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도 배웅도 없이 - 창비시선 516

마중도 배웅도 없이 - 창비시선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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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간은 우리를 어디에 흘리고 온 것일까”
모두의 기다림에 응답하는 박준이라는 따뜻함
이번에도 슬픔은 아름답고, 위로는 깊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12)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8)로 한국시 독자의 외연을 폭넓게 확장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박준의 세번째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가 출간되었다. 시인은 일상의 소박한 순간을 투명한 언어로 포착하는 특유의 서정성으로 신동엽문학상, 박재삼문학상, 편운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잇달아 수상하며 문학성 또한 공고하게 입증해왔다. 7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은 그리움과 상실마저 아릿한 아름다움으로 그려내는 미덕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도, 한층 깊어진 성찰과 더욱 섬세해진 시어로 전작들을 뛰어넘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살면서 놓쳐버린 것들, 어느새 잊힌 것들의 빈자리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시대와 개인 모두와 조응하며 남다른 공감을 선사한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함께 앉아 조용히 등을 내어주는 시집”(추천사, 이제니)이라는 말처럼, 박준의 위로가 고요히 존재하는 삶들에 불어넣는 숨결이 어느 때보다 따뜻하다.

조용하지만 강력한 울림,
애틋한 온기로 빚어낸 푸릇한 생명력

‘당신’을 향한 애정 어린 호명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독자들은 박준 시에 등장하는 ‘당신’에 특별한 친근감을 느껴왔는데, 이는 그 호명이 단순한 연애감정을 아득히 초월해 존재의 깊은 곳에 가닿기 때문이다. “하나의 답을 정한 것은 나였고/무수한 답을 아는 것은 당신이었다”(「귀로」)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시인의 ‘당신’은 “존재의 높은 이름”(해설, 송종원)이다. 늘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을 높임으로써 “시인을 배움으로 이끄는 것은 물론 사람 안의 하늘을 경험하게 해준다.”(해설) 이러한 자세 때문인지 이번 시집은 삶의 주변부와 외진 장소에 화자를 두는 일이 잦아졌다. 그곳에서 발견한 소박하지만 숭고한 사람들의 언어와 삶이 풍부하게 담겼다. 일상적이지만 품격 있는 이들의 말과 행동이, 박준이라는 필터를 거치며 진정성 있는 서정으로 거듭난다. “삶은 너머에 있지 않았고 노래가 되지 못한 것만이 내 몸에 남아 있습니다”(「공터」)라는 깨달음도 이 덕분에 반짝 빛난다.
박준의 시는 다소 과묵하다. 말을 많이 부려내어 정서를 장황하게 풀어내기보다는, 오히려 말을 삼키고 그 여백 속에 감정을 스며들게 하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소리 없이/입 모양으로만/따라 부르”(「초승과 초생」)듯이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울림을 전한다. 이는 시인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음을 끓입니다 한 솥 올립니다”라는 간단한 행위가 “나는 아직 네게 갈 수 없다 합니다”로 마무리되는 것처럼(「마음을 미음처럼」), 말하지 않은 것들이 말해진 것보다 더 크게 다가와 읽는 이로 하여금 상실의 무게와 그 안의 애잔한 온기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송종원은 이를 “혼잣말로 화하게 하는” 시인의 힘이라 평하며, 박준이 “철저한 없음”을 견디는 동시에 그 빈자리에서 피어나는 정서의 깊이를 독자와 공유한다고 보았다. 이 간결함은 단순한 절제가 아니라, 시인이 삶의 결락을 직시하고도 여전히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은 성숙한 태도를 지녔다는 증거다. 그래서 독자들은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까”(「손금」)라며 시의 화자가 텅 빈 손을 들여다보면서도, 다시 “네가 두고 간 말을 아직 가지고 있어”(「다시 공터」) 하고 중얼거리는 순간 저마다의 빈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이번 시집은 상실을 감싸고 넘어서는 생명력 덕분에 더욱 특별하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 들이닥치는 것들”(「손금」) 앞에서도 “겨울을 지나는 수련처럼”(「수련」) 뿌리 깊은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이는 얕은 희망이나 허황된 회복의 기대와는 다르다. 상실로 텅 빈 자리에서도 “빛과 그늘과 바람과 비를 맞이하는 화분”(「오월에는 잎이 오를 거라 했습니다 (…)」처럼 고요히 존재하는 힘이다. 바로 이 힘이 상실의 경험을 깊숙이 응시하고, 그것을 삶의 일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준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는 조용히 다가와 오래 머무는 언어들로 채워져 있다.”(추천사) 시집 군데군데에서 느껴지는 여백마저 독자들에게 더욱 풍요로운 감성을 제공한다. 조용하지만 강력한 울림으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낯선 길에서 누군가와 눈인사나 하고 싶어”(「생일과 기일이 너무 가깝다」)지는 마음이 뭉근하게 일어나게 한다. 이것이 많은 이들이 박준의 시를 아껴 읽는 이유일 것이다. 평소 시를 즐기지 않는 이들의 마음에도 시인은 자신의 이름을 올곧게 새겨왔다. 그의 시를 기다려온 모두가 이 한권에 담긴 깊은 숨결과 묵묵한 사랑에 다시금 마음이 젖을 것이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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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준

