올랐습니다내이마와눈두덩과양볼과입가에떠올랐습니다내어느반석에마애불이있는지찾았으나찾을수없었습니다온데간데없이다만내위로무엇인가희미하게쓸려흘러가는것이었습니다(「여시(如是)」전문)

문태준의시는따뜻하고편안하다.그의시는세계의대상들을넉넉한마음으로포용하며우리를아늑하고평화로운공간으로이끈다.시인은사물에동화되거나감정을이입하기보다는얼마간의거리를두고서“몸을굽혀균형을맞추”(「몸을굽히지않는다면」)고삶의내밀한풍경을깊이있게바라보면서세상을향해새롭고다양한말문을연다.이골똘한‘응시’의문법을문학평론가최현식은해설에서“여시(如是)의문법”이라이르며“세계-자연-신에대한자아의순간적차연(差延)을전제한‘서로주체’와‘서로타자’의형식”이라고평한다.시쓰기를“삼키지도뱉지도못하는향기이며악취인시간을건축하”(「더미들」)는일로여기는시인은“스스로기뻐하는높이에달린”“한알의/영혼”(「유자」)같은존재로서자연과더불어살아가는청빈한삶을누리고자한다.

돌아와나흘을매어놓고살다//구불구불한산길에게자꾸빠져들다//초승달과새와높게어울리다//소와하루밤새게으르게눕다//닭들에게마당을꾸어쓰다//해질무렵까지말뚝에묶어놓고나를풀밭을염소에게맡기다//울아래분꽃곁에벌을데려오다//엉클어진수풀에서나온뱀을따르며길게슬퍼하다//조용한때에샘이솟는곳에앉아웃다//이들과주민(住民)이되어살다(「귀휴(歸休)」전문)

비록“한덩어리의옹색한세계”(「맹인」)이지만세상을긍정의시선으로관조하는시인은죽음을마주대하는순간에도감정의동요없이소멸의과정을차분하고세밀하게묘사한다.죽음을“평범해지고희미해지”(「우리들의마지막얼굴」)는일이라고무심한듯말하는시인은“무덤위에풀이돋으니죽은사람이살아돌아온것같”(「망실(亡失)」)다는깨달음에이르러서는죽음을삶의원리혹은존재의조건으로받아들인다.이를테면시인은죽음을생의종결로간주하는것이아니라“서럽고섭섭하고기다라니훌쭉한햇살”(「이시간에이햇살은」)이쏟아지는‘지금-여기’에서의삶을더욱경건하게성찰하는자리로삼는다.그리하여죽음은생의활기를불어넣는생명의공간으로새롭게태어난다.

당신은나조차알아보지못하네/요를깔고아주가벼운이불을덮고있네/한층의재가당신의몸을덮은듯하네/눈도입도코도가늘어지고작아지고낮아졌네/당신은아무런표정도겉으로드러내지않네/서리가빛에차차마르듯이숨결이마르고있네/당신은평범해지고희미해지네/나는이세상에서혼자의몸이된당신을보네/오래잊지말자는말은못하겠네/당신의얼굴을마지막으로보네/우리들의마지막얼굴을보네(「우리들의마지막얼굴」전문)

섬세하고감성적인필치로그려낸기쁨과슬픔,희망과절망의‘드로잉’
이번시집에는여러편의연작시가눈길을끈다.특히제3부를이루는‘드로잉’연작은이시집에서두드러지는성과로주목할만하다.시인은기쁨과슬픔,희망과절망이뒤범벅된눅눅한삶의핍진한풍경을감성적이고섬세한필치로그려낸다.“왜소한그늘”(「12월의일」)과“축축한음지”에서“스스로말라가는,아물어가는환부”(「마르고있는바지」)를어루만지고,제모습을잃어가는“아픈혼”(「소낙비」)들의궁핍한초상을따뜻한연민과동정의눈길로감싸안으며시인은현실내부로깊숙이파고들어존재의의미와삶의비의를찾는다.시인은세계와의교감을통해“새장의빗장을풀고청공으로나아가”(「나무와새장」)고자한다.

