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 (유병록 시집)

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 (유병록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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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선물이 비록 슬픔이어도
네가 주면 받아야지”
슬픔을 어루만지며 무르익은 사랑의 감각
마주 잡은 손끝에서 퍼지는 희망의 온기
상실의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여린 존재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색해온 유병록 시인의 시집 『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천상병시문학상과 노작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창비 2020) 이후 6년 만에 펴내는 세번째 시집이다. 전작 시집에서 지독한 슬픔과 고통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는 ‘안간힘’의 세계를 보여주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아픔조차 삶의 풍경으로 받아들이며 “마음이라고 부르는 자기 존재의 본질”(김나영, 해설)을 발견해나가는 더욱 성숙한 시선과 사유를 보여준다. 또한 서로의 ‘다름’과 ‘오해’가 오히려 생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된다는 역설적인 희망을 노래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슬픔 속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를 차분하고 담백한 어조로 들려준다. 삶의 비애를 위로하는 “혼몽하리만치 보드랍고 단 사랑”(최지은, 추천사)의 언어들로 가득 찬 이 시집을 읽으며 우리는 내면 우묵한 곳을 채워주는 충만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다정으로 버텨라”
견뎌내는 우리 모두의 눈부신 아름다움

시인의 사랑은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을 향한 따듯한 ‘마음’과 지극한 ‘돌봄’에서 시작된다. 자신은 물론 곁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지키는 일에 몰두함으로써 시인은 삶의 의지를 북돋우며 마음을 다잡는다. 시인은 “도무지 힘이 나지 않거든/무엇이라도 돌보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듣고” 길가의 작은 돌멩이를 주워 와 볕 좋은 곳에 두고 보듬은 끝에 “사랑에 대하여 조막만큼 알게”(「돌봄」)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정성의 마음은 타인을 향한 다정함으로 확장되어 “우는 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눈물을 닦아”주고 “온통 젖도록 껴안아”(「물사람」)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고, “마음이라는 게 내 안에 있고/그걸 꺼낼 수 있다면” 기꺼이 “너에게 주어야겠다”(「선물」)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너’에게 건네는 마음이 “다시 상처투성이가 되겠지만” 시인은 “그것이 너의 운명”이고 “그것이 너의 일생”(「다시 마음이 되어」)이라며 사랑의 필연적인 아픔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시집의 표제이기도 한 ‘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라는 선언은 이처럼 세상과 다정하게 시선을 맞춘 상태로 서로의 ‘다름’과 ‘오해’를 인정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시인은 “한집에 살고 한 침대에서 잔다고/같은 꿈을 꾸는 거 아니더라”는 일상의 사소한 발견을 통해 우리가 겪게 되는 수많은 오해와 어긋남을 예민하게 포착하면서 마침내 “오해는 반복되고/그리하여 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라는 통찰에 도달한다.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소멸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넘어, 서로의 고통과 슬픔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종의 본질과도 같으며, 그 본질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그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아픔을 받아들이고 나누며 살아낼 수 있다는 굳센 믿음의 표현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지나온 삶의 흔적을 되새겨보는 성찰의 시간 속에서도 슬픔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긍정의 태도를 보여준다. “선물이 비록 슬픔이어도/네가 주면 받아야지” 다짐하면서 슬픔을 “기념품처럼 오래 간직”(「우리 곁으로 슬픔이 착륙한다」)하는 법을 제시한다. 자신의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다 “내 뺨을 때리는 것은/내 손”(「여기까지 온 게 어디냐」)이었음을 발견하고 고통의 근원이 자기 안에 있었음을 자각하기도 한다. “견디어라 견디어라” 되뇌며, 또 “견디는 나를 오래 견디면서”(「나에게 묻는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누가 나를 도우러 오리라 기대하지 말아야지”(「밤의 혼잣말」) 다짐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감당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절망과 체념이 극한에 다다른 지점에서 오히려 “나는 삶을 사랑하기로 했어요”라고 말한다. 삶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삶은/너무나 보잘것없”고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아무것도 아니”(「어떤 사랑」)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남에게/더욱 나에게/다정으로 버텨라”(「다정으로 버텨라」) 북돋우는 주문은 중요한 메시지로 읽힌다. 여기에서 ‘다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특별할 것 없는 “세상 한 귀퉁이 아름답게 하자는 마음”이기에, 그럼에도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때로는」)의 실천이기에 그렇다.

