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편에서 만나 - 창비시선 520

반대편에서 만나 - 창비시선 520

$13.00
저자

송정원

저자:송정원
2020년시인동네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제1부기수지역
그해여름얼음
그말만지기
테두리에사는사람
작용반작용의법칙
꽃받침의불안
수영장
무명의화분
어린이날
미지,사랑
빙점
송지호해변
하얗고둥근고통
바니타스
내게맞는옷
불가능한일
4인용1인식탁
축제
기수지역

제2부아사비케이시인
카비카호스텔
집들이
현실재연극
기도하는소녀
모래얼굴
자각몽
명진탕
샤론피아노학원
심야파티
반대편에서만나
화해

가수면
신이등장하지않는신꿈
이상할정도로
아사비케이시인

제3부잇기로있기
안부를묻지않는편지
지탱의밤
달리기시합
피셔맨매듭
기도
관성적으로
그래도의마음
불참한기억들
그곳은그릇이될거야
지선버스
여름,여름아이
젖은시간말리기
보호색
작은죽은새
면이되는선
출력오류
자정시쓰기모임
이칸에탄사람
잇기로있기

해설|김미정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네가눈빛을끄자
내안에서결심하나가켜졌다”
경계에선존재를끌어안는커다란용기

고통과상실의기억을더듬으며“말하려는것이말해지지않았다”(「그해여름얼음」)는고백에서출발하는송정원의시는“더는여름이아닌/아직가을은아닌”(「기수지역」)계절처럼명확히규정되지않는일상의순간들을새로운시선으로포착해낸다.“허락없이남의생을엿본기분”(「축제」)과같이말로는다표현할수없는감정이나“사건도이유도결말도사라진채느낌만남은”(「화해」)기억속장면들을서사화하여“존재와존재가닿는일”(「잇기로있기」)의가능성을이야기하는이시집은‘너’‘당신’‘그’로지시되는익명의타자들과의어긋난관계를회복하고자한다.지나간시간을불러내어꿈과현실,기억과망각사이를부유하며“바람한점없는기억속에서살아”(「무명의화분」)가는존재들과새로운관계를맺어나간다.
시인은무엇보다“테두리에사는사람”“테두리로밀려난사람”“테두리에서버티는사람”과같이바깥도안도아닌경계에선존재들의고립된삶에주목하면서“완전한바깥이되지않기위해/안의끄트머리를꼭쥐고”(「테두리에사는사람」)살아가는불완전한존재들을다독인다.“활짝핀꽃보다/벌어지려는꽃잎을꽉껴안고있는/꽃받침의불안”(「꽃받침의불안」)에마음을두는시인은“한쪽날개로날고있”는새를보며“날고있는것이아니라/추락하고있지않는거”(「작용반작용의법칙」)라고말하며불안정하고위태로운삶을살아내려는안간힘을포착한다.“경계에사는것은끊임없이흔들리는일”이며“대상이없어야완전한사랑”(「기수지역」)이라는모순을고통스럽게깨닫자“네가눈빛을끄자/내안에서결심하나가켜졌다”(「빙점」)라는선언이이어진다.슬픔과고통뿐인삶을지탱하려는의지가새롭게생겨나는것이다.

세상의모든장면에
‘그래도’라는이름을붙여주자

『반대편에서만나』에는삶의구체적인장면이많다.송정원시인에게시쓰기란기억을쓰는일이다.시인은기억이된“이장면을오래기억할것”(「축제」)을예감하며다정한언어로“쓴다기억을”그리고“기억한다쓰는마음을”(「4인용1인식탁」).그는“풍경을바꾸는가장쉬운방법은/눈을젖게하는것”(「작용반작용의법칙」)이며,“잘본다는것은/시력이아니라시선의문제”(「그곳은그릇이될거야」)라고말한다.그리고“무엇을원하는지모르는채로도/간절할수있다는걸”(「그말만지기」)깨닫는다.
문학평론가김미정은“이름없는세상의모든감정,존재,사건,운동에‘그래도’라는이름을지어주고자하는”시인의마음에주목하며이시집을“보이지않게움직이며변이하는세계를미세하게감각하고,사라짐과멀어짐을다른마주침으로발명하며,사라질얼음을물고매일다시사랑을말하는나-너들의이야기”(해설)라고평한다.타자와의연결이점점더어려워지는지금,송정원시인은“서로다른시간에서있더라도/관통해본사람은어디든존재하는법을알게될테니/반대편에서만나”자고말한다.그것이“아직태어나지않은당신과/아직죽지않은내가할수있는/유일한약속”(「반대편에서만나」)이며,잃어버린관계를회복하는방식이다.
사라지는말을붙드는다짐,경계의불안을어루만지는마음,삶의순간들을끌어안는넉넉한품.실패가예견되어있지만“그래도”(「그래도의마음」)계속나아가는시인의걸음걸음이더욱기대되는이유이다.