움푹꺼진눈(眼)길게늘어서있다아랫도리는목발신세를지고있다납작하게누워도있다들것이들어오고있다//병이몰아쳐가쁘게더욱가쁘게그대를부를때까지//앙상한나목(裸木)이될때까지//맥이다빠져청진할수없을때까지//그대의영혼이움직이지않을때까지//수의(壽衣)가얇디얇은그대를말없이껴입을때까지(「진료소풍경」전문)

그런가하면사물과사물,생명과생명사이의관계를눈여겨보기도한다.시인은‘여시(如是)의세계’에서는세상만물이가치의차이로함부로묶일수없는자율적세계임을통찰하고,사물과사물을삶과죽음,밝음과어둠,실체와허상등과같은이분법으로구분짓지않고유연하게생동하는하나의결합체로인식한다.‘사이’는있으되이쪽과저쪽에있는“백중한둘을갈라놓지는않는”(「대치(對置)」)다는깨달음속에서시인은서로가서로를“충분히이해”(「강촌에서」)하고서로에게“강폭만큼여지가남아있”(「다시강촌에서」)는공감의세계,‘대치’함으로써‘사이’를살아가는화해와공존이어우러지는크고둥근세상의아름다움을소망한다.

날고있는잠자리와그잠자리의그림자사이대기가움직인다이리저리로날고있는잠자리와막굴러온돌을,앉은풀밭을,갈림길을,굼틀굼틀하는벌레를이리저리로울퉁불퉁넘어가고있는그잠자리의그림자사이대기가따라움직인다대기는둘사이에끼여있지만백중한둘을갈라놓지는않는다(「대치(對置)전문)

“먼훗날기쁨이될”순정하고아름다운시편들
시인은서정시의정통성을오롯이이어받으면서도현대적인세련된언어감각과독특한시법으로서정시의모범을보여주면서폭넓은공감대를형성해왔다.“나의폐는폐옥이지만미미하게새날의냄새가있”(「외딴집」)다는삶의감각으로시인은“조용한때에샘이솟는곳에앉아”(「귀휴(歸休)」)“이조용한칸에”맑고투명한언어와“잘생략된문장”(「어느겨울오전에」)을갈고다듬어“꽝꽝얼어붙은세계”를밝히는“한동이의빛”(「겨울달」)과같은시를쓴다.“나에게는많은재산이있다네”(「여행자의노래」)라고노래하거나“슬픔을싹틔울줄아는내가좋다”(「나는내가좋다」)고말하는순정한마음이깃든이아름다운시편들은“먼훗날기쁨이될기쁨의시”(소설가김연수,추천사)로오래오래남을것이다.

누운소와깡마른개와구걸하는아이와부서진집과쓰레기더미를뒤지는돼지와낡은헝겊같은그늘과릭샤와운구행렬과타는장작불과탁한강물과머리감는여인과과일노점상과뱀과오물과신(神)과더불어나도구름많은세계의일원(一員)(「일원」전문)

추천사

내친구태준이라면늘나보다큰사람으로느껴졌다.몸도그렇거니와마음도.하지만우리가처음친구로만나던중학시절에는날렵하기가태준이나나나비슷했다.어느틈엔가태준이는저혼자서커져있었던것이다.물론나도약간은.우리가어른이되어저혼자서커지고무거워지던시절에,우리는단순한기쁨을몰랐다.적어도나는.“가늘어지고작아지고낮아”지는일,“평범해지고희미해지”고“혼자의몸”(「우리들의마지막얼굴」)이되는일.거기에기쁨이있다는사실을.마지막얼굴쯤을하고있을때는그사실을진심으로좋아할까?쉽진않겠지.처음은모르겠지만,중간이든마지막이든,우리의얼굴은무표정하기일쑤니까.그렇다면,이봐,여기시가있어.들어봐,여기시가있어.“나에게는많은재산이있다네”(「여행자의노래」)라고시작하는시,“나는내가좋다”(「나는내가좋다」)고선언하는시.어때?좋아?그러게.좋네.좋아.계속해봐.그렇게먼훗날기쁨이될기쁨의시가여기에있다.
__김연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