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한없이삼각형에가까우셨다”
전위적으로빚어낸뼈아픈농담과불온한상상력
『처음으로물에뜨는시간』을관통하는거대한페르소나는‘고아’다.이번시집에서시인은세상으로부터보호받지못한존재,아무도이름불러주지않는존재,그러나기어이자기만의농담과기도와신화를만들어내는존재를전면에세운다.시집의화자들은“돼지가널먹을때는아무도네이름을부르며찾지않을때다”(「형이아홉살내게말씀해주신다」)라는섬뜩한진술속에서세계의냉혹함을배운다.하지만조인호는이두려움을감상적인상처고백으로풀어내지않는다.대신그것을웃기고도섬뜩한블랙코미디로바꾸어놓는다.
「부활절달걀」에서고아원아이들은서로의얼굴을달걀에그리고서툰글씨로기도문을적는다.그러나이달걀은곧신의얼굴이되고,우주비행사의성물이되고,장례의방식이되고,마침내“한작은인간”이웅크린탄생의이미지로변신한다.거룩함과불경함,웃음과공포가한몸처럼뒤엉키는이시에서독자는조인호특유의과감한상상력이어디까지뻗어나갈수있는지를목격하게된다.“신은한없이삼각형에가까우셨다”(「나의신은틀렸다」),“신은막대기모양을하고있었다”(「테트리스」)같은진술역시결코신성모독이아니라,무너져가는세계속에서구원의자리를더이상찾을수없는사람이끝내만들어낸가장불경하고도절박한방식의기도다.
이렇듯조인호의시는언제나농담처럼출발해재난의한복판에도착한다.우스꽝스러운장면뒤에는폭력이있고,황당한설정끝에는깊은상처가있으며,그과감한상상력의바닥에는도저히외면할수없는현실이놓여있다.시인은김일성사망소식과신문배달소년의기억을겹쳐놓으며반공이데올로기와가난한유년의욕망을절묘하게비틀고(「그만죽어김일성」),이태원핼러윈의밤,종교와혐오와죄의식이뒤엉키는장면을숨가쁘게통과한다(「슈뢰딩거의돼지」).‘도덕주의’라는안전핀마저뽑아버린이용감한시들은때로는독자의마음을서걱이게하면서도끝내눈을뗄수없게한다.
아무리길어도길지않은시들
역사극,무성영화,스탠드업코미디가한꺼번에펼쳐지는세계
『처음으로물에뜨는시간』의또다른즐거움은장면마다새롭게열리는거대한스케일에있다.용광로속으로뛰어든한노동자의죽음은시베리아횡단열차의녹슨철로의이미지로이어진다(「맨인더박스」).그리고독일무성영화의세계를불러와흑백의도시와로봇,마천루와자막을통과하게도한다(「영화와건축」).전쟁과농담을한무대위에올려놓고(「바그다드스탠드업코미디클럽」),전쟁터로징병된안드로이드와그를기다리는존재의편지를통해인간과기계,사랑과전쟁사이의경계를뒤흔든다(「어릿광대를보내주오」).
시인은대중문화와세계사,과학과종교,영화와정치적사건을시의재료로종횡무진끌어온다.그런데이낯선재료들은산만하게흩어지지않는다.고아라는근원적감각,버려진존재의눈으로세계를다시본다는일관된축이300여면의분량을단단하게꿰뚫기때문이다.그래서이시집의독자는매번전혀다른장르의문을열고들어가면서도,어느순간그모든문이하나의거대한방으로이어져있음을깨닫게된다.그곳은조인호만이열어보일수있는불온하고매혹적인방이다.
대미를장식하는장시「도라무깡」은이시집의역사적상상력이도달한정점이다.일제강점기731부대의생체실험에서태어난존재는만주벌판의드럼통안에버려져7년을견딘다.“나는통각이없기에/조금도/고통스럽지않았다”라는화자의고백은너무나참혹해서오히려무감각해질수밖에없었던폭력의역사를떠올리게한다.그러나이작품역시단순한역사고발에머무르지않는다.‘도라무깡(드럼통)’속에서살아남은괴물의목소리를통해시인은제국의광기와인간의공포,뭇생명들의악몽을묵시록적활극처럼펼쳐보인다.조인호의시에서괴물은역사가낳고버린또하나의고아이며,독자는그괴물의시선을통해우리현대사의검은우물을들여다보게된다.
“투명해져서너무나투명해서”
깊은슬픔끝에비로소떠오르는기묘하고찬란한몽환의서정
이토록거칠고대담하게나아가지만『처음으로물에뜨는시간』은결코차갑게만남지않는다.표제작이라고도할수있는「녹색광선」은조인호의세계가지닌서정적아름다움을눈부시게보여준다.밤바다로걸어들어간고아원아이들은“보름달물해파리처럼/투명해”지고,너무나투명해져“서로를통과해/지나다닐수도있”게된다.사라질듯희미한존재들이서로의몸을지나고,하나가둘이되거나둘이하나가되는이장면은사라질뻔한존재들이유령처럼서로를붙드는슬픈세례의순간이다.
그바다에서화자는“물을무서워하던내가/처음으로물에뜨는시간”을경험한다.물에뜬다는것은고통이끝났다는뜻이아니다.혼자가라앉지않기위해누군가에게몸을맡기는일,버려진존재들이서로를통과하며가까스로부력을얻는일에가깝다.“일생에단한번,/깨져야만/날수있는//유리새”(「유리새」)의운명처럼,조인호의시는깨지고훼손된자리에서비로소날아오르는역설적인아름다움을보여준다.
