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도 배웅도 없이 - 창비시선 516

마중도 배웅도 없이 - 창비시선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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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준

저자:박준
1983년서울에서태어나2008년『실천문학』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당신의이름을지어다가며칠은먹었다』『우리가함께장마를볼수도있겠습니다』,산문집『운다고달라지는일은아무것도없겠지만』『계절산문』등이있다.신동엽문학상,박재삼문학상,편운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부르며그리며짚어보며
지각
미아
이사
마름
아침약
오월에는잎이오를거라했습니다흰것일지푸른것일지알수는없지만팔월이면꽃도필거라했습니다
앞으로나란히
손금
초승과초생
섬어
세상끝등대5
소일
우리없는곳까지
장악

제2부묽어져야합니다
은거
설령
공터
마음을미음처럼
다시공터

소백
아래흰빛
바람의언덕
꿈속의사랑
높고높은하늘이라말들하지만
아껴보는풍경
밥상

제3부겨울을지나는수련처럼
낮달
연립
동네
경기도파주시파평면397-1
능곡빌라3

잔치
도화
수련
새로운버릇
바닥

제4부일요일일요일밤에

인사
일요일일요일밤에
낮의말
밤의말
만약에

블랙리스트
귀로
동강
가나다라

소인
오월
팔월

산문
생일과기일이너무가깝다

해설|송종원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조용하지만강력한울림,
애틋한온기로빚어낸푸릇한생명력

‘당신’을향한애정어린호명은여전히빛을발한다.독자들은박준시에등장하는‘당신’에특별한친근감을느껴왔는데,이는그호명이단순한연애감정을아득히초월해존재의깊은곳에가닿기때문이다.“하나의답을정한것은나였고/무수한답을아는것은당신이었다”(「귀로」)라는구절에서보듯이시인의‘당신’은“존재의높은이름”(해설,송종원)이다.늘우리곁에있는이들을높임으로써“시인을배움으로이끄는것은물론사람안의하늘을경험하게해준다.”(해설)이러한자세때문인지이번시집은삶의주변부와외진장소에화자를두는일이잦아졌다.그곳에서발견한소박하지만숭고한사람들의언어와삶이풍부하게담겼다.일상적이지만품격있는이들의말과행동이,박준이라는필터를거치며진정성있는서정으로거듭난다.“삶은너머에있지않았고노래가되지못한것만이내몸에남아있습니다”(「공터」)라는깨달음도이덕분에반짝빛난다.

박준의시는다소과묵하다.말을많이부려내어정서를장황하게풀어내기보다는,오히려말을삼키고그여백속에감정을스며들게하는방식으로독자에게다가간다.“소리없이/입모양으로만/따라부르”(「초승과초생」)듯이최소한의언어로최대한의울림을전한다.이는시인이일정한경지에이르렀음을보여주는대목이다.“미음을끓입니다한솥올립니다”라는간단한행위가“나는아직네게갈수없다합니다”로마무리되는것처럼(「마음을미음처럼」),말하지않은것들이말해진것보다더크게다가와읽는이로하여금상실의무게와그안의애잔한온기를동시에느끼게한다.송종원은이를“혼잣말로화하게하는”시인의힘이라평하며,박준이“철저한없음”을견디는동시에그빈자리에서피어나는정서의깊이를독자와공유한다고보았다.이간결함은단순한절제가아니라,시인이삶의결락을직시하고도여전히따뜻한시선을잃지않은성숙한태도를지녔다는증거다.그래서독자들은“정말아무것도없으니까”(「손금」)라며시의화자가텅빈손을들여다보면서도,다시“네가두고간말을아직가지고있어”(「다시공터」)하고중얼거리는순간저마다의빈자리를돌아보게된다.

이번시집은상실을감싸고넘어서는생명력덕분에더욱특별하다.“마중도배웅도없이들이닥치는것들”(「손금」)앞에서도“겨울을지나는수련처럼”(「수련」)뿌리깊은생명력을잃지않는다.이는얕은희망이나허황된회복의기대와는다르다.상실로텅빈자리에서도“빛과그늘과바람과비를맞이하는화분”(「오월에는잎이오를거라했습니다(…)」처럼고요히존재하는힘이다.바로이힘이상실의경험을깊숙이응시하고,그것을삶의일부로온전히받아들이는법을알려준다.

“『마중도배웅도없이』는조용히다가와오래머무는언어들로채워져있다.”(추천사)시집군데군데에서느껴지는여백마저독자들에게더욱풍요로운감성을제공한다.조용하지만강력한울림으로삶의진정한의미를새삼돌아보게한다.“낯선길에서누군가와눈인사나하고싶어”(「생일과기일이너무가깝다」)지는마음이뭉근하게일어나게한다.이것이많은이들이박준의시를아껴읽는이유일것이다.평소시를즐기지않는이들의마음에도시인은자신의이름을올곧게새겨왔다.그의시를기다려온모두가이한권에담긴깊은숨결과묵묵한사랑에다시금마음이젖을것이다.

시인의말

다음길은얼마나멀까
벗들은여전히나를견디어줄까
길섶드리워진그늘마다다시짙을까
눈도한번감지못하고
담아두어야하는것들이
나를너에게데려다줄까
2025년봄
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