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택배로 왔다 : 정호승 시집 - 창비시선 482

슬픔이 택배로 왔다 : 정호승 시집 - 창비시선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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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인생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간절한 기도
모두의 가슴에 잔잔한 위로가 되어 흐르다

등단 50주년 맞은 한국 서정시의 거장 정호승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과 따뜻함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으로서 독자들의 열렬하고도 꾸준한 사랑을 받는 정호승 시인의 신작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당신을 찾아서』(창비 2020)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열네번째 시집으로, 올해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가 더욱 뜻깊다. 펴내는 시집마다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가 될 만큼 시를 사랑하는 독자에게 시인의 입지는 확고하다. 이는 깊은 고뇌와 심오한 성찰을 모두의 가슴에 와닿는 평이한 시어로 풀어내는 한결같이 다정한 목소리 덕분이다. 외로움과 상처를 근간으로 보편적 실존에 이르는 고결한 시 세계는 이번 시집에도 여전하지만, 그 깨달음으로 독자를 이끄는 길은 한층 다채롭고 아름답고 따뜻해졌다.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이 시편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문학은 결사적이여야 한다”(시인의 말)는 시인의 태도 덕분이다. 반세기 이상 시를 쓰면서도 시인이 이 태도를 잃지 않았기에 우리는 각박한 이 세상을 사는 와중에 정호승의 시라는 한줄기 위로를 만끽할 수 있다.

시인이 보기에 우리 인생은 “사랑하기에는 너무 짧고/증오하기에는 너무 길다”(「모닥불」).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증오에 휩싸이고 그로 인한 번민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항상 괴롭다. 시인이 찾은 한가지 답은 ‘비움’이다. 시인은 “빈 의자는 비어 있기 때문에 의자”(「빈 의자」)이고, “빈 물통은 물이 가득 차도 빈 물통”(「빈 물통」)이며, “빈집은 빈집이므로 아름답다”(「빈집」)라고 말한다. 즉 원래 우리의 마음은 비어 있는 상태이므로, 본연의 상태를 유지해야 아름다운 삶이 가능하다는 뜻이겠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그 무엇도 두렵지 않으므로”(「독배」) 삶의 고통과 증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더이상 발버둥 치지 않겠”(「발버둥」)노라 다짐해보자는 것이다. 그러한 모티프로 바람에 몸을 내맡겨 어디로든 떠다니는 ‘새’나, 항상 나누는 삶을 살았던 ‘성 프란치스코’의 비유가 시집 이곳저곳에 배치되어 있다.

시집 중간중간 담담한 어조로 적어 내려간 시인의 일화들 또한 무척 감동적이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눈시울이 달아오르는데, 임종을 지키지 못한 회한(「어머니에 대한 후회」)이나 나를 꾸짖을 어머니가 없음을 서럽게 깨닫는 장면(「회초리꽃」)은 다가오는 가을, 독자들의 마음을 한발짝 가족 곁으로 이끈다.

저자

정호승

1950년경남하동에서태어나대구에서성장했다.경희대국문과와동대학원을졸업했다.1972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동시「석굴암을오르는영희」가,1973년대한일보신춘문예에시「첨성대」가,1982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위령제」가당선돼작품활동을시작했으며‘반시(反詩)’동인으로활동했다.시집으로『슬픔이기쁨에게』,『서울의예수』,『새벽편지』,『별들은따뜻하다』,『사랑하다가...

목차

제1부
낙과(落果)
빈의자
낙곡(落穀)
빈물통
모과
탐매(探梅)
매화구경
부처꽃
꽃을따르라
매화불(梅花佛)
택배
마음이가난해지면
무심(無心)에대하여
낙수(落水)
흙탕물
소금
구근을심으며
죽순을먹으며
눈길걷는법
폭풍전야
고요를찾아서
김밥을먹으며
그리운서울역

제2부
가슴이슬프다
실연(失戀)
혈서(血書)
성소(聖召)
새는언제나옳다
새는눈물을흘리지않는다
뒷모습
눈사람
모닥불
제야(除夜)
헌화(獻花)
별똥별
별의꿈
이상(李箱)의집
낙석(落石)
낙심(落心)
천사의메모
천사의말
프란치스코의집
나에게하는질문
타종(打鐘)
대못
뒷골목

제3부
어제를기다리며
찻잔을들고
독배(毒杯)
낙법(落法)
당신을찾아갔을때
만리포
지금이순간에도
당신의그물
모자의생각
봉쇄수도원
희생양
조종(弔鐘)을울리며
속수무책으로
나는납치되었다
실패에대하여
자살혹은타살
가까스로
하룻밤
약속할수없는약속
헌신짝
집을떠나며
구름이많다
나의눈사람

제4부
녹명(鹿鳴)
문신(文身)
진흙
회초리꽃
걸레의마음
어머니에대한후회
아버지의기저귀
새에게묻다
전당포
가면
쥐구멍
나무에대한책임
짜장면의힘
시간의의자
바보
바보가바보에게
바보가되기위하여
은신처
족쇄
시간의뿌리
도끼에게
탈출
마음이없다

