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연의시에는“일상의틀안에슬픔을가둔채”살아가는“사람의슬픔”(해설)과사랑의아픔에대한고뇌의흔적이역력하다.“꽁꽁싸매고가슴깊이숨겨둔”(「화풀이로」)마음의상처들과“내삶이실례라는걸안다”(「에티켓」)라는참담한자괴감,“생각으로지은죄는/모두용서받고싶었다”(「그림자」)라고고백하는문장들이아프게다가온다.시인은이런아픔을숙명처럼담담하게수용한다.“사람이기에사람의일을하는것을슬픔이라고”(「도리어」)부를뿐이다.슬픔은단순한감정에서한발더나아가“태어나고싶어태어난것도아닌데”신은우리를“왜이렇게슬프게창조하셨을까”(「조가만가」)라는의문으로번지기도한다.
여기서마치슬픔의그릇인듯했던‘사람’은‘사랑’과만난다.슬픔이채워지고넘쳐흐르길반복하다마침내슬픔이일상이되고습관적인고통에무감각해질때,그빈자리에사랑이라는가능성이스며든다.하지만차마“버리지못할슬픔을사람의꼬리”(「도리어」)라고부르며몸에가둔채살아가는시인에게는사랑의감정또한슬픔으로얼룩져있다.시인에게사랑이란“우리의꿈이다르다는것”(「애인」)과“아무리안아도남의꿈엔갈수없”(「유지」)다는것을깨닫는과정과다름없다.“나는나를견디고너는너를견”(「애인」)딜뿐,서로의깊은속을나누지못하는관계는“차갑고외로운악수”처럼느껴지고,“사람은왜죽는거야”라는‘너’의질문은“사랑은왜죽는거야”(「새로운일상」)로서글프게겹쳐들려오기도한다.그럼에도시인은그저“너를바라보는게좋았다”(「새로운일상」)라고되뇌면서“다정이가장아픈일”(「도리어」)이되도록사랑을담아낸다.고통과상처가더욱깊어지리라는것을알면서도,“사랑해사랑해요말해도떠나갈걸알면서”(「윙컷」)도‘너’에게다가간다.
“나는너를안으려조금기울었다”
슬픔을담담하게품고다시금사랑을말하는시
어제나오늘이나별다를것없는무감한일상속에서시인은삶의진실이무엇인지끊임없이되묻는다.“슬픔의테두리를도려내”(「미래라는생각의곰팡이」)어평범하면서평화로운일상을꿈꾼다.물론삶도사랑도뜻대로되지만은않는다.“그렇게하지말아야지했는데/그대로한일”(「유니폼」)들을자책하기도하고,“구청에가야하는데시청에가는오늘”(「조가만가」)처럼길을잘못들기도한다.그러나시인은골똘한생각끝에‘나’를일으켜세우는깨달음을발견한다.끝없이지속되는삶의절망감속에서도“슬픔이꼭슬픔으로되돌아오진않는다”(「신도시」)는기대와“내일도살거라는믿음”(「조가만가」)을간직하며“사람이라면사람의일을잊지말아야겠다”(「도리어」)는다짐으로진실한삶을꾸려간다.
시인은등단직후본격적인창작활동외에도문학레이블‘공전’을창립하고패션화보와문학을접목한비주얼문예지『모티프』를발간하는등문학과세상을잇는다양한활동을펼치며시단의주목을받아왔다.슬픔으로가득찬이지구위에서,문학이라는궤도를따라수많은사람곁을‘공전’하는시인의원동력은무엇일까.정해진궤도처럼반복되는슬픔을사는‘사람의일’이란대체무엇일까.시인은이렇게말한다.“슬픔을가두는건사람의일이었고/사람을겹겹이쌓는건사랑의일이었다”(시인의말).사람과사랑이겹쳐질수있다고믿는“그런억지가희망이되는곳”(「무력의함」)에서시인은다시금사랑을시작하고삶을사랑할것이다.공전하는별이되어깊은슬픔으로침잠해가는세계를보듬어안을것이다.반복되는삶의궤도를즐거운마음으로이탈해보고싶은이들,슬픔을사랑할준비가되어있는모든이들에게이시집이반가운노크소리로다가가길기대한다.
시인의말
어떤그릇은그릇의용도로쓰이지않는다
어떤용도는제용도를가둬주기도한다
사람이꼭사랑할필요가없듯이
사랑이꼭사람의이유일필요도없다
슬픔을가두는건사람의일이었고
사람을겹겹이쌓는건사랑의일이었다
2023년겨울
유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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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집의영혼은보이지않는비닐로감싸여있습니다.바라보지않을때시집은미세하게꿈틀거립니다.따라서시집을머리맡에두고잘경우간밤에부스럭거리는소리가들릴수있습니다.그는왜밤중에혼자부스럭댈까요?제자리에서도망가는중이기때문입니다.홀로운동장을돌고있기때문입니다.그는무언가를잊기위해달립니다.나도그를따라달려봅니다.운동장을한바퀴돌아제자리로돌아오는것도일종의도망일것입니다.그것은도망의신비이고시의신비입니다.도망갔지만제자리로돌아온다는사실이요.아무리도망쳐도내가여전히나라는사실은소중합니다.나는나로부터벗어날수없음에기쁩니다.그괴로움에서시가탄생하기때문입니다.도망치는동안우리는꽤많은것들을해냅니다.“푸른언덕”을,작은돌을,천사를,“인기척없는공터”를,기도를,“윗부분만깎은사과”를,그리고어떤사랑을만납니다.그리고그모두와헤어집니다.이시집덕분에나는나와헤어지고나와다시만났습니다.『기분은노크하지않는다』를읽는동안당신의진심을들키기를바랍니다.그리고그를따라아름다운도망을가기를바랍니다.이제그를따라“마저운동장을돌기로”합니다.그것은시의기도이고,슬픔을노크하는방식일것입니다.
-문보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