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가 쏟아진다 - 창비시선 484

코끼리가 쏟아진다 - 창비시선 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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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차가운 당신의 외딴 방에 봄을 켜겠습니다”
담박한 온기를 전하는 이대흠 서정의 새로운 출발
다정한 외로움으로 모진 삶을 보듬어 안는 사랑의 언어
삶의 구체적인 감각에서 길어올린 토속적인 언어와 구성진 가락으로 남도의 서정을 노래해온 이대흠 시인이 여섯번째 시집 『코끼리가 쏟아진다』를 창비시선으로 펴냈다. 2019년 제1회 조태일문학상 수상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창비 2018)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는 그간 생생한 사투리의 사용과 질박한 시적 서사로 남다른 문학적 성취를 이뤄온 시인의 시적 세계관이 한층 깊어져, 특유의 은은하고 아름다운 서정성을 유지하면서도 묵직한 통찰로 내면을 어루만지는 새로운 경향의 시편들을 선보인다. 시인은 “공기의 명랑함”을 사유하고 “별들이 뛰어노는 하늘 언덕”(「미래를 추억하는 방법」)을 그리는 한없이 자유로운 상상력 속에서 영원한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인 ‘당신’을 찾아가는 ‘사랑의 여정’을 펼쳐 보인다. ‘당신’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과 삶의 비의마저 담박하게 감싸 안는 “다정한 외로움”으로 가득한 이 시집을 읽으며 우리는 상실의 감정을 환대하고 긍정하는 넉넉한 마음을 배우게 될 뿐 아니라 “문학이란 그 무엇보다 사랑의 일임을 실감하게”(황인찬, 추천사) 된다. “마음을 다루고, 정서를 손질하고, 감정을 만져서” 빚어낸 따뜻한 언어와 “순한 온기로 지은 향기”(시인의 말)를 머금은 시편들이 자아내는 서정적 울림 또한 깊디깊다.
저자

이대흠

전남장흥에서태어났다.서울예술대학과조선대문예창작과를졸업하고,목포대국문과에서문학박사학위를취득했다.1994년[창작과비평]에「제암산을본다」외6편의시를,1999년[작가세계]에단편소설「있었다,있다」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눈물속에는고래가산다』,『상처가나를살린다』,『물속의불』,『귀가서럽다』가있다.현대시동인상,애지문학상,육사시문학상등을수상했으며,'...

목차

제1부
마음의호랑에서코끼리떼가쏟아질때
혈액이흐르는외투
그러나를수신하는방식
노랑을입을래요
감정의적도를지나다
슬픔도배달되나요
지렁이어머니
독취(獨醉)
아우슈빠이
어란
봄을입고
천관산억새

제2부
미래를추억하는방법
손톱
열일곱번째의외로움
구름의망명지
미로의감정
다시회진(會津)에서
슬픔의뒤축
어떤예방
뒤집어진공터에대한보고서
골목의후회
포장술의발달
우는남자는구입한슬픔에만족하려합니다
공원을믿지마세요
싱싱한폐허

제3부
에서의산책
구엄리사랑바위
당신의망설임에서는살구꽃향기가납니다
당신에게골목의오후를드리겠습니다
내가그날마량에간것은
53쪽열번째줄에있는사랑제조법
다정에감염되다
바람을입었던오후가있었다
그리움의공장은휴무가없습니다
당신의골목
내입술에게는당신의입술에게할말이있습니다
개울을건너자옥수수밭이나왔습니다
찰나
놀랍구나너의얼굴은
나는당신을빨강합니다

제4부
바람의건축술
슬픈악기
나는당신의내용에포함되지않습니다
이렇게될줄은몰랐어
흐느낌이소멸로가고있어서다행입니다
그리움의탈색현상에대한연구
버려짐을찬양함
투명한대지
정취암에서
에서의거리
이제는그리움에도장갑이필요합니다

바스키아의편지

해설|최현식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이별을경유해‘당신’과세상을품어가는사랑의여정

