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 창비시선 496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 창비시선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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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너의 신비, 그것은 세계의 신비”
고요함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아름다운 속삭임
나는 네가 되고 너는 세계가 되는 곳에서 마음의 비밀을 기록하는 시
“돌발적이고, 바뀌고 달라지며, 충돌하고 흩어지는 일상, 그것이 곧 우리 존재의 본모습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말한다”는 심사평을 받으며 202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강우근 시인의 첫 시집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이 2024년 ‘창비시선’의 첫 책으로 출간되었다.등단 이듬해 대산창작기금 대상자로 선정되는 등 평단의 주목을 받은 시인은 첫 시집에서 다변하는 세계의 풍경을 과장이나 비약 없이 냉철하게 응시하며 존재의 비밀과 사물의 본질을 탐색하는 다채로운 사유를 맘껏 펼쳐 보인다. 섬세한 감각으로 “최선을 다해 대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인의 “순하고 선한 마음”이 깃든 시들은 분리와 갈등이 가득한 세계를 “맑음과 환함”(김언, 추천사)이 충만한 곳으로 바꿔낸다.
일상의 풍경을 정밀하게 포착하고, 유려하고 감각적인 진술로 문장을 끌고 나가는 힘이 단연 돋보이는 강우근의 시는 말의 조건과 제약에 갇히지 않는 구체적인 ‘사물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의 시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두 영혼이 깃든 사물로 화(化)”하게 하며 “사물에 깃든 영혼을 세심하게 발견하고 형상화한다”(추천사). 시인은 “우리를 지그시 쳐다”(「그 돌을 함부로 주워 오지 말아줘」)보며 말을 걸어오고 “대화를 요구하는 사물”(「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의 목소리에 집중하면서 “세계 속에서 생겨나는 마음의 체험”(김미정, 해설)을 정성스럽게 그려낸다. 그렇게 써 내려간 강우근의 시는 알 수 없었던 세계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밝혀내고, 자연스레 인간과 자연과 사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삶에 대한 지향에 가서 닿는다.
저자

강우근

저자:강우근

1995년강릉출생.

2021년조선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

시를쓰면서자연과사물과공존하며공동의꿈을꾼다.

목차


제1부
하루종일궁금한양초
어두워지는푸른불
파피루아
너와바꿔부를수있는것
민무늬탁자
물고기숲
물고기비가내리는마을
유성
소원
나무들의마을
검은고양이
우리의바보같은마음들

제2부
단하나의영상에서돌고도는기념일
모두다른눈송이에갇혀서
일렁일때까지일렁이고싶은마음
다람쥐가있던숲
엄마의정원
태풍같은사람이온다면
우산을어느손으로쥐어야하나
우산들
언제나붉은금붕어가있다
어느날17층에있다는것
목욕탕
신호
단순하지않은마음
점선으로만들어지는원

제3부
함박눈
환한집
어디선가하얀집이지어지고있다
말차의숲
주전자가할수있는일
무용하고도기나긴용
그림을못그리는화가지망생의편지
설이가먹은것들
우리가모르는수십억개의계단들
모든표정이죽어간다는것
투명한병
저녁을천천히먹어야한다
네가무슨생각을하든지괜찮지만,그마음만은가지지말아줘
빛은나를빠져나갈수밖에없는기차
희망
고요한연은하늘을몇번이나뒤집고

제4부
우리는1층에서자유로워
투명한원
그돌을함부로주워오지말아줘
공룡같은슬픔
세상의모든과학자
끝나가는원
유령들의드럼
비행하는구름들
비밀
우리가매일지나치는것
너의신비,그것은세계의신비
또다른행성에서나의마음을가진누군가가살고있다
단하나뿐인손

해설|김미정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네가가까이다가갈수록
너를그것과바꿔부를수있을것이다”
작고여린존재들에게건네는촘촘하고따뜻한눈길

이시집에는‘바보같은마음’,‘일렁일때까지일렁이고싶은마음’,‘단순하지않은마음’처럼제목에서부터‘마음’이라는단어를전면에내세운시가많다.복잡한감정들은제쳐두고아무렇지않게살아가는듯보이지만일상의순간마다밀려드는다양한마음들은우리를계속해서멈춰세운다.이를테면시집곳곳에서너울지는“영문을알수없는사람에게흔들리는마음”(「태풍같은사람이온다면」),“슬픈감정을슬픈노래로무마하려는마음”(「말차의숲」),“알수없는마음”이나“아무도발견하지못한거미줄같은마음”(「네가무슨생각을하든지괜찮지만,그마음만은가지지말아줘」)같은것들이다.시인은이러한마음들을단지일상의풍경으로재현하고나열하는데그치는것이아니라,이마음들이어떻게시작되었고어디를향해가는지를따라가면서“서정의진원지”(해설)를다시묻는다.

