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의 시간 (김해자 시집)

니들의 시간 (김해자 시집)

$11.00
Description
“때가 되었다, 가자”

사람 곁에서 먹고 자고 숨 쉬는 시들,
끝내 우리는 이를 악물고 희망하는 법을 배운다
한국 민중시의 도도한 물줄기를 이어가는 동시에 만해문학상, 백석문학상 등 권위 있는 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하며 문학성을 입증받은 김해자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니들의 시간』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등단 이후 줄곧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 곁에서 목소리를 함께 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온몸으로 쓰는 리얼리즘의 시세계를 한층 벼려내 인간과 비인간을 넘나들며 “삶과 세계의 비극을 증언”(안희연, 추천사)한다. 구상문학상 수상작 『해자네 점집』(걷는사람 2018) 이후 5년, 암 투병 중의 생(生)체험과 사회적 죽음에 대한 사유를 담아낸 소시집 『해피랜드』(아시아 2020)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은 시대의 고통과 슬픔을 관통하는 역사 인식과, 폭력과 탐욕으로 얼룩진 야만적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한 시선으로 가득하다. 이 시집의 매력은 그뿐만이 아니다. 삶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길어 올린 진정성 있는 시편들이 무겁고 아프게 다가오는 한편, 시인은 곳곳에 익살스러운 유머를 배치해놓았다.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웃음을 찾는 것이 우리들의 삶인바 『니들의 시간』은 그야말로 민중과 발걸음 그리고 눈높이를 맞추는 시집이다. “두 눈을 뜨고 읽어야 하는”(송종원, 해설) 이 시집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곱씹고 주위의 삶을 둘러보게 되며, 이윽고 벼랑 끝 같은 현실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희망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저자

김해자

김해자(金海慈)시인은1998년『내일을여는작가』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무화과는없다』『축제』『집에가자』『해자네점집』『해피랜드』,민중구술집『당신을사랑합니다』,산문집『내가만난사람은모두다이상했다』『위대한일들이지나가고있습니다』등이있다.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전태일문학상,이육사시문학상,구상문학상,아름다운작가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한잔받으시오

당신의말이떨어질때마다나는웃었다

그는아들을내려놓지않았다

월식

수철리산174-1번지

모국어

그냥상

시간을공처럼굴리며

가창(歌唱)오리

이름없는조직

육독(肉讀)

물호스가달빛속으로

우리는각자도생의사명을띠고

이백원

니들의시간

제2부내곁에이모든이들곁에

연푸른혀들

훔쳐보다

공깃돌은언제다시날까?

꽃으로건너가는동안

다녀오겠습니다

모든이들곁에

연루

감긴눈꺼풀곁에서

파울첼란에게

바다에달이뜨고쪽파같은오늘이운다

두통의환각

한국사

시간여행

바위뛰기펭귄

제3부예전의심장을돌려주세요

꽃잎세탁소

달이내창문을서성이고있다

살아있는집

삽목

먼산

드림타임

우두커니

시간여행

시간여행

내이름은아르카

비명곁에서비명도없이

아무리나눠도

삼십년후,소년소녀에게

네모난알

제4부당신이촛불입니다

광덕부르스

시간여행

갓눈뜬솔잎위에

잃어버린문법

상복(喪服)

잠시멈춰서서

양미숙의철화분청사기

농담

공양(供養)

어마어마한도시락

또다른눈물

희망세상

당신이촛불입니다

제비원미륵불

해설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안간힘으로살아가는이들의곁,
그모든곳에김해자의시가있다

일찍이한시인이“가난한영혼이고통을받는모든곳에김해자의시가있다”(문동만,『축제』추천사)라고말했듯이김해자의시는쓸쓸하고외롭고가녀린영혼들을향한끝없는사랑의노래다.그의시를읽다보면세상의가장자리에서“정의롭고떳떳하게살아가는사람의얼굴”(해설)이저절로떠오르는것도이러한이유때문이다.“발디딜땅한뼘없”고“허공마저비싸서/숨쉴만큼의공기도허락되지않”(「감긴눈꺼풀곁에서」)는자본의땅을떠나“마늘에서막돋아나는뿌리처럼/늘희푸른말”(「당신의말이떨어질때마다나는웃었다」)이살아숨쉬는마을로내려온지벌써십오년째,시인은“희망꾹꾹눌러담은고봉밥같은마음”(「어마어마한도시락」)을다독이며“살자살아보자”(「양미숙의철화분청사기」)다짐한다.

