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박형준 시집)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박형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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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자신의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모든 테두리는 슬프겠지”
쓸쓸하고 누추한 삶을 위로해주는 환한 슬픔의 노래
한국 시단의 빼어난 서정 시인으로 손꼽히는 박형준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1991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한국 서정시의 전통을 가장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은 내년에 등단 30주년을 맞는 중견 시인으로서 서정 시단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다. 시간의 깊이가 오롯이 느껴지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감각적 이미지와 서정적 감수성이 어우러진 세계를 펼쳐가면서 암담한 삶에 꿈을 불어넣고 아픈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위로의 노래를 나지막이 들려준다. 특히 섬세한 감성과 “미립자 감각의 탄성(彈性)”(이원, 추천사)이 돋보이는 온유한 시편들이 깊은 울림과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박형준의 시는 맑고 고요하다. 가슴을 저미는 쓸쓸한 풍경 속에서 삶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가녀린 존재들의 숨 냄새를 살피며 “표현할 수 없는 슬픈 소리”(「튤립밭」)로 써내려가는 그의 시는 “애타는 마음도/너무 오래되면 편안해지”(「밤의 선착장」)고 삶의 숙명과도 같은 상처와 “슬픔도 환할 수 있다는 걸”(「저녁나절」) 보여준다. 시인은 “꽃에서도 테두리를 보고/달에서도 테두리를 보는”(「테두리」) 예민한 감각으로 가냘픈 생의 미세한 떨림을 응시하며 삶의 “그 진동을 담은 시를/단 한편이라도 쓸 수 있을까”(「비의 향기」) 묻는다. 그리고 “수천 미터 심연”(「바닥 예찬」)의 아득한 바닥, “성냥불만 한 꿈을 살짝 댕기던”(「쥐불놀이」) 아련한 기억의 창을 통해 현재의 삶을 돌아보고 먼 미래의 시간을 떠올리며 스스로 깊어진다.
시력 30년의 연륜이 쌓인 만큼 차분한 시적 성찰이 두드러지는 이번 시집은 “달, 별, 바람, 나무, 고향 같은/닳고 닳은 그리움”(「은하」) 속에서 “우리가 아직 물방울 속에서 살던 때”(「우리가 아직 물방울 속에서 살던 때」)의 소중한 기억들을 찬찬히 더듬어가는 고독한 산책자의 명상록과도 같다. 주로 저녁나절, 동네 천변이나 산책로, 재개발지역의 빈터를 느릿느릿 거닐며 골똘히 “생각이란 걸”(「토끼의 서성거림에 대하여」) 하며 사색을 즐기는 시인의 모습이 시집 곳곳에 고즈넉한 풍경으로 서 있다. 기억과 현재 사이에서 늘 “상처들이 많”은 “발밑을 보며”(「발밑을 보며 걷기」) 길을 걷는 시인은 “언제부터인가 삶에서 서성거림이 사라졌다는 생각”(「토끼의 서성거림에 대하여」)에 젖기도 하다가 서럽고 눈물겨운 도시 변두리의 삶에도 “가볍게 가볍게 발바닥으로 풀잎처럼 들어올리는 세상이 있다는 것”(「동네 천변을 매일」)을 깨닫는다.
시인은 오래전 “아름다움에 허기져서 시를 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동트는 새벽이 무작정 희망이 되지 못하”(「나비는 밤을 어떻게 지새우나」)는 허망한 삶의 무늬들을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채색하는 그의 시는 사물에 깃든 “잠자는 말”(「달나라의 돌」)들을 깨우고 “마음속에서만 사는 말들을 꺼내주는/따뜻한 손”(「이 봄의 평안함」)과 “내 안에 쓸쓸하게 살다 간 말들을 받쳐줄/부드러운 손”(「은하」)이 되기도 한다. 박연준 시인이 발문에서 “등이 순한 짐승처럼 빛을 베고 자는 사람”이라고 비유했듯이, “꽃 앞에 서면 마음이 어려진다”(「오후 서너시의 산책 길에서」)고 할 만큼 여린 심성을 지닌 시인은 불현듯 “이제까지 시를 너무 쉽게 써왔다는 자책”(「시선」)에 빠진다. 하지만 우리는 박형준의 시가 깊은 시심(詩心)으로 누추한 삶의 아픔과 슬픔을 견디어내며 세상의 그늘을 환하게 밝혀주리라는 것을 안다.
저자

박형준

박형준(朴瑩浚)시인은1966년전북정읍에서태어나1991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나는이제소멸에대해서이야기하련다』『빵냄새를풍기는거울』『물속까지잎사귀가피어있다』『춤』『생각날때마다울었다』『불탄집』,산문집『저녁의무늬』『아름다움에허기지다』,평론집『침묵의음』등이있다.현대시학작품상,소월시문학상,육사시문학상,유심작품상등을수상했으며현재동국대학교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제1부ㆍ달나라
달나라의돌
봄비지나간뒤
빛이비스듬히내리는데
나무속의새
아침의추락
비의향기
저런뒷모습
아침인사
은하
달빛이참좋은여름밤에
쥐불놀이
부탄두루미
나비는밤을어떻게지새우나
오후서너시의산책길에서
해바라기
이봄의평안함

