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 (지연 시집 | 반양장)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 (지연 시집 | 반양장)

$13.00
Description
“그리하여 나는 비 오는 날에도
꽃에 물을 주고 싶고 풀을 뽑고 싶고”

굳은 땅에 불어넣는 생명의 숨결처럼
모든 날씨를 건너 비로소 피어나는 사랑의 시
2013년 『시산맥』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환상과 은유의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해온 지연 시인의 세번째 시집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이 창비시선 525번으로 출간되었다. 『내일은 어떻게 생겼을까』(실천문학사 2022)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는 2025년 구지가문학상 수상작 「마른 숨만 걷어 가세요」를 비롯해 특유의 단정하고 담백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서정시들이 수록되었다.
시인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의인화하여 목소리와 생명력을 부여”함으로써 “말할 수 없던 존재들이 말하게 되는 시적 공간을 창조”(박형준, 추천사)해내며 생명과 존재,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동시에 사라진 존재들이 남긴 흔적을 성실히 기록하며 그들을 향한 그리움을 전라도 방언의 구성진 가락과 소박한 말맛이 곳곳에 배어 있는 질박한 언어로 담아내었다.
저자

지연

저자:지연
지연(祉娟)시인은2013년『시산맥』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건너와빈칸으로』『내일은어떻게생겼을까』가있다.

목차

제1부흰뼈
콩대를태운밤
봄이그냥오겠어독활을먹어야봄이오지당신은묵은밭으로갔으나

단단한돌에빗물이스며드는속도로걸었다
흰뼈
유리창에적어보는마음
파묘(破墓)
맥박
올무
백엽상
지복(至福)
귀때기비석
나란히
우산을쓰고산책갑니다
당신이름을부르면주름이활짝생겨요
마른숨만걷어가세요

제2부복수
복수(複數)
밑변
누군가시끄럽다고민원을넣었다
작아서
안온
어제가중복이었지
안수(按手)
함박눈혹은흰개에관한기록
어두울수록믹서기에갈린푸른시간이필요해
단정화하나를당근마켓에서구입했을뿐인데
저승사자도천둥같은연애짓이필요해
신발을벗고올라가세요
그리고상자
12각모란나비자개상
흔들림을위하여

제3부소룡골시편
산그림자가나를배춧잎처럼덮어도

물이깊다
새비젓도아닌것이생각나는굴풋한저녁이다
비오는날
저럽대기를높이세우고
아무날도아닌모든날의지금
바람은삼베틀앉을깨에앉아북을띄우고
함박눈오던날
오월
십이월
잠복
미만(彌滿)
산지당가는길
십자수
탈상
그해가을
시나브로
조릿대를건너온물까치의아침
산속에서산속으로
산아래집이요집앞에꽃이오
악몽
음계(陰界)
도리없이
수수
여기에계셔서
울력
눈이온다
돌날몸돌,돌날같이
담기다

해설|장은영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장마가지나고
히아신스구근이사라지고
그자리에철지난데이지싹이자란다”

