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백무산 시집 | 반양장)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백무산 시집 |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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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무도 울지 않으면
광야는 열리지 않는다”
자성 없는 세계에 드넓게 울리는 경종
생의 근원에 닿는 가장 깊고 넓은 사유
만해문학상, 백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노동시의 거목으로 우뚝 선 백무산 시인이 열한번째 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를 창비시선으로 펴냈다. 인생 70년의 연륜과 시력 40여년의 경륜을 고스란히 녹여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증언과 선언의 직설적 화법, 반어와 역설의 수사를 통해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고 자본주의 문명의 실상을 비판하는 공동체적 사유의 세계를 펼친다. 황폐한 자본주의 사회의 폐쇄회로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는 치열한 시 정신, 존재의 근원을 파고드는 철학적 사유의 깊이가 돌올하다. “자기 시각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자기 논리”(도종환, 추천사)로 부조리한 현실의 정곡을 찌르며 “자본주의 사회의 출구 없음에 대한 냉철한 해부”이자 “기어코 출구를 찾아내려는 집념”(김명환, 해설)을 응축한 시편들은 묵직한 여운을 남기며 우리의 정신을 일깨운다.
저자

백무산

1955년경북영천에서태어나1984년『민중시』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만국의노동자여』『동트는미포만의새벽을딛고』『인간의시간』『길은광야의것이다』『초심』『길밖의길』『거대한일상』『그모든가장자리』『폐허를인양하다』『이렇게한심한시절의아침에』등이있다.이산문학상,만해문학상,아름다운작가상,오장환문학상,임화문학예술상,대산문학상,백석문학상등을받았다.

목차

제1부
기원에대하여
먹기위해살기로
기차에대하여
가면무도회
아궁이
통과의례
문턱
새로출시된선악과
부르면그이름으로온다
악의우월성
고기사이
내부수리
후회
달력

제2부
인류세의아침
누군가나를살아주고있어
갈수도있었던길
파이프라인
형식의배후에
집을버리고
대치중인자들
존중사회를위하여
싱크홀
잔치는다시시작되었다
그들도지금이곳에
겨울꽃
닭모가지를비틀면
쌀의인류

제3부
감염
곁에있어주는능력
강변은어디에
바람의집
이빨
사람의한자리
대리모
저들에게도손이있어
신라의달밤
너를부를수없어
그렇게말한다면
기원의역사
사랑은사랑을모르지
돌아가고싶지않았다

제4부
헛꽃
정신을놓아버릴것같은폭염이
멈추어서할일들
누가나를깨운걸까
한국방문을마치고
주인잃은저들이비바람속에서
버스를타고가듯이
길을정지시키고
너를입고
독도에게묻는다
열광을주입하지마라
뭔가를한다는것은
노인은모두전사가된다
바람앞에서기위해

해설|김명환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우리는내릴수없는기차를타고있다”
질주하는문명을기필코막아서는올곧은정신

폭주하는인류문명을날선감각으로직시하는이번시집의백미는‘멈춤의미학’이다.속도가생존의조건이된현대사회를“멈추지않아아무나탈수없”고“내리고싶어도내릴수도없는기차”에비유하며“기차가멈추지않고달릴수있도록/몸을던져연료가되는”삶의비참을폭로한다.“기차의목적지는기차안에있기때문”(「기차에대하여」)에아무리달려도기차를멈춰세울수없다고냉혹한자본주의문명의논리를꼬집는대목은통렬하기그지없다.시인은외친다.이제그만멈추자고.“사람이무엇을하면할수록”세계는“무엇을할수없는땅이되어가는”모순앞에서“멈추어서부지런히해야할일들”이있다고설득한다.“하지말아야찾아오는새가있어/멈추어야자신을보여주는꽃이있어”(「멈추어서할일들」)라는구절에서드러나듯시인은멈춤을단순한포기나중단으로인식하지않는다.멈춰야비로소모든것을짓밟고달려온문명의세월을돌아보고,스러져간자연을되돌리고,훼손된인간성을복원할수있다고말한다.시인에게멈춤이란새롭게살아가기위한전환과회복의순간이다.
기술문명의폭주속에서인간이어떻게소외되고소모되는지를탐색하는시인의시선또한예리하다.AI가발호하는현재를차분하게응시하며“기계가인간의일을빼앗았다”기보다“인간이기계를닮아가고있다”고진단하는동시에“인간닮은기계는없지기계닮은인간투성이지”라고일갈한다.“인간이선망하고닮고싶어안달한것이사람이었어?”(「곁에있어주는능력」)라는물음은우리가탐욕에취해무엇을잃은채살고있는지깨닫게한다.시인은“몸은길들여진도구가되어/목숨파먹고사는”(「먹기위해살기로」)것이과연‘사는일’인지회의하며“세상이우리를위해서존재하지만은않는다는뻔한사실”(「그들도지금이곳에」)을직시한다.기계에잠식된세상속지리멸렬한삶끝에선시인의성찰은결국인간이고,‘나’를향한다.“내부수리가급한건나”였음을인식하고“내가나에게좀다정할수는없겠는가”(「내부수리」)라며온세상을향해다시묻는다.“우리는왜이런방식으로존재해야하는가?”(시인의말)
자본주의문명에대한비판은이렇듯근본적인질문을발판삼아도약해‘인간은서로를살아주는존재’임을믿는따뜻한생태적존재론으로나아간다.시인은“내가모르는사람들”이“나를조금씩살아주기도한다는걸”깨닫고“어디선가조금씩나를불러주고대신살아주어/간신히내가나로살아있는”것이라는통찰에다다른다.때로는“비열한자들”이“조소와냉소와악담으로나를살아버리기도”(「누군가나를살아주고있어」)한다는냉철한현실인식을병행하며깨달음은더욱단단하게뿌리를내린다.결국시인은“아무것도하지않을능력”과“멈춘다는걸이해하는능력”이곧사람의“곁에있어주는능력”(「곁에있어주는능력」)임을확인하며“나의몸을대주어너를지피”(「아궁이」)는연대의윤리를모색해나간다.

“다떠나고저문뒤에도
피어날꿈그것하나만남아”

어둠의시대한복판에서‘노동해방’의기치를내걸고강렬한사회적메시지를던지며기성문단을뒤흔들었던젊은시인은어느덧종심(從心)의나이에이르렀다.등단이후40여년의세월동안줄곧초심의견결한시심을견지하며“우리현대사의곡절가득한현실을온몸으로감당하면서시대의아픔과모순을직시해온시인”(해설)으로서시적구도(求道)의길을올곧이걸어온세월이다.“허허벌판은나의이력서”(「바람앞에서기위해」)라고말하는생애와시적여정을경유한끝에백무산의시는더이상‘노동시’의범주안에만머물지않는다.이번시집이증명하듯그의시세계는노동에서인간,문명에서만물로지평을넓혀한국현대시의방향을제시하는최고의경지에이르렀다해도과언이아니다.짧은시편에생의진리를각인하기까지기나긴투쟁의세월,격변과파란의시대를건너왔지만시인의목소리는한결같다.시인은여전히“우리가얼마나안으로망가진세상을살아왔는지”(「사람의한자리」)되돌아보며가뭇없이스러져“사라진것들을애도”하고동시대의“슬픔을노래할의무”(「뭔가를한다는것은」)를다하고자한다.그렇기에우리는확신한다.폐허와절망속에서도다시일어서는백무산의뜨거운생명의노래는끝내멈추지않을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