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 일 없는 데만 가게 된다

별 볼 일 없는 데만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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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산과 산 사이를 울린다
가만히 가만히 살자”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사라진 수평의 세계
가장 서늘한 곳에서 바라보는 가장 환한 햇살

올해로 등단 만 30년이 된 유승도 시인의 신작 시집 『별 볼 일 없는 데만 가게 된다』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강원도 영월 망경대산에 정착한 이후 자급자족의 삶을 이어가며 오랜 시간 독자적인 시세계를 다져온 시인의 사유가 한층 깊어졌다. 사철 자연의 모습을 온몸으로 겪으며 뭇 존재가 주는 깨달음을 시 속에 녹여내는 시인은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 사이를 가로지르는 수평적 세계관의 깊은 통찰과 사유를 진솔한 언어로 펼쳐 보인다. 망경대산 자락에서 길어 올린 정결하고 청량한 시편들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표제작을 포함하여 모두 63편의 시가 실린 시집은 툭 터놓듯 담백한 문장으로 이어지며, 편편이 담긴 사유의 무게는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저자

유승도

충남서천에서태어나1995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작은침묵들을위하여』『차가운웃음』『일방적사랑』『천만년이내린다』『딱따구리가아침을열다』『수컷의속성』『사람도흐른다』『하늘에서멧돼지가떨어졌다』,산문집『촌사람으로사는즐거움』『고향은있다』『수염기르기』『산에사는사람은산이되고』『달밤이풍성한이유』『세월이마음에들지않는다하여도서러워하지마화내지도마』,동화『진달래꽃아래』등이있다.

목차

제1부
유서
산그늘이다가온다
자연의손바닥
햇살이뿌려지는한낮
평평하다
변신술
가만히바라보고있으니
연록의시절
별볼일없는데만가게된다
비린내
나는자신을꽁꽁감싸고있는당신이답답하다
장수풍뎅이는나를닮았다
해변에낚싯대를걸고
무거운옷을입고산다
가끔은나도정신을어딘가에놓아둔채살고싶다
나의돌
이가없는사람

제2부
꽃향기날리는밤에
이름
비웃음을사다
할일많은사람들
독사가팔짝뛰었다
봄은백미터달리기출발선에있다
가벼운고독
어둠의새와놀다
늦봄
나의집
아내의큰일
파도는바위를치며묻는다
그날의학교
평화의얼굴
통학버스는오후4시에학교에서출발한다

제3부
창밖이멀다
7월
여행좀다녀오라고?
옥수수가익어가는여름
솜사탕
좋은일
새끼를물리치다
조용히살다조용히갔다
꼽등이를먹었으면꼽등이가됐을까?
꼭의미가있어야만사는가
내집앞도랑물은졸졸졸졸흐른다
은은한달빛을받으며서있었다
뒷다리가하나없던어린고양이가어미를따라형제들과함께세상으로나갔다가홀로돌아와죽었다
봄비소리
내가바라보며사는소백산맥의북면은겨울내내하얀얼굴이다
햇빛은아무데나비춘다

제4부
2023,맑은봄날이었다
눈물
암병동가는길
죽음을기다리다
하늘도단풍으로물드는가
단풍잎이바람에떨어져산등성이너머로날아간다

뽕나무아래를지날때
굴국은공평하게먹어야
나는누워있는데
갓난아기손만한함박눈이내리는모습을
바라본다
오랜만에
어이하랴
얼굴
울음소리

발문|고형렬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나와나아닌것의경계가있는가?
나는이물음에대해답을얻지못했다”
자연의일부라는생생한실감

