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 (이병일 시집)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 (이병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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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흔 아홉개의 빛을 가진』에는 호랑이 당나귀 기린 낙타 가물치, 목련나무 조각자나무 자작나무 삘기 백양나무 등 수많은 동물과 식물이 등장한다. 시인은 동식물적 상상력과 탁월한 관찰력으로 그들에게서 “둥그스름하게 사는”(「삘기 무덤 속으로」) 생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되찾고자 하는 소망과 자본 논리에 속박된 도시적 삶과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나아간다.
저자

이병일

저자이병일李炳一은1981년전북진안에서태어났다.중앙대학교대학원문예창작학과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2007년문학수첩신인상에시가,2010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희곡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옆구리의발견』이있다.대산창작기금과오늘의젊은예술가상,수주문학상을받았다.

목차

물소리는도반(刀瘢)을
별자리
작은신앙
호랑이
나의에덴
수형
달구렁이와꽃달
밤의안경
녹명(鹿鳴)
기린의목은갈데없이
투견의그것처럼
결백의시
절벽의시
검은구두의시
꽃잎의시제
집으로가는나의그림자
진흙여관
퍼스트펭귄
물속파랑의편지
백상아리
풀피리
물사슴의계절
두부의맛
석청따는사람
까마귀귀신
수직성
불면과불멸에관한명상
불의소설
저승사자와봄눈과구제역
피순대에관한기록
은유의방
기린의시
가물치의오월
사막은나의물병자리야
불개와화염
설국(雪國)이오월을
멧돼지의철학
삘기무덤속으로
맑은날
눈표범연구기관의보고서
사각형의수족관에서
꽃피는능구렁이
연어
마야꼽스끼의방
골리앗크레인의도시
산양의유산
야생동물보호구역
책의헛것들이나의명상을
정원사일기
무릎이빚은둥근각
어금니의역사
무지개현기증
메두사의눈부신저녁을목격함
오후두시의파밭
목청의시
협동의시
나는믿는다
흰빛으로들어가는입구
집중호우
빗살무늬토기
저수지에갈이유가없다
화창한기적
절통침
꽃태반과명줄
목비
어머니의작은유언
토끼와여우와달과백양나무숲의유대
시인

해설|류신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눈부신생명의경이롭고흥미로운세계로이끄는시편들

기발하고독창적인발상과활력이넘치는생명감각이돌올한개성적인시세계를펼쳐온이병일시인의신작시집『아흔아홉개의빛을가진』이출간되었다.창비시선399번째,시인의두번째시집이다.자연속에서생명의촉수를발견하는심미적이고감각적인상상력의세계로주목받은첫시집『옆구리의발견』(창비2012)이후4년만에펴내는이번시집에서시인은“신화적인명상의세계”를넘나들며“과거를발굴하는신화적상상력”과“설화나전통성이현대적정서와결합된시인만의독특한자연관”(박형준,추천사)이도드라지는존재론적사유의세계를펼친다.대상을새롭게바라보는예민한시선과사물의특성을끈질기게파고드는정밀한묘사,섬세한감수성이돋보이는세련된시편들이감동의크기만큼눈부시다.

아무도닿은적이없어늘발가벗고있는깊은산,벌거벗은아흔아홉개의계곡을가진깊은산에홀리고싶어아흔아홉개의빛을가진물소리를붙잡고싶어//산부전나비쫓다가무심하게건드린벌집,나는또캄캄하게절벽으로밀리고급기야날숨희어질때까지물속으로들어가나오지못하고,바위그늘밑어스름을좋아하는모래무지가되었다//도깨비불과접신하기좋은나의에덴!깊은산으로가자,미친것들푸르러지고,죽은것들되살아나는깊은산으로가자,산빛에젖어갈수록나는감감해지고그림자는쓸데없이또렷해진다(「나의에덴」전문)

도시공간의자연을주요시적대상으로삼는이병일의시는자연과교감하는충만한생명력으로빛난다.시인은자본화의물살에휩쓸려뒤틀린물질문명속의자연에새로운생명을불어넣어“가장더럽고추한곳”(「진흙여관」)에서반짝이는경이롭고흥미로운세계로우리를안내한다.호랑이가“꽃나무를찢고나”와봄꽃으로변신하고(「호랑이」),“쓸데없는곡선의힘으로뭉쳐진”기린의목이“세상모든것을감아올”리는사다리가되고(「기린의목은갈데없이」),펭귄이“흰색과검은색을키우는피아노나무”가되어“음표보다눈부시고노래보다아름다운바다로뛰어”드는(「퍼스트펭귄」)신비로운이세계는만물이하나가되어어우러지는화해와상생의공간으로거듭난다.

