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 창비시선 446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 창비시선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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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언덕엔 마음을 기댈 나무 한그루 없지만
그래도 우린 충분히 흔들릴 수 있지”
신동엽문학상 수상 시인 안희연 신작 시집
살아 있어서 울고 있는 존재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미더운 손길

*본 보도자료에는 시인과의 간단한 서면 인터뷰 내용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쳐온 안희연 시인의 세번째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등단 3년 만에 펴낸 첫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창비 2015)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고, 2018년 예스24에서 실시한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시 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요즘 젊은 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이다. 창작 활동뿐만 아니라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부치는 ‘304 낭독회’ 등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대중적으로 친숙한 시인이기도 하다.
소시집으로 묶은 두번째 시집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현대문학 2019)에 이어서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더욱 깊어진 시적 사유와 섬세한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서정과 감성의 다채로운 시세계를 선보인다. 삶의 바닥을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슬픔을 헤아리는 “깨달음의 우화와도 같은”(이제니, 추천사) 뜨겁고 간절한 시편들이 공감을 자아내며 가슴을 깊이 울린다. ‘2020 오늘의 시’ 수상작 「스페어」를 비롯하여 57편의 시를 3부로 나누어 실었다.

안희연의 시는 “쇠구슬 같은 눈물”(「연루」)이 차오르는 슬픔의 자리에서 태어난다. “이렇게 많은 물웅덩이를 거느린 삶”(「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라니. 시인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려는 심정으로 시를 쓴다. 돌이켜보면 모두가 가엾은 존재들의 슬픔을 끌어안으며 대신해서 울어주고,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얻은 이야기들”(「구르는 돌」)을 그들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온 우주가 나의 행복을 망치려”(묵상」) 드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아 있는 자체가 고통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은 견디기 위해 존재하는 것”, 그러니 “그게 무엇이든 무엇도 아니든” “계속 가보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구르는 돌」)다. 그리하여 시인은 “더럽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열과(裂果)」) 다시 시작하고, 실패와 절망 끝에 남겨진 “나머지의 나머지로서의 나”(「스페어」)를 사랑하며 ‘지금-여기’에서의 삶을 살아가려 한다.
시인은 그토록 오랜 세월 “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가라앉는 동안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시인의 말)고 말한다. 그러나 “미로는 헤맬 줄 아는 마음에게만 열리는 시간”(「추리극」)임을 알기에 저 너머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계단”(「스페어」)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절망과 슬픔 속에 묻히기에는 “너무 커다란 우리의/영혼을 조망하기 위해”서 “뒤로 더 뒤로” “멀리 더 멀리 가보기로”(「자이언트」) 한다. 시인은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것”이라 자탄하지만 조금도 슬퍼하지 않는다. 슬퍼하다니. “물거품처럼 사라질”(「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거야」) 이야기일지라도 절망 뒤에 오는 더 큰 절망을 기꺼이 껴안으며 “최선을 다해 산 척을 하는”(「업힌」) 마음으로 삶을 견디어가는 시인의 노래는 오히려 삶의 “고요한 맹렬”(양경언, 해설)이자 희망일 것이다.
저자

안희연

2012년창비신인시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너의슬픔이끼어들때』,『밤이라고부르는것들속에는』,『여름언덕에서배운것』과산문집『흩어지는마음에게,안녕』,『당신은나를열어바닥까지휘젓고』를썼다.세계의비밀을예민하게목격하는자로살아가기위해,오늘도촛불을들고단어의집으로향한다.

목차

제1부
불이있었다
소동
굴뚝의기분
업힌
내가달의아이였을때
면벽의유령
오후에
망종
선잠
미동
마중
연루
알라메다
사랑의형태
추리극

제2부
자이언트
여름언덕에서배운것
빛의산
역광의세계
내가달의아이였을때
내가달의아이였을때
거짓을말한사람은없었다
불씨
표적
지배인
단란
폭풍우치는밤에
가끔의정원
에프트
나는평생이런노래밖에는부르지못할거야

영혼없이
풍선장수의노래
생선장수의노래
내가달의아이였을때
실감
아침은이곳을정차하지않고지나갔다

제3부
반려조(伴侶鳥)
그의작은개는너무작아서
덧칠
앵무는앵무의말을하고
검침원
양기르기
캐치볼
태풍의눈
측량
묵상
스페어

호두에게
알혼에서만나
나의규모
나의투쟁
구르는돌
슈톨렌

열과(裂果)

