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칸은 없다 (장철문 시집)

식당 칸은 없다 (장철문 시집)

$12.00
Description
“통로에서 내딛는 걸음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난다”
세속의 풍경을 수행처럼 건너며 길어 올린 구도적 서정
소멸과 생성이 맞닿는 자리, 순환하는 삶과 언어

슬프고 기쁜 세상사의 단면을 응시하며 이면에 놓인 삶의 질서와 인연의 흐름을 탐구해온 장철문 시인의 신작 시집 『식당 칸은 없다』가 창비시선 524번으로 출간되었다. “근래 한국시가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상회한다”(심사평)는 상찬을 받은 백석문학상 수상작 『비유의 바깥』(문학동네 2016) 이후 9년 만에 펴내는 다섯번째 시집이다. 이번 책에서 시인은 오래 벼린 단단한 시선으로 생성과 소멸이 교차하는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상실과 부재의 자리를 사유의 공간으로 바꾸어놓는다. 또한 평범한 삶의 장면과 마주하여 “만남과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구축하는 고통과 열락의 동시적 향연”(최현식, 해설)을 펼치는 시편들을 매개로 독자들에게 끊이지 않는 생의 허기와 결핍을 달래는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저자

장철문

저자:장철문
장철문(張喆文)시인은1994년『창작과비평』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바람의서쪽』『산벚나무의저녁』『무릎위의자작나무』『비유의바깥』,동시집『자꾸건드리니까』,포토포에지『날개를가진자의발자국』등이있으며여러어린이책을펴냈다.백석문학상,서정시학상등을수상했으며현재순천대학교문예창작학과교수이다.

목차


제1부
악의에게

식당칸은없다
소를보다
숲은고요하지않다
공양
우안거
한파주의보
네얼굴과그것에대하여
물풍수이야기
발을닦으며
성지순례

제2부
임종
능선너머
그오뉴월한나절
꾸지뽕쓰레빠
석다
우동과자전거
방울벌레울음소리를물었다
늦은임종
통증에대하여
그생에도보리똥나무가있을까?
왜많은가지와잎을가졌을까?
발자국

제3부

잠긴돌
호두나무잎사귀가있는저녁
낙화동백
봄내
거기지금
동백
서어나무에게간다
곁에없고
불어라,바람
수련
연두생각

제4부
놀다
용의자취를기록함
용이알을품을때
불확실성시대,라는말을들었다
나의어여쁜루어
산도라지밭에서
작은미술관을나오며

출판사 서평

“광목처럼풀리는새벽강에나가서
주낙을걷어오는사내가되고싶은날이있었다”
묵묵한시선과쓰기로이어지는내면의순례

장철문의시는격정적이지않음에도울림이깊다.그울림은일상의미세한틈을묵묵히들여다보는시선에서비롯된다.그는언제나거창한사건보다는“페달을밟아서우동을먹으러”(「우동과자전거」)가거나“휴게소뒷길이나서성이”(「옥천사가는길」)는소박한여정위에서사색에잠긴다.본래허름한세속의순간들이곧깨달음에이를수있다고믿기는어렵다.그럼에도“궁핍과피로속”에서의오랜생활끝에뭇존재들이새기는“어떤형태와색”(「작은미술관을나오며」)을찾아헤매는과정은시인의고유한수행이자쓰기의방식이되었다.그래서그의시에서성(聖)과속(俗)의경계는필연적으로맞닿는다.시인은이제안다.깨달음과욕망은결국한몸의그림자라는것을.붓다의다비장을찾은순례길에서“청년둘이벤치에앉아서스마트폰”으로“야동을돌려보”(「성지순례」)는풍경을담담히적어두는시선은허기를달래기위해들른휴게소의뒷길에서빛바랜동백을망연히바라보던자신을회고하는일과닮았다.거룩함은세속에깃든다.시인은이제수행자의눈빛으로주변을바라본다.

“흰치아를드러낸미소와
말소리만은
아직진동을멈추지않고있다”

삶과죽음,탄생과소멸을대하는시인의태도역시그연장선에있다.“햇살은거기있으나등짝의따스움은/벌써가고없는”세계를그리면서도시인은“아무려나/좋다!”(「불확실성시대,라는말을들었다」)라고말하면서사라짐을슬퍼하기보다사라지는순간의온기를붙잡는다.“땅에붙박인나무”들이“필사적으로가지를뻗고잎사귀를넓”(「숲은고요하지않다」)혀가는생명의안간힘을목도하면서상실과이별은삶의끝이아니라또다른시작임을새로이직감하기도한다.그는죽음이후에무엇이있는가에천착하지않는다.다만이생을함께한이의“보리똥나무가지를흔들던/자디잔웃음소리”를“아껴먹는생의식량”(「그생에도보리똥나무가있을까?」)으로삼을뿐이다.상실과결핍의고통을견디며삶의가능성을찾아가는이과정을시인은‘슬픔’과‘사랑’이하나로엮이고섞이는“떨림의파문”(「방울벌레울음소리를물었다」)이라이른다.결핍속에서충만을,소멸속에서생성을길어올리며그가기록하는것은탄생하고사라지는존재의순환속에서끊임없이재생되는생의숨결이다.
시인은빛바랜흑백사진을들추듯아득한기억속정경을‘지금-여기’의풍경으로되살려내기도한다.평생을“허기가시켜서”떠돌던시인의삶위로,“출가하겠다는아들을뒤세워/삼겹살을끊어다구”(「우동과자전거」)워주던어머니의다정한목소리와“임종도없이”(「늦은임종」)보내야했던할머니의쓸쓸한얼굴이포개진다.이제어머니도할머니도세상에없고,시인은“어머니의본관과이름이박힌/섬돌”에“꾸지뽕쓰레빠나두어켤레던져두”(「꾸지뽕쓰레빠」)는것으로그리움을대신하고,“콧물에눈물을섞어서”할머니의“늦은임종”(「늦은임종」)을지켜본다.장철문에게시란이렇듯부재의자리를비워둔채그안에남은온기를더듬는일이자사라진이들의숨결을다시불러내는언어의형식이다.

“소실된길끝에길을놓아서”
새로이내딛는걸음

“늘길에서비껴”(「옥천사가는길」)나던고단한삶속에서“두려운도시의거리와/여러직장과/해안과오래된골목”(「능선너머」)을오가는동안시인은막다른곳에다다르거나길을잃기도했다.그러나시인은이제비로소“소실점을향해가”(「작은미술관을나오며」)던길위에서“순간의생과지나간생과다가올생”이서로를향해자유롭게“유영하고뒤척이는”(「용이알을품을때」)새로운길을독자들앞에열어두었다.그길을묵묵히걸으며시인은“가만가만숨결에오는말”(「말」)을받아안아“써야할시”(「숲은고요하지않다」)를오래오래써나갈것이다.“아직시인이라는것”(시인의말)에감사하며.

시인의말

아직시인이라는것이고맙다.

2025년10월
장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