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흔한풍경이다”
무수히부서지고다시솟아오르는가장젊고혁명적인자아의탄생
끝없이분열하는‘나’사이를유영하는고독한영혼의하루
2019년창비신인시인상최연소수상자로당선되어“우연히촉발된감정이나세계의뒤틀린모습에몰입하여그것을과장하지않고,자신의언어로차분히,때론폭발적으로밀어붙이는힘”이강렬하다는평을받으며깊은인상을남겼던한재범시인의첫시집『웃긴게뭔지아세요』가창비시선499번으로출간되었다.등단5년만에펴내는이시집에서시인은‘나’의존재의의미와자아의실체를탐색하는깊은사유를펼쳐보인다.시인이아주작은것으로부터시작하여깊숙한자신만의내면을단단히다져왔음을증명하는이시집은보기드문개성적화법으로불확실하고혼란스러운세계를부유하며고뇌하는“우리의자아의현주소”(이수명,추천사)를확인하게한다.이젊은시인이세계와그속에놓인자아를담는날카로운언어를따라가다보면끝없이부서지고합체되는‘나’의조각들을마주하게될것이다.“새로운의구심”(추천사)이될50편의시를실었다.
미래를눈앞으로당겨오는시,
익숙한일상을뒤집는언어의놀이터
한재범의시는직관적인이해를의도적으로비틀며일종의읽기과제를부여한다.있음과없음,존재와존재의부재가충돌하는구도속에서얽히고설킨문장들은어느새출구가여러개인언어의미로를만들고,순차적인시간의흐름을따르지않고의식적으로재배치하거나동시에겹쳐놓은지극히평범한일상의사건들은결국엔선후를종잡을수없게된다.시인은“자연사박물관밖에는자연이있고/자연사박물관밖에는아무것도없다”(「박물과나」),“지옥은어디에나있지만/어디에는없고”(「나는내일부터」)처럼논리적으로모순되는문장을즐겨쓴다.행과연을미묘하게배치하여낯선효과를거두고,의도적으로문장성분을생략하거나“오늘은아무것도먹지않았는데(…)나는종일배가부르다”(「커피는검다」),“젖지않았는데이미젖어있다”(「불성실」),“문이없어서자꾸만문이열리는방안”(「연습생」)처럼인과관계가성립하지않는문장을교묘하게연결하여인과관계를조작하는방식또한주요한시적전략으로삼는다.“보이지않으니까믿을수있”(「연습생」)고“미래가지루해져서돌아오지않는다”(「휴양지」)고말하며자연스럽게현실감각을뛰어넘는문장구성은어두운세계한복판에서잠시눈을감고꾸는꿈처럼몽환적인감각을불러일으킨다.
“극장을빠져나와우린밝은무대위를걷는다”
모두가각자의자리로돌아가면시작되는삶이라는일인극
작법을넘어한재범의시에서두드러지는부분은“내가있어도없어도무방할”(「아직여기」)세계에서“흔한풍경”(「너무많은나무」)이되어버린‘나’의이야기와이것을드러내는방식이다.마치일인극을보는듯시인과화자와자아가중첩되거나일치되는장면들은시집전반에기묘한분위기를자아낸다.여기에는“나는아무것도걸치지않은나를보았다”(「코끼리코에걸린코끼리」),“나는꽤자연스럽다”(「레디믹스트콘크리트」),“밖에서나는나의역할을맡는다”(「직물과작물」)와같은발화가보여주듯일정한거리를두고‘나’를무심히관찰하는또다른‘나’의시선이더해진다.자연히이시집에는“주체가아니라대상화된존재”(추천사)로서의자아가나타나게된다.“영혼이자꾸만내몸을벗어나려고”(「유원지」)하기에‘나’의존재를의심하면서도,이해받지못한타인에게“나를해명해야할거같아”(「없는게없는」)시는끊임없이‘나’에대해묻는다.“일생의절반”이“낮도없고밤도없는지하”(「나는내일부터」)인삶,때로는경험하지않은미래가지루해져버리는삶이기에모든것을포기하고인간의틀을벗어나볼까도생각하지만그렇게“나를그만두려는마음”(「휴양지」)이들끓어도결국“내가나라는사실”(「유원지」)이자명하고,“나는사람이아닌적없다”(「사거리」).그리하여시인은선언한다.“나는계획형인간이다인간이될계획이다”(「많은나의거북이」).한발더나아가“나는2222년이기대된다”(「레디믹스트콘크리트」)고말하며오지않을것같은먼미래를삶의한복판으로끌고온다.
한재범의시는발상과발성면에서근래의신인시인들과는확실히차별성이있다.고유한화법은단순히새로운제안을뛰어넘는설득력을가졌고독특하다기보다는도발적이다.세상을바라보는시선과이를풀어내는시적에너지가생동감있고다채롭기에읽는이로하여금삶의세목과일상의풍경을이전과다르게감각하도록한다.참신함을뛰어넘는기발한발상과독창적이고파격적인문법으로견고하게다진그의시세계는‘미래의시’의한전범을보여주기에손색이없다.이당찬시인이“지상과다른곳”(「승강기」)을향해뻗어가자신의세계를더넓고더깊게확장해나가리라믿으며그가다음에연출해낼“삶이라는일인극”(최다영,해설)을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