오늘을 내일로 인도하는 따뜻한 주문

비관이 온 마음을 뒤덮는 궂은 날에도 시인은 기어이 “살 만한 날씨”(「비관과 낙관」)를 찾아 낙관의 자리를 마련해둔다. “결혼식에 가서 박수를 치고/장례식장에서 몇 마디 위로”(「올해의 뿌듯」)를 건네는 일상의 소소한 행위들이 모여 슬픔을 이겨내는 다정함이 된다고 믿는다. 살아오며 “무성해진 것은/슬픔과/안간힘”(「신혼」)뿐이지만 시인은 그 슬픔을 견디며 “나는 나의 자랑이 되어야겠습니다”(「당신의 자랑이 되지 못하고」) 다짐하고, 마침내 “오늘을 건너서 내일로”(「밤의 혼잣말」)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 걸음이야말로 우리가 끝내 멸종하지 않는 생명력의 증거일 것이다. 어쩌지 못하는 ‘나’를 끌어안고 ‘나’로서 살아가는 일 자체가 곧 존재의 의미임을 생각하게 하는 이 시집은 어긋날지라도 끝내 손 놓지 않고 함께 걸어가는 우리 모두를 지탱하는 든든한 마음의 버팀목이 될 것이다.
저자

유병록

1982년충북옥천에서태어나2010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목숨이두근거릴때마다』『아무다짐도하지않기로해요』,산문집『안간힘』『그립소』등이있다.김준성문학상,내일의한국작가상,천상병시문학상,노작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돌봄
여름편지
선물
여름비
물사람
우리는멸종하지않는다
너의일
낮잠
다시마음이되어
신혼
참외
너의거실에서
올해의뿌듯

제2부
우리곁으로슬픔이착륙한다
너를위한노래는
거리의기도
때로는
세상은아름답고인생은찬란하다
내곁은아니지만
부부
배웅
누운자
슬픔이간다
환절기
속수무책
날마다조금씩
비관과낙관

제3부
여기까지온게어디냐
옥천
처마의슬하
어제의비를오늘멈추게할거야
내심장은돌로되었으니까
나에게묻는다
밤의혼잣말
아무도없지만아무도없는건아니다
다정으로버텨라
파도가온다
수긍
근속
신입

제4부
당신의자랑이되지못하고
모자
나의고요
모가지간수하려거든
어떤사랑
멈칫
내멱살을잡고
죽은듯조용히살게요
나의농사
안부
파주
아는사람


해설|김나영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어쩌면시인이란곳곳에숨어사랑을안내하는사람아닐까.‘이렇게사랑을해보세요,이렇게도깊어져보세요’손짓하는사람,유병록시인은『우리는멸종하지않는다』에서또한번가없이펼쳐지는사랑의전개를보여준다.
시인은우리의‘다름’과‘오해’가우리의존속조건이된다고선언한다.이선언은유병록이얼마나또어떻게이세계를사랑하고있는지,시인의사랑을증명하는배경이된다.만질수없으나사라지지않는향기,“달콤한참외향”(「참외」)으로전환된사랑의존재는결코멀어지지않는사랑의메타포가된다.‘망가짐’은끝이라는단순한오해로부터우리를자유롭게한다.유병록이우리에게보여주는사랑의방식은결코사라지지않는향으로존재와부재를뒤섞으며슬픔마저사랑으로뒤덮는다.그러니까이시집은사랑의전개와사랑의도약,오직사랑만으로가득차있다는이야기.
시집의끝을넘길땐잠깐,혼잣말했다.유병록에게,그리고시를사랑하는우리에게언제까지나시를허락해달라고.“사랑의끝에는기도가있었다”(「끝」)라고알려준시인에게제일먼저되돌려주고싶었다.이봄,혼몽하리만치보드랍고단사랑이우리를찾아왔다고.창을열고손짓하는마음으로.
최지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