“보이지않는거리의조약돌처럼우리를넘어트릴수있”(「단순하지않은마음」)는위험이도처에가득한세계에서밝은미래를꿈꾸기란쉽지않다.언제어디서슬픔과고통이터져나올지모르는불안은낯설지않고,함께걸어가야할미래는아득하고막막한쪽에서있는듯하다.특히사람과사람사이에벽을쌓아올리는것이자연스러웠던지난몇년은‘너’와‘나’로나뉘지않은‘마음의근원’을묻는이와같은작업을더욱불투명하게만들었다.그럼에도시인은“멀리있는빛이/가까워지고있다는믿음”(「단하나뿐인손」)과“내가지나온모든것이아직살아있다는믿음”(「단순하지않은마음」)을잃지않는다.혼란하고어두운지금을명확히인지하면서도공허와불안을견뎌내며담담하게미래에대한희망을말한다.“하늘은미래의새들로가득하고//날이좋은공원의벤치에는/언제나가능성이있다”(「희망」)고단단히붙잡으며우리가익히알고있는‘희망’이라는단어를‘미래’와‘가능성’이라는말로새롭게쓴다.

시인은‘시’가“우리가누군지투명하게깨닫게”하는“조용한꿈”을“받아적는동안일어난일”(시인의말)이라고말한다.이것은“또다른행성에서/나의마음을가진누군가가보내는신호”(「또다른행성에서나의마음을가진누군가가살고있다」)를진실한마음으로마주하고이에응답하겠다는다짐이기도하다.시인은한걸음더나아가때로는“가려던곳보다더먼거리를산책”(「우리의바보같은마음들」)하며어떻게든지금까지보지못했던곳너머의아득하고“불가능한꿈을이어가려고”(「설이가먹은것들」)애쓴다.그렇게가까이다가가사랑하는것들의곁을묵묵히지켜내는시,그리고작은존재들이반짝이는순간을멈추지않고써나가고자하는단단한마음이시인이앞으로펼쳐갈또다른서정의새로운세계를기대하게한다.

시인의말

꿈은하늘에서내리는빗방울처럼우리가누군지투명하게깨닫게하고,
쏟아지는빗물처럼꼼짝없이우리를생각하게만들어

꿈이라는속성은누구도피해가지않으며다가온다식물이조금씩자라나는것처럼희미하고아름답게,지하철이내부에있는사람을상영하는것처럼조용하게

슬픈건어린나무가어른나무가되어자라나다가발밑에빗물이닿지않은날이올수도있다는것
슬픈건사라지는모국어를가진사람이같은노래를부르는누군가를찾아나서는것처럼
매일조금씩사라지는곳에우리의꿈이있다는것

조용한꿈을꾸고싶다

세계라는것이어디있는지들추는인간들사이에는없는,코끼리를생각하지말라고하면더생각하는,그렇게코끼리가숨어들었던숲이해체되는것을기어코봐야하는인간의꿈이아닌각자의햇볕을이끌고들판에서이리저리뛰어노는아이들처럼,이유없는마음처럼시작되는꿈

그건당신이볼수없는당신의표정같은걸까,잠에빠지는동안생겨나는당신의세포같은걸까

박수를필요로하지않는것
우리가동시에쓸수있는하늘이라는모자
당신의시선바깥으로흘러가는하나의구름,
“사라져버렸다”아이들이외쳐도아무도모르는구름의행방
가꾸어지지않은숲에서들리는이름모를새의노래
단하나의무늬를가진물고기가평생물속에서유영하고싶은감각

시를,그런꿈을받아적는동안일어난일이라고부르고싶다

2024년1월
강우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