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 (이설야 시집)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 (이설야 시집)

$11.00
Description
“모두 하늘을 보기 위해 물구나무서는 밤”

지금의 부조리를 직시하며 완성되는 시의 정면
밑과 하늘을 뒤바꿔 다다르는 어둠의 너머
2011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줄곧 소외되고 억압받는 민중의 처절한 음성에 귀 기울여온 이설야 시인의 신작 시집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첫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창비 2016)로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 박영근작품상을 받은 뒤 펴내는 세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죽음이 도사린 비극적 삶과 부조리한 현재를 냉철한 시선으로 직시하며 “착취와 디아스포라가 기록이 아니라 체험이 되는”(신용목, 추천사) 시세계를 펼쳐낸다. 능숙하고 절제된 언어와 깊고 확장된 사유로 이 세계의 아래로부터 들끓는 고통의 신음을 증언하고 비정한 문명에 저항하는 시편들이 리얼리즘 시의 일면을 갱신한다.
저자

이설야

李雪夜
인천에서태어났다.2011년「내일을여는작가」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우리는좀더어두워지기로했네」「굴소년들」이있다.고산문학대상신인상,박영근작품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ㆍ당신이없어도되는세계

저편
공중
심지음악감상실
이민자들
난민들
안개섬
붉은달
백색
백색그림자
하이드비하인드
도마뱀의고백
유령벌레들
봄여름가을겨울

제2부ㆍ공중은한숨을걸어놓기좋은장소
봄의감정
저수지

편집회의
비둘기와인쇄소

감열지
입없는얼굴들
개미그림자
빨간불
리셋
개미짐
증상들
위험고압가스

제3부ㆍ나는몇개의거울을들고서달렸다
마트료시카
상자

다국적식탁
벽속의또다른벽돌
자세
배달소년들
열람
플라스틱아일랜드
물고기극장
설탕과계절노동자
주민설명회
눈송이들

제4부ㆍ어제의얼굴을다빠져나올수가없었다
월요일의시

무국적바람
북경나비
웅덩이,여자
가족모임
사라진것들
그림자와재
그리고
개를수식하는말들에관한메모
텔레비전
걱정인형
지구위의지구본
생장등
마트료시카

해설|강경석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이설야의시는도시문명의어둠을깊숙이파고드는“안개등”(「저편」)이다.빛이닿지않는도시의비좁은골목과검게닳은아스팔트,누구도멈춰서는법없는지하상가를향해불을밝힌다.그불아래낱낱이드러나는것은“여자의얼굴을때리고있”는“남자의커다란손”(「심지음악감상실」),“오토바이와함께쓰러”진배달소년(「배달소년들」),“바닥과하나된자세로엎드”린노숙자(「자세」)같은이들이다.더욱은밀하고날렵해진도시의폭력에베이고쓰러지는존재들을응시하는시인의눈에도시는휘황찬란한낙원이아니라매일누군가생사를헤매는위태로운곳이다.결국한존재가사라진다해도그런것따위야없어도된다는듯태연하게작동하는세상에서“먼지처럼둥둥떠다”(「입없는얼굴들」)니다바닥에가라앉을수밖에없는존재의설움을시인은정직하게받아쓴다.손쉽게분노하거나연민하지않는그의언어는너무나만연해서오히려보이지않는착취의현실을가감없이해부한다.그리고시선을더멀리두어역사의폭압에의해“뚫린심장의구멍”(「이민자들」)들을환기하고“물고기들의머리를둘로만든”(「증상들」)물질문명의오만과독선을차갑게비판하는데까지이른다.
시인은관찰과기록의자리에만머무르지않는다.어둠이고인곳에불을밝히다가도“시를쓴다는것”이“죄를짓는”(「웅덩이,여자」)일이되지않도록잠시불을내려놓고직접어둠속으로걸어들어간다.“더이상내려갈수도없는/밑으로내려가/밑의/밑”(「밑」)이되어버린존재들의고통과절망을바로곁에서함께하기위해“바닥의바닥까지내려가야한다고”(「입없는얼굴들」)스스로에게되뇐다.이결백한연대의마음은밑을이루는존재들에대한혈연의식으로거듭난다.시인은그간이름을박탈당하고부재를강요당한이들을하나하나호명하며그들과운명을나누고자한다.다른땅에뿌리내려야했던만주국의조선인과파독간호사들(「이민자들」),가부장제의그늘밖으로도망치는카자흐스탄여자(「난민들」)와“생이일찌감치거덜난”(「다국적식탁」)계절노동자는언어라는뜨거운피로시인과굳게맺어진다.이때‘혈연’은기존의배타성을벗어던지고“우리가우리를넘”(「벽속의또다른벽돌」)어더크고열린‘우리’로거듭나게하는가능성으로전환된다.시인은이새로운혈연의식과함께밑바닥공동체의일원으로서부단히“절망과절벽”(「난민들」)너머를써나간다.

밑이하늘이되는구원의상상력
마침내빛을얻는밑의얼굴들

이러한이설야의시쓰기는약자의현실에동참하는것에만족하지않고그현실을타개하기위한생생한시적상상을계속하며독자에게강렬한희망의이미지를발신한다.이설야의시에서밑과하늘은자꾸뒤바뀐다.고개를들고하늘에서보아야할새와별을저수지의저깊은아래에서마주하고(「저수지」)하늘을보기위해서는물구나무서야한다고말한다(「밑」).이렇게밑과하늘을뒤바꿔보는상상은지금까지억압과배제,외면으로인해가라앉아있어야만했던모든존재를구조하기위한간절한시도일것이다.위아래만큼굳건한것없는이가혹한세계에서이러한상상없이는밑은영원히밑이어야만할지도모른다.그렇기에시인은스스로“중력을놓”(「밑」)쳐버림으로써밑을하늘로삼아그가시집속에서또박또박이름부른이들을어둠으로부터탈출시키고자한다.시인의절실한상상이현실이되어밑에서쏟아진이들이마침내빛을보는순간,몰개성의절망과고통에방치당한존재모두에게“저마다얼굴을찾아주”(강경석,해설)게될것이다.그순간을앞당기기위해시인은“예기치않은폭풍속에서흔들리”더라도“아직도착하지않은수많은얼굴을찾아서”매일쓸것이라다짐한다(시인의말).그러니다른미래는가능하지않다고비관하기쉬운지금,이시집을읽는것은끝까지희망을포기하지않는일이라고달리말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