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 창비시선 490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 창비시선 490

$11.00
Description
“세상은 계속 복잡하고 어지러울 거란다
그렇다고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니란다”

주저앉은 이들에게 다정히 손 내미는 ‘함께’의 언어
다음이 있다고 믿으며 나아가는 씩씩한 발걸음
첫 시집 『킬트, 그리고 퀼트』(문학동네 2019)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주민현 시인의 두번째 시집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언어 스스로 사회성을 발산하는, 우리 시로서는 매우 드문 가능성”(신동엽문학상 심사평)을 보여온 시인은,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차세대 예술가’로도 선정되는 등 주목받는 젊은 시인으로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펼쳐왔다.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는 “우리의 일상에 스미고 새겨진 항상적 재난의 이야기들, 각기 다른 존재자들의 고통을 평평하고 납작하게 만드는 거대 서사에 맞서 올록볼록 솟아나는 작은 이야기들”(오연경, 해설)이 조밀하게 담겨 있다. 묵직한 메시지를 경직된 결연함으로 풀어내기보다는 친근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전하는 주민현 시의 특장점이 이번 시집에 이르러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졌다. 온갖 모순과 불합리로 얼룩진 세계의 실체를 환기하고 불안한 현실 너머를 다채롭게 상상하는 시편들이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저자

주민현

저자:주민현(朱民賢)
2017년한국경제신춘문예에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킬트,그리고퀼트??가있다.창작동인‘켬’으로활동중이다.

목차

제1부하지만밤을뒤집어보면
오래된영화
밤이검은건
도래할미래
전구의비밀
꽃없는묘비
피아노의우연한탄생처럼
역사적인단추
희망이시간을시간이미래를
와이파이
에리카라는이름의나라
한강
우산의용도

제2부세상이아름답지않은것도아니란다
그레텔과그레텔
넓어지는세계
도토리묵
지속가능한이야기를찾아서
우연한열매
가구회사의취향
우리는베를린에서
빛으로이루어진
기억의문지방
키키스미스,일요일
물의운동
둥근탁자
밤은신의놀이
기념사진

제3부천국을의심하는희미한천사로서
그림없는미술관
다먹은옥수수와말랑말랑한마음같은것
천사와악마
실내비판
밤의입술
당신의이야기
방역
미래의콩
캠핑
이야기백화점
요세미티국립공원
오늘의산

제4부꽃을등뒤에숨기고놀래키려는사람처럼
기억하는빛
아주슬픈모리츠씨
호두의것
멈추지않는것
빛의광장
청소의이해
웃음과부스러기
그럼에도삶은계속된다
꽃다발과따발총
YangYangBeachMap
바둑알
리플레이
가장자리

해설|오연경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이번시집에서주민현은누군가에게는천국일지금의세계가다른이에게는“몹시외롭고이상한별처럼”(「밤이검은건」)느껴질뿐인부조리한현실을찬찬히짚어나간다.시인의눈은“죽어야만끝나는노동의천국”과“무한한스크롤의쇼핑지옥”(「천사와악마」)을왕복하는노동자의갇힌일상을주목하고전쟁과재난속에서기억도애도도없이무수히생겨나는묘비들(「꽃없는묘비」)을헤아리며“화장품실험부작용으로내내눈물을흘리는실험견”(「이야기백화점」)에가닿는다.시인은이시대의매끈한표면아래,울퉁불퉁한안쪽에서생존을위해분투하는존재들을응시함으로써“자본의폭설”로뒤덮인이곳이“무한증식하며발전중”(「실내비판」)인천국이라는믿음에균열을낸다.그의시선을따라가다보면우리또한“더없이현대적인도시가도리어낡게만느껴지는”(「기억의문지방」)순간에도착하고,작고약한존재부터바깥으로밀쳐내는세계의경계가단한번도수정된적없음을뼈저리게실감하게된다.시인의예리한언어는자유와성장과풍요를약속하며개개인을압도하는자본주의적논리의그늘을포착하며“세상을제대로바라보기위해선한줌의어둠,약간의슬픔이필요해”(「둥근탁자」)라는한마디로우리의정신을두드린다.