대지의숨결이깃든흙의언어로써내려간삶의기록이자“흙에뿌리내린언어의결실”(장은영,해설)이라할수있는이번시집에서,지연시인은인간이대지와관계를맺으며살아가는존재임을증명하듯유한한존재들의삶과죽음을통해생명의근원을탐색해나간다.그는살아있는모든존재가“성긴친밀속”에서“나란히넌출거리는”(「나란히」)수평적관계를맺으며서로를지탱하고,삶과죽음또한“서로의온도에기대”(「백엽상」)생명을떠받치는순환의질서안에있음을깨닫는다.“빈깍지같이살다간영혼들이빈깍지같은나를오래데우다가긴굴뚝으로천천히새어나가”(「콩대를태운밤」)듯생멸(生滅)이교차하는자리에서시인은생명의질서를조용히목격하기도한다.“비오는날에도꽃에물을주고싶고풀을뽑고싶고매일내잡초를뽑기위해일기를쓴다”(「지복(至福)」)는고백처럼,땅을돌보고기록을남기는일은그에게생의근원을향한기도이자흙과더불어살아가는실천의방식이된다.
시인은또한“비경과비명(非命)사이”(「어제가중복이었지」)에서삶과죽음이서로맞물리듯,다수의생이얽힌복수(複數)의세계를노래한다.“이세상은지난생의복수”(「복수(複數)」)라는선언은살아있는존재들의연쇄와윤회의시간을암시한다.죽음은단절이아니라“바닥을떠돌며마지막온기로나를받”드는순환의일부이며,“몇백년전먼혈육이식은심장을타닥거리며나에게무슨말인가”(「콩대를태운밤」)건네듯삶과죽음은서로를비추며이어져있다.“죽은아들을품었구나”(「밑변」),“죽은알을품는다”(「누군가시끄럽다고민원을넣었다」)와같은구절에서는부재한생명에게조차삶의온기를건네고자하는시인의의지가엿보인다.삶과죽음,존재와부재가공존하는세계속에서“작은것이우리를/미치게혹은경건하게에워싼다”(「작아서」)는통찰은모든생이서로를비추며순환하는생명의감각을포착해낸다.
한편시인의고향을신화적무대로재구성한3부의‘소룡골시편’연작은이번시집의정점이라할만하다.그는“아득한과거의신화적인한순간”을“만신의언어를빌려”(추천사)‘지금-여기’의현실로불러내고,“몸없는소리”(「잠복」)에귀기울이며사라진존재들의흔적을좇는다.“시체를꺼내걸레로닦”는서늘한장면에서“생지에공포로오그라진꽃잎들”(「십자수」)처럼스러져간원혼들을달래며역사적폭력의흔적을발굴하고,동시에“배춧잎속같은날”(「산그림자가나를배춧잎처럼덮어도」)을살아가던가족과정겨운이웃들의신산한삶의풍경을생생하게되살려낸다.기억의갈피속에서사라진이들의목소리를불러오던시인은마침내“흰뼈를안기위해/몸을흔든다”(「흰뼈」)라는문장에이른다.이는단순한죽음의회고가아니라,사라진존재들의삶까지껴안으려는깊은연민과사랑의표지이다.

“단단한돌에빗물이스며드는속도로당신에게간다”
순환하는모든존재에바치는기도의노래

『모든날씨들아쉬었다가렴』은문학평론가장은영이짚어보였듯“눈발처럼사라진존재들이남긴흔적에대한기록이자,그들의부재에대한슬픔과그리움을담은고백록”(해설)이라할수있다.단순한‘죽음의기록’이아니라사라진존재들을다시불러내는‘되살림의제의(祭儀)’이며,죽은자들을현재의시간으로호명하는기도의노래이다.“사실기다렸어요죽음을”(「수수」)이라는담담한고백처럼,시인지연은사라진것들을애도하면서도그속에서다시피어날생명의온기를기다린다.죽음조차삶의일부로받아들이며순환하는세계의질서를노래한다.
“모든날씨들아쉬었다가렴”(「백엽상」)이라는다정한인사는시집의끝자락에이르러인간과자연,산자와죽은자가함께숨쉬는세상을향한주문으로도읽힌다.이시집을통해우리는“단단한돌에빗물이스며드는속도”(「단단한돌에빗물이스며드는속도로걸었다」)로서로의존재를향해천천히스며들며,삶과죽음이서로에게잠복하듯물드는이흙의세계에서마침내타자에대한연민과사랑의씨앗을발견할수있을것이다.

시인의말

현실이가장아름답고고통스럽다
가난한오늘을세워무엇을덧붙이랴
그기꺼운눈물겨움이나를살게했으므로

고시레고시레오늘을건너시라
이름도없이훈김으로산목숨들
여기살아춤추시라

2025년10월
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