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거짓말 - 창비시선 512

내가 사랑한 거짓말 - 창비시선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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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는 분명한 혁명을 발명하려고
밤을 닦고 있다”

절정에 이른 감각적 사유와 날선 현실 인식의 견고한 조화
망명한 봄이 돌아오는 소리
탁월한 언어 감각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서정시의 지평을 넓혀온 장석남 시인의 신작 시집 『내가 사랑한 거짓말』이 출간되었다. 2025년 새해 창비시선의 출발을 알리는 첫번째 시집으로, 시인의 아홉번째 시집이다. 편운문학상․지훈상․우현예술상 수상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창비 2017) 이후 8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오랜 정진을 통해 도달한 시경(詩境)을 활달하게 전개하는 원숙함”(최원식, 해설)과 깊고 투명한 철학적 사유가 빛나는 비범한 신서정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자연을 향한 진득한 응시가 자아와 본연의 인간에 대한 웅숭깊은 탐색으로 아득하게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냉철한 현실 인식이 담긴 정치시도 선보인다. 작금의 현실을 예견한 듯한 풍자와 알레고리가 서정에 바탕을 둔 시인의 고유한 개성과 정교하게 맞물려 독자들에게 벼락같은 울림을 선사한다.

”물에 노래를 심다니요
그것도 지금 노래가 아니라 훗날
하지(夏至) 때의 그 노래를 심다니요”

자연과 교감하는 아름다운 서정의 풍경을 그려내는 장석남의 시는 이제 무심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삼월 마지막 날이 사월 첫날을 맞아들이는 듯한 순전한”(「느티」) 마음이 피어나고, 아침 해가 “굶주린 호랑이처럼 쏟아져 들어”(「대숲 아침 해」)오는 고즈넉한 풍경 속에는 생명의 신운(神韻)이 생동한다. 간결한 언어로 수놓인 세밀한 풍경 속에는 시를 쓰기 시작한 이래로 시인이 쉼 없이 이어온 자문자답의 자취가 선명하게 스며 있다. 시인의 시선에 담긴 풍경은 ‘물에 심은 노래’처럼 은은하고 아름답다. 시인은 삶과 시를 오가며 본연의 인간이 어떠한 모습인지를 진득하게 묻고 자연은 그런 시인의 질문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언덕」과 「느티」, 그리고 「노을」을 비롯한 1부의 시에는 오랜 사유 속에서 찬란하게 영글은 시인의 사유가 편편이 녹아 있다.
한편 시인은 또 “살아온 내력의 울음 섞인 이야기”(「느티」)를 담담하게 노래한다. 낡은 책상 서랍에서 “문턱처럼 닳아진 성과 이름”만 남은 아버지의 목도장을 발견한 시인은 “이 흐린 나라를 하나 물려주는 일에 이름이 다 닳”(「목도장」)도록 애쓴 아버지의 고된 삶 앞에서 문득 울컥하고, 중학생 시절 아버지의 옷을 입어보다가 “왼쪽 안주머니 앞에 수놓인 노란 아버지 한자(漢字) 이름이/심장에 닿아 따끔거렸”던 기억을 소환하여 지금-여기의 삶을 되돌아보며 “희미한 불씨 같은”(「아버지 옷」) 추억에 젖는다. 세대를 아우르는 기억과 해후하며 삶의 이력을 곰곰이 되짚는 이러한 시편들에서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순간을 감각적으로 포착해낸 시인의 미학적 성취가 눈부시다.

권력의 불합리로 얼룩진 폐허
그 틈에서 울려 퍼지는 통렬한 목소리

이번 시집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오늘날의 현실을 내다본듯한 날선 현실 인식과 예리한 풍자가 돋보이는 ‘정치시’다. “유골함을 받아 안듯/오는, 봄/이 언짢은 온기”로 시작하는 「서울, 2023, 봄」은 시참(詩讖)으로 전율이 일 만큼 오싹하다. 진실을 가려내는 법정을 거짓과 조작의 마술을 상연하는 극장에 비유한 ‘마술 극장’ 연작과 가전체를 새로운 시법으로 패러디한 「법의 자서전」은 풍자시의 절정을 보여주면서 “정치의 사법화가 골수에 든 오늘의 폐허를 재주껏 야유”(해설)하고 “이득과 기득을 좋아”하고 “양심 같은 건 우습”(「법의 자서전」)게 여기는 “법부의 허울 좋은 법”(「체중계에 대하여」)을 작심한 듯 신랄하게 비판한다. “산송장들을 만드느라/관청의 서류마다 죄가 난무하고”(「서울, 2023, 봄」), “거짓들이 끝도 없이 거짓들을 모”(「나는 풍류객」)으는 부조리한 현실을 직시하며 시인은 “파아란 입술을 달싹”이며 “김수영의 방 말고 혁명”을, “최제우의 개벽 자유 자유 자유 자유”(「대기실」)를 외친다.

