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요즘도 아침에 뜨겠죠 (박승민 시집)

해는 요즘도 아침에 뜨겠죠 (박승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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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먼 우주의 시간 속에는 이 세상 헛되고 헛된 일 없다는 것을
아침마다 돌아오는 햇볕이 부연하고 있지 않는가”

모든 사라지는 존재에게 전하는 묵묵하고도 결연한 위로
생의 끝, 허무의 바닥에서도 끊임없이 자라나는 이야기
등단 이후 한결같은 시심(詩心)을 견지하며 슬픔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강직한 시세계를 다져온 박승민 시인의 네번째 시집 『해는 요즘도 아침에 뜨겠죠』가 창비시선 508번으로 출간되었다. “생태 난민의 만가(輓歌)”(정지창, 해설)로서 절창을 보여준 『끝은 끝으로 이어진』(창비 2020)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신작 시집이다. 첫 시집에서부터 삶과 죽음의 문제에 끈질기게 천착해온 시인은 이번에도 그 원숙한 사유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나아가 물질문명의 폐해와 인간의 폭력을 날카롭게 묘파하는 시편들은 생태 위기의 심각성과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운다. 신미나 시인은 “삶이라는 ‘반복’을 견디는 도저한 믿음에 바치는 격려”(추천사)라고 적었다. 삶과 시를 대하는 시인의 진실한 마음과 진지하면서 겸허한 태도가 깊이 와닿는 이번 시집은, 시인이 허무의 골짜기 위로 쌓아 올린 견고한 교량이자 생태의 회복을 간절히 염원하는 기도서이다.
저자

박승민

저자:박승민
경북영주에서태어났다.2007년『내일을여는작가』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지붕의등뼈』『슬픔을말리다』『끝은끝으로이어진』등이있다.박영근작품상,가톨릭문학상신인상,작가정신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고무나무가자라는여름
하여간,어디에선가

헛됨이오만년이라면
상자에던져진눈
분노뒤에오는것
밀양과수원길
마호가니연립주택
어항
광장의뱃노래
나의게토는
두손
아우슈비츠
이동하는,끝없는
부활하는접시

제2부
수박밭
매장
약줄
응시
적도부근
새로운신(神)
만이천오백칠십팔일
그늘을깨밭에가두고
너의시대
항복연립
주술사
고산식물인간
가까워질수록까마득한
미래농업
지나가버린사람

제3부
자꾸자라나는이야기
담배꽃
순수한인간
아주긴나팔꽃처럼
코로나검사소
연(蓮)봉오리
숲의전구
지브롤터해협
소멸의집
등꽃
눈과눈들
꽃의시작
사과꼭지는멈춘다
금강소나무
낙타
옥수수와피라미드

제4부
다시,붉은
젖은가을에이른추위가오니
틀니
멈추다
산소통
구절,초가하루에도몇번씩
올리브나무그늘
어느마을을지나는데
한국문학의야생
빛나는졸업식
낙원
입춘
전범(戰犯)
두바퀴만으로


해설|정지창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먼우주의시간속에는이세상헛되고헛된일없다는것을
아침마다돌아오는햇볕이부연하고있지않는가”

모든사라지는존재에게전하는묵묵하고도결연한위로
생의끝,허무의바닥에서도끊임없이자라나는이야기

“그러고보니안녕,하는작별은첫만남의인사였네”
허무를향한깊은응시가길어낸굳은깨달음과의지

박승민시인은죽음의문제에유독관심이깊다.시인에게죽음은단지인간의문제가아니다.만물은짧은순간만을존재하다가사라지며좌절과실패는필멸하는존재들의숙명이다.시인의노래는그허무에서부터시작된다.사라짐은무(無)의시간속으로소멸하여아주없어지는것이아니다.모든존재는연기(緣起)의사슬로이어져다시태어난다.전작시집에서이미“끝은끝으로이어진세계의연속”이며“존재는늘새로운형식으로우주의일부로다시드러난다”(「끝은끝으로이어진」)는통찰을보여주었듯,시인은이번시집에서도죽음은단지삶의단절이아니라새로운삶의시작이라는깨달음을되새긴다.시인에게죽음이란“이우주를영영떠나는”것이아니라“다른것들과합쳐지는”것이면서“새로운형태가되는”(「하여간,어디에선가」)것이다.죽음의문제에대한시인의인식은더욱깊고견고해졌다.

“인간의눈을포기할때
세계는얼마나광활한가
위험보다는위대함에가까운가”

시인은예민한시선으로물질문명의폐해와자연에대한인간의폭력을주시한다.인간의눈이아니라사물의눈으로“자연이라는순환의고리에뚫린커다란허방”과“구(球)안에갇힌세상”(추천사)의살풍경을직시하면서“이산의심장과저산의식도를뚫어직선터널을놓고부터”(「길」)발생된생태계의변화를이미감지해낸다.“맨드라미씨같은날벌레들”과“까마귀만한붉은나방들”(「어느마을을지나는데」)이출몰하고,“강물과산자락은생산라인으로끌려들어”(「새로운신(神)」)가고,돼지와닭과오리와소를떼로파묻었던자리에는급기야“인간들이묻히기시작”(「매장」)한다.시인은“인간이전기톱을끌때”(「소멸의집」)만이비로소폐허화된땅에“새순을일으키는따스운봄의홍조”(「틀니」)가생기롭게흘러들것임을예고한다.
“자꾸오작동하는몸”으로“가망없는생”을살아가다보면문득“살고있다는생각도살았다는기억도희미”(「이동하는,끝없는」)해진다.더나은세상을이루고자한때혁명을꿈꾸었으나“혁명은이제책속에나있고”,절망과고통의세월을버텨나갈“견딜힘이달리니”“이젠남들처럼살아보면안될까”(「입춘」)안주하고싶은마음이들기도한다.하지만시인은암울한현실을외면하지않고“밥그릇속에네명의죽음을꿰매버린”“자본의강철같은맨얼굴”(「만이천오백칠십팔일」)도똑똑히기억해둔다.그런가하면“아우슈비츠의자식들”이“팔레스타인땅에서팔레스타인사람들을살해”하며“아우슈비츠가또다른아우슈비츠”(「아우슈비츠」)를만드는아이러니와세계곳곳에서자행되는자본주의의폭력을증언하고,전쟁과기후위기와기아등인간의탐욕으로말미암은재앙의현장을기록해나가며고통을함께하고자한다.

슬픔과원망의바다를건너
끝내돌아올아침으로향하는굳건한발걸음

“해는요즘도아침에뜨겠죠?”(「항복연립」)라는물음은더이상해를볼수없는현실을사는이가던지는무기력한탄식처럼들린다.실제로그것은“전진과후퇴를반복”하는“슬픈기형”(「구절,초가하루에도몇번씩」)의삶속에서무엇을해야할지를모르는이가던지는낮은비명에불과할지도모른다.그러나이물음에는한줌의믿음역시남아있다.당장에보이지는않더라도어디선가는해뜨는아침이반복되고있을것이란굳건한믿음이다.죽음마저도생을완전한허무에가둘수없듯“먼우주의시간속에는이세상헛되고헛된일없다는”(「헛됨이오만년이라면」)깨달음을손에쥐고시인은허망한세상을통과한다.그렇게“난폭한광야”를지나“슬픔과원망의바다”를건너마침내는“오래된지혜의이삭들”(「헛됨이오만년이라면」)이희망의빛으로반짝이는상생과조화의숲에도달하고자하는것이다.그숲그늘아래서시인은견실한시정신을벼리어‘좋은시’를넘어서서이시대에‘필요한시’를꾸준히써나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