‘시인의말’에서조인호는병실의어머니가건넨한마디를적는다.“인호야,하나님은/고아와과부를축복하신다는데,/나는둘다해당되니/축복이너무많다.”시인은이농담한마디가“다시,시를쓰게했다”라고말한다.이말은『처음으로물에뜨는시간』전체를여는열쇠처럼읽힌다.이시집에서농담은현실을가볍게넘기기위한도피가아니다.무너진뒤에도다시말하기위해,상처입은뒤에도계속살아가기위해인간이가까스로발명한생존의형식이다.
15년을기다려도착한조인호의두번째시집은한국시의한복판에아주낯설고강렬한파문을일으킨다.기괴한데아름답고,잔혹한데웃기며,어두운데묘하게계속읽고싶은이시집은오래기다린독자에게는반가운귀환으로,처음만나는독자에게는잊기어려운충격으로다가갈것이다.“다음기다림은15년보단짧기를,그것뿐이다”라는신형철의애정어린당부처럼,독자들역시이매혹적인블랙코미디의바다에기꺼이몸을맡기게될것이다.물을무서워하던이들이처음으로물위에뜨는시간.그이상하고아름다운순간이이제우리앞에도착했다.
책속에서
교회종이세번치면
고아원아이들은
모두저녁예배에간다.
나는교회에가지않고
형과함께
돼지우리앞에있다.
발뒤꿈치들고
돼지우리안을들여다본다.
이제아프지않다.형.
돼지우리안에돼지가없다
―「형이아홉살내게말씀해주신다」부분
이처럼진실한기도는문고리보다는달걀과같은것이어서
깨고나올순없다는것을,기다려야한다는것을.
그래서기도시간에몰래눈을떴을때
아,
거룩하신그분과
형들,누나들,동생들이
나만빼고
모두눈을부릅뜬채
우적우적
달걀을까먹고계셨다.
―「부활절달걀」부분
그바다에서
아이들이나올때는
몸은투명해져있어서
너무나
투명해져서
형들에게는검은미역이
누나들에게는이름모를물고기가
동생들에게는불가사리가
담겨나오고
그바다에서
나는세례를받았다
머리부터발끝까지
담겨,
올려다본수면위로
일렁이는고아들의얼굴들
―「녹색광선」부분
마이크타이슨은말했다
누구나그럴싸한계획을갖고있다
처맞기전까지는,
처맞고나서야알았다
붕대란이렇게따뜻한것이로구나,양한백마리쯤구덩이에고꾸라져구덩이를하얗게채우듯상처를덮는이붕대란것이천사의입맞춤이라는것을,
청년은국민참여재판정에서붕대에관해역설했다
―「붕대의아들들」부분
아버지는죽기전까지훌륭한스탠드업코미디언이었다.그는서서죽었으니까.
그날,그가했던마지막농담을기억한다.아들아,서있기가힘들구나……
그때나는보았다.
검은병실천장위로
거대한자궁이열리고,
그아래갓태어난가젤새끼처럼아버지는기어이서있고자했음을.
생각하면자꾸웃음이나온다.그때나는아버지의마지막농담을이해할줄모르는젊은얼간이였다.
―「바그다드스탠드업코미디클럽」부분
전쟁이길어지면서,나의반려안드로이드,
당신마저징병되어떠날수밖에없었어요.
나의사랑하는전기양,당신이없으니
제영혼은털깎인양처럼외롭고추워요.
이제나의베개는텅비었고,
아무도내베개를따뜻하게채워주지않아요.
당신은지금어디있나요?
―「어릿광대를보내주오」부분
나는쫓는다누구를?돼지를!쫓다가양꼬치집을지나치는데사내몇이둘러앉은테이블위로쇠꼬챙이에꽂힌채회전하던양한마리“어이구,인간아,돼지는저쪽으로갔지말입니다!”고자질하며내게하는말,언제부터조선놈들이양꼬치를먹었다고,지금내꼴이말이아니다,슬프다,사실원래나는양이아니었다,주절주절떠들어대는새끼양의말을무시하고
나는쫓는다누구를?돼지를!사실말하자면아까거리에서보았던,김정은분장을한그녀석이꽤맘에들었다핼러윈데이오늘같은밤이태원한복판에핵폭탄이떨어지면,이얼마나아름다울것인가!빨간버튼한번꾹,누르면오늘같은밤이좋아라한다고김정은에게은근슬쩍쪽지한장건네주고싶었지만
―「슈뢰딩거의돼지」부분
세족례(洗足禮)도중아이가신부에게말했다어젯밤,신을만났어요신부는이성스러운아이의머리를쓰다듬으며대야에물을부었다
그래,신이뭐라고말씀하시던?
대야에발을담그고아이가대답했다아무말씀없었어요,그냥막대기모양을하고있었어요
―「테트리스」부분
쇼와20년,
천황의목소리가라지오에서흘러나오던날,
기무라교수는조선총독부지하연구소에서
스스로목숨을끊었다.
그날의하늘은순도높은에메랄드빛이었다.
팔월의매미가울었다.
나는그날죽은기무라교수―
아니,육군본부소속대좌의
머리부터
먹어치운날이기도했다.
―「도라무깡」부분