저물무렵,우리안의투견//느물느물더럽게죽어간다//똥이가물가물삭듯이그러나//피비린내아직살아있지만//눈가의똥파리들이//동공풀린눈동자에박힌저승을빨아먹는지//작은눈을요리조리굴린다//불한당의주린입은//죽어도매초롬하게못죽는다//투견의그것처럼더위도힘빠질무렵,//질컥하고끈끈한피오줌이//칸나의꽃술로옮겨붙어가고있다//칸나의환함으로거듭태어나고있다//칸나의저녁이//개밥그릇테두리이빨자국을핥을때//그반짝임의깊이로투견의나이를세어본다(「투견의그것처럼」전문)

우리안에서죽어가는투견의비루한죽음이“칸나의환함으로거듭태어나”는이세계의한편에는이웃의죽음앞에서“피순대를만들고,한입씩물고너덜너덜침흘리며목젖크게웃어보는”(「피순대에관한기록」)상가(喪家)의저녁이있다.그런가하면“봄빛이푸르러질때까지환”(「작은신앙」)한가난이순박한고결함으로빛나는삶과“캄캄한무르팍펴고/앞산에나가취뜯고/들깨모종을”(「어머니의작은유언」)하며순명의삶을견뎌온어머니의애틋한마음이오롯이빛나는작은신앙이있다.이렇듯삶의가장일상적인모습에서움트는‘범속한트임’을포착할때이병일의시는명징한시적사유와정밀한완성도로다시금빛난다.

안되는것들이많고잠만달아나는산수(傘壽)무렵,//위중한일이없으니,북풍을뚫고자란목련나무를자주바라봤다/두고두고자랑할일없을까해서자식을아홉이나두었다고했다//비는빗소리로잠깐씩그늘을들추고/눈발은눈발대로처마에고드름을매달고/가난은봄빛이푸르러질때까지환했다//어머니는산봉우리와내[川]와해와달과소나무밑에서/산밭을개척하고허리가허옇게튼지도모르고무씨를뿌렸다고했다/또한자식들인중길어지라고/첫밤의요와이불을장롱속에고이개켜두었다고했다(「작은신앙」전문)

이시집에는호랑이당나귀기린낙타가물치,목련나무조각자나무자작나무삘기백양나무등수많은동물과식물이등장한다.시인은동식물적상상력과탁월한관찰력으로그들에게서“둥그스름하게사는”(「삘기무덤속으로」)생의경이로움을발견하면서궁극적으로는인간의순수한본성을되찾고자하는소망과자본논리에속박된도시적삶과도시문명에대한비판의식으로나아간다.이러한인식은다시시인자신의시쓰기에대한성찰로까지이어지는바,“까마득한절벽을한껏높이고맨발로건너”(「절벽의시」)가는사람,“눈이작아서늘실물보다큰생각에사로잡히는”(「백상아리」)백상아리,“붉은목젖으로녹명을켜는”(「녹명」)마랄사슴등은바로시인에대한은유로읽힌다.

저흰빛의아름다움에눈멀지않고입술이터지지않는//나는눈밭을무릎으로밟고무릎으로넘어서는마랄사슴이야//결코죽지않는나는발목이닿지않는눈밭을생각하는중이야//(…)//바닥을친목마름이나를산모롱이쪽으로몰아나갈때//홀연히드러난풀밭은한번쯤와봤던극지(劇地)였던거야//나는그곳에서까마득한발자국의거리만큼회복하고싶어//무한한초록빛에젖은나는봄눈내리는저녁을흘려보내듯이//봄눈바깥으로흘러넘치는붉은목젖으로녹명을켜는거야//죽을힘을다해입술을달싹거리며오줌을태우는건그다음의일이야//봄눈이빗줄기로톡톡바뀌면서뿔이자라는건그다음의일이야(「녹명(鹿鳴)」부분)

물질보다는정신의풍요를추구하는시인은강파른현대사회에서“공복을달래지못하고,두서없이난폭해지”(「백상아리」)면서도세상의모든것이빛나듯우리의삶또한“살아있는모든것을대책없이사랑”하는마음과“신생으로흘러나오는평화에대한믿음”(「물속파랑의편지」)으로아름다워지리라고믿는다.그견실한믿음으로시인은“불협화음도없이흘러나오는음악”과“흙냄새가있는극지”(「퍼스트펭귄」)곧생명의세계와문명의회복을꿈꾸며,삶의체험에서나오는생기로운언어와“감각의촉”을벼려상상력의울창한숲속에서“흙이가진빛”(시인의말)으로반짝이는생명의시를쓰는것이리라.

유달리어두운뼈만먹는것들이있네/힘줄도껍질도먹지않는것들이있네//부패의절취선이되는구더기솟구칠때/저골치아픈것들에게도/흐트러진질서와바람꺾는깃털이있네//너무높이날거나절벽에바투붙어살지만/제몸보다큰뼈를/돌산에떨어뜨려깨부숴먹는저수염수리,/뼈와뼛조각이목구멍을쑤시고저밀때/수염수리날갯죽지와발톱이도드라지네/절벽이란미지를너무쉽게뚫고지나가네//그러나저수염수리는골수만쏙쏙빼먹네/부리끝허공엔피냄새휘휘반짝거리네/횟배도없이홀로텅빈저달마저찢고있네(「시인」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