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 창비시선 408

온 - 창비시선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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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안미옥

2012년동아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으로『온』『힌트없음』이있다.김준성문학상,현대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진짜마음을갖게될때까지
네가태어나기전에
매일의양파
톱니
거미
한사람이있는정오
균형잡힌식사
밤과낮
나를위한편지
식탁에서
캔들
페인트
금요일
인디언텐트
치료탑
아이에게
제2부*어떤기억력은슬픈것에만작동한다
질의응답
수색
적재량
천국
가정
불꺼진고백

오픈
램프
굳은식빵을끓여먹는요리법
치료자들
조언
구월
빛의역할
토마손
제3부*무엇이만들어질지모를수록좋았다
문턱에서
아홉번째여름
트리거
나의고아원
천국2
목제숲
정결
목화
가까운사람
생일편지
꽃병
파고
정전
가족의색
나의문
제4부*부서지고열리는어린잎을만져본다
시집
옥수수의밭
절벽과개미
식물표본집
선잠
오늘의일기
비정
물컵
까마귀와나
호칭
구부러진싸인
프리즘
두번의산책
여름의발원
해설|김영희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어떤기억력은슬픈것에만작동한다”

덜말하는방식으로더말하는다단(多段)한마음의언어
간절하고환하고슬픈안미옥의첫시집이당신을향해온다

내게는얼마간의압정이필요하다.벽지는항상흘러내리고싶어하고/점성이다한다는게어떤것인지보여주고싶어한다.//냉장고를믿어서는안된다.문을닫는손으로.열리는문을가지고있다는걸잊어서는안된다.//옆집은멀어질수없어서옆집이되었다.벽을밀고들어가는소란.나누어가질수없다는게//다리가네개여서쉽게흔들리는식탁위에서.팔꿈치를들고밥을먹는얼굴들.툭.툭.바둑을놓듯(?식탁에서?전문)


2012년동아일보신춘문예로등단한뒤활발한작품활동을펼쳐온안미옥시인의첫시집?온?이‘창비시선’408번으로출간되었다.등단작?식탁에서?와?나의고아원?에서“익숙한것에서익숙하지않음을,하찮은것에서하찮지않음을찾아내는”비범한시각과“남다른상상력과때묻지않은자기만의목소리”를보여주었던시인은등단5년만에펴내는이시집에서“타인의고통과슬픔을맨살같은언어로맞이하는시적환대”의세계를펼친다.“고통과슬픔에힘껏약해지려는”(김행숙,추천사)간절한마음을,“낮은목소리의단단한말들”(김영희,해설)로엮어낸빛나는시편들이잔잔하면서도순간날카롭게공감과감동을선사한다.

굴레도감옥도아니다/구원도아니다//목수가나무를알아볼때의눈빛으로/재단할수없는날씨처럼//앉아서//튤립,튤립/하고말하고나면//다말한것같다//뾰족하고뾰족하다//편하게쓰는법을몰랐다/편하게사는법을모르는것처럼//(…)//마음에서시작된다는건정말일까/한겨울을날아가는벌을보게될때//투명한날갯짓일까/그렇다면//끔찍하구나/이게전부마음의일이라니(?시집?부분)

간결한형식과간명한어휘를통해“덜말하는방식으로더말하는”(김행숙,추천사)안미옥의시에는유독‘마음’이라는시어가자주반복된다.시인에게삶은,시는“전부마음의일”(?시집?)인듯하다.그런데“좋은마음”과“슬픔에익숙해지기위해서부드러움에닿고자하는마음”(?네가태어나기전에?)이나“나를좋아하고싶은마음”(?조언?)처럼긍정의마음은하나같이부재와결핍의상태로묘사된다.여기에“무너지는마음”이나“상한마음”(?톱니?)또는“부서지는마음”(?천국?)이나“긁으면긁히는마음”(?꽃병?)같은부정의마음이더해진다.그런가하면“살아있는것을생각하면떠오르는것이없”(?치료탑?)는지금,시인은존재와부재,사라지지않는것과사라져버린것에대해말한다.

