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장석남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장석남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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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먼 고대로부터 온 흰 메아리 모든 선한 것들의 배후에 깔리는 투명 발자국”
아늑한 불확실성 속을 뉘엿뉘엿 돌파하는 시편들. 서정시의 진경을 빚어내는 시인 장석남의 새 시집.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30년 동안 꾸준히 아름답고 섬세한 문장으로 고요한 낭만을 노래해온 대표 서정시인 장석남의 여덟번째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비움과 침묵을 통해 오히려 풍만해지는 시적 감동을 남긴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 2012)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일상에서 정성스레 길어올린 사유와 특유의 아름다운 시어를 여전히 간직하면서도, 독특한 선적(禪的) 철학과 시적 뿌리의 탐구인 고대(古代)라는 새로운 화두를 선보인다. 가장 근원적인 인간,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골똘한 그가 펼치는 아늑한 서정의 순간들이 “이토록 사뿐하고 육중한 몸의 문답”(추천사, 권여선)으로 다가오며 오랜 여운을 남긴다.
저자

장석남

저자장석남張錫南은1965년인천에서태어났다.1987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새떼들에게로의망명』『지금은간신히아무도그립지않을무렵』『젖은눈』『왼쪽가슴아래께에온통증』『미소는,어디로가시려는가』『뺨에서쪽을빛내다』『고요는도망가지말아라』,산문집『물의정거장』『물긷는소리』『시의정거장』등이있다.김수영문학상,현대문학상,미당문학상,김달진문학상등을수상했으며현재한양여대문예창작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제1부ㆍ소풍
소풍/불멸/입춘부근/파란돛/여행의메모/모닥불/모닥불에서/빗소리곁에/수집가/소나기오는날/꽃집에서/꽃이꽃을지나/동백의일/꽃을쓰는노파여/낙엽쓰는노파여/사랑에대하여말하여주세요/오래된,오래되었다는고백

제2부ㆍ한소식
문을얻다/문을내려놓다/눈부심/한소식/조율사/눈사람의스러짐/길눈/밥때를기다리며
/동행/어느겨울날오후에내발은/다섯켤레의양말/바람과대와빛과그릇/질그릇이놓인오후

제3부ㆍ고대(古代)에가면
녹슨솥곁에서/고대(古代)에서/고대(古代)에가면/대장간을지나며/검표원/햇소금/우는돌/주워온베개/세한(歲寒)/악기나하나들고/명년봄/나는초록/정육점/동지에

제4부ㆍ하늘에있는것
개두릅나물/편서풍/모과차를만들며/모과를자르는일/세탁기/악기점자리/악기를팔고/카메라를팔고/더덕을노래함/고양이가다니는길/봄손님/가을의서정/탁구장/오후세시의나무/차를마시다니/하늘에있는것/쑥대를뽑고나서

해설|신형철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이토록사뿐하고육중한몸의문답이있을까!”
가장근원적이고아름다운‘장석남표서정시’의진수
아늑한불확실성속을뉘엿뉘엿돌파하는시편들

섬세하고따뜻한감수성으로전통서정시의맥을이어온장석남시인의신작시집『꽃밟을일을근심하다』가창비에서출간되었다.시인의여덟번째시집이자,2017년‘창비시선’을마감하는뜻깊은시집이다.2012년김달진문학상수상작『고요는도망가지말아라』(문학동네2012)이후5년만에펴내는이번시집에서시인은한층깊어진시선으로“가장근원적인인간,가장인간적인인간,가장아름다운인간이란어떤모습일지”(신형철,해설)를다시금생각해보게하는아늑한서정의세계를펼쳐보인다.간결한언어와정밀하게짜인이미지가어우러져서정시의진수를보여주는정갈한시편들이고요한떨림으로다가온다.

소매끝으로나비를날리며걸어갔지/바위살림에귀화(歸化)를청해보다돌아왔지/답은더디고/아래위옷깃마다묻은초록은무거워쉬엄쉬엄왔지/푸른바위에허기져돌아왔지/답은더디고(「소풍」전문)

절제된시어로사물의내밀한풍경을그리며감성에호소하는장석남의시는웅숭깊은철학적사유의깊이를보여준다.시인은“저물녘의긴그림자같은경전”(「여행의메모」)을벗삼아자연을관조하는호젓한세계를거닐며세속적욕망과거리를두는청빈한삶을지향한다.“일생누더기한벌”(「더덕을노래함」)뿐인삶의비애에서생명의숨결을길어올리며“피륙과똥오줌과정액이없는생(生)들”(「주워온베개」)과“모로누워절망을다스리던날들”(「눈부심」)을건너온시인은유한한생과무한한죽음에대한존재론적통찰과“커지려는불을다독이는것이/일생의공부가되리라”(「모닥불」)는선가(禪家)의깨달음같은명철한성찰에이른다.

