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의 영혼들 - 창비시선 488

탕의 영혼들 - 창비시선 488

$10.38
저자

손유미

시인은1991년인천에서태어났다.2014년창비신인시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제1부
저먼
모두모여태양모양
탕의영혼들
팥알만큼이나팥알만큼이나
여러그루금귤나무
애관극장앞에서
수면장소
나들이
접속
방문
기민히사라진
쓰르라미울무렵

제2부
수의(壽衣)같은안개는내리고
쌍둥이
쌍둥이
우중(雨中)
명상원에서
그런눈
날씨의숲연인의방
환절기의사람들
토론하는사람들
아는어른을지날때드는생각

제3부
벌내로
부근리고인돌군
서문안마을
평화전망대행
답동성당과내동교회사이
상영
령영넋
복숭아와오다
시간과가다
떠오르다
순록부락

제4부
밤시절
밤과낮의연인과
신뢰하는에게
고양이담벼락
마음바닥의가오리
동시에일어나는
걸음이느린사람은느낄수있는
우리수확미래
깨터는저녁


장장(葬場)


해설|선우은실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탕의영혼들』은“무엇이든할수있고아무것도될수없는”(「신뢰하는에게」)쓸쓸한나날을묵묵히견디고그너머로향하려는자의끈기있는기록이다.시인은“늦더라도/쓰이고싶던사람들이”(「우리수확미래」)쓸모를찾기위해오래배회하다결국“아무것도하고싶지않습니다”(「아는어른을지날때드는생각」)라고읊조리는좌절의순간을그리고,심상히지나가는매일속에서“충분히길들었는데,그걸모르는들개”(「기민히사라진」)같은처지의자신을예리하게인식한다.“달아나는이유생각나지않아하지만/달아나는게익숙해”(「쓰르라미울무렵」)라는한마디는의미도목적도잊은채같은하루를반복하는우리의시간을단숨에멈춰세운다.“이웃이있다는걸잊어버리고”“제속도로다가오는미래를비관”(「고양이담벼락」)하게되는일상적고통을서늘히응시하는손유미의시는그렇다고허무나절망만을이야기하지않는다.시인의시선이끝내가닿아보살피고자하는곳은그런날들을지나는동안다치고닳는우리의“작고말랑한그래서약한마음”(「마음바닥의가오리」)이다.

“신이멀어/귀신의손을잡는다”(「수의(壽衣)같은안개는내리고」)고말하는시인은상처입은마음을달래기위해생경한존재와목소리들을시속으로불러들인다.출처모를여러명의‘안내자’가이끄는대로꿈속을헤매고(「애관극장앞에서」),목욕탕의영혼들에게근육을내어주며새로운몸이태어나는걸목격하고(「탕의영혼들」),지친마음을업어주는‘마음가오리’위에올라타가벼이유영하기도한다(「마음바닥의가오리」).이렇듯‘나’아닌다른존재들에의해헤매어보고한결덜어지고살짝떠오름으로써일상의중력을가뿐히거스른다.“별안간보이지않아야할게보이기시작”(「상영」)하고그와어울리는것은인간의경계를넘어“잡귀가되는”(「수의(壽衣)같은안개는내리고」)일일지모르나,삶이미워하고분노하고무너지도록내버려두지않고‘나’바깥의존재를통해서라도“누적된피로와권태관절의습관으로부터자유”(「수면장소」)로워지는모습은따스한위안으로다가온다.

“우리에겐작지만여실한미래가필요해”
넘어진어제에서일어나고싶은오늘의우리를위한목소리

시인은바깥의존재이자초월적존재인영혼을일상속으로끌어들이지만,때로“보고싶은영혼은어디에도보이지않고”(「령영넋」)“압도적인고독과언뜻언뜻한외로움”(「순록부락」)은쉬이사라지지않는다.시인은이난감한국면앞에서체념하기보다“허망과무상을이길만한힘”이간직되어있을“작지만여실한미래”(「우리수확미래」)를향해한걸음더용기있게내딛는다.서정적자아인‘나’에국한되지않고유령적존재인‘영혼’까지포함해보편적인존재인‘우리’로확장한시적주체는다른가능성이“드나들수있는문”(「령영넋」)을폐쇄하지않으며“우리에겐또다른태양이남아있다”(「모두모여태양모양」)고알려준다.이처럼“너른전망의가능성을과감하게발음”하며“마땅히주목해야할시적사건”(해설,선우은실)으로자리매김한이번시집『탕의영혼들』은무수한어제를견디고다다랐으나여전히답보상태인오늘날,보다나은내일로나아가려는우리를격려하며“알맞은부축”(「부근리고인돌군」)으로함께할것이다.

시인의말

소복하게담긴흰쌀밥을앞에둔듯흐뭇하여라
나를아는귀신들도흐뭇하려나
끼니를앞두고가장먼저해야할일,
손을닦고가지런하게숟가락과젓가락을놓는것
그리고아주잠깐가지런하게손을모으며
순금같이여기며사랑할게오늘은그럴게
사는것앞에고개를숙이고

2023년4월
손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