저자:박준
1983년서울에서태어나2008년『실천문학』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당신의이름을지어다가며칠은먹었다』『우리가함께장마를볼수도있겠습니다』,산문집『운다고달라지는일은아무것도없겠지만』『계절산문』등이있다.신동엽문학상,박재삼문학상,편운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부르며그리며짚어보며
지각
미아
이사
마름
아침약
오월에는잎이오를거라했습니다흰것일지푸른것일지알수는없지만팔월이면꽃도필거라했습니다
앞으로나란히
손금
초승과초생
섬어
세상끝등대5
소일
우리없는곳까지
장악

제2부묽어져야합니다
은거
설령
공터
마음을미음처럼
다시공터

소백
아래흰빛
바람의언덕
꿈속의사랑
높고높은하늘이라말들하지만
아껴보는풍경
밥상

제3부겨울을지나는수련처럼
낮달
연립
동네
경기도파주시파평면397-1
능곡빌라3

잔치
도화
수련
새로운버릇
바닥

제4부일요일일요일밤에

인사
일요일일요일밤에
낮의말
밤의말
만약에

블랙리스트
귀로
동강
가나다라

소인
오월
팔월

산문
생일과기일이너무가깝다

해설|송종원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조용하지만강력한울림,
애틋한온기로빚어낸푸릇한생명력

‘당신’을향한애정어린호명은여전히빛을발한다.독자들은박준시에등장하는‘당신’에특별한친근감을느껴왔는데,이는그호명이단순한연애감정을아득히초월해존재의깊은곳에가닿기때문이다.“하나의답을정한것은나였고/무수한답을아는것은당신이었다”(「귀로」)라는구절에서보듯이시인의‘당신’은“존재의높은이름”(해설,송종원)이다.늘우리곁에있는이들을높임으로써“시인을배움으로이끄는것은물론사람안의하늘을경험하게해준다.”(해설)이러한자세때문인지이번시집은삶의주변부와외진장소에화자를두는일이잦아졌다.그곳에서발견한소박하지만숭고한사람들의언어와삶이풍부하게담겼다.일상적이지만품격있는이들의말과행동이,박준이라는필터를거치며진정성있는서정으로거듭난다.“삶은너머에있지않았고노래가되지못한것만이내몸에남아있습니다”(「공터」)라는깨달음도이덕분에반짝빛난다.

박준의시는다소과묵하다.말을많이부려내어정서를장황하게풀어내기보다는,오히려말을삼키고그여백속에감정을스며들게하는방식으로독자에게다가간다.“소리없이/입모양으로만/따라부르”(「초승과초생」)듯이최소한의언어로최대한의울림을전한다.이는시인이일정한경지에이르렀음을보여주는대목이다.“미음을끓입니다한솥올립니다”라는간단한행위가“나는아직네게갈수없다합니다”로마무리되는것처럼(「마음을미음처럼」),말하지않은것들이말해진것보다더크게다가와읽는이로하여금상실의무게와그안의애잔한온기를동시에느끼게한다.송종원은이를“혼잣말로화하게하는”시인의힘이라평하며,박준이“철저한없음”을견디는동시에그빈자리에서피어나는정서의깊이를독자와공유한다고보았다.이간결함은단순한절제가아니라,시인이삶의결락을직시하고도여전히따뜻한시선을잃지않은성숙한태도를지녔다는증거다.그래서독자들은“정말아무것도없으니까”(「손금」)라며시의화자가텅빈손을들여다보면서도,다시“네가두고간말을아직가지고있어”(「다시공터」)하고중얼거리는순간저마다의빈자리를돌아보게된다.

이번시집은상실을감싸고넘어서는생명력덕분에더욱특별하다.“마중도배웅도없이들이닥치는것들”(「손금」)앞에서도“겨울을지나는수련처럼”(「수련」)뿌리깊은생명력을잃지않는다.이는얕은희망이나허황된회복의기대와는다르다.상실로텅빈자리에서도“빛과그늘과바람과비를맞이하는화분”(「오월에는잎이오를거라했습니다(…)」처럼고요히존재하는힘이다.바로이힘이상실의경험을깊숙이응시하고,그것을삶의일부로온전히받아들이는법을알려준다.

“『마중도배웅도없이』는조용히다가와오래머무는언어들로채워져있다.”(추천사)시집군데군데에서느껴지는여백마저독자들에게더욱풍요로운감성을제공한다.조용하지만강력한울림으로삶의진정한의미를새삼돌아보게한다.“낯선길에서누군가와눈인사나하고싶어”(「생일과기일이너무가깝다」)지는마음이뭉근하게일어나게한다.이것이많은이들이박준의시를아껴읽는이유일것이다.평소시를즐기지않는이들의마음에도시인은자신의이름을올곧게새겨왔다.그의시를기다려온모두가이한권에담긴깊은숨결과묵묵한사랑에다시금마음이젖을것이다.

시인의말

다음길은얼마나멀까
벗들은여전히나를견디어줄까
길섶드리워진그늘마다다시짙을까
눈도한번감지못하고
담아두어야하는것들이
나를너에게데려다줄까
2025년봄
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