해설|양경언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안희연시인과의짧은인터뷰

-‘핀시리즈’로선보였던소시집을포함하면세번째시집인셈입니다.출간소회를듣고싶습니다.
시집이나오는일은회를거듭한다고해서익숙해지는일은아닌것같아요.여전히떨리고,걱정스럽고,아득합니다.첫시집을묶을때정말많이울었던기억이있는데,이제다신그렇게울일이없을줄알았거든요.그런데‘시인의말’마지막문장을쓰자마자눈물이터져나와서스스로도많이놀랐습니다.이제막걸음마를시작한시집이어떤방향,어떤속도,어떤온도로걸어가어떤이들을만나게될지모르겠습니다.다만읽어주시는모든분들에게감사할따름이에요.

-〔문학3〕기획위원,304낭독회일꾼등평소바쁘게지내시는걸로알고있습니다.대외적인활동을꾸준히하는것과동시에시를쓰는일상은어떠한지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인해올봄부터는대외활동이많이줄었고요.보통집에서한끼식사를정성들여해먹거나동네를산책하는일로하루를보내곤합니다.시쓰는일은혼자해야하는일이고상당한고립을요하는일이다보니외로울때가많아요.그럴땐또사부작사부작즐겁게할수있는일들을찾아적극적으로참여하는것같습니다.안쪽과바깥쪽의균형을잘맞추려고노력하는편이긴한데요,그균형을유지한다는건언제나어렵단생각이드네요.

-‘시인의말’중“나는평생이런노래밖에는부르지못할것이고,이제나는그것이조금도슬프지않다”라는문장이인상적이었습니다.이와관련하여,이번시집을엮으면서가장중요하게생각하신부분이나특징은무엇인가요?
시집제목처럼,독자분들을‘여름언덕’으로초대하고싶었습니다.첫시집의마지막시가「기타는총,노래는총알」인데거기이런구절이있어요.“절벽이라고한다면갇혀있다/언덕이라고했기에흐르는것”.고립된절벽이아니라흐르는언덕이라는점이제겐중요했어요.우리삶의기반이,반복되는하루의끝이매순간절벽위라면그건너무힘겨운일이잖아요.죽음의기억에지배당할때,세상이이보다더나쁠수는없을거란생각이들때,무의미와권태,슬픔이제집인듯맹렬히들이닥칠때‘나는절벽위에서있는것이아니라언덕을오르고있다’고생각해보는거죠.여름언덕을오르는일은숨이턱까지차오르고,이마에땀이송골송골맺히고,무더위와목마름,그밖의모든부정적인감정들과싸우는일일테지만,언덕에오르면시원한바람이불고머리칼이흩날릴테니까.언덕위에서세계를바라보다보면,무거웠던것들이조금은옅어지기도하고,다시힘을내언덕을내려갈시간이찾아오기도하니까요.
부디이시집이여러분들의언덕행(行)에좋은친구가되어주기를바라는마음입니다.시집을덮은뒤엔틀림없이무언가달라져있기를바라요.그것이아주사소한,눈에보이지않는,변화일리없는변화라하더라도.

-이번시집에서특별히애착을느끼는작품이있다면소개와이유를부탁드립니다.
시집가장마지막에수록된「열과」라는시를꼽고싶습니다.어쩌면이한권의시집은「열과」의첫구절,“이제는여름에대해말할수있다”라는문장에도착하기위한여정이아니었나싶습니다.시집안에는들끓는마음을가진,어느것도용서할수없는,한없이공허한채로언덕을걷고있는한사람이수시로출몰하지만,시집의마지막장에도착했을땐그가좀가벼워져있기를바랐습니다.읽어주시는독자분들도함께가벼워질수있기를바라요.

-앞으로의활동방향이나삶의계획등이궁금합니다.
계속쓰는사람의자리에있겠다는다짐외엔어떤말도사족일것같습니다.언덕을힘겹게오르는사람들에게시원한생수를내어줄수있는손.머리칼을흔드는바람.의자,혹은나무그늘같은시를쓸수있도록노력할게요.시집을만나주시는분들에게미리깊은감사를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