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이근화 시집)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이근화 시집)

$8.00
Description
2004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온 뒤 독특한 발상과 낯선 화법으로 개성적인 시 세계를 펼쳐온 이근화 시인의 네번째 시집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4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감정이 절제된 차분하고 담백한 어조로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섬세한 관찰력과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낸다.
저자

이근화

저자이근화李謹華는1976년서울에서태어났다.2004년『현대문학』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칸트의동물원』『우리들의진화』『차가운잠』등이있다.김준성문학상,현대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산유화
택시는의외로빠르지않다
코맥스200
내가무엇을쓴다해도
왜당신이가져갔습니까
당신이살아있다는것
유통기한
블루베리
요양원
대화
외로운조지
태극당성업중
다시사랑
세번째여서아름다운것
트렁크
그림자
스파이
비의기록
집은젖지않았네
집으로가는길
미믹버스
가짜논란
네덜란드인과결혼하기
두시
내마음은피바다를건넌다
나의소원
미역국에뜬노란기름
도서관에갔어요
…왔어요
사진속에딸기잼한병
연못속에없는것
나는비자연
오르페
작은불빛에도
삶이모자라서
3
여주
뜻밖에도
햇살에꽂힌듯허공에서떨고있는잠자리와나의불편한관계
모란장
놀이동산에없는것
대파에대한나의이해
한쪽눈을지그시감고
바나나전선
탄것
내죄가나를먹네
두부처럼
이집의주인은
좋은것들
중랑에는뭐가있을까
기찻길옆마을에서
눈사람
모과
새의가슴
괴물은얼굴에발이달렸네
졸업식
나의친구

시인의말
해설장철환

출판사 서평

“나는내옆의사람을끝까지사랑하는사람이다”
일상의파문에서‘미지의말들’을포착하는비명과침묵


내가네미래의책을사랑할게/아직떠오르지않은무지개를/거기서뛰놀고있는너의흰발을/너는숨쉬지않는다//나는태어나지도않았다/그런데우리는열심히사랑하고있다/땀을뻘뻘흘리며//미래의씨앗들을뱉고있다/달콤할까커다랄까/약속했어정말이지//이제너의손가락이만들어질차례/끝까지네가씌어질차례/단단해진다/봉긋해진다//우리가함께태어난다/한몸으로/아름답지않지만/동시에늙어가지만(「세번째여서아름다운것」전문)

2004년『현대문학』을통해시단에나온뒤“시언어의혁명적인가능성”(이광호)을조용히밀고나가며독특한발상과낯선화법으로개성적인시세계를펼쳐온이근화시인의네번째시집『내가무엇을쓴다해도』가출간되었다.『차가운잠』(문학과지성사2012)이후4년만에새롭게선보이는이번시집에서시인은감정이절제된차분하고담백한어조로일상의소소한풍경을섬세한관찰력과감각적인언어로그려낸다.욕망과갈등이들끓는고단한일상에서마주칠수밖에없는존재의부조리함과삶의본질적인문제를냉철하게응시하면서“무감각하기만한일상의시간”과“나날의삶이기실얼마나메마르고외롭고위태로운것인가를알려주는비명이자침묵”(이영광,추천사)의목소리가깊은여운을남기며잔잔한공감을불러일으킨다.

이근화의시에는“사람의절박한마음이있다”

오늘밤한권의책이나를낳았다/피부와머리카락이없고/입술과성기가없는어여쁜사람/오늘밤내가태어나고나는/한권의책을네옆구리에서다시찾아냈다/여러개의서랍속에서/모두들태어나고싶은데//그게나를부르는소리라니/안아줄팔도없이/달려갈발도없이/네가나를부른다/아무냄새가없는꿈속에서/나는괴로워한다/나의탄생을/한권의책을//그건내가너를만나는동안만들어낸/길쭉한귀동그란코벌어진입술/애써얼굴을지우며/한권의책을가만히내려놓았다/그게너일까/한권의책속에서/정말그렇게살려고내가태어났다//네가영원히죽는다해도/내가무엇을쓴다해도(「내가무엇을쓴다해도」전문)

이근화의시는한눈에가늠하기가어렵다.일상의사소한사건들을“그만한이유가있”고“그도그럴것이다”(「택시는의외로빠르지않다」)라는짐짓무심한표정의일상적어법으로이야기하지만우리는“도달할곳이없는세계”(「네덜란드인과결혼하기」)와사물에대한시인의세심한사유를엿볼수있다.시인은“그냥그럴것”(「집으로가는길」)인예사로운풍경들속에서‘정신의거처’로서의시를찾는다.“우스운과거와무시못할가족력”(「택시는의외로빠르지않다」)이있고“적막과허무”뿐인“정적과암흑의놀이터”(「코맥스200」)인우리의인생이결국은“불가능한꽃/불가해한꽃”(「산유화」)으로피어나는한편의시라는깨달음에이르며삶의진실을향해다가서는것이다.