주민현의시가아름다운이유는현실의어두운면을폭로하는데서그치지않고시적인상상으로현실을넘어서기때문이다.그의시에서전기와마을버스는단순히생활의편리를위해고안된수단이아니다.도시의“가장끝집”까지도달하는전기와도시의“가장구불구불한곳까지”(「전구의비밀」)우리를데려가는버스는도시속에흩어진우리가사실은서로연결되어야하는존재임을일깨우는일상의마법이다.이렇듯유쾌하면서도위안이되는발상의전환은이번시집에서자주목격된다.걸레로바닥을훔치는빌딩청소부는어느새세상을훔치는이가되어있고(「도토리묵」),아담의갈비뼈로만들어졌다는이브의이야기는자신의갈비뼈를부러뜨리며탄생하는새로운존재의이야기로거듭난다(「그레텔과그레텔」).치명적인침입자일뿐이었던쥐는어느새“비밀스러운코골이와/음식을함께나누는동료”(「리플레이」)가된다.시인은성?계급?종에따른차별을명문화하고재생산해온신화와역사와상식을특유의위트로뒤집고흔들며시를써나간다.“삶은다시쓰기의역사”(「그레텔과그레텔」)라고이야기하는시인의단호한목소리는고단하고위태로운우리의삶에역사를다시쓸역량이내재되어있음을일러주며,우리가내면화해온한계를스스로깨트리며나아가도록격려한다.이때경험하게되는자유로움은오로지주민현의시만이선사할수있는감각일것이다.

“미래는아직심어본적없는문장
꿈꾸어본적없는장면“
현실의지친어깨를다독이며꿈꾸기를멈추지않는시

『멀리가는느낌이좋아』는제목에서도느껴지듯미래에대한기분좋은예감으로두근거리는시집이다.전쟁은계속되고재난은잦아지고차별철폐의길은요원하기만하고지구의앞날조차불투명한상황에어떻게미래를기분좋게예감할수있는것일까?“미래없음전망없음”(「희망이시간을시간이미래를」)의감각이득세한세상이지만그럼에도주민현은“다음이,또그다음이있다고믿는자들”(「빛의광장」)의편에서서“이세계의아름다움이끝나지않는다”(「YangYangBeachMap」)고말한다.이는막연한낙관이아니라,세계의아름다움이끝나지않도록계속해서새로이아름다움을발견하고발명하겠다는의지이다.그래서시인은“아직빚어지지않은인간의형상”이있을“미래의이야기”(「지속가능한이야기를찾아서」)를향해가고,대립하고쪼개지는세계의틈새로비어져나온“새로운지형과개체”(「넓어지는세계」)가들려주는이야기에귀를기울인다.그런이야기들속엔“여자도남자도”“진보도퇴보도”무의미해지고지금껏우리가믿어온“천국의청사진에훼방을놓는”(「천사와악마」)훗날에대한힌트가있다.비록우리는지금까지그곳에단한번도도달해본적없지만,시인은“여기서변이가시작된다는것이다”(「가장자리」)라고선언하며“너무많이상상해와서꼭맞는옷처럼”(「다먹은옥수수와말랑말랑한마음같은것」)도래할미래를향해한걸음씩씩씩하게걸어나간다.이렇듯대안이없어보이는21세기자본주의시대의중압감을견디며다른미래에대한상상과감각을부단히단련하는주민현의시를한편씩읽어나가다보면,우리는어느새“삶을사랑하기로마음먹은사람처럼”(「멈추지않는것」)마음속에기대와희망이빛이천천히번져가는것을느끼게될것이다.

추천사
이시집의‘넓은테라스’에는당신을위해비워둔의자가하나있습니다.그의자는밤의물질로만들어졌고,그의자에앉으면“세상이몹시외롭고이상한별처럼”보이고,“어째서신은/텅빈새장을이렇게나많이걸어두었을까”세계가불가사의해지며,당신은“당신의가장외로운부분을향해다가갈”겁니다.그‘가장자리’에서당신은한시인과마주하게됩니다.“대화에는반드시두사람이필요”하기에.그시인은“여전히나의하루를궁금해하는사람”,“이제는작은것을말하고싶어요”속삭이는사람,‘지속가능한이야기’를찾는“삶의외로운/구경꾼이자싸움꾼”입니다.당신은의자에앉아서시인이상영하는‘오래된영화’를보게됩니다.그영화에는떠도는빛이있고,그것은인간,그것은기억,그것은역사,그것은한영혼처럼보입니다.그빛은자신을위해비워진의자에앉아자신의삶을지켜보는자신을응시합니다.“무언가돌아본다는것은이미그것이끝났다는것”이지만,다시“삶을사랑하기로마음먹은사람처럼”.이것이제가이시집을통해쓴‘유령’이야기이고,저는당신께바랍니다.당신을위해비워둔시집속의자에앉아‘당신의이야기’를쓰게되기를.“이세상은알수없는은유로가득해”라는시인의전언에“멀리가는느낌이좋아”답하게되기를.그대화를통해‘새로운종’으로시작되기를.
김현시인

시인의말
물속에일렁이는빛을오래바라본적이있다.빛은만질수없고두손에가둘수없고그래서신비롭구나.
만질수없는장면과마음을붙드는게시라면다정하게열린창문,흐르는노래였으면좋겠다.창밖으로아이들웃음소리가들린다.컵속얼음이찰그랑거린다.여름이다.
이시들을쓰며나의시간은조금더갔다.이것을읽으며당신의시간도조금더가기를.그래서머리위로떨어지는빛을함께볼수있기를.
2023년여름
주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