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란비어있어서우리가거듭해꿀수있는꿈이에요”
백지위를자유롭게활보하는연결의상상력
언뜻열렬한연문(戀文)으로읽히는시편들은그러나거기서그치지않는다.낭만이짙게드리운언어뒤편에서시인은‘편지’라는형식에대해존재론적으로고찰한다.시인에게편지쓰기란‘당신’과가까워지거나무언가를주고받기위한것이아니라다만‘당신’이거기있음을,‘당신’의“현전을확인”(「고도를기다리다보면」)하는것으로그소임을다하는일이다.그리고그렇게‘당신’을부르며언제돌아올지모를응답을기다리는것은곧자기자신의존재를다시세우기위해서이기도하다.“자신의결여를메우기위해타자의심급이필요하”(「죽지않는구멍」)기때문이다.시인은‘당신’으로대표되는“미지(未知)”(「롱러브레터」)의타자들을엽서위에반복해불러내어자신의“빈곳”(「죽지않는구멍」)에“또다른얼굴이,얼굴들이솟아나”(「언덕위관음」)게함으로써스스로의존재를완성하고자하는것이다.
시인이편지-시안으로불러들이는타자는연인같은구체적대상을넘어,텍스트안에서재구성되는영화,웹드라마,연극,동화속장면과목소리들로확장되고,가차없는폭력과끔찍한야만으로인해“우리가완전히잃어버린것이있는곳”(「책갈피」)으로까지나아간다.이때편지는이곳의우리를저곳의부재또는상처와매개하는필수적인통로로,단절되어서는안되는것으로거듭난다.우리의존재는타자를경유하지않고서설명될수도가능할수도없다는듯멀리서나마편지를통하여타자와연결되어있으려는노력은이시집에서장이지의시를나아가게하는동력이된다.이렇듯“편지의존재론”(해설)이라할수있을만큼모든시편들이편지를풍성하게사유하는바,『편지의시대』를읽는일은그안에스민철학적깊이와집요함에새삼전율하고지금우리가발딛고선곳에서연결은어떻게성취되는지성찰할수있는기회가될것이다.
추천사
편지의시대를읽으며편지쓰는마음을떠올린다.다정함,애절함,간곡함……안부를묻는말에더하지못한사정을헤아린다.편지를쓰면서우리는달라진다.속마음을감추면서,명랑을과장하면서.받은편지를읽으며우리는또한번달라진다.행간에생략된말을떠올리면서,주워섬긴말들을그러모으면서.그러므로편지를쓰고읽는일은“자기의허물을몰래불태우”(「허물」)는일,“우리는예전의우리일수있을까”(「…에서온이메일」)라고물으며‘함께’의시간으로부터자발적으로사라지는일이다.
“엽서는모든것을말하려하지만……”(「결괴」)마음을고스란히전달하는건사실상불가능한일이다.“당신에게하고픈말을물위에적어”(「물아래편지」)도그말이물아래까지온전한형태를유지할수는없으니말이다.이는역설적으로편지의시대가끝나지않았음을,여전히누군가는혼잣말로노래를만들고그것을엽서에묵묵히적어내려가고있음을상기시킨다.
“너의슬픔을알면서나는너에게가지못하”(「언덕위관음」)기에우리는편지를쓴다.그것을쓴사람에게로마침내되돌아온다는걸알기에우리는편지를쓴다.세밑에“이토록붐비는사랑이라니”(「롱러브레터」),모처럼길모퉁이우체통처럼반가운시집을만났다.
오은시인
-----------------------------------------------------
시인의말
찬비가온다
너에게보낸편지가다젖을까
온종일그생각만하다가문득
밤의깊은곳에서내가걱정한것은그게아니고
네가울고있지않을까하는그것이었음을깨닫는다
이것으로내마음의여섯번째무늬를삼는다
편지가온다겨울냄새묻어온다
2023년겨울
장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