시인은줄곧차분한시선으로세상과사물을관찰하며대상의이면을발견해내는데,마찬가지로이별의상황속에서도품넓은감수성을빼곡히두른채사랑의실마리를찾아나간다.“이별을고백하고서야당신을사랑”(「바스키아의편지」)하게된시인은잃어버린‘당신’의목소리를찾고자애타는마음으로‘당신’을숱하게호명한다.그러나“당신의입에서는또말없음이쏟아”지고“침묵의폭설”(「당신의망설임에서는살구꽃향기가납니다」)만이내릴뿐,“나는당신의내용에포함되지않”(「나는당신의내용에포함되지않습니다」)는다는사실을깨닫고절망에빠진다.하지만시인은비극적인식에서멈추지않고“잊었다고생각했는데다시살아나는체온”(「그리움의탈색현상에대한연구」)으로“화를태워사랑을/끓이”듯“사랑을제조하는”(「53쪽열번째줄에있는사랑제조법」)일에정성을다한다.그렇게‘당신’을향한사랑이야말로“내안의깊은곳에숨어있는당신”(「그러나를수신하는방식」)을찾아가는가장확실한방법임을터득해나간다.

이때‘당신’을잃고외로움에몸서리치면서도시인의언어는관념화되거나일방적인감상성에젖지않는다.산뜻하고발랄한감각으로일상적인대상을평이하게표현하지만조금씩빗겨말하며깊은깨달음에가닿는번뜩이는기지가돋보인다.시인은“눈에보이는마음”과“살아있는말”(「나는당신을빨강합니다」)로‘당신’과소통하고자한다.그러나“나는꽃을주었지만그대가받는것은가시일수도있”고,“마음의거리는변질을부”(「에서의거리」)르기도한다는점을상기하며슬픔과외로움에젖어든다.시인은이처럼타자와의관계속에서“시소의양끝에놓인듯오르내리는”환대와비애의복잡미묘한감정들을섬세하게포착한다.이윽고안팎으로요동치고끊임없이술렁대는이“사랑의운동”(추천사)을담담히수행하며“감정의국경을침범하지않을방법을연구”(「마음의호랑에서코끼리떼가쏟아질때」)하고“막다른곳에이른미로의감정”(「미로의감정」)을헤아리며마음을다잡아낸다.

정제된시적언어로이룩한서정의놀라운경지

그리하여‘당신’에대한시인의환대는단지그리움의정념에만그치지않고‘다정’으로진화해나간다.“사랑하지않고는견딜수없는병의씨앗”(「다정에감염되다」)을마음에심은시인은삶의길어디에서“예측할수없는폭풍이일어”(「감정의적도를지나다」)나더라도“절대의아름다움”이며“내우주의중심”(「놀랍구나너의얼굴은」)인‘당신’의존재를곳곳에서감각하고“오답만으로채워진사랑도가능하리라”는믿음을되새긴다.마침내자신이‘당신’은잃었으나끝내“사랑을잃지는않았”(「감정의적도를지나다」)음을확인한시인은“나의파장과당신의파장이만나”(「그러나를수신하는방식」)“사랑의그늘이비로소몸을얻는순간”(「찰나」)에이른다.

시인은삶의고단함과애달픈서러움에서사랑의싹을틔우고보살펴끝내향기로운깨달음의열매를수확하는역설의미학을통해우리가살아가는세계의모습을한장의“사랑의지도”(「감정의적도를지나다」)로그려냈다.군더더기없는시적언어로새로운서정의세계를맞이하며“풍경을감춘말의뒤편”(「당신의망설임에서는살구꽃향기가납니다」)구석구석까지따스하게바라보는시편들에서우리는“아직은희미해서더욱밝아질‘다정’과‘사랑’의등불을애틋하게매다는중”(최현식,해설)인시인의모습을발견할수있다.따스한온기로세상을밝혀나갈이대흠서정의무궁무진한여로를기대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