어항속물고기에게도숨을곳이필요하다/우리에겐낡은소파가필요하다/(…)/맨손이면부드러워질수있을까/나는더어두워졌다/어리석은촛대와어리석은고독/너와동일한마음을갖게해달라고오래기도했지만/나는영영나의마음일수밖에없겠지/찌르는것/휘어감기는것/자기뼈를깎는사람의얼굴이밝아보였다/나는지나가지못했다/무릎이깨지더라도다시넘어지는무릎/진짜마음을갖게될때까지(?한사람이있는정오?부분)

“살아본적없는시간은일단망가졌다고생각”(?치료탑?)하고“없는것에대해서만말했”던시인은“이제남아있는것들에대해이야기한다”(?온?).하지만슬픔과한몸을이루는어떤기억은영원히잊히지않아“어떤일들은영원히사라지는법없이/공기속을떠다”니며“손목을붙잡고놓아주지않는다”(?트리거?).유난히“슬픈것에만작동”하는기억들속에서시인은“슬픔같은건다망가져버렸으면좋겠다”고소망한다.그러나“생각하면/생각이났”(?질의응답?)기에“모두다소풍을가서돌아오지않는”(?금요일?)저녁과“쏟아지는물안에남아있”(?천국?)는‘천국의아이들’을호명하며시인은“검고,낮고깊은”(?질의응답?)침묵속에서저‘세월호’의아픔을함께한다.

모았던손을풀었다이제는기도하지않는다//화병이굳어있다/예쁜꽃은꽂아두지않는다//멈춰있는상태가오래지속될때의마음을/조금알고있다//맞물리지않는유리병과뚜껑을/두손에쥐고서//말할수없는마음으로너의등을두드리면서//부서진다/밤은희미하게//새의얼굴을하고앉아/창안을보고있다//노래하듯말하면더듬지않을수있다/안이더밝아보인다//자주꾸는악몽은어제있었던일같고/귓가에맴도는멜로디를듣고있을때//물에번지는이름/살아있자고했다(?아이에게?전문)

안미옥의첫시집을읽으며우리는‘시’란근본적으로‘노래하듯’말하는것이고,의미또는감각이전에마음에먼저와닿는것이라는소박한사실을깨닫게된다.그리고“흉터에서출발하려는마음”으로“볼수없던것을보려고할때”의“숨을참는얼굴”(?거미?)이된다.시인은“당분간/슬픈시는쓰지않을게”라며짐짓다짐하지만“갑자기끊겨버린/노래의뒷부분이생각”(?구월?)난다.그렇기에시인은“진짜마음을갖게될때까지”(?한사람이있는정오?)“심해의끝까지가닿은문”을“아직두드리는”(?질의응답?)사람이다.“함께살고싶다”(시인의말)는작고부드럽고연한마음으로“무서워하면서끝까지걸어가는사람”(?생일편지?)이다.

한여름에강으로가/언강을기억해내는일을매일하고있다/강이얼었더라면,길이막혔더라면/만약으로이루어진세계안으로들어가고싶어/아주작은사람이더작은사람이된다/구름은회색이고소란스러운마음/너의얼굴은구름과같은색을하고있다/닫힌입술과닫힌눈동자에갇힌사람/다타버린자리에도무언가남아있는것이있다고/쭈그리고앉아막대기로바닥을뒤적일때/벗어났다고생각했다면벗어나지못한것이다/한쪽이끊어진그네에온몸으로매달려있어도/네가네기도에갇혀있다는것을/아무도아는사람이없었다(?여름의발원?전문)

[추천사]

덜말하는방식으로더말하는시.안미옥의시에는삼켜진,쟁여진,그리하여심연으로내려가는굴을파고,기도하는마음으로한층한층탑을쌓아올리는그런말,들끓는침묵의언어가함께한다.그녀의“침묵은검고,낮고깊은목소리”,“심해의끝까지가닿은문같다”.그문을“아직두드리는사람”의언어가안미옥의시다.언어에표정이있다면안미옥의언어는“숨을참는얼굴”.그리하여안미옥의첫시집을읽는우리는이제“볼수없던것을보려고할때”의,들리지않던것을들으려할때의그얼굴이다.
작고부드럽고연한마음,그마음의언어는,그언어의피부는고통과슬픔에더힘껏약해지고자한다.타인의고통과슬픔을맨살같은언어로맞이하는시적환대의어떤자세를안미옥의첫시집은이룩한다.그녀의시집을읽는내내나를떠나지않았던이미지가하나있었다.푸른새벽빛속에기도하는자세를이룬검은실루엣.그것은단정하고간절하고환하고슬펐다.그검은실루엣으로“끝까지걸어가는사람”이당신을향해바야흐로온다.
-김행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