나는비자연/여기저기공기를섞어놓는다/손에묻은얼굴은지워지지않는다/물과흰빵을뜯어먹고/아랫배에조금씩나를버린다/나는비자연/깡통을걷어찬다/고인물이사방에퍼뜨린욕설만큼이나/입김이뜨겁다/나를이곳에내려놓고가는건/중대한오류/원래있었던곳에서내발걸음이닿는곳까지/개그가넘친다/당신들이차례대로쓰러져도/용서해주지않겠다/나는비자연/소유권을주장할수없다/빗줄기가우산을통과한다/엉망으로튀어서/나는다시살아볼생각이다(「나는비자연」전문)

시인에게일상은“영원히죽지못하는눈빛이떠”도는미지의세계이며,시인은“네가나의절벽이되는삶”과“재가너의향기가되는죽음위에”(「눈사람」)절박한마음으로서있다.공감과소통은단절되고곳곳에서“지옥의음악소리”가“부글부글흘러나오는”이공포의세계에서더이상“슬픔은들리지않”고“고독은냄새맡을수없”(「가짜논란」)으며고통은흔적도없다.하지만시인은“길위에더럽게버려진”채“오늘도살아야”(「요양원」)한다.“길거리에마구내뱉어진”그가돌아갈집이라고는비록“헛된망상처럼높고반듯하고분명”(「내죄가나를먹네」)한신기루에지나지않지만,“침묵과울분속에서”마치“세상을다아는눈빛”(「새의가슴」)을번뜩이면서말이다.

창문이조금열려있었고/그사이로낯선손을들이민사람이있었다/집은거부를모른다/나와너와우리가그집에기대어//세상에서가장웃긴일이일어났지만/아무도웃지않았다/발소리가푹푹꺼지고/집은사라질줄모르고//(…)//조금떠있고/늘가라앉아있는/헤매고방황하는집/발이쉬지못하는집//너의집은어디니/누군가진지하게물었다/정확히그것을모르지만/나는밤마다발이닳도록/그곳을찾아가요//큰입을벌리고나를삼키고/나는즐겁게죽어간다(「집은젖지않았네」부분)

침묵의어둠속으로기울어가는세계에대한의심과불안속에서시인은맹목적으로이어지는삶을살아간다.그러나“날마다죽는연습”(「코맥스200」)을하는비참한고통속에서“발을씻듯허무를견디고/계단을오르듯죽음을비웃”으며살아가지만시인은“내앞의사람을사랑하는사람이”고“내옆의사람을끝까지사랑하는사람”(「대화」)이다.시인은어느날“검은비닐봉지가아름답게만보”이다가문득“구겨진비닐봉지앞에서/미안한마음이든다”(「유통기한」)고고백한다.시인은이제“더많이꿈꾸고사랑하고춤을추”면서“무너진꿈”(「왜당신이가져갔습니까」)을일으켜세우고,“내가모른척방치한것들”(「내죄가나를먹네」)에대한처참한마음을뼈저리게느끼며‘나’의삶에서‘우리’-공동체의삶의영역으로시야를넓혀간다.

그래그말이야/당신이살아있다는것/그래서그걸축복하고/당신의살아있음을내가안다는거/지금우리가//놀랍게도/이백번을말한다해도/자연의속도로/조금씩늙어가겠지/벌을서듯잠을자는데/겨드랑이를집요하게파고드는것들/이미죽은네가/새해인사를건넨다/이미죽은내가/새해국수를먹는다//자라다가만손톱/가는머리/더이상살찌지않는몸/나도나를새롭게사랑할수있을것같다/공원계단에술취해쓰러져자는남자의/검은외투속으로들어가/그곳에서조용하게잠을자고/살을부비고/새해를낳아주고싶다/버석버석일어나길고긴하품을하고싶다/향긋한입속에서태어날내새끼들(「당신이살아있다는것」부분)

2000년대시단을뜨겁게달구었던‘미래파시인’중의한사람으로서주목받았던시인은여러차례의수상경력에서드러나듯이한국시단을이끄는젊은시인으로서두드러진활동을보여주면서,활달한상상력과감각적인언어가어우러진단정한묘사와사유가돋보이는시세계를견고하게다져왔다.시인은“내가원하는것은예술가의삶이아니라예술적삶인것같다”라고말한적이있다.비루한현실세계를탐구하는숭고한예술로서의시를꿈꾸며미처“다하지못한말들”과“길을찾지못한말들”(「작은불빛에도」)을찾아“날마다새로운곳을향해나가려하”(「트렁크」)는그가이후또어떤새로운세계로우리를안내할지자못궁금하면서그에거는기대가또한크다.

검은눈이쏟아져세상을씻어내린다면/헐벗고굶주린산이기지개를켜고/알록달록물결친다면/산자와죽은자가만나고/물고기가걷는다면/사라진섬이다시태어난다면/미끄럽고불가능한바닥에서/한명이춤추고/두명이노래하고/세명이원을그린다면/불꽃을옷처럼껴입을수있다면//창문이열리고/올빼미의커다란눈이돌아온다면/비행기에몸을싣고/불행의씨앗들을말리며/오늘하루도잘놀았습니다/잘먹었습니다/주먹을불끈쥐고탁자를쿵내리치며/말할수있다면/둥글고뿌연입술이길고향기로운입술과/포개어진다면(「기찻길옆마을에서」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