시인이지향하는세계는인간과자연의위계가사라진'평평한'공간이다.그에게인간은만물의영장으로서자연위에군림하는주인이아니라,“너도나도자연이란몸의세포하나하나”로서“자연의손바닥안”(「자연의손바닥」)에깃들어사는미미한존재일뿐이다.그런자연은포용이나배제의의도없이“아무곳으로나”(「햇빛은아무데나비춘다」)향하는햇빛과같다.시인이자연생명들과맺는관계역시사람들과맺는관계와마찬가지로더중요하거나덜중요한구석이없다.그는그자체로인간중심적세계관을넘어뭇존재들사이의경계를자유롭게허무는방향으로나아간다.인간의오만함과가식을꼬집고,생활을위해살생을저지르는자신마저있는그대로서술한다.때로는“좀사귀어보자”고하는밤부엉이의유쾌한울음소리에도“그런맘없다”(「어둠의새와놀다」)며홀로숲길을걷기도한다.자연의일부로살아가면서동시에단독자로서자신을끊임없이가다듬는일이다.
한편시인은북적이는사람들을피해“별볼일없는데만가게된다”고자조적으로진술하며,간혹회의가들기도하지만“고치려하지않으며산다”(「별볼일없는데만가게된다」)고덤덤하게말한다.이는세속적인욕망에휩쓸리지않겠다는의지의표현이기도하다.그는자신만의속도로살아가면서“매일매일희한한세상을마주하게되니산다는게좋은일”(「좋은일」)이라고감각한다.평범한일상속소박한만족감이돋보이는시편들은산다는건그자체로이미충만하다는통찰을담고있다.너무많은사람,너무많은연결에자신의마음이어떠한모양을하고있는지조차흐릿해지는때에,시인의정갈한언어는“산과산사이를”울리는“닭울음소리”(「가벼운고독」)도들릴만한고요의세계로독자들을초대한다.

삶이죽음을향해가고죽음이삶을바라보게하는
처절하게쓸쓸하고아득하게밝은세상의순환

시집에는간혹비릿한“피와살의냄새”(「비린내」)가풍기는죽음의그림자가얼비친다.특히“바람이불어도흩어지지않고비가와도씻기지않는얼굴”(「어이하랴」)이라며떠난형님을그리워하는시편들은유독아프게다가온다.모든것이순환임을받아들인시인에게도가까운친지의죽음은통절하고애틋하다.그러나시인은결국죽음조차도삶의한과정으로껴안는넉넉함을보여준다.첫시「유서」에서는“남의몸을먹으며살았으니육체나마숲의동물들에게돌려줘야겠다”면서죽음을단절이아니라새로운생명으로이어지는순환으로받아들이는자연회귀의정신을상징적으로보여준다.또함박눈내려환해진겨울에는아들의탄생과아버지의젊은시절에관한추억을되새겨보기도한다.마지막시「울음소리」에서형님의“사십구재전날밤”“어둠을먹”는조카딸의통곡을들으면서,처절하게슬퍼하는마음이야말로죽음을밝히는아득한등불임을상기시킨다.
충만한봄의기운이오히려쓸쓸하게느껴지는순간은누구에게나있을것이다.시인역시“봄은죽음의또다른얼굴”('시인의말')이라고생각한다.그러나동시에시인은늦겨울봄을기다리는꽃눈과잎눈의조바심을관찰한다.가장서늘하고낮은땅에서가장환하고높은햇살을살펴보고,보도공사에다치게될수선화를걱정한다.“드러나지않게피어나는꽃”에서“죽은사람들의얼굴”(「꽃향기날리는밤에」)을발견하는시인의감각은삶과죽음이공존하는산중세계의진경을고스란히전한다.
유승도의시는화려한수사나난해한은유대신직설적이고일상적인문장으로우리의가슴을파고든다.고형렬시인은발문에서이번시집을“절묘한구성을얻은한편의삶”이라평하며,“문명의반대편에서있는수많은우울과자책의저녁을보낸자의아침노래”라이른다.시인이결국도달하는지점은'비움'과'순응'의상태이다.시인은“자신이산산이깨어지는소리”(「파도는바위를치며묻는다」)를들으며자아를성찰하면서,'인간중심'에서'자연중심'의새로운길을열어보인다.세속의화려한중심보다는'별볼일없는'풍경속으로잦아들며,비워냄으로써비로소풍요로워지는무위의미학을성취한다.시인이바라보는있는그대로의세계는역설적으로평정심과평안함을불러일으킨다.끝없는자연앞에서삶으로부터죽음을받아들이고죽음으로부터생명의빛을틔워내는시인의발걸음이우뚝하고,“시라는겉옷을입고”(「무거운옷을입고산다」)“가만히가만히살자”(「가벼운고독」)고읊조리듯다짐하는마음이사뭇겸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