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

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

$13.00
Description
“노래는 다시 이어지고
밖에선 여름꽃들이 화사하게 피었다가 졌다”
오래된 기억의 더께를 걷어낸 자리에
다시 한번 생의 기운을 불어넣는 목소리

시간의 흐름 속에서 희미해진 향토적 정서를 살아 있는 현재로 만드는 성취를 보여주며 “우리 시대 백석 시인의 현현(顯現)”(천상병시문학상 심사평)이라는 평을 받아온 송진권 시인의 네번째 시집 『그림자놀이 하던 날은 가고』가 창비시선 532번으로 출간되었다. 박재삼문학상, 백석문학상 수상작 『원근법을 배우는 시간』(창비 2022)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농경적 사유를 바탕으로 “현시대에 보기 드문 대서사시의 귀환을 예감”(김준현, 해설)케 하는 완미한 전통 서정의 세계를 펼치며 사람과 자연과 뭇 생명이 교감하는 시원(始原)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백석과 정지용의 구어(口語)와 리듬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토속어의 감칠맛과 구성진 가락이 생동하는 순박한 시편들이 “오랜만에 고향에 온 듯”(길상호, 추천사)한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저자

송진권

충북옥천에서태어나2004년창비신인시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자라는돌』『거기그런사람이살았다고』『원근법배우는시간』,동시집『새그리는방법』『어떤것』등이있다.천상병시문학상,고양행주문학상,박재삼문학상,백석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모란이,그날처럼
옴팡골
산밑집
옴팡골에산밑집에
저꽃밭
그래도저꽃밭
붉은실
시인한흑의모(母)
그윽한밤에
그림자놀이하던날은가고
고양이는괜찮아
해바라기씨이야기

제2부
찔레덤불속
나의어린신
도라지꽃밭으로
용암사해돋이
봄달,자목련
장마
수묵
모란에게
호랑지빠귀
울고가는저기러기

제3부
버들피리꺾어불던
마루밑에살던것들에게
머나먼골짜기
피자두
못골큰집
삼세번
고들빼기꽃이
동기간에
가시지않는비린내
일많이한손1
일많이한손2
노제(路祭)
2024겨울,못골
꾸구리가앉았던데

제4부
소등가죽의떨림같이
어디로가는배냐
물먹는논
믿을만한구석
방하착(放下着)
쇠죽안칠때
능이가나는곳
부부
노이히삼촌을생각함3
신들의황혼
늦게온손님
여이
봄나들이사진속
장날3
물멀미
상봉(相逢)
여울목

제5부
물까마귀
여름은어떻게오는가
옛노래의도랑가에서
기억해야하는감각
바랭이와쇠비름은
소쩍새의위장술
두릅순은몇번꺾나
결대로
스무고개
밤눈내리니
작약
무서운기다림
먼훗날

해설|김준현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순하고애틋한언어로되살려내는지난날의풍경

진실한마음이깃든선한눈으로세상을바라보는송진권의시에는자연의정기와사람의온기가서려있다.시인은“시간의적층으로인해납작하게눌려있는말이아니라생생한현장의말과현장의감정”(해설)으로“귀퉁이깨진호롱”“찢어진털신”“귀뚜라미와노래기와지네들”“숯검댕묻은몽당빗자루”(「마루밑에살던것들에게」)등삶의구석으로밀려나있는존재들을하나하나불러낸다.쉽게스쳐사라져간이들에게다정하게안부를물으며이들의내력과“타고난팔자”(「나의어린신」)의‘내림’을꼼꼼히새겨둔다.그런가하면“안죽으니께살아지는거”라며“속에태산같은짐을쟁이구사는”(「여이」)물크러진삶의비애와생의덧없음을때로는슬픔을담은소리로,때로는해학적으로전복하여보여주기도한다.
시인에게유년의기억은단지추억이나회상이아니라“앞서간사람들이앉았던흔적을더듬어보는일”(「기억해야하는감각」)이다.시인은고향사람들의질박한삶을진솔하게복원해낸다.특히“독사같이바랭이같이대가리쳐들고살아나밥빌고쌀빌어”(「시인한흑의모(母)」)자식들을키워온부모들의헌신과평생을일로살아온노동의숭고함을뭉클한필치로그려내는시인은“손톱이으등그러지고손에풀물들어갈라지고/지문도다지워”진어머니의“일많이한손”(「피자두」)과“무녀리라고손가락질당하”면서도“궂은일다당신이하시”던아버지의“마디마디못이배긴그손”이단순한노동의도구가아니라“식구들건사”(「일많이한손1」)하고삶을지켜온강인한생명력의원천이었음을되새긴다.

“다시또어느때어느곳으로스밀지
골똘히생각하기도하는것이다”
순환하는계절처럼이어지는생의돌림노래

표제작「그림자놀이하던날은가고」에서알수있듯이번시집에수록된많은시편이‘그림자놀이’가끝난이후,생이사라지고난자리를그려내고있지만시인은죽음이나소멸을단순히슬퍼하는것이아니라자연스러운순환의과정으로받아들인다.그렇기에“곰팡이가피고/정지엔녹슨가마솥이굴러”다니는빈집의쓸쓸한정경은“오늘사올라나내일이나올라나”(「못골큰집」)누군가를애틋하게기다리는재회의장소로거듭나고,화단의꽃들이말라가는곳에서도“이팝꽃도고봉으로피워놓고/꾀꼬리울음도개울물소리랑잇대어놓고/살자고살자고/여기서그냥살자고”(「그윽한밤에」)속삭이는생명의기척을느끼는것이다.시인은가뭇없이생의뒤편으로사라져간것들을지금-여기의삶한가운데로다시불러들이며,“내가어디만큼떠내려와있는지”“내가벗어놓은허물들이다어디로흘러갔을지”(「머나먼골짜기」)골똘히생각해본다.
그러므로‘그림자놀이’의시간은가고서늘한현실이당도해있는곳에서도시인은절망에머물지않고다음을그려낸다.놀이는끝났을지언정“우리가부르던노래”(「그림자놀이하던날은가고」)는여전히이어지고있기때문이다.시인은그노래를나침반삼아“옛날로가는지도”(「옛노래의도랑가에서」)를그려가며“가도가도끝없는행로(行路)”(「저꽃밭」)를묵묵히걸어나간다.가슴속에쟁여둔오래된기억속의풍경들을“아직도잊지않았다고”“아니잊지않으려고”“그래도잊힐까싶어서”(「물까마귀」)시로써나간다.이처럼모든것이사라진자리에서도다시한번꽃밭을일궈내는송진권의시는소멸이후에도결코멈추지않는생의끈질긴맥박을증명해보이며우리를“여름꽃들이화사하게”(「붉은실」)피고있는새로운자리로데려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