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의 시대 (장이지 시집)

편지의 시대 (장이지 시집)

$10.00
Description
“홀로라는 것은 언제나 둘을 부르는 것이어서
아주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당신’을 부름으로써
‘나’를 가능하게 하는 글쓰기, 편지
자신만의 고유한 페르소나를 창조하고 각종 문화적ㆍ철학적 레퍼런스를 적극적으로 시 안에 기입하는 독창적인 시세계로 오장환문학상, 김구용시문학상을 수상한 장이지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편지의 시대』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우리 모두의 마음에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각인시킨 바 있는 시인은 이번에는 ‘편지’라는 그윽하고도 따스한 소재를 통해 한층 깊고 다채로워진 서정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편지의 시대’라는 제목에 값하듯 “모든 시를 편지로 읽어도 무방한” 이번 시집은 ‘편지’를 “장치가 아니라 아예 시의 형식으로”(장은영, 해설) 삼아, 편지에서 뻗어 나온 여러 갈래의 감상과 상상과 사유를 자유롭게 펼쳐 보인다. 불가능한 사랑과 상실감을 편지를 매개로 낭만적으로 노래하는 한편 ‘편지란 무엇인가’ ‘왜 편지를 쓰는가’와 같은 질문에 끈질기게 매달리며 편지를 인간의 존재 양식으로서 해석하려는 철학적 시도 또한 보여준다. 편지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수놓아진 이번 시집은 뉴미디어를 통한 즉각적인 연결과 단절에 익숙해진 우리를 기다림과 그리움이 일상이고 수신을 확신할 수 없는 세계, 그래서 더욱 연결을 갈망하고 낭만이 우세한 세계, 즉 ‘편지의 시대’로 데려간다. 이 시집이 유난히 각박하고 쓸쓸한 이 겨울에 맞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자

장이지

2000년『현대문학』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안국동울음상점』『연꽃의입술』『라플란드우체국』『레몬옐로』『해저의교실에서소년은흰달을본다』,시선집『안국동울음상점1.5』,문학평론집『환대의공간』『콘텐츠의사회학』『세계의끝,문학』,영화평론집『극장전:시뮬라크르의즐거움』등이있다.

목차

먼곳/해안선/불타버린편지/라플란드/우주적/외워버린편지/슬픈습관/한산(寒山)/결괴/물아래편지/유원지/표변/편지란무엇인가/사랑의폐광/사전/제발/꿈의범람/가장불행한사람/구름의뉘앙스/엽서/사랑을말하는것/가랑비몽몽/롱러브레터/운메이(運迷)/반복/속삭임/RecordShopandBar/통화(通貨)/봉투만있는편지/나를찾아서/기대/구름이깊어알수없는곳/엽서/야광별시스템의종말/러시아인형/화천대유(火天大有)/러브레터/허물/유실(遺失)/비밀/이피게네이아의꿈/책갈피/죽지않는구멍/…에서온이메일/블라인드/부감풍경(俯瞰風景)/첩첩산중/맥/전화/아직거기있어요/책갈피/거리/우표수집/그래서영화란무엇인가/언덕위관음/블루스/배꼽/파산자들/혼자가는먼집/시간의흐름속에서/체리향기/졸업/고도를기다리다보면/카이/우편공간의폴/8월의크리스마스/저멀리/책갈피

해설|장은영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편지란비어있어서우리가거듭해꿀수있는꿈이에요”
백지위를자유롭게활보하는연결의상상력

언뜻열렬한연문(戀文)으로읽히는시편들은그러나거기서그치지않는다.낭만이짙게드리운언어뒤편에서시인은‘편지’라는형식에대해존재론적으로고찰한다.시인에게편지쓰기란‘당신’과가까워지거나무언가를주고받기위한것이아니라다만‘당신’이거기있음을,‘당신’의“현전을확인”(「고도를기다리다보면」)하는것으로그소임을다하는일이다.그리고그렇게‘당신’을부르며언제돌아올지모를응답을기다리는것은곧자기자신의존재를다시세우기위해서이기도하다.“자신의결여를메우기위해타자의심급이필요하”(「죽지않는구멍」)기때문이다.시인은‘당신’으로대표되는“미지(未知)”(「롱러브레터」)의타자들을엽서위에반복해불러내어자신의“빈곳”(「죽지않는구멍」)에“또다른얼굴이,얼굴들이솟아나”(「언덕위관음」)게함으로써스스로의존재를완성하고자하는것이다.

시인이편지-시안으로불러들이는타자는연인같은구체적대상을넘어,텍스트안에서재구성되는영화,웹드라마,연극,동화속장면과목소리들로확장되고,가차없는폭력과끔찍한야만으로인해“우리가완전히잃어버린것이있는곳”(「책갈피」)으로까지나아간다.이때편지는이곳의우리를저곳의부재또는상처와매개하는필수적인통로로,단절되어서는안되는것으로거듭난다.우리의존재는타자를경유하지않고서설명될수도가능할수도없다는듯멀리서나마편지를통하여타자와연결되어있으려는노력은이시집에서장이지의시를나아가게하는동력이된다.이렇듯“편지의존재론”(해설)이라할수있을만큼모든시편들이편지를풍성하게사유하는바,『편지의시대』를읽는일은그안에스민철학적깊이와집요함에새삼전율하고지금우리가발딛고선곳에서연결은어떻게성취되는지성찰할수있는기회가될것이다.

추천사
편지의시대를읽으며편지쓰는마음을떠올린다.다정함,애절함,간곡함……안부를묻는말에더하지못한사정을헤아린다.편지를쓰면서우리는달라진다.속마음을감추면서,명랑을과장하면서.받은편지를읽으며우리는또한번달라진다.행간에생략된말을떠올리면서,주워섬긴말들을그러모으면서.그러므로편지를쓰고읽는일은“자기의허물을몰래불태우”(「허물」)는일,“우리는예전의우리일수있을까”(「…에서온이메일」)라고물으며‘함께’의시간으로부터자발적으로사라지는일이다.
“엽서는모든것을말하려하지만……”(「결괴」)마음을고스란히전달하는건사실상불가능한일이다.“당신에게하고픈말을물위에적어”(「물아래편지」)도그말이물아래까지온전한형태를유지할수는없으니말이다.이는역설적으로편지의시대가끝나지않았음을,여전히누군가는혼잣말로노래를만들고그것을엽서에묵묵히적어내려가고있음을상기시킨다.
“너의슬픔을알면서나는너에게가지못하”(「언덕위관음」)기에우리는편지를쓴다.그것을쓴사람에게로마침내되돌아온다는걸알기에우리는편지를쓴다.세밑에“이토록붐비는사랑이라니”(「롱러브레터」),모처럼길모퉁이우체통처럼반가운시집을만났다.
오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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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말

찬비가온다
너에게보낸편지가다젖을까
온종일그생각만하다가문득
밤의깊은곳에서내가걱정한것은그게아니고
네가울고있지않을까하는그것이었음을깨닫는다
이것으로내마음의여섯번째무늬를삼는다
편지가온다겨울냄새묻어온다

2023년겨울
장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