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 - 창비시선 537

우리는 멸종하지 않는다 - 창비시선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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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유병록

저자:유병록
유병록(庾炳鹿)시인은1982년충북옥천에서태어나2010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목숨이두근거릴때마다』『아무다짐도하지않기로해요』,산문집『안간힘』『그립소』등이있다.김준성문학상,내일의한국작가상,천상병시문학상,노작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돌봄
여름편지
선물
여름비
물사람
우리는멸종하지않는다
너의일
낮잠
다시마음이되어
신혼
참외
너의거실에서
올해의뿌듯

제2부
우리곁으로슬픔이착륙한다
너를위한노래는
거리의기도
때로는
세상은아름답고인생은찬란하다
내곁은아니지만
부부
배웅
누운자
슬픔이간다
환절기
속수무책
날마다조금씩
비관과낙관

제3부
여기까지온게어디냐
옥천
처마의슬하
어제의비를오늘멈추게할거야
내심장은돌로되었으니까
나에게묻는다
밤의혼잣말
아무도없지만아무도없는건아니다
다정으로버텨라
파도가온다
수긍
근속
신입

제4부
당신의자랑이되지못하고
모자
나의고요
모가지간수하려거든
어떤사랑
멈칫
내멱살을잡고
죽은듯조용히살게요
나의농사
안부
파주
아는사람


해설|김나영
시인의말

출판사 서평

“다정으로버텨라”
견뎌내는우리모두의눈부신아름다움

시인의사랑은작고보잘것없는존재들을향한따듯한‘마음’과지극한‘돌봄’에서시작된다.자신은물론곁에있는누군가의존재를지키는일에몰두함으로써시인은삶의의지를북돋우며마음을다잡는다.시인은“도무지힘이나지않거든/무엇이라도돌보면어떻겠냐는조언을듣고”길가의작은돌멩이를주워와볕좋은곳에두고보듬은끝에“사랑에대하여조막만큼알게”(「돌봄」)되었다고고백한다.이러한정성의마음은타인을향한다정함으로확장되어“우는자에게성큼성큼다가가/눈물을닦아”주고“온통젖도록껴안아”(「물사람」)주는구체적인행동으로나타나고,“마음이라는게내안에있고/그걸꺼낼수있다면”기꺼이“너에게주어야겠다”(「선물」)는결심으로이어진다.‘너’에게건네는마음이“다시상처투성이가되겠지만”시인은“그것이너의운명”이고“그것이너의일생”(「다시마음이되어」)이라며사랑의필연적인아픔을담담히받아들인다.
시집의표제이기도한‘우리는멸종하지않는다’라는선언은이처럼세상과다정하게시선을맞춘상태로서로의‘다름’과‘오해’를인정하는지점에서출발한다.시인은“한집에살고한침대에서잔다고/같은꿈을꾸는거아니더라”는일상의사소한발견을통해우리가겪게되는수많은오해와어긋남을예민하게포착하면서마침내“오해는반복되고/그리하여우리는멸종하지않는다”(「우리는멸종하지않는다」)라는통찰에도달한다.이는단순히생물학적으로소멸되지않는다는의미를넘어,서로의고통과슬픔을공유하는것이야말로인간종의본질과도같으며,그본질이지속되는한우리는그어떤시련이닥쳐와도아픔을받아들이고나누며살아낼수있다는굳센믿음의표현이다.
그렇기에시인은지나온삶의흔적을되새겨보는성찰의시간속에서도슬픔을삶의일부로받아들이는긍정의태도를보여준다.“선물이비록슬픔이어도/네가주면받아야지”다짐하면서슬픔을“기념품처럼오래간직”(「우리곁으로슬픔이착륙한다」)하는법을제시한다.자신의마음을차분히들여다보다“내뺨을때리는것은/내손”(「여기까지온게어디냐」)이었음을발견하고고통의근원이자기안에있었음을자각하기도한다.“견디어라견디어라”되뇌며,또“견디는나를오래견디면서”(「나에게묻는다」)어떤절망속에서도“누가나를도우러오리라기대하지말아야지”(「밤의혼잣말」)다짐하고자신의삶을스스로감당하려는태도를취한다.그리고절망과체념이극한에다다른지점에서오히려“나는삶을사랑하기로했어요”라고말한다.삶이특별해서가아니다.“삶은/너무나보잘것없”고“내가사랑해주지않으면/아무것도아니”(「어떤사랑」)라는깨달음때문이다.이지점에서“남에게/더욱나에게/다정으로버텨라”(「다정으로버텨라」)북돋우는주문은중요한메시지로읽힌다.여기에서‘다정’은단순한감정이아니라특별할것없는“세상한귀퉁이아름답게하자는마음”이기에,그럼에도“더나은사람이되겠다는다짐”(「때로는」)의실천이기에그렇다.

오늘을내일로인도하는따뜻한주문

비관이온마음을뒤덮는궂은날에도시인은기어이“살만한날씨”(「비관과낙관」)를찾아낙관의자리를마련해둔다.“결혼식에가서박수를치고/장례식장에서몇마디위로”(「올해의뿌듯」)를건네는일상의소소한행위들이모여슬픔을이겨내는다정함이된다고믿는다.살아오며“무성해진것은/슬픔과/안간힘”(「신혼」)뿐이지만시인은그슬픔을견디며“나는나의자랑이되어야겠습니다”(「당신의자랑이되지못하고」)다짐하고,마침내“오늘을건너서내일로”(「밤의혼잣말」)한걸음씩나아간다.그걸음이야말로우리가끝내멸종하지않는생명력의증거일것이다.어쩌지못하는‘나’를끌어안고‘나’로서살아가는일자체가곧존재의의미임을생각하게하는이시집은어긋날지라도끝내손놓지않고함께걸어가는우리모두를지탱하는든든한마음의버팀목이될것이다.

시인의말

예감하고있었다
시의힘을의심하는날이
오고야말것이라고
세계를구하기는커녕
나하나부축할힘은있는지
의심하는날이
오고야말것이라고
의심하고또의심하다가
믿음의자리로돌아올것이라고
이미오래전에
시는
예감했을것이다
2026년5월
유병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