나는녹는다/먼옛날의말씀이나를녹인다/나를만들던손은나를떠난즉시나를잊었을것/나는소리친다소리친다/누구도듣지않으므로/발밑에서질척인다나의외침은//나의스러짐/이것이무엇입니까?외침은/오래된종소리와같다/종소리의멀어짐과같고/종소리의반복과같다/소리가되다남은종과같이침울하고어두컴컴하다//나의외침이마저사라지기전/나는이렇게더뇌어본다/이것이무엇입니까?/자유입니까?/보일러가으르렁대는밤/나는낯선수로를걸어갔다(「눈사람의스러짐」전문)

무위(無爲)의사상이깃든시인의내면을얼핏들여다보면삶이“아무일아닌일”(「모과를자르는일」)처럼무심한듯보이나시인에게는아직“초록되어해야할노래”와“초록되어품어야할눈동자”(「나는초록」)가많다.시인은“내혀는나를말하지않을때가많았”고“내혀가지은죄때문에내혀를끊을용기는없었다”(「다섯켤레의양말」)고자탄하지만늘‘아무것도아닌’존재들과함께하면서“누군가의내부를향한응시”(「파란돛」)를멈추지않는다.그리하여시인은“조그만죄하나를녹”(「우는돌」)이며“빛이되어서어둠으로들어가어둠속에숨어서오가는숨결들을비추”기도하고“노래가되어서빛나는입술로들어가가슴에잠겨서피어나는꿈들을적시”(「꽃집에서」)기도하면서현실에대한관심을슬쩍내비친다.

차를마시다니/꽃이피다니//목구멍으로무엇을넘기다니/꽃을보다니//해변을,파도끝을,신벗어들고걷다니/웃음까지도생기다니/배가고프다니……//분노여입을벌려라/바다를넣겠다/쏟아넣겠다//분노여/변덕이심한짐승이여/바다를모두먹어라//바다여,분노의이름으로영원히철썩여라(「차를마시다니」전문)

이전시집(『왼쪽가슴께에온통증』,창작과비평사2001)의연작시「수묵정원」과대표작으로꼽히는「배를밀며」「배를매며」「마당에배를매다」등이그렇듯이같은소재로연작형태의시를즐겨써온시인은이번시집에서도‘모닥불’‘꽃’‘문’‘모과’‘악기’등을소재로한여러편의시를선보인다.특히‘고대(古代)’라는제목또는부제가붙은시들이눈에띄는바,고대인의정서에현대적감각을접목한이시편들에서시인은자신의뿌리를찾아고대로까지거슬러올라간다.“모든선한것들의배후에깔리는투명발자국”을더듬어보고“먼고대로부터온흰메아리”(「햇소금」)를나지막이들려주면서시인은“신의시간”(「밥때를기다리며」)과“시인도시인이되고……시인도다시시인이되고혁명이오”(「명년봄」)는날을기다린다.

나에겐쇠뚜드리던피가있나보다/대장간앞을그냥지나칠수없다/안쪽에풀무가쉬고있다//불이어머니처럼졸고있다/?침침함은미덕이니,더밝아지지않기를//불을모시던풍습처럼/쓸모도없는호미를하나고르며/둘러보면,/고대의고적한말들더듬더듬걸려있다//주문을받는다하니나는배포크게/나라를하나부탁해볼까?/사랑을하나부탁해볼까?/아직은젊고맑은신(神)이사는듯한풀무앞에서/꽃속의꿀벌처럼혼자웅얼거린다(「대장간을지나며」전문)

시인은1987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등단한이후참신한감각의‘신서정파’를대표하는시인으로서시단과평단의꾸준한주목을받아왔다.시력(詩歷)30년.김수영문학상,현대문학상,미당문학상,김달진문학상등그간의수상경력에서도알수있듯이시인은전통서정에바탕을둔고유한개성을발휘하며조화와균형의미학적성취가눈부신‘장석남표서정시’로서일가를이루었다.그리고오늘,그에값하는또한권의영롱한시집을더하게되었다.“삶이덜모순적이었으리라”짐작되는“말이생기기이전의저고대(古代)의융융한세계를꿈꾸며”(시인의말)지금,여기에서“오래전부터있어왔던/끝없는소멸”(「여행의메모」)를그윽이지켜보며“먼고대를살아가는”(신형철,해설)시인의모습이아름답고따스하다.

나는긴비문(碑文)을쓰려해,읽으면/갈잎소리나는말로쓰려해/사나운눈보라가읽느라지쳐비스듬하도록,/굶어쓰러져잠들도록,/긴행장(行狀)을남기려해/사철바람이오가며외울거야/마침내는전문을모두제살에옮겨새기고춤출거야//꽃으로낯을씻고나와나는매해봄내비문을읽을거야/미나리를먹고나와읽을거야//나는가장단단한돌을골라나를새기려해/꽃흔한철을골라꽃을문질러새기려해/이웃의남는웃음이나빌려다가펼쳐새기려해/나는나를그렇게기릴거야/그렇게라도기릴거야(「불멸」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