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서 사슴까지 (김중일 시집)

가슴에서 사슴까지 (김중일 시집)

$8.00
Description
세계의 사각지대 속에서 환하게 눈뜨는 슬픔의 시
“나는 죽은 이의 가슴을 사슴이라고 부른다”

산문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감각적인 이미지와 다채로운 비유가 돋보이는 독창적인 시 세계를 펼쳐온 김중일 시인의 네번째 시집 『가슴에서 사슴까지』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내가 살아갈 사람』(창비 2015)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부조리한 세계의 사각지대와 비극적인 삶의 풍경들을 섬세하면서도 진지한 언어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슬픔 속에서 가장 환하게 눈을 뜨는” 주체가 되어 “존재의 가슴을 찢고 세계의 지평선을 뜯어낸 숭고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놓는”(김행숙 추천사) 애절한 애도의 시편들이 가슴을 저미는 고요한 떨림으로 다가온다. 웹진 ‘시인광장’ 선정 ‘2016 올해의 좋은 시’ 수상작 「눈썹이라는 가장자리」를 포함하여 74편의 시를 부 가름 없이 실었다.
저자

김중일

저자김중일
1977년서울출생.2002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국경꽃집』『아무튼씨미안해요』『내가살아갈사람』이있다.신동엽문학상,김구용시문학상을받았다.

목차

어깨에서봄까지
가슴에서사슴까지
오늘도사과
흐르는빈자리
매일무너지려는세상
마중왔던아이들
우리산들바다하늘사이
지구를끌어안다가가슴이꿰뚫린하늘
끝내버려진지구에나혼자누운꿈
외계인이우리가정을지켜냈어요
애도일기
일어서다,그리고가다
다녀가다
불어가다
우리의얼굴
누군가에게
목소리들
창문에서죽다
자는사람작은사람뛰는사람
최선을다해하루한번율동공원돌기
평일의대공원1
평일의대공원2
기습폭설
숨나누기
반생
투명인간
투명한문장
내가돌아갈곳
둥근노래만이입술을들어올리네
바람이친텐트
루틴
너의나라의나
새가되게해주소서
깊은높이로날아오른새
떠나는꽃
초극단의눈사람
초록의눈사람
높은집
보이지않는곳에서발자국이소리내는밤이다
먼지가쌓이는공중
우리는산다
웃음기르기
주신의술잔
마스크
얼굴로떠내려가다
안다
지평선
기다림
키스를하는것
나는네가뛰어내린절벽
붉은바통
옛날에는시라는것이
저녁커피한잔
체념의생명력
봄밤의낮잠
강호
지구만한공중한바퀴
햇빛
비를흠씬얻어맞다가보았다
영혼한풍경
그날의눈송이와오늘의눈송이사이
눈썹이라는가장자리
등을떠미는일
등을안는일
꽃다발을주고받듯
처음만난사람
이산이작은파도였을때
죽은사람이산사람을기억하여
고인하늘
고인들의생일식탁
장미와산다는것
물고기와산다는것
나무는나뭇잎이꾸는꿈
나무는나뭇잎이꾸는꿈,나는네가꾸는꿈

발문|장이지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눈동자는수년간내린눈물에다잠겼지만,눈썹은여전히성긴이엉처럼눈동자위에얹혀있다.집너머의모래너머의파도너머의뒤집힌계절.해변으로밀려오는파도는바람의눈썹이다.바람은지구의눈썹이다.못잊을기억은모래한알물한방울까지다밀려온다.계속밀려온다.쉼없이밀려온다.얼굴위로밀려온다.눈썹은감정의너울이가닿을수있는끝.일렁이는눈썹은표정의끝으로밀려간다.눈썹은몸의가장자리다.매순간발끝에서부터시작된울음이울컥모두눈썹으로밀려간다.눈썹을가리는밤.세상에비도오는데,눈썹도없는생물들을생각하는밤.얼마나뜬눈으로있으면눈썹이다지워지는지에대해서생각하는밤.(「눈썹이라는가장자리」부분)

장이지시인이발문에서“이번시집은‘애도일기’혹은‘상(喪)의일기’와같은양상”이라고썼듯이시인은“생의마지막순간까지날배웅해준”(시인의말)아버지의돌연한죽음뒤에‘애도의시간’에젖는다.그런데부재의존재가되는순간오히려아버지의존재가환기되고,시인은아버지를자신의삶속으로불러들인다.“내가파른수직절벽의몸가장높은자리인이마에묻혀있”(「강호」)는아버지는“조금씩조금씩내생에서/제몫의울음을되찾아”가고“앉고서고걷고뛰고/말을배우고다시웃음을배”(「숨나누기」)운다.그리하여시인은“내몸구석구석이서서히녹슬어가는모습을늘지켜보”(「투명인간」)는“아버지의울음을대신울고있”(「둥근노래만이입술을들어올리네」)는것이다.