“서정시를 쓰십니까?
아니요 ‘서정시’를 씁니다
벼락같은”

탁월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자아와 인간에 대한 질문을 거듭해온 시인은 이제 현실에 한걸음 더 다가선다. 시인은 “넋마저 가면”(「가면의 생」)인 시대에“살아 있다는 것은 아프다는 것”(「한파(寒波)」)을 절실히 깨닫고, “위선과 비열, 몰염치와 야비, 교활하기까지 한/그 가면들을 순간의 빛 속에 가두고/때리는” 시, “벼락 맞을 짓을 하는 인간들에 대해서/벼락에 고하는” ‘벼락같은 서정시’를 쓰겠노라 다짐한다. 폐허가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의문과 숙제를/평생 풀지 못할까”(「숙제」) 두려워하면서도 “무섭도록 서러운 노래도 좀 부르면서” “사람 사는 땅”(「쾌청」)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사랑이 보이는 그 긴 언덕”(「언덕」)을 느릿하고 “희끗한 걸음”(「다시 언덕」)으로 넘어오는 한 사람, 시인의 모습이 숙연하다. 고유한 서정성과 더불어 ‘시’로써 더 나은 현실로 나아가겠다는 시인의 굳건한 믿음이 수놓인 이번 시집은, 현실에 발 디딘 굳건한 시의 소리에 목마른 독자들의 갈증을 단숨에 해소해줄 것이다.

저자

장석남

저자:장석남
장석남(張錫南)시인은1965년인천에서출생했다.1987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새떼들에게로의망명』『지금은간신히아무도그립지않을무렵』『젖은눈』『왼쪽가슴아래께에온통증』『미소는,어디로가시려는가』『뺨에서쪽을빛내다』『고요는도망가지말아라』『꽃밟을일을근심하다』,산문집『물의정거장』『물긷는소리』『시의정거장』『사랑하는것은모두멀리있다』등이있다.김수영문학상,정지용문학상등을수상했으며현재한양여대문예창작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제1부
언덕
다시언덕
느티
시월바다를향해말하다
노을
내맨나중가질것은
연꽃심을때
가을연밭
꽃이무거운꽃나무여
꽃과물과구름노래
창을닦아요
대숲아침해
좁은봄
가을포구
상강(霜降)

제2부
목도장

시창작수업
흰죽
가구를옮기다
열쇠
병풍
아버지옷
꽃배달

제3부
자화상
무지개의집
기차에서의술
내가사랑한거짓말
묘지명(墓誌銘)
독작(獨酌)
노래를청하다
사성암에서
새그리기
가을손
가면론
가면의생
서정시를쓰십니까?
가을목수
사막을사모함
나의얼굴을다오
옛집명자꽃더미앞에서
쾌청
겨울후박나무로부터
이야기하러가는나무

어느날나는악기상가앞에서있다
분장실에서
나는풍류객
나의풍경
그림일기
어떤방
대기실
한파(寒波)
이름을놓다

제4부
조광조(趙光祖)
청량리역에서
여름의입구
어느장마
한혁명의방문
꽃밭에서
서울,2023,봄
법의자서전
체중계에대하여
마술극장서(序)
마술극장1
마술극장2
마술극장3
저울
어떤봄
대서소1
대서소2
발명가
숙제
꽃송이하나떨어져서

해설|최원식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물에노래를심다니요
그것도지금노래가아니라훗날
하지(夏至)때의그노래를심다니요”

