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살을 반성함 (윤제림 시집)

스물다섯살을 반성함 (윤제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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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때 같은 별에 살았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는 지금
바싹 붙어 앉아 있다”
관객의 자리에서 바라본 우주의 풍경
서로를 알아듣고 알아볼 때 움트는 사랑
1987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40년 가까이 간결하고 평이한 일상의 언어로 따뜻한 서정의 세계를 일구어온 윤제림 시인의 신작 시집 『스물다섯살을 반성함』이 창비시선 531번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만물이 촘촘한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연대를 통해 구현되는 사랑의 풍경을 포착한다. 기억과 상상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사소한 장면에서 삶의 비의를 짚어내는 탁월한 직관, 무거운 주제도 유쾌하게 비틀어 읽는 이를 웃음 짓게 하는 특유의 해학이 여전하다. “타락과 승격이 순식간”(시인의 말)에 이루어지는 삭막한 오늘날에, 시인의 “애쓰는 마음”과 “반짝이는 위트”(윤고은, 추천사)로 가득한 시편들이 반가운 위로를 전한다.
저자

윤제림

제천에서나고인천에서자랐다.1987년『문예중앙』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삼천리호자전거』『미미의집』『황천반점』『사랑을놓치다』『그는걸어서온다』『새의얼굴』『편지에는그냥잘지낸다고쓴다』,시선집『강가에서』,동시집『거북이는오늘도지각이다』,산문집『걸어서돌아왔지요』등이있다.지훈문학상,권태응문학상,영랑시문학상등을받았다.

목차

제1부
김군에게
신무기와재래식무기
소의얼굴
까마귀
스물다섯살을반성함
맷돌과모닥불
먼데서온저녁상
능소화
동백꽃
신경림씨의근황
시민김창수씨
신길온천에는온천이없다
사전선거운동
축문(祝文)을지으려다그만두고
트럭을타고온사람

제2부
날이장히좋구나,청아
백일홍
일곱살과일흔한살
금강산버스를기다리며
나는이제
초행
이모는약속을지켰다
출생률을높이는법
아버지는어떻게답하셨을까
표표히떠나가는
마지막장면은오래남는다
의자
할미꽃은
여름풍경
목련꽃이피었다
시론

제3부
해방촌
소나무숲에서
산수화는본디
나는그렇게들었다
아까그사람들
바람에겐안됐지만
정원이의스케줄
딴세상과거래할일이있거든
매화야,너는어이
그새끼,말참이쁘게했다
주의와협조를당부함
톰처럼주디처럼
맨손체조
어린이날에

제4부
백년여관에서
산불이후
밤의공제선
태풍19호
오래걸릴것이다
절경
이런날은
윤슬을보며
오래된직업
영랑호에서

천치와백치
하지(夏至)
졸곡(卒哭)
대설
지구인

해설|김수이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당신이먼저왔어도
다르지않았을것이다”
매일의삶이일깨우는존재의섭리

이번시집의기저를관통하는태도는‘알아듣기’와‘알아보기’다.시인은우주의관객인“지나가는/사람”(「백일홍」)의자리에머물기를자처하며스스로말하기보다삼라만상에먼저귀기울인다.그에게있어듣고보는행위는어떤존재도‘나’와무관하지않음을인식하는일이다.이는거창한순간이아닌소박한일상속에서반복된다.그는“인간이모른체지내도괜찮은존재가/천지간에하나도없”으며“태초에인간과/삼라만상이/서로의신원을보증해주기로한/약속이있었음”(「맨손체조」)을겸허히믿는다.이러한태도의바탕에는만물이복잡하게얽혀순환을이루는불교의연기론적세계관이있다.“우리는지금/바싹붙어앉아있다/두손을꼭붙들고.//오늘처음본/사이에!”(「지구인」)라는진술에는뭇존재들을바라보는시인의애정어린시선이묻어난다.

“알아들을수있는말이면좋겠다,
동행도없으니”

시인은이우주에서만물이간절히연결되어있음을노래한다.인간뿐만아니라사물과동물,나아가죽은이들의목소리까지도집중해서듣는다.“말조심해라/우리는아무거나먹을것으로보지않는다,/당신을고기로보지않는다”는“버들치갈겨니동자개모래무지”(「나는그렇게들었다」)들의조용한외침을듣고,“누가날좀지상으로내려다오/나를올려다보는사람들목도아플것이오,/김구팔도아플지경이니”라고“남산공원백범동상이비슷한이야기를하는걸”(「시민김창수씨」)듣는다.이는환청이나상상이아닌“마음으로알아듣는말”(김수이,해설)이다.이처럼존재사이의담장을허물고낮은목소리에주파수를맞추는치열한경청으로시인은세상과공명한다.
시공간을가로지르며삼라만상의숨소리를받아적는이에게그시선을안으로돌려스스로를매섭게성찰하는일은숙명과도같다.시인은과거카피라이터로활동하던시절,“죽는약”인줄도모르고화려한수사를동원해농약광고를만들었던젊은날의무지를뼈아프게복기한다.그는“배추한포기키워보지못한사람이흰소리를막했다”고고백하며“늙은전답,검버섯들판”앞에서“참회의문장을/땅에다묻”(「스물다섯살을반성함」)는다.이러한서늘한자기반성은타자를대하는태도에서도드러난다.“‘이래라저래라’방법도방향도이르지못하면서/‘일해라’‘절해라’명령만/되풀이하는”기성세대의무책임함과권위적인태도를꼬집으면서도,“나역시꼰대”라며시인은스스로를낮춘다.“청춘이사원(寺院)인데/누구한테경배하겠는가.//일도절도/자네가주인”(「김군에게」)이라는말로청춘에게진심어린위로와격려를건네는시인의모습에서는권위를걷어내고성찰을거듭하는어른의단정한품격이느껴진다.

“그러니까,세상모든사랑의말들은”
온우주가기꺼이길을터준자리에고이는진심

윤제림에게사랑은나만의의지로완성되는독백이아니다.불꽃처럼달려가는사랑의언어가온전히가닿기위해서는세상의다른말들이잠시물러서주는“주의와협조”(「주의와협조를당부함」)가,거대한연대의운동이반드시필요하다.감각을곤두세워만물을살피는행위는결국지극한사랑을온전히전하기위한필사적인노력이다.시인은온천이없는역에붙은‘온천’이라는이름에서“길손불러앉혀서선뜻들밥을나누고/낯선짐승쉴자리도보아주던옛마을”을그리워하는마음을읽어내고,“뜨거운생명의물을/온몸에바르고마실날”(「신길온천에는온천이없다」)이마침내오리라믿는다.“이쪽저쪽두루통하는/우주의엔터테이너”(시인의말)로서,만물이서로를다정하게살피는장면을꿈꾸는시인은현실의삶에급급한우리에게“사람과하늘을섬기는법”(「소의얼굴」)을일깨우며위태로운‘인간의자리’를다시금성찰하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