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사슴 연못 - 창비시선 493

하얀 사슴 연못 - 창비시선 493

$11.00
Description
“백록담이라는 말에는 하얀
사슴이 살고 있다”

영혼을 어루만지는 고요한 사색의 쉼표
풍요의 선율로 흐르는 순정한 시의 음표
올해로 등단 10년을 맞아 한층 깊어진 서정으로 현대문학상과 김현문학패를 연거푸 수상하는 등 개성적인 시세계를 탄탄하게 굳힌 황유원 시인이 네번째 시집 『하얀 사슴 연못』을 펴냈다. “가식 없이 절실한 시적 정황들이 주는 무게감”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첫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민음사 2015) 이래 꾸준하게 단단한 사유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감성적 언어가 고요한 음악이 되고, 감각적 이미지가 순백의 풍경이 되는 서정의 신세계를 제시한다. 또한 자연(사물)을 순수한 관념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한국적 모더니즘의 고전 반열에 오른 정지용의 『백록담』(1941)을 시집 곳곳에서 오마주해 눈길을 끈다. 8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이 깨끗한 연못의 풍광은 “내밀함 속으로, 그리고 사물을 끼고 도는 원심력의 세계 속으로, 마침내 다시 고요 속으로의 왕복운동을 거듭해온 어떤 마음이 오래 다녀온 거리의 산물”(조강석, 해설)로 읽히는바, 경이로운 순수와 무위의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끌어당긴다. 서정시의 맑고 투명한 진경이 매혹적인 이 시집에는 현대문학상 수상작이자 표제작 「하얀 사슴 연못」을 포함하여 55편의 시를 실었다.
저자

황유원

저자:황유원
서강대학교종교학과와철학과를졸업했고동국대학교대학원인도철학과박사과정을수료했다.2013년『문학동네』신인상으로등단하였고시인,번역가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제1부백지위에실황으로
백지상태
별들의속삭임
낮눈
밤눈
천국행눈사람
눈사람신비
눈사태연주
명동대성당
불광동성당
계산동성당
길음성당
리틀드러머보이
백색소음
썰매와아들
맑은종이

제2부틴티나불리
거울겨울
틴티나불리
대합실의밤
신비한로레토교회
돌아가셨다는말

빵의맛
무언어
상선약수
언중유골
겨울거울
Summa
유리잔영혼

제3부하얀사슴연못
사슴과유리잔
흰종이에물로1
하얀사슴연못
에릭사티
흰종이에물로2
양들은한가로이풀을뜯고
거울속의거울
워터스톤
사슴벌레
아이스크림의황제
에스컬레이터
평화여백
사슴머리여인숙에서

제4부볼륨은제로가적당합니다
켜진불
포카라
아침
작은종들
오토리버스
담배가게성자
airsupply
2D마음
자명종
휴관
올해가장시적인사건
에어플레인모드
아르보패르트센터
Z치는물결

해설|조강석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내면의극장에서공명하는존재와시의하모니
개념으로채우고공백으로비우는백지의미학

황유원의시는쉽게읽힌다.하지만평이한문장속에담긴감각과사유는광활하고또심원하다.현대문학상수상소감에서“존재는소음으로가득하다”라는의미심장한명제를던졌던시인은“상상으로만존재하던소리들”이현실이되어사위에울려퍼지는“소리극장”(최우정,추천사)으로독자들을초대한다.예컨대시인은사물의내면을파고드는섬세한시선과예민한감각으로우리가일상의풍경에서미처지각하지못했던것을보고듣고느낀다.“가혹해서아름답고/아름다워서가혹한lo-fi사운드”의“별들의속삭임”과“하늘의입김이얼어붙는소리”(「별들의속삭임」)를듣기도하고,“실수로건드린유리잔”이울리는순간“영혼이생겨났다사라지는느낌”(「유리잔영혼」)을감각하기도한다.

시로연주되는다양한감각들은줄곧시인의학문적탐구대상이기도했던철학과종교적사유로이어진다.“밤의텅빈플랫폼”에서뒤집힌채“홀로발버둥치는”(「사슴벌레」)사슴벌레와나뭇가지에매달린“텅빈말벌집”을보면서“안에든저어두컴컴한것은또대체무엇일까”(「낮눈」)질문하고여린존재들의숨소리와도같은“누군가가/또다른누군가에게/마음을쏟는소리”(「거울겨울」)에귀기울이며사물(존재)과세계의내밀성을발견한다.시집에등장하는여러종교의자취는특히다채롭고흥미롭다.실존하는교회,성당,네팔등을배경으로한시들을따라읽다보면문화적경계에갇히지않고모든종교에녹아드는시인의폭넓은공감능력을느낄뿐아니라,웅숭깊은관념적체험에맞닿게된다.“지금도생명을소진해타오르는중인/어둠속나의빛”(「길음성당」)을응시하며깨우치는“무류적(無謬的)”(「에릭사티」)삶에대한지향이그것이다.마치천상의신을우러르며상승하는바흐의음계처럼,황유원의시는멀고높은곳,눈부신깨우침을향해힘차게다가간다.

