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쬐기 - 창비시선 470

햇볕 쬐기 - 창비시선 470

$9.00
Description
“잠시 무너지고 나면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슬픔의 뺨을 다정히 매만지는 따사로운 손길
가장 단단한 어둠을 녹이고 태어난 가장 환한 안녕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조온윤 시인의 첫 시집 『햇볕 쬐기』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삶을 향한 사려 깊은 연민과 꾸밈없어 더욱 미더운 언어로 온화한 서정의 시 세계를 보여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어둠을 빛 쪽으로 악착같이 밀며 가”(안희연, 추천사)는 시편들을 통해 세계 속 선함의 자리를 한뼘 더 넓히고자 한다. 살아 있기에 견뎌야 하는 괴로움에 주저앉더라도 우리에게는 서로를 일으켜줄 손이 있음을 끝까지 기억하려는 시인의 “지극한 선량함”(나희덕, 해설)은 체념과 위악으로 가파르게 흐르기 쉬운 마음을 단단히 붙든다. 고립이 일상이 된 지금, 『햇볕 쬐기』는 타인의 온기를 잊지 않길 바라는 가장 순하고 정한 진심으로 내놓은 시집일 것이다.
저자

조온윤

광주에서태어나2019년[문화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문학동인‘공통점’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제1부
날개뼈/묵시/휴일/중심잡기/원주율/그림자숲/빛과산책/단체관람/다른차원에서만나요/토르소/회심

제2부
그림자무사/더빙/사랑의기원/불행연습/증후군/반려식물/유리행성/끝과끝/백야행/콘크리트산책법

제3부
공통점/오존주의보/적정온도/계절산책/시간의바다/마지막할머니와아무르강가에서/주변인/연소시계

제4부
검은돌흰돌의시간/세계관/시월의유령들/밤의마피아/밤도밖도밝던/계단의방향/파수꾼/귤

제5부
별/먼곳/십오행/십오행을쓰기위하여/낫크리스천의아침식사/공복산책/설인/무족영원

해설|나희덕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우리가손을잡고원을이룰때피어나는빛
고통의세계속에서발명한원주의방식

조온윤의시를읽다보면인간의‘손’이그리는선함의풍경을곳곳에서마주할수있다.손은넘어진이를부축하고떨고있는이를쓰다듬는다.그리고인간이서로를연결해원을이루고자할때가장먼저맞잡게되는것이기도하다.원속에서“내왼손을잡은사람과/내오른손을잡은사람이손을놓지않으며/나를중심으로만들어줄때”(「주변인」)시인은손이야말로인간안의한줄기선량함의증거이며교감과공존의바탕임을알게된다.그래서“시간의횡포에무릎꿇고권태의칼날에찔리면서도”(추천사)타인을향해뻗는손만큼은잃지않으려노력한다.손의윤리에동참하는것이삶을좀더견딜만하게만들어준다는사실또한알기때문이다.그러므로시인이혼자의슬픔을어르기위해가장먼저내미는것도바로‘손’이고,“죽은듯이보내던인고의시간”(「콘크리트산책법」)을통과해우리앞에도착한시인의손은이제“햇볕에몸과마음을내어말리는고즈넉한시간”(해설)으로우리를데려간다.

『햇볕쬐기』는한사람도놓치지않고무사히고통의세계를건너기위한조온윤식방법론이다.“모두가조금씩만아파주면/한사람은아프지않을수도있지않냐고”물으며“한사람을위해팔을꺾”어“포옹”(「원주율」)의원을만드는사람들을보여주는시인은‘혼자살아남기’가아니라‘함께살아가기’를성실하게꿈꾼다.그곧고진실한마음을따라원을이룰때,그렇게“슬픔다음에올것”(「검은돌흰돌의시간」)을향해나아갈때비로소새롭게피어나는빛이있다.이눈부신빛이다른곳에서오는게아니라함께걷는우리로부터비롯되는‘햇빛’임을깨닫게되는순간이시집을덮을때쯤찾아온다.“눈을감게하지만손을더듬어/다른손을찾게도”(「백야행」)하는빛덕분에우리는어둠속에서서로의손을더욱꽉잡게될것임을,손에서손으로이어지고전해지는온기는우리가서로를더가까이보듬도록도울것임을『햇볕쬐기』는나직하게전하고있다.


책속에서

네가길바닥에웅크려앉아
네몸보다작은것들을돌볼때
가만히솟아오르는비밀이있지

태어나한번도미끄러진적없는
생경한언덕위처럼

녹은밀랍을뚝뚝흘리며
부러진발로걸어가는그곳

인간의등뒤에숨겨두고
데려가지않은새들의무덤처럼
―?날개뼈?전문

왼손과오른손을똑같이사랑합니다

밥먹는법을배운건오른손이전부였으나
밥을먹는동안조용히
무릎을감싸고있는왼손에게도
식전의기도는중요합니다

사교적인사람들과식사자리에둘러앉아
뙤약볕같은외로움을견디는것도
침묵의몫입니다

혼자가되어야외롭지않은혼자가있습니다
―?묵시?부분

네모난빛속에서나의오늘은말라갑니다
혼자서만휴일을맞는내가
가여워보이지않았으면좋겠습니다

이외로움이나쁘지만은않습니다

언젠가는월요일이올까요

나는창세를기다리는풍경화입니다
―?휴일?부분

환한빛에관한일이라면잘알수있다
빛은눈을뜨게하지만
눈을멀게도하지
빛은눈을감게하지만손을더듬어
다른손을찾게도한다

눈을감아야볼수있는꿈에서는
그손이빛이었구나
그빛을잡아보려고우리는오래도헤매었구나
―?백야행?부분

시간은
부서지기위해지어지고
지어지기위해부서지는모래성같았다

그런마음으로

종점까지걸었다
종점이있다는사실이우리를끝까지걷게했다
잠시무너지고나면끝까지
걸어갈수있었다
―?콘크리트산책법?부분

슬픔을정원처럼가꿀줄아는사람은주변에없어
그들의멋진텃밭과저녁마다피는웃음을가진적없어
그런사람들은그런사람들끼리
주변을만들고있으니까

(…)

지금내왼손을잡은사람과
내오른손을잡은사람이손을놓지않으며
나를중심으로만들어줄때

내주변에있는모두와내주변에없는모두의
궤도가다르지않다는걸알게되었을때더이상
나는바깥에있지않았다
―?주변인?부분

걸어가야할마땅한이유도없이
걸어가고있었다
하염없이살아가야하는이유에대해
한가지대답을만나고싶었지

(…)

이봐,
우리는무엇으로살고자하는거지?
삶이아니면배고픈일이없고
삶이아니면싸우는일이없고
삶이아니면슬퍼하는일하나없다
그런데왜아직도대답을내놓지않는거지?
―?공복산책?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