제5부
눈길
태풍
해질무렵
빈집
단체사진
마지막순간
구급차운전사가바라본새벽별
무꽃이지기전에
물이라도한잔
임의동행
부르심
시시각각(時時刻刻)
일몰
수의(壽衣)
마지막순간
발버둥
관뚜껑에대하여
마침기도
당신의눈물
용서에관한단상
마지막기도
나의소원
새해의기도

해설|이성혁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사랑하기에도너무짧은인생
비워내는마음에관한시편들

문학평론가이성혁이해설서두에서“죽음의세계를어떻게받아들여야하는가를사유하는것,다시말해죽는법을찾아내고자하는것이이시집이보여주는정호승시인의시적윤리다”라고말한대로이번시집에는‘죽음’에대한사유가유독돋보인다.시인은첫시의첫구절을“내가땅에떨어진다는것은/책임을진다는것이다”(「낙과(落果)」)라는아포리즘으로시작한다.“죽고싶을때가가장살고싶을때이므로/꽃이질때나는가장아름답다”(「매화불(梅花佛)」)라고까지한다.그렇다고시인이죽음을찬미하는것은아니다.흙탕물이죽음을의미하는더러운존재가아니라모를키우는생명의물이듯(「흙탕물」),오히려새로운생명의근원으로서죽음을생각하는것이다.그렇기에독자들은이시집도처에편재한죽음이면에서삶이꿈틀대는것을감지할수있다.이시집의죽음은사회적인수많은비극과도맞닿아있는데(「지금이순간에도」「구급차운전사가바라본새벽별」등)분노와절망가운데서도이시집은한바탕‘씻김굿’같은정화의체험을독자에게선사한다.
시인이보기에우리인생은“사랑하기에는너무짧고/증오하기에는너무길다”(「모닥불」).하지만우리는너무쉽게증오에휩싸이고그로인한번민에사로잡히기때문에항상괴롭다.시인이찾은한가지답은‘비움’이다.시인은“빈의자는비어있기때문에의자”(「빈의자」)이고,“빈물통은물이가득차도빈물통”(「빈물통」)이며,“빈집은빈집이므로아름답다”(「빈집」)라고말한다.즉원래우리의마음은비어있는상태이므로,본연의상태를유지해야아름다운삶이가능하다는뜻이겠다.“아무것도원하지않으면/그무엇도두렵지않으므로”(「독배」)삶의고통과증오에서벗어나기위해안간힘을쓰기보다는“더이상발버둥치지않겠”(「발버둥」)노라다짐해보자는것이다.그러한모티프로바람에몸을내맡겨어디로든떠다니는‘새’나,항상나누는삶을살았던‘성프란치스코’의비유가시집이곳저곳에배치되어있다.
시집중간중간담담한어조로적어내려간시인의일화들또한무척감동적이다.특히어머니에대한이야기는읽다보면자연스럽게눈시울이달아오르는데,임종을지키지못한회한(「어머니에대한후회」)이나나를꾸짖을어머니가없음을서럽게깨닫는장면(「회초리꽃」)은다가오는가을,독자들의마음을한발짝가족곁으로이끈다.

사라질때까지사랑하라
정호승이라는한국문학의자랑

지난8월22일,문재인전대통령은정호승시인의「내가사랑하는사람」을좋아하는시로직접소개한바있다.이시에는“햇빛도그늘이있어야밝고눈이부시다”라는구절이나온다.이또한슬픔과죽음이있어야기쁨과생명이찬란하다는시인의핵심사상을품고있는대목이다.『슬픔이택배로왔다』에서이러한사유는한발더나아간다.“죽음이후에도인간은사랑으로존재한다는사실”(「지금이순간에도」)을믿는다면,“사라질때까지사랑하는것을두려워하지않”(「일몰」)을수있다고.또한박준시인은“외로움에대해말할때그는다정했고고독을말할때그는단호했습니다”(추천사)라며정호승시인에대해이야기했다.다정한외로움과단호한고독이배어있어서,이번시집역시많은이들의가슴에더욱깊숙하게스며든다.외로움이가득한시절은늘사라지지않기때문이다.
이제“살아갈날보다죽어갈날이더많은”(「택배」)인생의황혼녘에이르렀지만,시인이“시를쓰는고통”(시인의말)마저기쁨으로겸허하게받아들이며한결같이순결한시심을끊임없이자아올릴것임을의심할나위는없다.그리하여삶의마지막순간까지도뭇존재를향한연민의마음과“용서할수없는것을용서”(「물이라도한잔」)하는지극한사랑으로‘눈물’의시를써나갈것이다.그렇기에등단50년을기념하는이번시집은어떠한대단원의완성이거나기념비라기보다는정호승이거쳐지나가는하나의정거장일뿐이다.그리고이정거장역시오래도록굳건히남아한국문학의자랑스러운역사가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