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누스 푸디카 (박연준 시집)

베누스 푸디카 (박연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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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직설적인 화법과 도발적인 시어로 새로운 세대의 독특한 감수성을 보여주었던 시인 박연준은 5년 만에 펴내는 시집 『베누스 푸디카』에서 앞의 두 시집과는 다른 방향의 시세계를 선보인다. 내밀한 삶의 경험 속에서 차오르는 “은밀하고도 섬세한 언어를 통해 뿜어나오는 명랑하고도 발랄한 에로티시즘의 미학”과 사회적 억압과 편견에 대항하는 독창적인 시적 목소리로서의 “부끄러움의 감수성”(조재룡, 해설)이 투명하게 빛나는 시편들이 깊은 공감과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저자

박연준

저자박연준(朴蓮浚)은1980년서울에서태어났다.2004년중앙신인문학상에시「얼음을주세요」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속눈썹이지르는비명』『아버지는나를처제,하고불렀다』,산문집『소란』등이있다.

목차

제1부ㆍ정숙한자세
베누스푸디카

고요한싸움
침대
침대2
비오는식탁
무용수
이별에관한일곱개의리듬
꽃밭,흡혈
혀위의죽음
실언트라우마
아홉번죽은별들만아름답다
암늑대들이달아나는법
음악에부침

제2부ㆍ당신이물고기로잠든밤
흠향(歆饗)
당신이물고기로잠든밤
기다리는자세
침대3
화살과저녁
고양이
꽃,가장약한깃발
가벼운장례식
자오선
여름의구심력
가라앉은방
서랍
여름낮,여름밤
울음안개
쏟아지는부엌
아침을닮은아침

제3부ㆍ깨지지않는꽃잎들
줄지어선매화나무곁을지날때
베누스푸디카2
내가귀신이었을때
침대4
침대5
그애가저녁에하는행동
생각담요아래살다
커튼
귀가무거운사람
계란일곱개복숭아세개
발쇠
고요한밤
거룩한밤
하층민
뱀의노래
그릇
빈잔

제4부ㆍ술래는슬픔을포기하면안된다
하늘에서돼지들이떨어지는저녁
술래는슬픔을포기하면안된다
베누스푸디카3
꽃필때같이잤다
모래와밤
검은짐승들
동굴앞을지날때
흡혈
붉은마디〔寸〕
네가사라지기전에
바람의혀
전동차안에서
잠과꿈
키스의독자
발등에내리는눈
증발후에남은것

해설|조재룡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외면할수없는하나의자세,잊을수없는하나의표정”

슬픔은어떤자세로태어나는가
내밀한삶의경험에서차오른투명하게빛나는시편들

사랑하는사람아/얼굴을내밀어보렴/수면위로/수면위로//네가//떠오른다면//나는가끔눕고싶은등대가된다(「서랍」전문)

2004년중앙신인문학상에당선되어등단한이후젊은시단에서활발한활동을펼쳐온박연준시인의세번째시집『베누스푸디카』가출간되었다.첫시집『속눈썹이지르는비명』(창비2007)과두번째시집『아버지는나를처제,하고불렀다』(문학동네2012)를통해직설적인화법과도발적인시어로새로운세대의독특한감수성을보여주었던시인은5년만에펴내는이번시집에서앞의두시집과는다른방향의시세계를선보인다.내밀한삶의경험속에서차오르는“은밀하고도섬세한언어를통해뿜어나오는명랑하고도발랄한에로티시즘의미학”과사회적억압과편견에대항하는독창적인시적목소리로서의“부끄러움의감수성”(조재룡,해설)이투명하게빛나는시편들이깊은공감과잔잔한감동을선사한다.

옛날,옛날,옛날/(뭐든지세번을부르면,내앞에와있는느낌)//어둠을반으로가르면/그게내일곱살때음부모양/정확하고아름다운반달이양쪽에기대어있고/아무도들어오려하지않았지/아름다운틈이었으니까//(…)//꿈,사랑,희망은내가외운표음문자/습기,죄의식,겨우되찾은목소리,가느다란시는/내가체득한시간의성격//(…)//후에책상위에서하는몽정이시,라고생각했다가/나중엔그의얼굴을감싼채그늘로밀려나는게/사랑,이라고믿었지만(「베누스푸디카」부분)

표제인‘베누스푸디카(VenusPudica)’는비너스상이취하고있는정숙한자세를뜻하는미술용어로,한손으로는가슴을,다른손으로는음부를가리는자세를뜻한다.슬픔은어떤자세로태어나는가,하는시인의고민이「베누스푸디카」의연작시에담겨있다.시인은시를쓰게된과정과동기를고백하는시편으로시집의문을연다.“보자기가되어/담을수없는것을담으려고안간힘을쓰”(「녹」)며살아왔던삶에서“꿈,사랑,희망”은한낱텅빈기호로서의“표음문자”에불과했다는시인의고백에는‘부끄러움’이깃들어있다.그러나그부끄러움은단순한수줍음이아니라사회적통념과편견,억압과폭력에대항하는,“시를똥처럼지리”던“말이부끄러운아이”(「그애가저녁에하는행동」)의시적목소리이다.시인은“비극의원형을들여다보고,상실의순간을마주하고,결여의장소를불러내어”(조재룡,해설)“작고,고요하고,가느다란옛날”(「생각담요아래살다」)의기억들을기록해내며“뜨거운주물(鑄物)로탄생하는꿈”(「당신이물고기로잠든밤」)을꾼다.

