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경청 (이민하 시집 | 반양장)

우울과 경청 (이민하 시집 | 반양장)

$13.00
Description
“밤에 죽은 사람들은 조용하기도 하지.
내가 밖에 서 있는데 집 안에서 내 목소리가 들렸어.”
사라진 것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우울의 미학

감각적인 언어와 그로테스크한 환상적 이미지의 세계를 구축하며 “단 한번도 상투적으로 말하지 않는”(황현산 문학평론가)다는 평을 받아온 이민하의 신작 시집 『우울과 경청』이 창비시선 526번으로 출간되었다. 2022년 지훈문학상, 상화시인상을 수상한 『미기후』(문학과지성사 2021) 이후 4년 만의 시집이자, 등단 25년 만에 선보이는 여섯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낯설고도 익숙한 세계”의 비애를 “고요하면서도 격렬한 정동”(황인찬, 추천사)의 언어로 펼쳐 보인다. 부조리한 세계를 직시하며 동시대를 증언하는 시편들은 “죽음보다 질긴 독백”(「우리가 시인이었을 때」)의 형태로 서늘하게 와닿는다. 어둡고 무거우면서도 투명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우울’의 미학과 ‘경청’의 시학을 펼치는 『우울과 경청』은 슬픔 속에서도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로 남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오래 울릴 것이다.
저자

이민하

저자:이민하
1967년전라북도전주에서태어나2000년[현대시]를통해시를발표하기시작했다.시집『환상수족』,『음악처럼스캔들처럼』,『모조숲』,『세상의모든비밀』,『미기후』등이있다.2012년현대시작품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계절·잊지않겠다는뜻입니다사랑한다는뜻이지

홀(hole)
사랑의역사
검은책
내가죽었던의자
사월에감은눈은사월에다시떠지고
지그소
혼자와함께
공감각
언니의숲
우리가시인이었을때

제2계절·아프지않으면침묵할까요?

해변의수인
홀로(holo)
검은제복의아침
테이블
개구(開口)맨
식물도감
내가살았던의자
밤과시
여름의끝
이터널선샤인

제3계절·당신이나의저자입니다

무엇
9201
크래커
옛날영화
꿈속에혼자
북의기원
T-maze
일인용식사
지구인
밤의원주민
엑스트라가주인공인영화의엑스트라들

제4계절·그러나어디부터어디까지가나의귀일까

우울과경청
영향력
신세계
벽에갇힌사람들
진홍의왕
신비주의
지박령
복도와그림자
12월3일
제너레이션

제5계절·다음엔우리얘기만해요

라이터
동시대
살과뼈
마른탯줄을목에감고
옛날귀신
흙과물
내가없는시간속에서
우주의한점으로서바라본우주의깊고고요하고무궁한흰발자국
영원
자연의것

해설|전승민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죽은사람들은죽어서도할말이남아서
꿈속의빈의자를찾아다니고”

제목그대로‘우울’과‘경청’은이번시집을꿰뚫는가장적확한단어라할수있다.시인에게‘우울’은단순한슬픔의감정이아니라일상의부조리를감지하는감각이자타자의고통과슬픔에공명하는윤리적감수성이다.시인은“지난겨울의천재지변과누구나아는재앙같은것”(「진홍의왕」)을노래하면서도“우리는웃었다믿음이마르지않았다”(「지그소」)라고말한다.“밤낮없는암흑천지와누구나앓던우울같은”(「진홍의왕」)절망의이야기속에서도피어나는희망의기운,그것이시인이말하는우울의진짜얼굴인것이다.당신의슬픔에귀기울이고슬픔을함께견디며살아가는우울속에서우리는비로소서로에게가닿을수있다.

그리고그바탕에는타인의목소리를향한‘경청’이놓여있다.“귀를기울일수록못들은말이늘어나고”(「우울과경청」)“밤이계속되자경청이직업이되었다”(시인의말)는문장처럼,시인에게있어경청은단순한청취가아니라고통받는타자의목소리에몸을기울이는행위,타자의슬픔을받아들이는윤리이자곧살아있음의증거이다.시인은“나사처럼천천히숨을조여오는공포”와“꺼지지않는어둠속”(「공감각」)저편에서들려오는“절뚝거리는목소리”(「우울과경청」)를포착하고이에마음을쏟는다.그의시에등장하는귀신이나천사,지박령,고양이같은비인간존재들과여자,아이,엑스트라등세상의중심에서밀려난주변적존재들의목소리를듣는일이야말로시인이택한세계와의연대방식이기때문이다.시인에게있어이들은단순한연민의대상이아니라세계의폭력에가장먼저예민하게반응하는감각의주체이다.이처럼작고약하고여린존재를통해세계의폭력을응시하는시인은가장낮은자리에서먼저울고먼저듣는자들의목소리에조용히귀기울이며경청의시학을완성한다.

“잊지않겠다는뜻입니다.사랑한다는뜻이지.”
기나긴밤의복도를따라울려퍼지는나지막한목소리

전작『미기후』에서“세계적인우울과각자의기후속”살아가는인간의사랑을노래한시인은이번시집『우울과경청』에이르러“삶의고독을너무나잘이해하면서도그고독이결코나만의일로그치지않”(황인찬,추천사)도록우울을통해타인의슬픔을껴안고,경청을통해서로에게접속하고자한다.시인은“죽음앞에서손붙잡고할수있는것,그중에제일은사랑이니까”(「우울과경청」)라고말하며다시한번어두운쪽으로손을뻗는다.그것이이민하의시가지향하는공감과환대의윤리이자,삶을지키는방식이다.그러므로“죽음의이름들을기억하는행위”(전승민,해설)는결국“잊지않겠다는뜻”이며“사랑한다는뜻”(「사랑의역사」)이된다.세계의어둠을견디는모두의이름을하나씩호명하며“죽지말아요/오늘은죽지말아요”(「제너레이션」)라되뇌는이민하의주문은기나긴밤의복도를가득채우며투명하게울려퍼질것이다.

시인의말

내영혼의그림자에댓글을다는인생입니다만

밤이계속되자경청이직업이되었다
귀를벌리고
다음엔손을벌리고

문(文)이열린다

한우울이들어온다
깍듯이의자를빼드린다
거울처럼마주앉아

두우울이운다
죽지말아요
오늘은죽지말아요

2025년10월
이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