책속에서

그해여름에는말하려는것이말해지지않았다
혀를움직일때마다무언가가훼손되고있다는느낌을지울수없었다

그해여름에는나를죽였거나내가죽였던사람들이매일찾아왔다
그들은한꺼번에와서내잠의마지막한방울까지흡수해갔다
(…)
그해여름에는비명이자주들렸다
어떤비명은너무아파서입안에서얼음부서지는소리로덮기도했다

그해여름에는잃기쉽고생기기쉽고꺼지기쉽고솟기쉬웠다
얼음을물고매일사랑을다짐해야했다
―「그해여름얼음」부분

완전한바깥이되지않기위해
안의끄트머리를꼭쥐고걸었다

그가있는곳을
안에서는바깥의시작이라불렀다
밖에서는안의끝이라불렀다

테두리로밀려난사람이있다
테두리에서버티는사람이있다

같은하늘을머리위에두었다는것이
유일한안심인사람이있다
―「테두리에사는사람」부분

진짜자두의맛과자두맛의거리는아득히멀고
우리는대체로자두맛을붙들며살아왔지
너무싱그러운것들은징그러워
흉내내는일에몰두했지

작고거칠고
사라질
한알의기쁨
―「어린이날」부분

우리는서로를위해걸것이없어서
새끼손가락을걸었다

흰가오리연이걸려있는
가지뿐인나무아래에서

평생하나의음식만먹어야한다면
무인도에딱하나의물건만가져간다면
단하나의초능력을선택할수있다면

일어난적없고일어나지않을일에대해서만
이야기하는마음

함께좋아하는노래는
후렴만따라부를수있다
―「빙점」부분

당신을흘려보낸나는어디를통과하는중일까
나역시태어나기위해죽어가는중일까

반대편에서만나
나는흘러간당신에게약속한다

서로다른시간에서있더라도
관통해본사람은어디든존재하는법을알게될테니

반대편에서만나
아직태어나지않은당신과아직죽지않은내가할수있는
유일한약속이다
―「반대편에서만나」부분

신에게도착한가장최근의기도는무엇이었을까

이제아무도안믿는것을
여전히믿고있는사람을만난다면
그를믿어보자

그는신이아니고
신비슷한것도될수없지만
천국의반대말이지옥이라고말하는사람은아니니까

인간이했던최초의기도는
아마사랑이었을것이다
―「기도」부분

흙에는지금까지죽은모든여자가있고
연필의몸은그들의품에서자랐지
그러니연필을꼭쥐는것은
그들과한꺼번에포옹하는방법

겹겹의체온에기대어
끈끈한체액을흘리며

침묵의소리를받아적는다
이름의뒷면을옮겨적는다

내가가두었던검은머리아이가
사각사각나타날때까지
―「여름,여름아이」부분

가까운이가죽는꿈을꾼날에는무거워진다
내가몰래그의죽음을바라기라도했던것처럼

무거울수록더크게웃고많이떠들게된다
내가드러날까봐자꾸가정법으로말한다

아무것도감수하지않은말은
아무말도아니다
그것은그냥소리에가깝다
(…)
행복과슬픔중하나를신으로삼아야한다면
슬픔을선택할거라는당신이떠오른다

행복은마침표가되기쉽고
슬픔은반드시시작점이된다고
―「보호색」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