탈탈털어죄다갖다버린그늘에는/무릎에서떨어진딱지도있고/취한아버지가내이름을오래부르다고꾸라져잠든밤도있고/뒤틀린다리를끌고사라지던여름도있다//뭉뚝한연필,가느다란연필,부러진연필로/새벽의어깨선을열심히그리던시간들도모두/모두갖다버렸다//버렸더니살겠다/내가나를연기하며/(시도쓰는게아니라쓰는연기를하며)/그늘을기억하는일과/들어가사는일사이에서도르래를굴리며/살수는있겠으나//(…)//도망가봤자소용없어,/아름다운그늘!(「술래는슬픔을포기하면안된다」부분)

사회적통념이덧씌운편견속에서“고인채로찰랑이다,/온세상으로흘러다녔”(「베누스푸디카3」)던시인은억압된감각들을풀어내어“괄호안에갇힌말들이희미해”(「기다리는자세」)질때까지,“시작도,선언도,기억도없이/깊어진것들”과“이름귀퉁이가부서진것들”(「침대3」)을기록하는일에전념한다.이로써“종이위다섯개의무덤을짓고/기억을해독하고싶을때마다하나씩부숴먹”는시,“가난한사람들의뒤꿈치가모여자”고“목이쉰남자들이목적을잃어버리는”저“흰장송곡들의종착역”에서“무덤위에내리는눈”을바라보며“무덤의무덤”(「이별에관한일곱개의리듬」)을기록하는시가우리앞에당도하고,시인은“노래하는뱀들이구불구불전진하는새벽”(「뱀의노래」)을맞이한다.

패배자들의무릎을닦아주고싶다/눈가의주름을더깊이파고/아스팔트같은목덜미위를지나/마을이사라진지도같은,/빈손위에눕고싶다//그들의걸음과복사뼈와낯빛에대하여/무릎으로생각하다/저녁이되면/옛광장을서성이고싶다//왜나는당신얼굴을/쓰다듬으며살지못했을까/얼굴이사라지기전에//곱고천진하게패배하기는얼마나어려운가//뒤척일수있을때/가라앉고싶다(「네가사라지기전에」전문)

이지점에서시인은“미래를펼쳐보다/안쪽이환해지면”(「커튼」)비로소제모습을드러내는미지의존재,곧사랑의대상에다가선다.여기서시인은‘실패하는실연’을말하며,사랑의종말이나파국,“잠정적으로/잠정적으로//살아날뛰는//이별들”(「이별에관한일곱개의리듬」)을삶의이치로받아들인다.그러나사랑의실패가패배하는사랑,그삶을말하는것은아니다.그것은“떨어지기위해물방울이시작하는일”(「녹」)과다름없기때문이다.때로는“버티어야할것은/버틸수없는것들의등에기대어/살기도”(「고요한싸움」)하는,실연의실패로가득한현실에서시인은“입을반쯤벌린채/가장고음으로죽어가는”존재들의소리를듣고,“정신없이머리카락을뜯어먹”거나“지워진거리에서차가운발과끊어지는리듬으로/완성되는과거”(「빈잔」)를되새긴다.

실연에실패한자가걸어가고있다/북을치던손은가고흔들림만남았다//승리한거울들이돌아눕는다/일렬종대/별들의함성/함몰된얼굴에서일어나는빛의산란//행복해서미칠것같다/자지러지는거울들/복에겨워죽을것같다/자지러지는거울들//(…)//아홉번죽은별들만아름답다는데대관절/아름답게죽은별이란게무슨소용일까/살아나면어쩌지/이많은생의궁극들,/피어나면어쩌지//밤의이적수(耳赤手)로죽음에성공한귀신들,/실연에실패한자가언덕을오르고있다(「아홉번죽은별들만아름답다」부분)

시인은이제“문턱에널어놓은/살아보지못한날들”을열어보이며“조그만것들의과거”(「가벼운장례식」)에서도‘지금-여기’살아있다는실감을찾아낸다.아직도“가닿지못한이름들이/기름처럼떠있는방”,오로지“풍경으로박히”고말뿐인저“부러진시간들이초로꽂힌방”(「가라앉은방」)을더듬거리며,“죽은이름들”과“으깨져발끝에서곤죽이되”(「쏟아지는식탁」)어버린것들의비극을‘해독자’의언어로담아내고자애쓰면서시인은한줄한줄시를써나가며제삶을살아낸다.어느날부터인가“모든면에서가난해졌”(「베누스푸디카」)지만“실패에엉기는,실패(失敗)들”(「화살과저녁」)을반복하면서도여전히,그렇게,시를쓰겠다는시인의간절한목소리는자못매혹적이기까지하다

아주커다란원을그리다지치고싶다//하늘에서매미들이다쓴날개를떨어뜨리고/투명한죽음들로무거워지는여름/우리의밤이모여백야를낳고/종이다!/흰종이다!/글자들이뛰어내리고//신발을잃어버린발들이멀리서걸어오고있어/그들을기다리자/힘이센혀가그늘을걷어내려다/한꺼번에무너진다해도/무너져,흐른다해도/물결치는그늘과파도치는벽을/차고!넘어!//노래해//중요한건/칼이진정으로날카로워/문장들이겁에질리는거야//그짓을오래하다나자빠진저녁,/그게시인이야(「음악에부침」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