거장들의길을되짚으며,새로운길을열어젖히며

맑고투명한종소리같은“단단하고청명한/울림”(「언중유골」),감미로운“소리의향기”(「2D마음」)로충만한이시집에는오마주또한가득하다.시집제목과표지화부터가정지용의『백록담』을오마주한것이며,정지용의시중「장수산1」의형식을섬세하게흉내내거나(「흰종이에물로1」)「인동차」를변용하기도(「아침」)한다.소리나리듬같은음악적요소의활용또한탁월하다.바흐,에릭사티,아르보패르트,에어서플라이등의음악가를호명하며언어의반복과변주로이들의음악을편곡하여들려준다.앞서간위대한예술가들의생애와작품을되살려낸오마주시편들은풍요로운문화적체험을향유하게하는한편,수려하면서도치밀하게짜인음악적장치들을통해시공간을뛰어넘는초월적상상력으로시세계의지평을확장한다.사려깊게큐레이션된전시회가그렇듯,시집에인용된예술작품과거장들이낯선이들에게도일상적인표현으로격조높은예술적경험을선사하는섬세함또한이시집의빼놓을수없는미덕이다.

황유원의시를읽는것은“최고음역대에서도뭉개지거나찢어지지않는맑은사운드”(「airsupply」)를듣는듯즐겁다.“‘하얀(백색)’과‘사슴(+사슴벌레)’과‘연못(물)’이라는세요소의협력”이어우러지면서언어와이미지들이끊임없이반복되고변주되는‘시전시회’를둘러보며우리는“요소들의생성과변환”(시인의말)을만끽한다.특히“백록담,이라고발음할때마다/살이오른사슴들이/빈표지같은내가슴속으로다시뛰어들어”(「하얀사슴연못」)오는장면.“청명한공기”(「airsupply」)를들이마신듯머릿속이청량해지는이장면을우리는두고두고잊지못할것이다.아마오래오래간직할것이다.시인이말했듯이“아무거나시가되지는않는다”(「올해가장시적인사건」).그렇기에시인은끊임없이언어의음률을가다듬으며시의길을찾아나선다.길아닌곳도걸어가다보면길이되어있을터,새로운시의길을찾아발길닿는대로노래하며걸어나간다.그리하여마침내당도한그곳,“소리로충만한시”(추천사)에깃든“물샐틈없는고요”(「불광동성당」)와“무심한아름다움”(「별들의속삭임」)이눈부시게황홀하다!

시인의말

언젠가이렇게쓴적이있다.“존재는소음으로가득하다.따라서내앞에는두가지시의길이주어져있다.존재의소음을최대한증폭시켜보는길과존재의소음을최대한잠재워보는길.나는이두길을모두가보기로한다.”첫시집이후대략육칠년동안두작업은완전히동시에이루어졌는데,전자의결과물이『초자연적3D프린팅』이고후자의결과물이『하얀사슴연못』이다.

형식면에서『초자연적3D프린팅』이세상의신비를종이라는평면위에입체적으로출력해보는한밤중의작업이었다면,『하얀사슴연못』은제목이말해주듯주로‘하얀(백색)’과‘사슴(+사슴벌레)’과‘연못(물)’이라는세요소의협력을전시해보는개념적작업이었다.이시집이그자체로하나의전시회공간처럼읽혔으면,그래서독자들이마음대로돌아다니며요소들의생성과변환을느껴볼수있었으면하는바람이다.

이제앞서말한두길을모두가본것같다.그런데이제와서다시생각해보니시의길을두가지로한정한것도좀우습군.길아닌곳도걸어가다보면길이되어있겠지.나는발길닿는대로걸어갈것이다.계속.

2023년입동
황유원

추천사
깜짝놀랐다.갑자기내앞에소리극장이펼쳐진것이다.상상으로만존재하던소리들이시인을통해현실이되었다.적어도음악가인나에겐그랬다.마치직접들은것처럼,시인은소리의아주섬세한차원까지들어갔다나온다.시라는게‘시’라는이름을갖기전엔이런게아니었을까?세상의많은시를읽어봤지만,이토록소리로충만한시가있었을까싶다.심지어시인이‘향’,즉냄새와‘맛’을말할때도소리는들린다.또한시인이들려주는소리를통해시인과나의옛시간이겹치고서로대화한다.한번도만난적없는사람이지만무척가까운사이인것같다.이런경험이이순간생생하게살아있는것,이른바‘예술’이라하는인간활동이주는선물이아닐까?
-최우정(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