김해자의시는현실을고스란히받아들이는자리에서탄생한다.이번시집에서시인은개인과시대의기억을더듬으며시간여행을떠난다(「시간여행」연작).이연작은역사의아픔을격정적인목소리로토해내기보다는차지고구성진사투리를통해그날의마음들을해학적으로풀어놓는다.물론가볍지만은않다.전쟁당시양민들이무참하게학살된장소에서“탄피박힌두개골”과“불에탄뼈”(「수철리산174-1번지」)가역사의진실을증언하는침묵의소리를듣기도하고,“비명을깨물다돌처럼굳어간아무개”들의“관짝같은백비(白碑)”(「비명곁에서비명도없이」)를돌아보며한국현대사의그늘진이면과암흑의시대를살아온민중의삶을간곡한언어로되살려낸다.시인의관심은후쿠시마원전수방류(「내이름은아르카」)나팔레스타인-이스라엘전쟁(「달이내창문을서성이고있다」)으로이어지는바“십년삼십년육십년백년후에올”(「삼십년후,소년소녀에게」)세대에게우리가어떤세상을물려줘야할지를독자로하여금곰곰생각해보게한다.

세상에가득한신음과고통,
아직부를노래가이렇게나많이남은이유

시인은1998년작품활동을시작한이래‘노동자시의대모’(김정환)로불리며세상의부조리에항거하는리얼리즘시의영토를굳건히지켜왔다.“모든생명이평등하게공생하는자리”(해설)에서만인이자유롭고평등한세상을꿈꾸며민중의삶을시로써온지사반세기,그러나세상은변하지않았다.“한세기가지나도지워지지않는살과뼈타는냄새”(「두통의환각」)가진동하고,“늙어보지도못한어린노동자의머리통이스크린도어에끼이고”“컨베이어벨트속으로반죽기안으로빨려들어가”(「두통의환각」)는비참한현실앞에서시인은“신음과비명이터져나오는시절에시라니?”(시인의말)자문한다.그럼에도쓴다.“아직부를노래가남아”(「농담」)있기에,“죽어가는나무에게물을주는”간절한마음으로“작은봄맞이꽃같은희망”(「바다에달이뜨고쪽파같은오늘이운다」)의불빛같은시를써나간다.“내가아닌것이떨어져나가고바로너인것이내가될때까지”(시인의말).김해자의시를읽는다는것이희망을읽는다는것과똑같은말인이유도바로이때문일터다.

저자의말
시는아무도말을가로채지않는대화같다.글자에수많은얼굴이비치는종이거울같기도하다.거울뒤란에서잠자고있던이름들이불려나올때마다다시태어나는종이거울안에서,나는나무이자벌목꾼이고사슴이자사냥꾼이었다.팔레스타인가자지구에공습이이어지고,세계가극단적인비대칭을향해폭주하고있는지금,나는맞아죽은자이자때려눕힌자이고독재자이자야만적인인류사다.

절망해야할이유가아흔이라면희망할근거는서너조각에불과했다.그래서썼는지도모른다.더듬거리며.신음과비명이터져나오는시절에시라니?그래도썼다.부끄러움을무릅쓰고.내가아닌것이떨어져나가고바로너인것이내가될때까지.이만큼이라도걸어오게한이웃들과동지들과스승들께감사드린다.입말살려주며조언해준동료시인들께감사드린다.편집자이자또다른창작자가되어준이진혁팀장께감사드린다.

2023년늦가을천안광덕에서

김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