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이정록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이정록 시집)

$14.00
Description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그윽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삶의 의미를 포착해온 이정록의 시집『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깊은 사유와 섬세한 관찰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준다. 일상의 구체적인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질박한 언어가 살아 숨 쉬고 정밀한 묘사와 명료한 비유가 은은한 감동을 선사한다. 시인은 사물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긍정의 시선으로 사소한 존재들의 낮은 곳을 바라보며 인간과 자연, 사물과 사물이 교감을 이루는 조화로운 풍경 속에서 삶의 가치와 본질을 차분한 마음으로 성찰한다.
저자

이정록

저자이정록은1964년충남홍성에서태어났다.1989년대전일보신춘문예와1993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벌레의집은아늑하다』『풋사과의주름살』『버드나무껍질에세들고싶다』『제비꽃여인숙』『의자』『정말』『어머니학교』『아버지학교』,동시집『콧구멍만바쁘다』『저많이컸죠』『지구의맛』,산문집『시인의서랍』이있다.윤동주문학대상김수영문학상김달진문학상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받았다.

목차

제1부:가슴우리
해지는쪽으로
눈에넣어도아프지않은것들의목록
물뿌리개꼭지처럼
생(生)
영혼의거처
새표
젖은신발

조문
맨발
가슴우리
백두

코를가져갔다
문상

제2부:내가좋다
내가좋다
색동시월
사루비아
츰봐
청양행버스기사와할머니의독한농담
은방울꽃
고정과회전
간장게장
궁합
버티고
신불출(申不出)
까치설날
설중매
명맥
비둘기

제3부:시의쓸모
꽃은까지려고핀다
시인
바가지권정생
실소
시의쓸모
말줄임표
시론
강원도시인학교
이팝나무연주회

꽃그늘
흰붓
경주남산


제4부:우주의놀이

뻥그레
성(城)
밥그릇뚜껑
상추꽃
까치내
물푸레나무라는포장마차
세석평전
단추를채우며
간이역
삼계탕
우주의놀이
모시떡
몸의서쪽

해설|김상천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사소한존재들을바라보는이해와긍정의시선
“자연과인간이융화하고,인간과인간이화해를이루는아름다운절경”

느티나무는그늘을낳고백일홍나무는햇살을낳는다./느티나무는마을로가고백일홍나무는무덤으로간다./느티나무에서백일홍나무까지파란만장,나비가난다.(「생(生)」전문)

자연과의교감속에서그윽한시선으로세상을바라보며삶의의미를포착해온이정록시인의아홉번째시집『눈에넣어도아프지않은것들의목록』이출간되었다.삶의지혜와해학이넘치는연작시집『어머니학교』(열림원2012)와『아버지학교』(열림원2013)이후3년만에펴내는이시집에서시인은“자연과인간이융화하고,과거와현재가만나며,인간과인간이화해를이루는아름다운절경”(김상천해설)의세계를펼치며웅숭깊은사유와섬세한관찰을통해삶과죽음에대한진지한성찰을보여준다.일상의구체적인체험에서우러나오는질박한언어가살아숨쉬고정밀한묘사와명료한비유가돋보이는“슬프고아름답고,맑고깨끗한시들”(신경림,추천사)이깊은울림속에서은은한감동을선사한다.

햇살동냥하지말라고/밭둑을따라한줄만심었지./그런데도해지는쪽으로/고갤수그리는해바라기가있다네.//나는꼭,/그녀석을종자로삼는다네.//벗그림자로/마음의골짜기를문지르는까만눈동자,/속눈썹이젖어있네.//머리통여물때면어김없이/또다시고개돌려발끝내려다보는놈이생겨나지./그늘막대가가리키는쪽을/나도매일바라본다네.//해마다나는/석양으로눈길다진그녀석을/종자로삼는다네.//돌아보는놈이되자고./굽어보는종자가되자고.(「해지는쪽으로」전문)

이정록의시는“높은곳에는올라가보지못한바닥의나날”(「바가지권정생」)같은일상의그늘진소재를다루면서도따듯함이깃들어있다.시인은사물에대한깊은이해와긍정의시선으로사소한존재들의낮은곳을바라보며인간과자연,사물과사물이교감을이루는조화로운풍경속에서삶의가치와본질을차분한마음으로성찰한다.나아가“순간순간이연명”(「별」)인삶은죽음의한순간이며,“영혼을부화시키는일”(「영혼의거처」)인죽음은생명의한고리일뿐이라는깨달음에이르러시인은“해지는쪽으로/고갤수그리는”(「해지는쪽으로」)여린존재들에게공감과연민의눈길을보내며“어둠을몰고가는차창에달라붙는별빛”(「별」)같은“푸른봄”(「세석평전」)의숨결을불어넣는다.