전철의유리문에비친짧은겨울황혼
저녁나절
득도

제2부ㆍ패턴
동네천변을매일
불광천
패턴
밤의선착장
튤립밭
아침이너무좋아
토끼의서성거림에대하여
발밑을보며걷기
그의창문을창문으로보면서
강변의오솔길
아스팔트에서강물소리가나는새벽
교각
혼인비행
산책로벤치에앉아있는노인들
죽은매미의날개
바닥예찬
아기고양이의마음
빈터
겨울호수를걷는다
느리게걷는밤산보길

제3부ㆍ은하수
우리가아직물방울속에서살던때
귀향일기
백년도마
아기별자리
나는달을믿는다
칠백만원
들녘에서
겨울서리
겨울귀향
세숫대야
백일홍에대해이야기를하고싶다
은빛창문
은하수
달콤한눈
가을이올때
나무속유리창

제4부ㆍ테두리
외성(外城)
반사광
여행의꿈
인도기차여행
태양속으로떠나간낙엽
발리슛
돛이어디로떠나갈지상상하던날들
눈빛
실보고메로
빙하나이테
어느북장인과의인터뷰
뒤란의시간
시선
테두리
둑방에서쓴일기
눈망울

발문|박연준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박형준시인과의짧은인터뷰

-내년이면등단30주년입니다.30주년을앞두고7년만에일곱번째시집을출간하게되셨어요.소회를듣고싶습니다.
올해가30년이안되어서다행입니다.제삶에서는기념할만하지만시를쓰는게개인적차원을넘어서는부분이있을테니까요.시를쓸때나시집을낼때나다음번에는달라지는게있겠지기대를합니다만,결과적으로매번똑같습니다.다만별다를게없는반복에서저나름대로배우는게있고,7년만에일곱번째시집을출간하게되어편안과체념가운데거짓말조금보태면어린아이처럼자유로운게있습니다.

-시인께서는일상을어떻게보내시는지궁금합니다.
저는성향적으로뭐든지되풀이하면서그전보다조금내가나아지는면이있지않을까생각하는편입니다.이번시집과관련해서는걷는것,자전거타기가도움이되었습니다.자전거를타고국토종주하는게버킷리스트중하나이지만낯선것에대한두려움이많은편이라단시일내에실행하기는어려울듯합니다.때가되면자전거타고국토종주하다가불현듯고향의빈집에가보고싶습니다.걷거나자전거를타고산책을하다보면낯선길이나사물,작은동물들과만나게되고어떤기억이나상상이일체가되는순간이찾아옵니다.되풀이되는행동가운데불현듯나타나는갈망이나그리움.그런실제풍경과체험이하나가되는방식에대해자주생각합니다.

-이번시집을엮으면서가장중요하게생각하신부분이나특징은무엇인가요?
7년이란시간이흘러서일까요.그기간동안삶의중요한변곡점들이있었습니다.기성세대가될수밖에없었으니까요.기성세대라면기성세대로서갖추어나가야할것들을현실적으로마련해야했고,따라서세속화되어가는과정이었어요.거기서뭔가를찾아야했습니다.그런가운데단순함이내안에배어들기시작했습니다.특별히뭔가를의식하면서시를쓴것같지는않은데,시집을정리하면서그단순함에대한나름의성찰과고민의흔적을발견하였습니다.그리고저자신에대한한계를어느정도인정하고사물과생명체들과대화하는법을걸음마하듯이배우려고한점이있어그나마다행이라고생각합니다.

-이번시집에서특별히애착을느끼는작품이있다면소개와이유를부탁드립니다.
쓴것들에는쓰려고했는데쓰지못한것들이있지요.정작시에서는하고싶은말을하지못하는게시의이상한법칙이고묘미인듯합니다.저는원래이번시집제목을‘서성거림과강물사이’라고지으려했습니다.그런시제목이나시구절도없고뭔가구체적이지못해서포기했습니다만서성거림과강물사이에,에밀리디킨슨의시구절을빌리면널빤지같은걸대어보려했습니다.“머리맡에는별/발밑엔바다”(에밀리디킨슨「널빤지에서널빤지로난걸었네」)가있는것같이불안한채로미숙한채로다음걸음을걸어보려했죠.강물을바라보는것은편안하지만그안엔서성거림이있고불안과슬픔이있습니다.그런걸바라보고내안에서생겨나는말을자연스럽고단순하게해보고싶었습니다.뜻을두고쓴게아니라그냥느끼는대로사물과나사이에널빤지를만들듯써보고싶었습니다.그런시로작은동물들을소재로한「밤의선착장」「토끼의서성거림에대하여」「눈망울」같은시가해당되지않나생각합니다.밤의선착장에서나란히붙은채로강물을바라보는오리둘,산책로의한복판에서서성거리는토끼,자전거에치인참새의눈망울과그참새를바라보는소년의눈망울……

-앞으로의활동방향이나삶의계획등이궁금합니다.
기회가되면산문집과서평집을묶고싶습니다.대부분흘러간옛날일이나,읽은책에대한저나름대로의생각을적은글이지만그게제가세상에참여할수있는대안중그나마제일나은게아닌가생각되네요.글을잘정리하는편이아니라서일단컴퓨터여기저기에흩어진글을모아볼작정입니다.책을묶는건그뒤에나생각해보겠습니다.우선눈앞에닥친일을저나름대로성실하게하다보면나중에삶의계획이나행로가어떻게든펼쳐져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