내가평생을다살아도절반이다./그는죽기직전생일케이크위의촛불처럼훅,나를불어껐다./암전,그순간나의반생(半生)이시작됐다./그는나의반생을살기시작했다//(…)//그가죽는순간시간이정확히반으로쪼개졌다./두개의낮과두개의밤,/어제의어제와오늘의오늘,/그가나의반생을살고있다./그는내가미리남긴유언이다.(「반생」부분)

‘아버지의죽음’이라는개인적슬픔을넘어서시인은‘세월호참사’와같은사회적인죽음으로다가가아픔을함께나눈다.‘사월’이후로벌써네번째봄을맞았건만시인은“못잊는게많은사람”(「기습폭설」)이어서“그폭설을뚫지않고는그날로부터어디로도갈수없”(「그날의눈송이와오늘의눈송이」)기에불면의밤을지새운다.이시집은그래서“눈사람처럼얼어붙은엄마들.털실처럼눈물이줄줄풀리는엄마들.점점작아지는엄마들”(「일어서다,그리고가다」),“뒤따라죽겠다며오늘도산사람들”(「죽은사람이산사람을기억하여」)을위로하며“자식잃고부모잃고울고있는몸의리듬”(「애도일기」)으로,“공중에무릎이깨지도록꿇어앉아/이루어질때까지기도하”(「새가되게해주소서」)는마음으로써내려간‘애도일기’이기도하다.

어느날내가슴이불타면어쩌나./내사슴은어쩌나./깡마른사슴.비맞는사슴.눈물맺힌사슴.다리부러진사슴.멍투성이사슴.땅에파묻힌사슴.아빠없는사슴.엄마없는사슴./폐에바닷물이찬사슴.바다가된사슴.자식잃은사슴/(…)/이계절에일어난참혹한사건으로사슴은태어났다.누군가는죽고,사슴은태어났다.나는죽은이의가슴을사슴이라고부른다./사슴은태어나자마자눈뜨고,일어섰으며,매일나를어디론가데려가려한다.나는그여정을가슴에서사슴까지,라고한다.(「가슴에서사슴까지」부분)

시인은또한“뽑힌나무를보면그냥지나칠수없”(「봄밤의낮잠」)는사람이다.“모두가지구를떠나고버려진지구에나혼자”(「끝내버려진지구에나혼자누운꿈」)살아남은자로서시인은“어느날한순간에흠뻑젖어버린아이들”(「마중왔던아이들」)의손과“그바다에서나를불렀던목소리들”(「목소리들」)을놓치고만아픔을이야기한다.“생에대한아쉬움조차가져보지못한나이”(「외계인이우리가정을지켜냈어요」)에“이유도모른채꺾인”(「바람이친텐트」)아이들과“인피를뒤집어쓴짐승들”의세상에서전쟁과학살로희생된“선량한사람들”(「햇빛」),그리고세상곳곳을떠돌고있을무고한희생자들의넋을호명하며끊임없이‘미안하다’고말하는시인의마음이한없이애잔하고눈물겹다.

날한번도만난적없이떠나간사람들에게/미안합니다,잘해주지못해서./(…)/내머리를모자처럼,몸을셔츠처럼,다리를바지처럼,발을구두처럼공중에벗어놓겠어요./내손을손수건처럼공중에건네겠어요./단한번도못만나고떠나보낸이들에게미안합니다./단한번도잘해주지못해서미안합니다./창문속으로빈방이뛰어내리듯,/눈빛속으로사람이뛰어내리듯,/오늘도미안합니다.그리고고맙습니다.(「오늘도사과」부분)

우리가“잠든사이지구상에서또몇명이나떠났을까”(「애도일기」).사랑의대상을잃어버린채“뼈만앙상한세상”(「물고기와산다는것」)을살아가며시인은“서로잊고떠돌던새털같은나뭇잎들이한날한시한곳에다시함께모이는꿈”을꾸며“죽은사람산사람다같이살아가는이시집속을한걸음도나가지않기로”(「나무는나뭇잎이꾸는꿈,나는네가꾸는꿈」)다짐한다.이애달픈사랑의힘으로시인은“지구상의모든사람들”과“손을꼭잡고/꼭손을잡고”(「꽃다발을주고받듯」)세상의모든슬픔을위로하는시를써나갈것이다.그런데“그저눈물만나는”세상에서“눈썹도없는개구리”(「누군가에게」)가되어울고있는이여린시인의“오늘도멈추지않는눈물”(「꽃다발을주고받듯」)은누가닦아줄것인가.

네가떠다준물이/내입술을적시고온몸구석구석에스미는건/키스를하는것./너와내가공원에서서로입김을불어넣으며/언손을비비는건,뜨거운혀처럼빨간/손과손을맞대고엎치락뒤치락서로쓰다듬는건/키스를하는것./그러다가서로를아무말없이끌어안는건/너와나의몸이윗입술아랫입술처럼/하나의커다란입술이되는것./침묵의입술이되어달리는시간을잠시돌려세워놓고/키스를하는것./마음에없는말을내뱉었던내가/없는너와빈길을걷는건/키스를하는것(「키스를하는것」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