사바나초원,/죽은어미옆에/송아지가누워있다.//송아지는죽어석양을보고있다./어미혓바닥은엉덩이쪽을가리키고있다./암소의자궁이쩍벌어져있다./몸의동쪽은언제나생식기다.//초원은너무넓어요./엄마발과제발을잇대어방을만드세요./여기작은방에들어와젖을짜세요./제부드러운가죽도드릴게요.//눈이커다란사내가/죽은암소의젖을짠다./몸의북쪽은등짝이다./아기가업힌곳이다./마른젖보채던아이가울음을멈춘다.//사람의몸이성전인까닭은/기도의시간을남겨두었기때문이다./눈물젖은두손을맞잡기때문이다./몸의남쪽은손바닥이다.//울음소리가없다./송아지도어미소도눈물짜지않는다./붉은눈망울만이몸의서쪽이다.(「몸의서쪽」전문)

고단한삶에건내는위로의말

시인은자연에지극한관심을가지면서도인간에대한관심과애정또한잃지않는다.“그늘이어둠이되지않게나지막이살아”(「내가좋다」)가면서“높고험한데로밥벌이하러나가야하”(「젖은신발」)는이웃들의고단한삶을위로의손길로어루만진다.시인은인생이란“숨막힘의연속”이면서“목젖에걸린주먹만한씨앗을틔우는일”(「별」)이며“마지막은다밤길”(「젖은신발」)이라는통찰에이르러삶의소중함을절실히깨닫는다.시인은또우리가살아가야할세상은“너는죽고나만살아야한다는”“구더기의역사”(「새표」)가아니라애틋한사랑의마음으로서로에게스미는평화로운세계라는일깨움을넌지시전한다.

눈에넣어도/아프지않은것들때문에,산다//자주감자가첫꽃잎을열고/처음으로배추흰나비의날갯소리를들을때처럼/어두운뿌리에눈물같은첫감자알이맺힐때처럼//싱그럽고반갑고사랑스럽고달콤하고눈물겹고흐뭇하고뿌듯하고근사하고짜릿하고감격스럽고황홀하고벅차다//눈에넣어도/아프지않은것들때문에,운다//목마른낙타가/낙타가시나무뿔로제혀와입천장과목구멍을찔러서/자신에게피를바치듯/그러면서도눈망울은더맑아져/사막의모래알이알알이별처럼닦이듯//눈망울에길이생겨나/발맘발맘,눈에밟히는것들때문에/섭섭하고서글프고얄밉고답답하고못마땅하고어이없고야속하고처량하고북받치고원망스럽고애끓고두렵다//눈망울에날개가돋아나/망망가슴,젖는깃들때문에(「눈에넣어도아프지않은것들의목록」전문)

생명력있고풍성한언어의향연

이정록시인은묘사와비유가뛰어난만큼언어를부리는솜씨또한예사롭지않다.“이각반합(二角飯盒)”“반상군자(飯床君子)”(「간장게장」),“鼠錄(서록)”“菊英水(국영수)”(「꽃그늘」)같은한자어의절묘한사용도그렇거니와,“자작고개에올라삼박사일자작부터시작하지”“조롱고개에올라수수께끼같은세상에풍자를날리는비수의문장을갈빗대삼지”“재치고개에올라해학의너털웃음으로가슴의터널을뚫고”(「강원도시인학교」)등에서보듯실제의지명에서시상을떠올리는대목에이르면감탄할정도이다.「문상」「색동시월」「츰봐」「고정과회전」「궁합」등구성지면서도능청스러운충청도방언이그대로생명력있는시어로되살아나는시들에는유머와재치와익살이넘쳐웃음을자아내기도한다.

-이게마지막버스지?/-한대더남었슈./-손님도없는데뭣하러증차는했댜./-다들마지막버스만기다리잖유./-무슨말이랴?효도관광버슨가./-막버스있잖아유.영구버스라고./-그려.자네가먼저타보고나한테만살짝귀띔해줘.아예,그버스를영구적으로끌든지./-아이고.지가졌슈./-화투판이든윷판이든지면죽었다고하는겨.자네가먼저죽어./-알았슈.지가영구버스도몰게유.본래지가호랑이띠가아니라사자띠유./-사자띠도있남./-저승사자말이유./-싱겁긴.그나저나두팔다같은날태어났는데왜자꾸왼팔만저리댜./-왼팔에부처를모신거쥬./-뭔말이랴./-저리다면서유?이제절도한채모셨고만유.다음엔승복입고올게유./-예쁘게하고와.자네가내마지막남자니께.(「청양행버스기사와할머니의독한농담」전문)

시뿐아니라동시,동화,그림책등다양한장르에서왕성한창작활동을보여주고있는시인은“감동이아니라면재미라도있어야”한다는것이“내시창작법의전부”(「실소」)라고말한다.하지만그의시에는천진한웃음이넘치는재미뿐아니라“망망가슴”을촉촉이적시는아릿한감동이있다.이제‘지천명’의나이쉰넘어“얼과씨가/삶의얼개”(「춤」)라는답을얻은시인은“천권을읽어야/시한편온다.//(…)//천편을써야/겨우가락하나얻는다”(「시론」)는겸허한자세와우주를여는“첫이파리의떨림”같은순정한마음으로“아득한어둠”(「우주의놀이」)을노래한다.그노래마디마다“눈보라의열정”(「이팝나무연주회」)과“최선을다한헐떡거림”(시인의말)이있기에그의시는더욱넓고깊어지리라.

몽당연필처럼/발로쓰고머리로는지운다./면도칼쯤이야피하지않는다.//몽당(夢堂)의생,/자투리에끼운볼펜대를관(冠)이라여긴다./뼈로세운사리탑!/끝까지흑심(黑心)을품고산다.//한사람의손아귀/그작은어둠을적실때까지./검게탄마음의뼈가말문을열때까지.(「시인」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