자연과교감하는아름다운서정의풍경을그려내는장석남의시는이제무심의경지에이른듯하다.“삼월마지막날이사월첫날을맞아들이는듯한순전한”(「느티」)마음이피어나고,아침해가“굶주린호랑이처럼쏟아져들어”(「대숲아침해」)오는고즈넉한풍경속에는생명의신운(神韻)이생동한다.간결한언어로수놓인세밀한풍경속에는시를쓰기시작한이래로시인이쉼없이이어온자문자답의자취가선명하게스며있다.시인의시선에담긴풍경은‘물에심은노래’처럼은은하고아름답다.시인은삶과시를오가며본연의인간이어떠한모습인지를진득하게묻고자연은그런시인의질문을결코외면하지않는다.「언덕」과「느티」,그리고「노을」을비롯한1부의시에는오랜사유속에서찬란하게영글은시인의사유가편편이녹아있다.
한편시인은또“살아온내력의울음섞인이야기”(「느티」)를담담하게노래한다.낡은책상서랍에서“문턱처럼닳아진성과이름”만남은아버지의목도장을발견한시인은“이흐린나라를하나물려주는일에이름이다닳”(「목도장」)도록애쓴아버지의고된삶앞에서문득울컥하고,중학생시절아버지의옷을입어보다가“왼쪽안주머니앞에수놓인노란아버지한자(漢字)이름이/심장에닿아따끔거렸”던기억을소환하여지금-여기의삶을되돌아보며“희미한불씨같은”(「아버지옷」)추억에젖는다.세대를아우르는기억과해후하며삶의이력을곰곰이되짚는이러한시편들에서과거와현재가맞닿는순간을감각적으로포착해낸시인의미학적성취가눈부시다.

권력의불합리로얼룩진폐허
그틈에서울려퍼지는통렬한목소리

이번시집에서특히주목할것은오늘날의현실을내다본듯한날선현실인식과예리한풍자가돋보이는‘정치시’다.“유골함을받아안듯/오는,봄/이언짢은온기”로시작하는「서울,2023,봄」은시참(詩讖)으로전율이일만큼오싹하다.진실을가려내는법정을거짓과조작의마술을상연하는극장에비유한‘마술극장’연작과가전체를새로운시법으로패러디한「법의자서전」은풍자시의절정을보여주면서“정치의사법화가골수에든오늘의폐허를재주껏야유”(해설)하고“이득과기득을좋아”하고“양심같은건우습”(「법의자서전」)게여기는“법부의허울좋은법”(「체중계에대하여」)을작심한듯신랄하게비판한다.“산송장들을만드느라/관청의서류마다죄가난무하고”(「서울,2023,봄」),“거짓들이끝도없이거짓들을모”(「나는풍류객」)으는부조리한현실을직시하며시인은“파아란입술을달싹”이며“김수영의방말고혁명”을,“최제우의개벽자유자유자유자유”(「대기실」)를외친다.

“서정시를쓰십니까?
아니요‘서정시’를씁니다
벼락같은”

탁월한서정성을바탕으로자아와인간에대한질문을거듭해온시인은이제현실에한걸음더다가선다.시인은“넋마저가면”(「가면의생」)인시대에“살아있다는것은아프다는것”(「한파(寒波)」)을절실히깨닫고,“위선과비열,몰염치와야비,교활하기까지한/그가면들을순간의빛속에가두고/때리는”시,“벼락맞을짓을하는인간들에대해서/벼락에고하는”‘벼락같은서정시’를쓰겠노라다짐한다.폐허가되어버린현실에대한“의문과숙제를/평생풀지못할까”(「숙제」)두려워하면서도“무섭도록서러운노래도좀부르면서”“사람사는땅”(「쾌청」)으로,세상을향해나아간다.“사랑이보이는그긴언덕”(「언덕」)을느릿하고“희끗한걸음”(「다시언덕」)으로넘어오는한사람,시인의모습이숙연하다.고유한서정성과더불어‘시’로써더나은현실로나아가겠다는시인의굳건한믿음이수놓인이번시집은,현실에발디딘굳건한시의소리에목마른독자들의갈증을단숨에해소해줄것이다.

시인의말

겨울뜰에서의발길은솔앞에가서머뭅니다.
봄여름에는가지지않던위치

이제제법‘회고’가많아지는단계의삶
‘솔’의그것이내게있는가?
자문해보는엄동의때입니다.

검지의굳은살이지워지지않은것은다행일까요?

2025년1월
장석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